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6화 (16/200)

16.

“흑남… 허허…….”

단어만 들었을 뿐인데 어딘가 오싹한 느낌이 든다.

“설마 그게 절 부른 목적이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대륙 음지의 구심점이자 머리를 자처하는 곳은 명실상부한 ‘흑탑’이었다.

하지만 흑탑이 흑남을 손에 넣게 된다면.

저들은 더 이상 단순한 무력 단체가 아니게 된다.

“레바논도 성녀를 이용해 양지의 정신적 지주를 자처하지 않나? 우리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흑탑은 진정한 음지의 구심점이 되려고 하는 겁니까?”

“그건 자네가 알 필요 없네. 자네는 그저 알맞은 때에 맞춰 의식을 준비해 주면 될 뿐이야.”

“알맞은 때라 함은…….”

아크 교수의 물음에 볼드가 고개를 까딱인다.

“방학 시작 전이 되겠지. 우리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혈탑과 시련의 탑이 운영하고 있는 아카데미의 학생들도 초대할 거네. 후보는 많을수록 좋을 테니까.”

“허허, 다른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초빙한다니…….”

그렇다는 건 흑남이 꼭 흑탑에서 나올 필요는 없다는 말 아닌가?

‘이해할 수가 없군. 보통 그런 존재는 자신의 파벌에서 나오길 바라는 게 사람의 심리일 터인데……. 대범한 건지 오만한 건지…….’

그러나 아크 교수는 곧 의심을 접었다.

‘교황님께서 무슨 일을 시키건 협조하라고 하셨으니 협조하는 수밖에…….’

“허허, 그러지요. 저도 그때에 맞춰 의식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할 거라 생각했네.”

“다만 조금 우려가 되는군요.”

아크 교수의 말에 볼드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우려?”

“허허, 최근 콘스 교수가 유독 저를 견제하더군요. 딱히 그녀에게 밉보일 짓을 하진 않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혹시나 그녀가 제 일을 방해할까 우려가 들긴 합니다.”

그의 말에 볼드는 피식 미소를 흘린다.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 없네. 내가 적당히 타일러 두지.”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

* * *

3일 뒤.

뎅, 뎅-

기상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오자.

하인들이 하나씩 통나무집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흠… 설마 오늘도 또 그 짓거리를 하지는 않겠지?’

불안한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찰나.

“허허, 좋은 아침이군. 오늘도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레바논 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하루를 시작하지.”

정갈히 예복을 차려입은 아크 교수가 웃으며 내 옆에 선다.

‘어우… 한 이틀 정도만 하고 말 줄 알았는데.’

어째선지 이틀 전부터 갑자기 아크 교수가 하인들을 모아 놓고 아침 예배를 드리는데.

나로선 정말 죽을 맛이었다.

‘레바논은 믿으면 안 되는데 또 예배는 드려야 한다니. 이게 무슨 개짓이야?’

레바논을 믿으면 죽는다.

그런데 또 아크 교수의 주도하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게 무슨 얼토당토않는 상황이란 말인가?

‘학생들이 성수 때문에 나자빠졌는데도 어떻게 아카데미에선 아무런 제재를 안 가하는 건데?’

파면을 당하기는커녕.

이제는 한술 더 떠 예배까지 진행한다니.

‘진짜 학장이 무슨 약점이라도 잡혔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는 게 말이 돼?’

아무리 아크 교수를 외부에서 어렵사리 초빙했다고 해도.

이건 명백히 교수를 차별하는 행동이었다.

‘요즘 콘스 교수의 표정이 말이 아니던데. 괜히 나한테까지 불똥이 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이 며칠간 콘스 교수에게 부패학에 대해 배우면서.

혹시나 그녀가 미쳐 날뛸까 싶어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어떻게든 저 늙다리를 쫓아냈어야 했는데…….’

내가 속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던 중.

“허허, 레바논 님의 은총 아래에서 멋진 하루들 보내게.”

마침내 예배가 끝나고 아크 교수가 아카데미로 돌아간다.

“날마다 이러는 것도 고역이네. 아크 교수가 저러는 건 규율에 어긋나는 것 아냐?”

“그랬으면 진작 아카데미에서 제지했겠지. 그냥 놔두는 걸 봐선 암묵적으로 허락한 것 같은데.”

“그럼 우리는 어쩌라는 건데? 믿으면 죽을 게 뻔한데 계속 이 짓거리를 감내해야 한다고?”

아크 교수의 모습이 사라지기 무섭게.

하인들의 입에서 불평이 터져 나온다.

“솔직히 우리가 믿건 말건 지들이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이거지. 믿으면 죽이면 되고 아니면 그냥 놔두면 되니까.”

“빌어먹을…….”

하인들의 불평이 점점 커져 가던 그때.

짝-

난 손뼉을 쳐 저들의 이목을 내게로 집중시켰다.

“자, 주목해. 오늘은 월이 바뀌었으니까 일을 새롭게 배정한다.”

“오오… 드디어 시체 소각소를 벗어날 수 있는 건가. 진짜 지옥이었다고!”

“지옥? 진짜 지옥은 우리 7번 방이 겪었지…….”

하인들의 수군거림에도 난 아랑곳 않고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어제까지 하던 일은 오늘부터 옆방이 맡는다. 4번 방과 5번 방이 하던 야간 경계를 6번 방과 7번 방이 하는 식으로 말이야. 이해했나?!”

“예!”

“그리고 8번 방은 오늘 나와 함께 소포를 운반한다.”

오늘은 음지 각지의 가문들에서 학생들에게 소포를 보내오는 날이다.

‘웬만한 건 다 아카데미에서 해결이 가능한데 왜 굳이 물건들을 보내는지 원…….’

물론 대개는 자식의 안부를 묻는 편지들이라.

그것들을 잘 수거하여 아카데미의 학생에게까지 전달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간혹 이상한 물건이 섞여 있다는 것만 빼면 간단한 일이긴 해. 2년 전이었나? 마검을 보낸 미친놈도 있었지.’

그 덕분에 검을 운반하던 하인 몇이 마검의 기운에 휘말려.

미라처럼 변한 채로 발견되지 않았던가?

‘오늘은 또 뭘 보냈으려나…….’

아침 식사를 끝내고 난 8번 방의 하인들을 데리고.

곧장 호수 옆의 커다란 마법진으로 이동했다.

“어이구… 이번에는 뭔가 조금 물건이 많은 것 같은데요, 하인장님?”

마법진 옆으로 쌓여 있는 편지들과 물품들을 보며 한 하인이 혀를 내두른다.

“매년 그래 왔는데 뭘 새삼스럽게 그래? 전부 장갑 껴!”

내 명령에 하인들 전부 슬라임의 표피로 코팅된 장갑을 착용한다.

‘괜히 또 마검 같은 것에 손을 대거나 저주받은 물건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 학부형들이 보낸 것들인 만큼.

그럴 가능성은 낮겠으나 만약이라는 게 있는 것 아닌가?

“학생들 명단 가져왔지?”

“당연히 챙겨 왔죠.”

“일단 명단 보면서 학파별로 분류해.”

물건들을 정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명단 안의 학생 이름과 소포에 적힌 이름이 같은지 확인하면 되니까.’

그 뒤엔 파멸, 악마, 저주 학파에 맞추어.

소포를 분류하면 된다.

‘이름 없는 건 없겠지?’

소포들 역시 사전에 흑탑의 흑마법사들이 검증 과정을 끝낸 뒤.

검증 마크인 양피지 조각을 붙여 이곳으로 보낸다.

당연히 이름이 없는 소포는 사전에 배제되었을 터.

‘그렇게 검증을 했는데도 마검이 들어온 걸 생각하면… 제대로 검증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천천히 해! 급하게 해 봐야 또 다른 일거리만 생긴다.”

“랄프, 우리가 이런 걸 하루 이틀 하냐? 걱정 마라, 해 떨어지기 전까지는 다 정리할 테니까.”

나의 말뜻을 알아들은 동료들은 뭉그적거리며.

소포들을 정리해 나갔다.

“좋아! 다 끝났다!”

이윽고 해가 저물어 갈 때쯤이 되어서야.

소포 분류가 얼추 끝났다.

“근데 남은 소포들은 뭐야?”

“뭐긴? 1학년들 거겠지.”

아직 1학년은 정해진 학파가 없다.

그들은 1년간 여러 학파들의 지식을 접해 보고.

2학년이 되어야 학파를 선택할 수 있었으니까.

“좋아, 정리는 다 끝났으니까 두 명이 하나씩 기숙사로 가져가.”

“너는?”

“나는 저걸 가지고 갈게.”

난 1학년의 소포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 갔다.

“다른 소포에 비하면 양도 적으니까 혼자 운반해도 괜찮아.”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뭐……. 이따가 쉬는 시간이 되면 오랜만에 카드나 치자고.”

“좋지.”

난 고개를 끄덕이곤 수레를 끌고 1학년의 기숙사 앞으로 이동했다.

누군가의 가죽들을 기워 만든 것 같은 커다란 기숙사 문짝을 보며.

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만 기숙사 앞에 놔두면 오늘 일과도 끝이구나.’

그 뒤에는 콘스 교수를 찾아가 흑마법을 배우게 될 터.

‘오늘은 진짜 개꿀이네.’

나는 문 옆에 소포들을 열심히 쌓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때.

“지금 뭐 하는 거야?”

앳돼 보이는 소녀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저년은…….’

얼굴을 보니 기억났다.

얼마 전 악마 소환 의식에서 아몬의 팔을 소환했던.

흑탑 부탑주의 딸 레나 아니던가?

‘그때는 진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었지. 근데 이년이 왜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거지?’

무려 흑탑, 그것도 부탑주의 딸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부귀와 영예를 양팔에 끼고 태어난 금수저가 한낱 하인에게 말을 걸어오다니.

“학생분들의 소포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소포? 내 것도 있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알아서 찾아보든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어색한 미소를 보이자.

그녀는 소포를 가리키며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그럼 찾아봐.”

“…예?”

“나한테 온 게 있는지 찾아보라고.”

‘이 미친년이…….’

그녀를 따르는 추종자에게 시키면 될 걸.

왜 굳이 나한테 시킨단 말인가?

‘평소에는 이년 주변에 꽤 사람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늘은 왜 없는 거지?’

“그러지요.”

하지만 그녀는 다른 의미로 교수보다 위험한 존재였기에.

난 그녀의 말에 순순히 응했다.

얼마나 소포들을 뒤졌을까.

[사랑하는 나의 딸, 레나에게.]

‘이건가? 아이고, 어깨야…….’

나는 검은 천으로 잘 감겨 있는 두툼한 소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인 것 같습니다.”

“까 봐. 내용물이 뭔지 봐야 할 것 아냐.”

“…예.”

내가 순순히 소포를 덮고 있던 검은 천을 벗겨 내자.

안에서 웬 가죽으로 잘 포장된 책 몇 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뭐지? 겉보기엔 그냥 평범해 보이는 책인데…….’

그래도 흑탑의 부탑주가 보낸 물건이니.

필시 평범한 책은 아니리라.

“책이 나왔습니다만…….”

그녀는 책을 보곤.

동봉되어 있던 편지를 읽어 내린다.

“어휴,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아빠는 또 뭐 이런 걸 보냈어? 이런 건 필요 없다니까.”

“억!”

갑자기 그녀가 귀찮다는 티를 내며 책을 바닥에 툭 던지더니.

날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인다.

“그건 그냥 네가 가져.”

“…예?”

“네가 가지라고. 왜? 싫어?”

‘싫다니? 그럴 리가 있나.’

무려 흑탑 부탑주가 보낸 선물이다.

그런데 그걸 그냥 주겠다는데 싫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데 아버지가 보낸 선물을 이딴 식으로 관리하다니… 선물이 마음에 안 든 건가? 그래도 그렇지… 거 부탑주 양반, 남자로선 성공한 인생일지 몰라도 자식 농사는 완전 망한 것 같은데요?’

나는 힐끔 그녀의 눈치를 살피곤 입을 뗐다.

“그런데… 정말 제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가져.”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난 주섬주섬 책들을 주우며 책의 제목을 힐끔 살폈다.

[신성력을 가진 자를 효과적으로 소멸하는 법.]

[내가 흑탑의 부탑주가 되기까지.]

[성마법의 종류와 운용법.]

.

.

.

‘이건…….’

책들은 주로 신성력 그리고 성마법에 대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 신관장이 아카데미의 교수로 온 탓에 딸 걱정이 됐던 모양이네. 그런데… 이런 책을 나한테 줘도 되는 건가?’

아카데미의 도서관에도 신성력과 관련된 책이 거의 없을 만큼.

신성력과 성마법과 관련된 책은 희귀했다.

어쩌면 흑탑의 부탑주 역시 이 책들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의 성의를 짓밟다니. 뭐, 나야 좋지만.’

다른 책은 몰라도 [성마법의 종류와 운용법]은 내게 정말로 필요한 책이기도 했다.

‘아크 교수의 수업을 엿듣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는데, 이걸 보면 신성력을 다루는 데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어.’

나는 책들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짓다가.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는 다른 상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도 열어 볼까요?”

“됐어. 남은 건 들고 날 따라와.”

레나가 자신의 소포를 가리키며 손짓한다.

‘나보고 기숙사까지 따라 들어오라고? 미쳤냐?’

하인은 학생의 기숙사로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하인장은 다르다.

‘하인장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긴 한데… 내가 왜 악마 새끼들의 소굴로 기어들어 가야 되는데?’

더욱이 학생과 연관되어 봐야 좋을 일이 없다.

‘하돌프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려고 하는 놈들이 태반이니까.’

난 기숙사의 문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하인은 학생의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넌 하인장이잖아? 하인장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냐?”

“그렇기야 합니다만… 아무래도 그게…….”

“그렇고 자시고, 저거 들고 따라 들어와.”

그녀가 눈을 치켜뜨자.

난 속으로 한숨을 삼키곤 그녀의 소포를 들었다.

“문 열어.”

레나가 문을 보며 소리치자.

쩌저저저적-

기워진 가죽들 사이로 수십 개의 눈동자가 트이더니.

그녀를 매섭게 살핀다.

끼이익-

곧 기숙사의 문이 열리자.

‘하아…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는 건 또 처음이네.’

난 그녀의 뒤를 조심스럽게 쫓으며.

주변을 살펴봤다.

‘안은 의외로 좀 심플하네.’

조금 걸으니 거실로 보이는 널따란 공간이 보였고.

그 양옆으로 각각 작은 길이 있었다.

‘저 길이 침실로 가는 길인가. 두 개인 걸 봐선, 남학생이랑 여학생 방인 것 같은데.’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으나.

[먼지 털어! 열심히 털어!]

언뜻 임프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내가 목을 빼 들고 안을 살피던 그때.

“됐어. 거기 테이블에 내려놔.”

그녀가 거실의 테이블을 보며 고개를 까딱인다.

“그러지요.”

난 테이블에 소포를 내려놓곤.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

끼이익-

거실 너머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야, 들었어? 달프 교수가 그랬는데 이번 학기 말에 엄청난 의식이 진행될 거라고 하더라.”

“엄청난 의식은 무슨? 그냥 악마 소환 하는 것 갖고 호들갑 떠는 것 아냐?”

“아니야! 아직 이야기하긴 그런데 우리보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던데?”

왁자지껄한 목소리와 함께.

옆구리에 소포를 끼고 있는 남학생들 몇이 내가 있는 거실로 걸어온다.

“뭔지는 모르는데 1학년도 참여할 수 있는 거라는 거지?”

“아, 그렇다니까! 못 믿겠으면 말든가.”

“누가 뭐래?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근데… 저놈은 뭐냐?”

남학생 중 한 명이 날 보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다.

“뭐야. 하인 아냐? 하인 새끼가 왜 우리 기숙사에 들어온 거야?”

“하인장이잖아. 그보다 마침 잘됐다. 야, 거기 너.”

남학생들 중 한 명이 날 가리키며 말을 이어 간다.

“너, 의식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좀 있냐?”

“의식 말입니까? 어떤 의식을 말씀하시는 건지…….”

“뭘 하인한테 물어보고 있어? 그냥 이참에 배운 저주나 한번 써먹어 보면 되지.”

개중에 한 남학생이 지팡이를 든 채 내 머리를 우악스럽게 잡으며 소리친다.

“마인드 브레이커.”

‘이 미친 새끼가…….’

내가 채 생각을 이어 가기도 전에.

갑자기 몽롱한 기운이 나의 머리를 잠식해 들어 간다.

그러던 그때.

웅웅웅-

내 왼쪽 심장에 웅크리고 있던 신성력이 꿈틀거리더니.

나의 머릿속을 휘젓던 흑마력을 쳐 내 버렸다.

‘이건… 설마 신성력이 저주를 막아 낸 건가? 아니면 학생이라 저주의 효과가 약한 건가.’

어쨌건 한 가지 확실한 건.

나의 정신은 굉장히 멀쩡했다는 것이다.

‘설마 저주를 이런 식으로 막아 낼 줄은 몰랐는데……. 그보다 이렇게 된 이상, 일단 연기를 해야겠어.’

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곤.

저주에 걸린 것처럼 최대한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침까지 흘려 보였다.

“이거 걸린 것 맞지?”

“얼빠진 표정을 봐선 걸린 것 같은데? 근데 괜찮은 거야? 차라리 죽이는 거면 몰라도 저주는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잖아? 만약 교수님한테 이 사실을 걸리기라도 한다면…….”

“죽이는 것도 좀 그렇지. 놈은 하인장이야. 만약 놈을 죽인다면 분명 콘스 교수한테 찍힐걸?”

다른 남학생들이 걱정스럽게 묻자.

내게 저주를 건 남학생이 어깨를 으쓱인다.

“무슨 상관이야? 우리랑 레나만 입 다물면 상관없잖아? 안 그래?”

“마음대로 해.”

레나가 고개를 까딱이자.

남학생은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야, 효과 확실하네. 이제 이놈은 진실만 말하는 거잖아?”

‘염병들을 한다.’

내가 속으로 혀를 차던 그때.

내게 저주를 건 남학생이 실소하며 말한다.

“야, 이참에 내기나 할래?”

“내기? 무슨 내기?”

“이놈한테 얼굴을 평가받는 거지. 1등을 한 녀석에겐 오늘 온 소포 중에서 제일 좋은 물건 주기. 어때?”

남학생의 제의가 꽤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얼굴 평가? 내가 이길 텐데 괜찮냐?”

“푸하하하하하, 난 찬성.”

다른 남학생들이 순순히 동의한다.

“야, 이 중에서 누가 제일 잘생겼냐?”

‘…뭐? 기껏 저주를 걸어 놓고 한다는 질문이 그거냐?’

하지만 최대한 저주에 걸린 척 실감 나는 연기를 선보여야 했기에.

난 멍한 표정을 한 채 답했다.

‘이 중에?’

“으으… 제, 제가… 제일 잘생겼… 습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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