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흑마법을 배우라뇨? 그게 무슨…….”
“말 그대로야. 이제부터 네게 흑마법을 가르칠 거야. 아카데미의 규율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아.”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나한테 알려 준다는 건데?’
이유 없는 선의에는 당연히 목적이 있을 터.
“왜 제게 흑마법을 가르치신다는 건지…….”
“흑마법을 배워서 아크 교수를 죽여.”
“…예?”
‘그러니까 흑마법을 가르쳐 주는 게… 아크 교수를 죽이려고 그런 거라고? 이 인간… 그 신관장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갖고 있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하인에게 흑마법을 가르친다는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가 없잖은가?
‘그리고 그렇게 아크 교수를 죽이고 싶으면 직접 죽이면 되는 거잖아? 왜 굳이 나한테 흑마법을 가르친다는 리스크를 감수하려고 하는 거지?’
물론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자기가 직접 아크 교수를 죽였다가 들킨다면 파면당할까 봐 이러는 건가? 하긴… 하인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거랑, 교수를 죽이는 것 중에 확실히 후자가 더 죄질이 나쁘긴 하지.’
아무래도 자신이 리스크를 지기 싫으니.
내 손을 빌려 아크 교수를 처리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그 이유가 전부인 걸까?’
아니. 내 생각은 아니었다.
‘이참에 날 쓸 만한 장기짝으로 키워 뒀다가 필요할 때마다 부려 먹으려고 이러는 걸 수도 있어.’
그렇단 건 콘스 교수가 날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이 아닌.
적어도 질그릇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건 뭐 기분 좋긴 한데… 마법은 아무나 배워? 재능이 없는 놈들은 철저하게 배제되는 세계인데? 그 사실을 콘스 교수가 모를 리는 없을 텐데.’
“하지만 마법에는 재능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만…….”
“재능? 물론 필요하지. 하지만 내가 붙어서 가르치면 그깟 재능은 얼마든지 메울 수 있어.”
자신의 가르침으로 재능의 차이를 메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오만한 발언이란 말인가?
‘설마 자기가 천재라고 나까지 천재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혀를 내두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전 심장이 없습니다. 흑마력을 쌓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흑마법을 익힐 수 있을까요.”
‘가만… 설마 심장의 방에서 내 심장을 찾아다 주겠다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
물론 심장의 방의 심장들에 이름을 적어 놓은 것도 아니니.
내 심장을 찾긴 쉽지 않겠으나 혹시 모르는 것 아닌가?
“설마 내가 그런 생각도 안 했을까?”
콘스 교수는 날 째려보더니.
갑자기 한 팔로 검은 공간을 펼치고 그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아공간인가……. 저건 좀 부럽네.’
내가 아공간을 보며 감탄하는 사이.
스슥-
그녀가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내게 내민다.
“이건…….”
그녀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
작고 새하얀 돌같이 생긴 것이 꼭 눈덩이 같았다.
“인공 심장이야. 그게 있으면 흑마력도 쌓을 수 있겠지.”
‘인공 심장이라니? 이보쇼, 이거 안전성은 검증된 겁니까?’
어딘가 심상치 않은 단어에 난 침을 꿀꺽 삼켰다.
“…위험한 것 아닙니까?”
“인공적으로 마력의 원천이 될 심장을 얻는 거니 당연히 위험이 따르겠지?”
‘이런 시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혹시… 시험은 충분히 진행된 거겠지요?”
“절반은 살았어. 다만 그 절반도 전부 인공 심장의 기운을 감당 못 하고 미쳐 버렸지만.”
“…예?”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니까 실험 중 반은 죽고, 남은 반도 미쳤다? 그런데 그걸 나한테 준다고?’
잠깐이지만 잊고 있었다.
이 쌍년도 어지간히 돈 년이란 걸 말이다.
“대체 어떤 재료로 만들었기에 기운을 감당 못 했답니까?”
“아다만티움 그리고 본 드래곤의 하트를 조금 떼서 넣었지.”
“허…….”
‘본 드래곤이라니… 미치는 게 당연하지!’
비록 죽은 드래곤이라고 해도.
드래곤은 드래곤이다.
‘하물며 그런 드래곤의 심장 조각을 넣었으니, 실험체들이 그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지. 니미럴…….’
비록 얼굴조차 본 적은 없지만.
죽어 나갔을 실험체들의 면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그러니까 내가 이 심장을 소화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이거라는 건가?’
“만약 네가 그걸 제대로 흡수한다면 그때부터 제대로 교육을 시작할 거야.”
‘소화 못 시키면 그대로 뒈지는 거고?’
그렇다고 거부를 하면 그녀의 손에 죽을 것 아닌가?
“엄청 귀한 재료들이 들어갔는데… 교수님이 사용하시지 않고 왜 실험체들에게…….”
“난 심장이 있으니까.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힘을 얻어야 할 정도로 내가 약하지도 않고.”
‘아… 그러십니까? 저도 심장이 있는데…….’
물론 그 사실을 콘스 교수에게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난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죽을 수도 있으니, 죽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도 될까요?”
“말해.”
“제게 이런 심장을 주시고 교육할 정도로 아크 교수를 싫어하시는지 궁금해서요.”
나의 말에 그녀는 덤덤히 답한다.
“20년 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어. 아크 신관장, 아니… 당시에는 아크 신관이었나? 그의 손에 돌아가셨지.”
“아…….”
난 그제야 그녀가 아크 교수를 벌레 보듯 바라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를 죽인 원수라면 뭐 그럴 수 있긴 한데… 왜 거기에 내가 휘말려야 하는 건데?!’
“후… 그래서 이건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 겁니까?”
“삼켜.”
“그냥 삼키면… 되는 건가요?”
난 그녀가 건넨 하얀 심장을 받아 들곤.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살 확률이 절반… 거기에 남은 절반은 폐인……. 후…….’
하지만 만약 정말로 이 심장을 몸 안에 들이는 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건 확실하다.
‘거기다가 엘리트 교수인 콘스 교수의 일대일 과외까지 받는다면… 그래, 리스크가 엄청나긴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리스크 너머에 있을 달콤한 보상이 내게 손짓해 오는 듯하다.
‘그래. 흑마력이랑 신성력이 난리 칠 때도 죽을 뻔했어. 두 번이라고 못 할까.’
마침내 난 결심하고.
결심이 두려움에 사그라지기 전에 냅다 심장을 들어 입속에 밀어 넣었다.
꿀렁-
내 목울대가 위아래로 흔들리자.
안경 너머 콘스 교수의 동공도 내 목울대를 따라 요동쳤다.
“으음…….”
“어때?”
“그게… 아직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렇게만 하면 되는…….”
흠칫-
갑자기 뒤통수를 가격당하는 느낌에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어때? 느낌이 좀 와?”
‘무슨… 이건…….’
몸 안에 들어온 인공 심장의 주변으로 싸한 기운이 몰아치기 시작하더니.
화아아아아악-
삽시간에 인공 심장에서 방대한 흑마력이 뿜어져 나와.
내 몸 안을 맴돌기 시작했다.
‘으으으…….’
본 드래곤의 심장이 재료로 들어갔다더니.
그게 정말이었던 모양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흑마력이…….’
삽시간에 방대한 양의 흑마력이 내 몸을 휘젓고 돌아다니자.
울컥-
“커흑…….”
난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피를 토해 냈다.
‘어… 어떻게든 이걸 제어해야 돼!’
만약 폭주하는 흑마력을 이대로 놔둔다면.
난 분명 죽게 되리라.
“역시 실패인 건가. 그래도 이번에는 꽤 소량만 집어넣은 건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콘스 교수가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소량? 이 시발년아! 이게 소량이냐!’
순간 내 마음 한구석에서 울분이 터져 나왔다.
‘무조건… 무조건 제어한다. 반드시!’
난 서둘러 전에 했던 대로.
폭주하는 흑마력을 심장 주변으로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젠장… 너무 많아.’
하지만 내 심장이 흑마력을 다 담기에는 너무 작았던 걸까.
자꾸 흑마력이 흘러나와 나의 몸을 강하게 찔러 왔다.
“으으으으으…….”
‘어떻게든… 어떻게든 조절을…….’
내가 입술이 터져라 깨문 채로 흑마력을 순환시키던 그때.
사사사사삭-
내 흑마력과 섞인 신성력이 몸을 일으키더니.
방대한 양의 흑마력을 거친 파도를 잠재우듯 천천히 달래기 시작했다.
‘뭐… 뭐지. 아무튼 이건 기회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 흑마력을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일단 이 기운은 최대한 내 심장에 흡수하고, 그래도 흘러나오는 건…….’
신성력의 도움을 받아.
난 어느새 내 오른쪽 가슴에 자리한 인공 심장에 남은 기운들을 억지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제발 좀 들어가! 들어가, 이 새끼들아!’
내 간절함이 통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스스스스슥-
‘조, 좋아! 그거야!’
다행히 폭주하던 흑마력들은 순순히 인공 심장으로 들어갔다.
‘후우… 일단은 된 건가.’
마침내 폭주하던 흑마력의 기운이 잦아들자.
난 비로소 내 몸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심장이… 두 개가 됐네…….’
왼쪽에는 예전보다 더 진득한 기운이 가득한 나의 진짜 심장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남은 흑마력을 몰아넣은 창고 겸 인공 심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뭔가… 몸이 엄청나게 가벼워진 느낌이야.’
전과 비교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힘.
‘혹시 콘스 교수와 싸워도 이기는 것 아냐?’
강대한 흑마력이 주는 자신감에 취한 걸까.
난 콘스 교수를 보며 승패를 가늠해 보기까지 했다.
“…….”
‘뭐야, 잘 끝났는데 표정이 왜 저래?’
하지만 그녀는 내가 심장의 기운을 흡수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한 건지.
굳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성공한 것… 같네요.”
“어… 그러네.”
내가 멀쩡히 말하자.
그녀는 몸을 흠칫거리더니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몸 상태는 어떤 것 같아?”
“당장 어떤 흑마법이건 익힐 수 있을 것 같네요.”
“잠깐 좀 보자.”
그녀는 잠시 내 몸에 마력을 순환시키더니.
곧 당혹한 표정을 보였다.
“너… 심장이… 왜 두 개가 있지?”
‘아차…….’
그녀의 물음에 멍한 느낌이 확 사라지는 것 같았다.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지?’
어쭙잖은 변명은 그녀에게 통하지 않을 터.
난 빠르게 머리를 굴리곤 아무렇지 않게 입술을 뗐다.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 인공 심장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 심장을 반으로 쪼개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반으로 쪼개는 방법?”
“네, 기운을 두 개로 분산하는 거죠. 그래서 폭주하는 흑마력을 최대한 분산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한 말이지만… 진짜 개소리 같네.’
물론 나야 사실을 알고 있으니 개소리처럼 들렸으나.
그녀에게는 다르게 들릴 터.
‘저년이 직접 인공 심장을 사용해 본 것도 아니고, 내가 무슨 말을 하건 어떻게 알겠어?’
“과연… 심장을 쪼개어서 살아남았다라……. 심장은 어떻게 쪼갰지?”
그녀는 내 말을 바삐 양피지에 받아 적으며 물어 왔다.
“그게… 저도 경황이 없어서 뭐라고 설명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여하튼 폭주하는 기운을 쪼개는 데 온 힘을 집중했다는 건 사실입니다.”
“음…….”
다행히 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긴 것인지.
“그래. 내 실험이 성공한 것에 의의를 둬야겠지.”
그녀는 비교적 만족한 미소를 보이며 안경을 벗는다.
“몸 좀 추스르고, 앞으로 일과가 끝나면 내 집무실로 와. 흑마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교수님들께 해를 입힐 수 없는 저주가 걸려 있는데 그건…….”
“그건 당연히 풀어야지.”
‘이야… 그 저주까지 풀어 준다고?’
규율을 중요시 여기는 그 콘스 교수가 규율을 깬다니.
‘이번 일로 콘스 교수가 어지간히 빡치긴 했나 보구나.’
학장이 아크 교수를 감싸고도는 모습을 보고 나서.
머리끝가지 화가 치민 모양이었다.
‘학장이 부모의 원수를 감싸고돌면 나라도 빡치긴 하겠다만, 여하튼 저주를 풀어 준다면야 나야 좋지.’
비록 인공 심장으로 반쯤 실험을 당한 기분이긴 하지만.
그 대가로 방대한 힘과 더불어 저주까지 풀어 준다니.
콘스 교수에게 살짝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목적이 실험이었다고 해도 여하튼 이 귀한 걸 얻게 됐으니… 까짓것 아크 교수? 처리해 주지 못할 것도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일단 콘스 교수에게서 배울 건 다 배우고 난 뒤에 아크 교수를 처리해야지. 안 그러면 중간에 날 가르치는 걸 관둘 것 아냐?’
“알겠습니다. 그럼 몸을 추스르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
* * *
한편, 학장의 집무실 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학장님. 학장님의 배려가 없었다면 전 곤혹을 면치 못했겠지요.”
아크 교수가 학장에게 가벼이 고개를 숙여 보인다.
“배려? 자네를 이 아카데미로 데리고 오는 데 얼마나 든 것 같나? 100명이 넘는 상급 흑마법사의 피가 흘렀어. 당연히 비용을 회수해야지.”
“허허, 저 같은 늙은이 한 명 때문에 그만한 수고를 하셨다니, 참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그런데 정말 그 이유뿐만입니까?”
아크 교수는 허허롭게 웃으며 말을 이어 간다.
“교황님께서 절 이곳에 보내신 게 단순히 흑마법사의 육성만을 위해서는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틀린지요?”
아크 교수의 물음에 학장이 피식 실소한다.
“설마 단순히 학생들의 교육만을 위해 자네를 데려오려고 했겠나?”
“허허, 의중이 궁금하군요. 슬슬 말씀해 주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의중? 의중이라…….”
잠시 창밖을 바라보던 학장이 운을 뗀다.
“레바논에는 교황 외에도 성녀가 있지.”
“그렇지요. 뭐… 실질적인 관리는 교황님께서 하신다지만, 성녀님의 인기 또한 무시할 수 없지요. 그녀가 가진 신성력은 교황님조차 뛰어넘을 정도이니까요.”
아크 교수의 말에 학장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성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자네는 알고 있지 않나?”
“허허… 그야 레바논 님의 은총이 그녀에게 임했으니 그렇지요.”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그 은총을 얻기 위해선 치러야 하는 의식이 있다고 들었네.”
학장의 말에 아크 교수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렇기야 합니다만…….”
“난 그 의식을 원하네. 정확히는 그 의식을 치르는 방법을 원하지.”
“무슨…….”
아크 교수가 당혹해하자.
학장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 간다.
“레바논에 성녀가 있는데, 우리도 성녀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아… 성녀라 하니 어감이 좀 그렇군. 가만… 그래…….”
잠시 뜸을 들이던 학장이 나지막이 말한다.
“레바논은 성녀이니, 우리는 흑남… 그래, 흑남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