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20화 (20/200)

20.

콘스 교수가 내 머리를 붙잡고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사사사삭-

‘으윽…….’

전에 학생이 시전했던 저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나의 머릿속을 잠식하려 했다.

‘저항해! 저항하라고!’

그러나 오늘 같은 날을 위해 신성력을 키워 나갔다.

‘같잖은 조각상에 기도를 올리고 되도 않는 믿음을 보인 건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였다고! 저항해!’

나의 의지가 신성력에 전달되기라도 한 것인지.

내 심장에 똬리를 틀고 있던 신성력이 머리 부근으로 올라가 콘스 교수의 저주와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파악-

‘이런… 역시 교수의 저주에 저항하기에는 아직 좀 역부족이었나…….’

아직 신성력이 부족한 탓인 걸까.

생각보다 머릿속을 잠식한 검은 안개를 떨쳐 내는 건 쉽지가 않았다.

웅웅웅-

‘음… 아니야. 효과가 있어!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에서 머리 부근으로 올라가는 신성력이 점점 많아졌고.

열세를 보이던 신성력이 점점 검은 안개를 잡아먹듯 안개를 치워 나갔다.

‘오오…….’

마침내 머릿속의 검은 안개가 모두 사라지자.

난 비로소 나의 신성력으로 콘스 교수의 저주에 저항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최상급 성수를 마셔서 그런 건가? 아냐, 막 엄청 신성력이 증가하는 느낌은 없었어.’

애당초 성수란 게 뭔가?

마를 제압하고 병을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성한 물 아니던가?

‘그럼 내가 꾸준히 올렸던 기도 덕이라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신성력이 흑마력에 강한 상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건가?’

내 신성력으로 콘스 교수의 저주를 파훼했다는 사실에 의문이 들었으나.

‘일단 빨리 멍청한 표정을 지어야지.’

난 의문을 지우고 멍한 표정을 하곤 입가 사이로 침을 흘려보냈다.

“내가 시킨 일은 어떻게 됐지?”

“으으… 의식의 중심지에 있던… 핏빛 구체의 기운을 일부… 흡수하고 주셨던 최상급… 성수를 뿌렸습니다…….”

“그래? 들었죠? 성공했다고 하네요.”

나의 혼신의 연기가 통한 것인지 스스로의 능력을 확신하는 건진 몰라도.

콘스 교수는 별달리 의심하는 기색 없이 허공에 말을 건다.

“세상에… 정말 성공을 했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갑자기 바닥에서 베크 교수가 스르륵 모습을 보이자.

‘…베크 교수? 아니, 베크 교수가 여긴 왜……. 설마 진짜 베크 교수랑 콘스 교수가 동맹 관계였… 아차, 표정.’

난 순간 당혹감에 흔들릴 뻔한 마음을 겨우 다잡았다.

“구체에 변화는 있었어?”

“성수를 뿌리니… 붉었던 구체가… 하얗게… 변했습니다.”

“오오… 정말 성공한 모양이군요. 하하, 하하하하하! 일부러 의식의 장소 주변 경계를 풀어 놓기를 정말 잘했습니다!”

베크 교수가 주먹을 불끈 쥐자.

콘스 교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안도할 시점은 아니에요. 그 신관장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만약 구체에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조치를 취하려 하겠죠.”

“그럼… 저희가 한 일도 전부 소용없는 것 아닌가요?”

“그렇진 않아요. 다만 이제 쐐기를 박아야죠.”

‘쐐기를 박는다고? 어떻게?’

콘스 교수의 의미심장한 말에 베크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쐐기를 박는다고 하면…….”

“아크 교수와 학장이 저희가 한 일을 모르게 해야죠. 의식이 시작되기 전까지요.”

“하지만… 분명 제물을 더 투입하려고 할 텐데…….”

베크 교수가 말꼬리를 흐리자.

난 그제야 베크 교수가 걱정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제물을 투입하려면 아크 교수는 좋으나 싫으나 구체 주변으로 갈 수밖에 없을 거고, 구체의 상태를 보게 될 테니까 그걸 걱정하는 거겠지.’

“무슨 소리예요? 제물을 흡수시키는 일은 제가 하기로 했잖아요? 기억 안 나요?”

“예? 아, 아! 회의에서 목소리를 높이셨던 이유가 그럼…….”

“당연히 이번 일을 무사히 넘기기 위함이었죠.”

콘스 교수의 덤덤한 대답과 달리.

베크 교수는 감탄하여 그녀를 바라본다.

“그럼 걸릴 일이 없겠군요!”

“의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안도하진 마요. 당신도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이요?”

콘스 교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 교수들 몰래 키우고 있던 오우거들을 데려와서 경계하는 데 투입하세요. 경계가 삼엄하면 삼엄할수록 신관장이랑 학장님도 더 안심할 테니까요.”

“그, 그걸 어떻게…….”

“제가 당신을 하루 이틀 보나요? 예전에 고요의 숲에서 트롤 떼거리가 몰려온 걸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뒤집어지는데요.”

“크흠…….”

‘아아… 그 트롤 새끼들이 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건가 했더니, 진짜 베크 교수가 키우던 거였어?’

난 2년 전쯤 대량의 트롤들이 아카데미를 덮쳤던 사건을 떠올리곤.

멍한 표정을 유지한 채 베크 교수를 바라봤다.

‘콘스 교수가 빡칠 만했지.’

트롤들을 제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그 와중 콘스 교수가 아끼던 드레이크상이 작살이 나지 않았던가?

“여하튼 일이 잘 마무리된 것 같으니 전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러세요.”

스르륵-

베크 교수가 다시 지면 아래로 자취를 감추자.

“됐어. 일어나.”

그녀는 한숨을 내쉬곤 내게 걸려 있던 저주를 풀었다.

“으으… 으으음…….”

머릿속에 미세하게 남아 있던 검은 안개가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 들자.

난 어지러운 척 비틀거리다가 그녀를 바라봤다.

“확인해 보셨습니까?”

“확실히 잘 처리했네. 수고했어.”

‘수고했다고? 평소에는 그런 말 한 마디 안 하는 년이 수고했다고 하다니… 얼마나 기뻤던 거야?’

난 속으로 혀를 내두르곤 천천히 입술을 뗐다.

“감사합니다. 그보다, 그럼 외출은…….”

“외출? 아, 그랬었지. 그래. 외출시켜 줄게.”

“정말입니까?!”

나의 질문에 그녀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젓는다.

“그래.”

‘예스! 역시 약속 하나는 잘 지키네.’

드디어!

드디어 이 빌어먹을 아카데미를 나가 볼 수 있다.

‘5년 만에 바깥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니. 진짜… 믿기지가 않네.’

“외출 기간은 이틀이야. 알지?”

“그럼요.”

이틀이면 밖의 정세를 살펴보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아카데미 밖에는 뭐가 있는지, 탈출할 수 있는 환경인지 철저하게 살펴보고 돌아와야지. 아카데미를 탈출하기만 하면…….’

난 반쯤 탈출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갔다.

‘모험가가 되어 볼까? 이 정도 힘이 있으면 모험가가 돼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거야. 아니면 대륙을 방랑하면서 대륙 명소들을 돌아다녀 보는 것도 좋겠지.’

무엇을 하건 간에 적어도 이 빌어먹을 아카데미에서 하인으로 지내는 것보단 나으리라.

“아 참, 네 외출에는 베크 교수가 동행하게 될 거야.”

“…예?”

갑작스러운 그녀의 발언에 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설마 너 혼자 나가는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아니었어?’

하인도 교수의 허락을 맡으면 외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전례가 없던 일이었기에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선 자세히 아는 것이 없었다.

‘젠장… 그냥 곱게 좀 내보내 주지 왜 꼬장을 부려?!’

내 표정을 본 콘스 교수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곤 말을 이어 갔다.

“네가 나가서 어떤 짓을 당할지 모르는데, 당연히 보호자를 붙여야지. 넌 학원의 자산이니까.”

‘그걸 잘 아는 년이 자산을 그따위로 다뤄?’

사실 학원의 자산은 그저 명분일 뿐.

내가 밖에서 허튼짓을 못 하게 하기 위해 감시를 붙이는 것일 터.

‘교수급이 붙는 게 좀 의외긴 하지만…….’

“저야 뭐… 외출한다는 데 감사해야죠. 그런데 베크 교수님은 괜찮으시답니까?”

“어차피 나가서 마물이나 구경하고 술이나 퍼마시다 돌아올 텐데, 짐 하나 맡는다고 달라질까?”

“아아…….”

아무래도 베크 교수는 이 사안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번 주 주말에 베크 교수랑 같이 나갔다 와. 외출증은 내일 줄 테니까.”

‘그래… 좋게 생각하자. 어차피 교수가 붙긴 했을 거야. 그렇다면 차라리 베크 교수가 나아.’

아카데미의 미친 교수들 중에서도.

베크 교수는 그래도 비교적 굉장히 온건한 편에 속했다.

‘마물과 관련된 것에는 눈이 뒤집어지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쓰레기까진 아니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며칠이 흐르고.

마침내 아카데미에도 주말이 찾아왔다.

‘드디어 때가 됐다. 때가 됐어!’

오늘 난 밖으로 나간다.

‘너무 설레서 잠도 제대로 못 잤네.’

난 들뜬 마음을 억누르곤.

침대 밑에 묻어 놨던 보석 몇 개를 꺼내 몰래 주머니에 잘 챙겨 넣었다.

‘아무리 하인의 외출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땡전 한 푼 안 줄 수가 있냐?’

난 고개를 젓곤.

마침내 문을 박차고 침실 밖으로 나갔다.

“하인장님!”

“정말 나가시는 겁니까?”

그러자 아침점호를 기다리고 있던 하인들이 날 보며 부리나케 질문을 던진다.

“그래. 정말로 나간다. 이틀 동안이지만 말이야.”

내가 씨익 웃으며 답하자.

“하인이 외출을 할 수 있는 게 정말 가능했다니……. 와… 정말… 너무 부럽습니다.”

“아아… 나도 진짜 딱 한 번만 나가 보고 싶어.”

“그래도 하인장님께서 밖으로 나가시는 걸 보니 우리도 언젠가 한 번쯤 나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외출은 무슨?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니미럴…….”

하인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날 부러워했고.

“저도 데리고 나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돌아오실 때 꼭 제 선물 잊지 마십쇼!”

나와 친분이 있던 하인들은 슬며시 다가와 내 옆구리에 부탁을 찔러 넣는다.

“조용, 조용!”

쏟아지는 부탁들의 향연에 난 목소리를 높여 저들을 정숙시켰다.

“너희가 부러워하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부탁하는 것도 이해해.”

“그럼 들어주시는 겁니까?!”

“하지만 너희의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

아아…….

나의 말에 일부 하인들이 탄식한다.

“술? 카드? 음식? 나도 가져다주고 싶지. 하지만 내 외출은 말 그대로 ‘외출’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수중에는 돈이 없다.”

내 고백에 하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예? 아니, 외출을 하시는데 아카데미에서 한 푼도 안 준 겁니까?”

“그래. 한 푼도 없이 외출하는 거다. 한 푼도 없이!”

“맙소사…….”

내 말이 끝나자.

“하인장님은 무려 5년을 살아남으셨는데 어떻게 은화 한 닢 안 줄 수가 있지?”

“그럼 밖으로 나가도 아무것도 못 하는 것 아냐? 돈이 없는데 뭘 해?”

하인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밖에서 뭘 하긴? 어떻게든 보석을 팔아서 돈을 마련해야지.’

“거기다가 나를 보호 관찰 하기 위해 베크 교수님이 나와 동행한다.”

“그럼 외출에… 자유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 난 그저 바깥을 보러 가는 것뿐이다. 그러니 너희의 부탁도 들어줄 수가 없는 거다. 전부 이해했나?”

나의 말이 끝나자 더 이상 내게 부탁을 해 오는 하인은 없었고.

“진짜… 이 쓰레기 같은 흑마법사 새끼들…….”

“앞으로 걸레질은 반만 해야겠어.”

“그 정도로 돼? 스켈레톤도 엉성하게 고쳐 놓을 거야.”

도리어 아카데미의 관계자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은 8번 방 방장이 임시로 하인들을 통솔해. 할 수 있지?”

“옙! 잘 다녀오십쇼!”

임시로 하인장의 권한까지 인계한 뒤.

“무탈하게 돌아오십쇼!”

“돌아오시거든 바깥에서 있었던 일들 꼭 얘기해 주시는 겁니다!”

난 하인들의 환송을 뒤로하고.

작은 봇짐을 등에 진 채 마법진이 있는 아카데미의 입구로 향했다.

“늦었잖아!”

어느덧 마법진 인근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베크 교수가 불만스럽게 날 바라본다.

‘하긴, 저놈도 귀찮겠지. 편하게 밖에 나가고 싶을 텐데 날 데리고 나가야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베크 교수의 속사정 따위 알 게 뭔가?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놈아.’

“죄송합니다. 일을 인계하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빨리 움직이자고. 너도 얼른 나가 보고 싶을 것 아냐?”

내가 순순히 사과하자 조금 마음이 풀린 건지.

베크 교수는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물론입니다.”

“마법진 위에 서, 바로 나갈 거니까.”

난 베크 교수의 말을 따라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속이 좀 울렁거릴 거야. 토하지 말고 참아.”

“그러죠.”

“이동한다.”

‘드디어… 드디어 나가 보는구나…….’

나는 감격에 젖어 빛나는 마법진을 바라봤다.

‘주변에 별게 없어야 할 텐데…….’

만약 주변에 시설이 많다면 탈출이 더 불편해질 수도 있을 터.

웅웅웅-

나의 불안함과 설렘은 곧 번쩍이는 마법진과 함께 삽시간에 자리에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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