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난 순간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죽이다니? 나를?’
하인들 중에 레바논을 믿는 자.
그건 곧 나를 지칭하는 것 아닌가?
‘저 미친 늙다리가… 왜 날 죽이려고 하는 거지?’
아크 교수에게 크게 밉보인 것도 딱히 없다.
그나마 있는 것이라곤 돈트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뿐.
‘아무리 생각해도 날 죽일 이유가 없는데……. 오히려 날 좋게 보고 있었던 것 아니었어?’
자기의 집무실로 와서 경전을 읽으라거나.
돈트를 죽인 데 반해 난 살리는 등.
아크 교수는 비교적 내게 호의를 보였던 교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날… 죽이자고 한다고?’
사실 이제껏 그가 보였던 모든 행동들은 전부 가식이었던 걸까?
‘어느 정도 가식이 있긴 했겠지. 하지만… 대체 왜?’
대체 저 미친 교수 놈은 왜 날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정말 나를 죽이고 싶었다면 그냥 메이스로 내 머리를 찍으면 됐을 텐데…….’
다른 교수들의 눈총을 조금 받을지언정.
분명히 쉬운 길도 있었다.
‘그런데 굳이 저렇게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는 건…….’
어쩌면 사실 날 죽이려는 의도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 갑자기 날 죽이려고 하는 건 말이 안 돼. 그렇다면… 날 죽이자는 건 그냥 미끼일 뿐인 거고, 진짜 원하는 게 있다는 건데…….’
대체 아크 교수의 목적이 뭘까?
‘당장 생각나는 건 콘스 교수를 견제하는 것 정도인데… 아크 교수가 그럴 이유가 있나?’
아크 교수는 아카데미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콘스 교수를 견제한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뭔가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는 건가? 아니면… 최근 콘스 교수가 아크 교수의 행동을 의심하긴 했었지. 설마 그것 때문인가?’
콘스 교수는 심장의 방에 침입했던 침입자가 아크 교수라고 반쯤 단정 짓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아크 교수는 그게 못마땅하여 이런 짓을 벌인 걸까?
‘둘이 내가 모르는 곳에서 말싸움이라도 한 건가? 그래서 아크 교수가 원한을 갖고 콘스 교수를 견제하는 거라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긴 하는데…….’
내가 겪었던 아크 교수는 속을 알 수 없는 늙은이였다.
‘속이 시꺼먼 신관장이 그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한다고? 그럴 리가 있나.’
아크 교수가 저렇게 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고.
그 이유의 끝에는 아크 교수가 얻을 이익이 자리하고 있을 터.
‘그럼 아크 교수가 저렇게 행동해서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거지?’
내가 맹렬히 머리를 굴리고 있던 사이.
“하인이 레바논을 믿는다고요?”
책상 위로 콘스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허허,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그 사실을 제게 말하는 거죠?”
“최종적으로 하인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콘스 교수라고 들었습니다. 아닌지요?”
나긋나긋한 아크 교수의 말이 끝나자.
“그래요? 신자가 늘었으니 아크 교수께선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일 텐데요?”
콘스 교수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나의 피부를 자극한다.
“이곳이 평범한 마을이었다면 저는 그를 진심으로 축복했겠지요. 하지만 이곳은 흑마법사 아카데미입니다. 저 역시 교수로서 이곳에 왔으니 이곳의 규율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규율을 따라? 그렇게 규율 좋아하는 놈이 나한테는 그렇게 입을 털었냐?!’
규칙 들먹이는 놈치고 속이 하얀 놈은 보지 못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콘스 교수 역시 사람이었다.
‘만약 콘스 교수가 아크 교수와의 논쟁에서 밀리기라도 하면…….’
콘스 교수는 자신의 안위와 명예를 위해서라도.
주저 없이 내 목을 날려 버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여자의 말발을 기대해야 한다니…….’
내가 속으로 탄식하던 중.
다시 책상 위로 콘스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요. 만약 아크 교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래야죠.”
“허허, 그렇지요?”
‘시발…….’
끝났다.
이미 콘스 교수는 날 손절할 각만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빌어먹을……. 후… 그래, 당장 날 죽이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일단 진위 파악을 하는 척하고, 그 뒤에 날 죽이려고 하겠지.’
그렇다면 약간의 시간은 있는 셈이다.
‘어떻게든 그 시간을 이용해서 도망이라도…….’
“하아… 그냥 빙 돌리지 말고 이야기하세요.”
“빙 돌리다니요?”
“그깟 하인의 목숨이나 놓고 말씨름하려고 온 건 아니잖아요? 아닌가요?”
‘그깟 하인? 말하는 싸가지 하곤…….’
내가 속으로 콘스 교수를 욕하던 중.
아크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군요.”
“모르는 척하지 마요. 뭔가 단단히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깟 하인 몇이 죽건 전 상관없어요. 하인장도 마찬가지고요. 하인장이 죽으면 새 하인장을 임명하면 될 뿐이에요.”
‘니미…….’
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함인지.
아니면 진심인 건지는 몰라도 콘스 교수의 말에 난 피부가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허허, 아무래도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전 원하는 게 없습니다.”
“그럼… 정말 그를 죽이는 게 전부라고요?”
“맞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크 교수의 말이 들려오자.
난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고? 진짜 날 죽이는 게 전부라고?’
만약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왜 그때 메이스로 날 죽이지 않았던 건가?
“그런 거라면 그냥 죽이셔도 됐을 텐데요?”
“허허, 제 손에 죽는다면 그는 순교하지 못합니다.”
“…네?”
‘순교하지 못한다고?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전에 돈트랑 대화할 때도 순교에 대해 뭐라 했던 것 같은데…….’
“순교란,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레바논 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며 죽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런데요?”
“레바논의 종인 제가 그를 죽인다면 그것은 핍박이 아닌 단순한 살인일 뿐입니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의 손에 죽는다면, 그는 ‘순교’한 것이지요.”
아크 교수의 말에 난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그러니까… 제 손으로 죽이면 순교가 아니니까, 아카데미를 통해서 날 죽이겠다?’
뭐 이런 미친 신관장이 다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당신이 전도한 하인을 죽여 달라 뭐, 이런 말인가요?”
“허허, 죽여 달라는 건 잘못된 표현입니다. 그저 아카데미의 규율대로 처리해 주시길 바라는 것뿐이지요.”
“…순교를 위해서요?”
콘스 교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묻자.
아크 교수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지요.”
“하… 그럼 전도를 안 하시면 하인이 순교당할 일도 없겠네요. 앞으로는 전도하지 마세요.”
“전도하지 말라……. 허허, 아카데미에 그런 규율이 있던가요?”
‘그런 규율은… 없지.’
애당초 아카데미에서 전도를 하려는 미친놈이 없었으니.
그런 규율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규율은 없지만 하인들은 아카데미의 자산이에요.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길 권고할게요.”
“쓸데없는 짓이라니요? 영혼 구원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지요.”
“그 영혼 구원 때문에 하인이 죽어 나가도요?”
콘스 교수의 말이 끝나자.
아크 교수의 들뜬 음성이 들려온다.
“그리한다면 그들은 ‘순교’한 것이니 도리어 기뻐해야겠지요.”
“…….”
‘그러니까… 나한테 레바논을 믿어라 뭐라 한 게… 날 순교시키려고 그런 거였어?’
뭐 저런 순교에 미친 늙은이가 있단 말인가?
“아카데미의 규율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앞으로는 하인들에게도 레바논의 진리를 전파하고자 합니다. 허허허…….”
하인들을 전도해? 아주 그냥 하인들을 다 죽이려고 작정을 한 건가?’
“전도당한 하인들은 전부 죽을 텐데요?”
“죽다니요? 거룩한 순교지요.”
‘그러니까 지가 전도하고 흑마법사의 손에 죽이겠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그냥 내뱉는 모든 말이 전부 궤변 아닌가?
“하… 마음대로 하세요.”
그녀 역시 더 이상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느낀 것인지.
한숨을 내쉬며 대화를 끝마치려 하는 것 같았다.
덜컥-
문 닫히는 소리가 내 심장을 두드릴 무렵.
“나와.”
콘스 교수의 말에 난 조심스럽게 책상 밑에서 나가.
그녀의 앞에 섰다.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죽기 싫으면 알아서 처신들 하라 그래.”
“…아카데미의 규율을 바꿀 수는 없습니까?”
나의 물음에 이마를 짚고 있던 콘스 교수가 싸늘하게 답한다.
“규율을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줄 알아?”
‘하… 좆됐네…….’
그렇단 건 아크 교수가 하인들을 전도하는 걸 제지하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럼 전 죽는 겁니까?”
“너, 레바논을 믿어?”
“그건 아닙니다.”
“됐어, 그럼. 나가 봐.”
난 허리를 숙인 뒤 조용히 그녀의 집무실을 나기.
서둘러 하인들의 숙소로 달려갔다.
“집합! 지금 당장 전원 집합해! 당장!”
내가 냅다 고함을 지르자.
“이 밤중에 갑자기 집합이요?”
“무슨 일이십니까?”
통나무집에서 하인들이 하나둘 나와.
어느덧 나의 앞에 도열했다.
“지금 자신이 레바논을 믿고 있다, 거수해라.”
“…예?”
“하인장님, 죽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고서야 누가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하인들이 나의 질문에 의아해하자.
난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갔다.
“앞으로 레바논을 믿거나 아크 교수의 설득에 넘어가는 새끼는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알았어?!”
“그야…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왜 그러신 겁니까?”
“믿지 말라면 그냥 믿지 마, 이 새끼들아!”
내가 소리치자, 하인들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앞으로 아크 교수와는 최대한 접촉을 금한다.”
‘강제로 순교당하기 싫으면 잘들 처신해라.’
나는 최대한 하인들에게 엄포를 놓고서야.
비로소 내 방으로 돌아갔다.
* * *
일주일 뒤.
‘생각보다 조용하네.’
나는 부패학 교실에 낭자한 피를 정리하며 생각에 잠겼다.
‘아크 교수가 뭔가 행동할 줄 알았는데 것도 아니고…….’
어째선지 콘스 교수와 대화를 나눈 이후로.
아크 교수는 나는 물론, 하인들에게 뭔가 행동을 취하지도 않았다.
‘안 찾으면 나야 좋지. 그냥 계속 날 안 찾아 줬으면 좋겠는데…….’
특히 순교에 미친 아크 교수만큼은 더더욱 만나고 싶지 않았다.
‘전도하고 순교시키려는 미친놈을 보는 건 진짜……. 하… 어떻게 정상인 놈이 없냐……. 진짜 몰래몰래 마법이나 익히다가 도망칠 각이 보이면 냅다 도망가야지.’
나름 요 일주일간, 열심히 도서관에 발품을 팔며 마법을 익혔다.
‘이제 콘스 교수처럼은 아니지만 조금은 피부를 썩게 할 정도는 되니까.’
부패 저주를 비롯해, 악마를 소환하는 법과 스켈레톤에 흑마력을 주입하여 효과적으로 통솔하는 법 등.
정말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열심히 마법을 익혔다.
‘교수들급은 아니더라도 어디 가서 칼 안 맞을 정도는 돼야지. 흠… 오늘은 신성력 책도 좀 찾아볼까.’
나의 마력이 흑마력과 신성력이 합쳐진 흐리멍덩한 마력이라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흑마법뿐만 아니라 성마법 역시 사용할 수 있었다.
‘설마 아크 교수의 수업이 나한테도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아크 교수가 가르친 기초적인 성마법을 혹시나 하고 따라 해 본 게.
그대로 들어맞았다.
‘분명 엄청난 일이긴 하지만 반대로 이 사실을 교수들이 알기라도 한다면…….’
어쩌면 난 흑마법사 아카데미가 세워진 이래로.
최고의 연구 교보재가 될지도 모른다.
‘흑마력과 신성력을 둘 다 다룰 수 있다는 게 그만큼 이질적인 일이니까. 하아…….’
내가 교실 정리를 끝마쳐 가던 그때.
“랄프, 아니 하인장님!”
나의 옛 동료였던 8번 방의 하인이 날 부른다.
“무슨 일이야?”
“콘스 교수님께서 인원을 보충했으니 알아서 뽑아 가랍니다.”
‘오오! 드디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인원 보충이 이뤄진 모양이다.
‘달프 교수가 생각보다 빨리 움직여 줬네.’
부탑주의 딸을 무사히 치료하여 기분이 좋아지기라도 한 걸까?
어쨌건 인원 보충은 내게 희소식이었다.
‘하… 진짜 이 일주일은 지옥이었어.’
인원이 대폭 감소하여 일거리가 평소보다 배는 넘게 불어나지 않았던가.
“그래? 심장 적출 저주 작업은? 다 끝난 거지?”
“예.”
“좋아, 그럼 가 볼까.”
난 곧장 지하의 수용소로 이동했다.
‘이게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해야지.’
내가 고른 이들은 아카데미의 하인이 될 것이고.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학생들의 재료로 쓰이고, 나아가.
스켈레톤이 되거나 악마 소환에 필요한 제물이 될 것이었다.
‘어쨌든 해야 하는 거니까. 시작… 뭐야, 누가 있나?’
감옥 저 언저리에 사람의 모습이 보이자.
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그쪽을 쳐다봤다.
‘누구지?’
“자네들이 어디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네. 가장 중요한 건… 그분을 믿는 것이지. 자네들은 레바논을 아는가?”
‘이런 미친…….’
그놈의 레바논을 지껄이는 걸 봐선.
수용소 안의 선객은 아크 교수가 분명했다.
‘아니, 점심이나 처먹을 것이지 왜 또 여기에 온 거야?! 하인에 이어 이번에는 실험체들을 강제로 순교시키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