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뭐?’
다 같이 순교하자니?
그 말인즉슨 이 자리에 있는 하인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것 아닌가?
‘저 사이코 신관장이 드디어 대가리가 돌았나?’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하인들을 순교시킬 이유가 없잖은가?
“허허, 더럽혀졌던 수많은 영혼들이 드디어 구원을 받는다니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이로군. 자, 시작들 하게.”
‘기쁜 날? 이 미친놈아! 적당히 해!’
하지만 내 마음과 달리 아크 교수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지자.
덜그럭-
대기하고 있던 스켈레톤들이 무기를 빼 들기 시작했다.
“제, 제발! 왜 이러시는 겁니까?!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 그래! 그 빌어먹을 예배도 드리고 시킨 일들은 다 이 악물고 했다고!”
“오, 오지 마! 누가 널 수리했는데?! 내가 했다고! 내가… 아아악!”
삽시간에 거친 대지 위로 선혈이 낭자하여 붉은 강을 만들었고.
“오오, 레바논 님이시여. 마침내 구원받은 어린 양들이 당신께로 나아갑니다. 그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보호하고 또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크 교수는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번쩍 쳐든다.
‘저 미친 새끼…….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스켈레톤의 손에 죽어 가는 하인들을 보며.
내 마음속에는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만약 내가 여기 갓 들어온 하인이었다면 분명 나도 저 안에서 죽었겠지.’
저 무리에 내가 포함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감정.
‘이제 신입들이 좀 일에 적응해서 쓸 만해지려던 찰나에 이딴 짓을 해?’
그리고 다시 일손이 부족해져 개고생을 하겠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적어도 왜 갑자기 이딴 짓을 하는지는 물어봐야겠어.’
평소였다면 교수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겠으나.
“오오… 저주스럽지만 또 축복이 임하는 자리구나. 레바논이시여… 레바논이시여…….”
아크 교수의 기분이 좋아 보였기에 난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크 교수님,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유?”
“아무래도 지금 아카데미에 일손이 부족한 상황인데, 갑자기 하인들을 모아 순교시키시는 연유가 궁금해서 말입니다.”
나의 질문에 아크 교수는 껄껄 웃더니.
일방적인 학살이 자행되는 붉은 벌판을 보며 입을 뗐다.
“밑 작업을 하려면 많은 피가 필요한 법이네.”
‘밑 작업? 대체 이게 무슨 밑 작업이라는 건데? 시체가 필요하다면 다시 바깥 사람들을 납치해 오면 되는 것 아냐?’
왜 굳이 아카데미의 노동자를 갈아 버리는 걸까?
‘단순히 시체가 필요한 게 아니라면…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지?’
하지만 아크 교수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고.
어느덧 붉은 벌판 위로 피어오르던 비명과 울부짖음도 잦아들었다.
퍽, 퍽-
스켈레톤들이 땅을 파고 시체들을 파묻기 시작하자.
웅웅웅-
지면 위로 붉고 음습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음… 그래도 조금 모자란 것 같군…….”
‘이게 모자라다고?’
아크 교수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난 어이가 없어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제 자네들은 가 봐도 좋네.”
“가도 되는 겁니까?”
“허허, 가 보게. 일손이 필요하다면 또 자네들을 부르도록 하겠네.”
‘일손? 일손이 필요한 게 아니라 목숨이 필요한 거겠지!’
“…알겠습니다.”
그러나 난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살아남은 하인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각 방의 방장들… 남은 인원 추슬러서 보고해.”
“1번 방, 3명 남았습니다.”
“2번 방, 4명 남았습니다.”
.
.
.
‘얼추 3분의 1 정도 남은 건가.’
이만큼이나 남아서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마음이 심란하다.
“저… 하인장님.”
내가 이맛살을 찌푸리던 중.
4번 방의 방장이 내게 다가와 말한다.
“왜?”
“이대로 괜찮은 겁니까?”
“뭐가?”
나의 덤덤한 물음에 4번 방의 방장은 나만 들을 수 있도록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요즘 하인들이 죽는 속도가 예전에 비해 너무 빠른 것 같습니다. 적어도 예전에는 오래 살아남았으면 그래도 조금은 살려 주는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확실히 그런 것 없이 그냥 뭔가 필요하다 싶으면 싹 다 죽이고 있긴 해. 그런데?”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물음에 난 피식 실소를 흘렸다.
“무슨 대책?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렇잖습니까? 지금이야 수습 하인들이 죽어 나갔다지만, 다음은 저희 차례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 자식이 짬밥을 똥구멍으로 먹었나?’
“이봐, 프라체. 네가 몇 년 차였지?”
“그게… 3년 조금 넘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걱정이야?”
난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갔다.
“어차피 아카데미에는 하인이 필요해. 안 그러면 저 많은 학생이랑 교수들 시종은 누가 들 건데? 잡일은 누가 다 처리하고?”
“그야 그렇지만… 전… 불안합니다.”
“이해는 해. 확실히 근 몇 달 사이에 엄청 죽어 나갔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나도 묻자. 그래서 우리가 세울 수 있는 대책이 있어?”
나의 물음에 프라체는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연다.
“당장 떠오르는 건 없지만 뭐라도 대책을…….”
“이곳을 탈출하기라도 할 거야? 심장은 놔두고? 어떻게 운이 좋아 심장을 되찾았다고 치자. 남은 저주들은 어떻게 풀 건데? 그래. 정말 그놈의 레바논이 도와줘서 그 모든 게 해결됐다고 쳐도, 이곳을 벗어날 방도가 있어?”
“그렇게 일이 잘 풀린다면 마법진을 타고 도망가면 되지 않습니까?”
프라체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입구에 있는 마법진 너머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그야 저는 잘… 모르지요. 혹시 하인장님은 알고 계시는 겁니까?!”
“당연히 나도 모르지.”
‘하지만 대충 유추는 할 수 있어.’
도굴꾼들이 갖고 오는 백골에 붙어 있는 ‘흑탑의 검증서’.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소포에 붙어 있는 ‘흑탑의 확인서’.
그런 것들로 미루어 봤을 때, 생각할 수 있는 건 한 가지였다.
‘바깥으로 가는 마법진 근처에는 흑탑이 있다. 아니, 어쩌면 흑탑 안에 마법진이 있을지도 모르지.’
물론 그 모든 건 어디까지나 내가 생각한 가정일 뿐이었으나.
난 어느 정도 확신을 하고 있었다.
‘매년 입학식에 학부모들이 흑탑의 위용에 대해 떠들어 댔던 걸 생각하면, 아주 가능성이 없진 않아.’
결국 내가 이 빌어먹을 아카데미를 나간다고 해도.
높은 확률로 흑탑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바깥에 흑탑이 있다면 저주를 푼다고 해도 곧바로 나갈 수는 없겠지.’
내가 씁쓸한 마음을 삼키던 중.
프라체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한다.
“하인장님의 말씀대로 정말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습니다.”
‘이 새끼가… 그렇게 경고를 해 줬으면 좀 알아먹어라.’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뭐라도 해 보려고 합니다.”
프라체의 눈에 결의가 들어차자.
난 싸늘하게 말했다.
“네가 뭘 하건 그건 네 의지니까 내가 간섭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네 행동이 하인들 전체의 피해로 돌아오는 거라면 난 가만있지 않을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명심하겠습니다.”
* * *
하인들이 대량 학살을 당하고 어느덧 1주일이 지났다.
‘조용하네.’
곧 1학기의 중간 점검 시간인 중간고사 기간인 탓인지.
평소와 달리 아카데미 안은 조용했다.
‘프라체도 별다른 행동은 안 하는 것 같고.’
요 며칠간 프라체가 무슨 돌발 행동을 할까 싶어.
그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었다.
‘아마도 발버둥 쳐 봤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닫고 포기한 거겠지.’
난 고개를 젓곤.
눈앞의 콘스 교수의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쩌적-
예의 문에 붙어 있던 눈동자가 날 바라보더니.
문이 슬며시 열린다.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조심스레 콘스 교수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바삐 양피지에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콘스 교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험 문제를 내는 건가?’
1학년들은 이미 콘스 교수의 시험을 치렀으니.
아마도 2학년이나 3학년의 시험문제이리라.
“몸 상태는?”
“교수님의 교육 덕분에 전보다 흑마력의 양이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부패 저주는?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어?”
그녀의 물음에 난 조용히 답했다.
“이제 어지간한 사람은 급속도로 부패시킬 정도는 됩니다.”
“부족해. 그 정도로는 아크 교수를 죽일 수 없어. 네 저주는 그의 간단한 성마법에도 막히고 말겠지.”
콘스 교수의 냉랭한 평가에 난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거의 평생을 레바논만 믿으면서 살아온 놈을 죽이려는 건데 당연히 부족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더 분발하겠습니다.”
“분발하는 걸론 부족해. 네게 재능이 없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부족할 줄은 몰랐어. 이러다간 올해가 넘어도 아크 교수를 못 죽이겠지.”
그녀는 깃펜을 내려놓곤 무심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를 죽이려면 적어도 나와 동급인 수준까진 올라와야 돼.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지만 제가 어떻게 교수님과 동등한 수준의 실력자가 될 수 있을까요.”
내 대답에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그렇지. 그러니까 약간의 편법을 사용할 거야.”
‘…편법?’
“편법이라 하심은…….”
“아카데미 뒤쪽에 벌판이 있는 건 알고 있겠지?”
“그야… 알고 있지요.”
불과 일주일 전에 그 빌어먹을 곳에서 대량의 하인들이 죽어 나갔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앞으로는 밤에 몰래 그곳으로 가서 흑마력을 모아. 지금쯤이면 어느 정도 시체들도 썩어 문드러졌을 테니 흑마력을 모으기에는 충분하겠지.”
‘나보고 몰래 그곳으로 가라고?’
이 미친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그 짓이 벌어진 뒤로 출입을 엄금하고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라는 거야?’
벌판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수많은 스켈레톤들과 임프들을 무슨 수로 통과한단 말인가?
거기다가 얼마 전에는 베크 교수가 마물 ‘히드라’를 그곳에 배치해 놓지 않았던가?
‘재주도 좋아. 대체 그 거대한 놈을 어떻게 조련해서 데리고 온 건지…….’
“저… 교수님, 그 주변으론 많은 경계…….”
“나도 알고 있어.”
‘잘 알고 있는 년이 그런 소리를 해?’
“아마 제가 들어가려고 하면 분명 죽을 겁니다.”
“지금 너 정도면 스켈레톤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텐데?”
확실히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간 배워 온 게 있으니까. 스켈레톤이랑 임프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 근데 히드라는? 가서 히드라 밥이 되라고?’
흑마력을 모으려고 그 위험을 무릅쓰라는 건가?
“정말 흑마력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는 곳이라면, 교수님께서 직접 흡수하시는 편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저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힘을 얻어야 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난 강하니까.”
‘염병…….’
분명 그녀의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었으나.
왜 그녀가 내게 이런 말을 꺼낸 건지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정말 나한테 흑마력을 주고 싶으면 창고의 약재들을 빼돌려서 약을 만드는 게 나을 텐데……. 가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내 머릿속에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콘스 교수가 굳이 날 벌판으로 보내려고 하는 이유. 그건…….’
“그 벌판, 아크 교수와 연관된 일입니까?”
내 물음에 그녀의 눈이 희미하게 곡선을 그린다.
“그래. 그리고 그 일을 망치면 분명 신관장한테도 큰 타격이 갈 거고.”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날 보며 무심하게 말한다.
“흑남을 뽑는 의식의 장소를 만드는 중이야. 하지만 네가 가서 그곳의 기운을 훔치면 의식은 시작도 할 수 없겠지.”
“…예?”
‘…흑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