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아크 교수의 호출이라고? 아니, 그 늙은이가 왜 날 찾아?’
설마 그놈의 경전 때문인 걸까?
‘에이 씨… 설마 경전 때문이겠어? 그건 그냥 단순히 날 부르려는 명분에 불과한 거잖아.’
아니면 낮에 있었던 그 사고 때문인 걸까?
‘내가 현장에 부른 것 때문에 화가 난 건가? 아니, 달프 이 늙은이는 왜 이렇게 입이 싼지 모르겠네. 그냥 자기가 한 일이라고 하면 될 걸, 굳이 내가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할 건 또 뭔데?’
그놈의 흑마법사의 ‘자존심’이 신관장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하는 걸까?
‘어쨌건 가 보면 알겠지.’
“알았다.”
난 8번 방의 동료들을 돌려보내곤.
아카데미로 들어가 곧장 아크 교수의 집무실을 찾았다.
똑똑-
“교수님, 하인장입니다.”
“들어오게.”
방 안에서 교수의 음성이 들려오자.
난 조심스럽게 문을 젖히곤 방 안으로 들어섰다.
‘깨끗하네.’
다른 흑마법사 교수들의 방 안과 달리.
아크 교수의 방 안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저건 신상인가? 얼씨구? 저건 또 뭐야……. 설마 제단은 아니겠지?’
그래도 신관장이랍시고 나름 방 안을 신성하게 꾸며 놓은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그저 가식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보일 뿐이었다.
‘흑마법사를 양성하는 놈의 방이 뭐 이래?’
난 레바논으로 보이는 신상을 보며 생각을 이어 갔다.
‘왜 신이라는 작자는 저놈의 신성력을 빼앗아 가지 않는 걸까. 내가 보기엔 그 누구보다 더 죄질이 나쁜 쓰레기 같은데…….’
“절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허허, 일단 거기 앉게.”
“예.”
내가 의자에 앉자, 아크 교수는 책장에서 경전을 꺼내어 오더니.
그걸 갖고 나의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경전은 왜…….”
“전에 말하지 않았나? 이건 자네 거네. 난 그저 잠시 보관하고 있을 뿐이었네. 자, 가져가게.”
‘자기가 맡아 둘 테니 종종 와서 경전을 읽으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가져가라고?’
갑자기 손바닥 바꾸듯 말을 바꾸는 아크 교수를 보며.
난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경전을 가져간 게… 경전을 확인해 보려고 가져갔던 건가? 하긴… 교수가 날 배려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했지.’
배려의 이면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세상에 착한 놈은 없으니까.’
이유 없이 배려를 베푸는 놈이 있다면 더더욱 의심해야 한다.
당장 눈앞의 아크 교수를 보며, 난 거듭 확신했다.
‘근데 경전을 확인할 게 있나? 아니면 뭐… 경전 속에 나도 모르는 숨겨진 암호가 있었다던가…….’
상상력이 끝을 모르고 폭주하자.
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따가 방으로 돌아가거든 자세히 살펴봐야겠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허허, 감사할 것까지야 없네. 원래 자네의 것이었으니까.”
“그럼 갖고 돌아가 보도록 하겠…….”
내가 조심스럽게 경전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아직 앉아 있게.”
아크 교수가 찻잔을 들며 나지막이 말한다.
“…예?”
“문뜩 호기심이 들더군. 레바논의 종에게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내게 도움을 구하는 교수가 있을 거라곤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네. 그런데 오늘 그런 일이 생겼었지.”
“그건…….”
내가 변명을 하려던 중.
아크 교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끊는다.
“정확히는 자네가 달프 교수에게 건넨 조언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겠지.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떠올린 건가?”
“그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푸하하하하하하!”
항상 경건함을 유지하던 굳은 주름들이 크게 물결친다.
‘뭐야… 왜 웃는 거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거잖아?’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 겁니까?”
“잘못됐냐고? 아니, 잘못된 건 없네. 단지 다른 사람들과 자네가 다를 뿐인 거니까. 이 아카데미에서 날 보는 시선이 어떤 줄 아나? 교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인들까지 내 눈치를 보며 피하고 있네.”
‘그거야… 그쪽이 워낙 이질적인 존재라서 그런 거지.’
물론 아크 신관장의 존재가 내게 그리 이질적이진 않았다.
‘스님이랑 목사가 밥도 먹고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냐?’
물론 흑마법사가 스님인 것은 아니었으나.
여하튼 얽힐 수 없을 것 같은 두 존재가 얽히는 건 내게 있어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그건… 아직 교수님이 익숙지가 않아서…….”
“그래!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거북해하는 경우가 많지. 콘스 교수는 거의 날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더군. 그런데 자네는 달랐지. 왜일까?”
아크 교수의 물음에 난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자칫 잘못 대답했다간 좆될 수도 있겠는데…….’
다르다는 건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송곳과도 같아.
타인의 눈에 띌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도망칠 각만 보려고 했는데……. 어떻게 말을 해야 조용히 넘어가려나…….’
직급이 높아지긴 했어도.
심장에 흐리멍덩한 서클 3개가 생기긴 했어도.
최대한 숨죽여 살다가 아카데미를 벗어나고픈 나의 마음은 변치 않았다.
‘적어도 이 아카데미의 모든 인원을 때려잡을 수 있는 힘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조용히 사는 게 맞으니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건… 제가 레바논 왕국 출신이라 그런 걸지도 모릅니다.”
“…뭐라고?”
나의 대답이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던 걸까.
아크 교수의 표정이 조금 딱딱하게 변했다.
“저는 어렸을 적, 많은 신관들과 성기사들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교수님도 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그럼 레바논 왕국 출신의 하인은 자네뿐인 건가?”
‘물론 아니지. 사실 난 레바논 왕국 출신도 아니고.’
하지만 난 속내를 숨긴 채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죠. 출신지를 거짓으로 속이는 자도 있고, 밝히지 않는 하인도 있으니까요.”
“흠…….”
아크 교수는 잠시 찻잔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나의 눈을 응시한다.
“자네, 성마법을 발현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아나?”
“그야… 신성력이겠지요.”
“맞네. 그럼 그 신성력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크 교수의 물음에 난 손에 들고 있던 경전을 힐끔 바라봤다.
‘경전을 읽었더니 신성력이 생기던데요.’
“그야… 레바논 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기본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네. 선천적으로 강한 믿음을 가져 신성력을 가진 이들이 존재하는 반면, 후천적으로 신성력을 얻는 이들도 있지. 그럼 후천적으로 얻은 이들은 어떻게 신성력을 얻은 걸까? 궁금하지 않나?”
“예. 궁금합니다.”
나의 말에 아크 교수가 경전을 가리키며 나지막이 말한다.
“앞으로 그 경전을 매일 읽도록 하게.”
“…예?”
“그렇게 신실한 나날을 보낸다면 분명 자네도 레바논 님의 기적을 받을 수 있을 거네.”
‘이 미친 늙은이가 뭐라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신성력을 얻으라고 로비라도 하는 거야? 혹시 날 담그려고 이러는 건가?’
한낱 하인이, 그것도 흑마법사 아카데미에서 신성력을 갖게 된다면.
그 하인이 어찌 될지는 너무도 뻔한 일 아닌가?
‘그래서 나도 신성력을 없애려고 그 지랄을 한 건데, 뭐? 매일 경전을 읽어?’
혹시 이 야매 신관 늙은이가 날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뜨리려 이러는 걸까?
‘일단 어떻게든 내가 신성력을 얻게 한 다음에 그걸 빌미로 날 부려 먹으려고…….’
물론 하인에게 그 정도의 정성을 쏟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상대는 야매 신관장이었다.
‘흑마법사 교수들이랑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야 돼. 아니, 애당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겠네.’
다른 흑마법사 교수들은 모두 제 마법에만 관심이 있을 뿐인데.
이 늙다리 신관장은 대체 무슨 목적을 갖고 이러는 건지를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이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경전을 읽으라는 거겠지.’
하인이 교수의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상관없지. 신성력? 이미 갖고 있다 이거야.’
이미 레바논의 축복을 몸에 입은 몸.
경전 따위는 얼마든지 읽어 줄 자신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전을 갖고 있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교수님께서 경전을 계속 맡아 주신다면, 종종 교수님의 집무실로 찾아와 경전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아크 교수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허허, 알겠네. 그럼 이건 내가 맡아 두도록 하지.”
‘휴… 그래, 네가 갖고 있어. 내가 가지고 있다가 걸리면 무조건 스켈레톤행이니까.’
아크 교수의 의도와 그가 다시 내게 넘기려던 똥도 무사히 방어했기에.
“그럼… 가 보겠습니다.”
난 정중히 인사를 하곤 그의 집무실을 나갔다.
‘자, 그럼 이제 콘스 교수에게 가 볼까.’
날 하인장으로 승급을 시켜 줬으니.
최소한 그녀가 맡긴 일을 처리한 척, 뭔가 보여 주긴 해야 할 것 아닌가?
‘다만 어디까지 이야기를 할지가 문제긴 한데…….’
똑똑-
나의 노크에 문에 달린 눈동자가 홱 돌더니.
“들어와.”
콘스 교수의 집무실 문이 천천히 열린다.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바삐 양피지에 글을 휘갈기는 콘스 교수를 바라보던 중.
“알아낸 걸 이야기해 봐.”
그녀가 깃펜을 내려놓고 날 바라보며 묻는다.
“예?”
“뭔가 알아낸 게 있으니 찾아온 것 아니야?”
‘그렇긴 한데……. 하긴, 잡설을 나누는 것보단 바로 본론만 이야기하는 게 나도 편하지.’
“아크 교수가 저와 개인적인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나의 보고에 그녀의 눈가가 싸늘해진다.
“이유는? 역시 심장 때문이지?”
“아니요.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심장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럼?”
나는 잠시 망설이는 척하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저를 전도하려고 했습니다.”
“심장의 방에 대한 말은 없었고?”
“그 사실을 숨기려고 절 전도하려고 한 건지,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절 전도하려고 한 건 사실이죠.”
나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 갔다.
“그 정도면 처벌할 수준의 행동 아닌가요? 절 전도하려고 했는데요?”
“대상이 학생이나 교수진이었다면 그랬겠지.”
‘니미… 하인은 아카데미의 일원도 아니다, 뭐 이거냐?’
내가 속으로 욕을 퍼붓던 중.
그녀가 돌연 눈을 번뜩이더니 날 보며 말한다.
“그럼 전도당해.”
“…예?”
“아크 교수의 말에 넘어가서 전도당하라고. 앞으로 레바논교의 신자가 된 척 행동해.”
‘이 미친년이 뭐라고?’
“아크 교수가 왜 널 전도하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그래야 아크 교수가 네게 더 신뢰를 가지게 될 테니까.”
“…만약 그러다가 제가 신성력이라도 얻게 되면 어떡합니까?”
나의 물음에 콘스 교수는 경멸하듯 날 바라본다.
“신이 그렇게 할 일이 없을까?”
‘뭐요?’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네게 신성력을 준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하아…….”
그녀는 한숨을 내쉰 뒤, 짜증스럽게 말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책임을 질 테니까, 넌 아크 교수에게 최대한 가까이 달라붙어서 그의 행동을 예의 주시 해. 그가 언제 또 심장의 방을 털려고 할지 모르니까.”
‘오우야… 정말로? 그러면 내가 신성력을 얻게 되면, 모두 네 책임인 거네?’
그녀의 발언에 내가 속으로 탄성을 지르던 그때.
똑똑-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이 시간에 누구지?’
“너… 설마 아크 교수에게 미행당한 건 아니지?”
콘스 교수의 싸늘한 물음에 난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크 교수라고? 아…….’
아마도 문에 달린 눈으로 노크를 한 사람을 본 것이리라.
“5년을 이곳에서 지냈습니다. 아크 교수보다 제가 이곳의 지리를 더 잘 아는데 그럴 리가요?”
“…….”
나의 대답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곤 나지막이 말한다.
“여기 책상 밑으로 들어가.”
“…그래도 되는 겁니까?”
“빨리!”
그녀의 낮은 으르렁거림에 난 헐레벌떡 그녀의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갔고.
“들어오세요, 아크 교수.”
“허허, 좋은 밤입니다.”
아크 교수의 목소리가 책상 너머로 들려왔다.
“어쩐 일이죠?”
“허허, 그렇게 날을 세우실 것까지야 있습니까?”
“용건이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
“허허, 그럼 용건을 간단히 말하지요.”
콘스 교수의 싸늘한 말투에도 아크 교수의 말에선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하인들 중 한 명이 레바논을 믿는 부도덕한 행위, 아카데미의 룰을 어기는 행위를 했는데,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