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것 봐라? 이런 게 있었어?’
아무도 이 책을 안 본 것인지.
책에는 뿌연 먼지가 쌓여 있었다.
‘하긴 신성력을 흑마력으로 바꾼다는 것 자체가 미친 이론인데, 누가 보려고 했겠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의 내게는 무엇보다 필요한 책이라는 것이었다.
‘어디… 무슨 말을 써 놨는지 한번 볼까. 흠…….’
나는 천천히 책을 읽어 내려 갔고.
곧 이 책의 저자가 의도하는 바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면, 원래는 신관들에게서 신성력을 뽑아내서 흑마력으로 바꾸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는 거네.’
애당초 서로 상극과도 같은 기운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내린 결론이 신관의 몸에서 뽑은 신성력을 흑마력으로 바꿀 수는 없으니, 신관을 타락시켰다는 건가…….’
뽑은 신성력을 흑마력으로 전환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타락시킨 신관을 통해 신성력을 흑마력으로 바꾸는 실험을 진행했던 모양이다.
‘다행히도 그건 성공한 모양이네. 그럼… 나도 가능하다는 거잖아? 어디 보자, 방법이…….’
책에 적힌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체내의 신성력보다 더 많은 양의 흑마력을 때려 넣고, 신성력을 굴복시키라고? 너무 간단한 것 아냐?’
이론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간단한 방법 아닌가?
‘이게 끝은 아니겠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책을 훑었지만.
역시나 방법은 똑같았다.
‘이걸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네…….’
솔직히 책에 썩 신뢰가 가질 않았다.
‘당연히 이것도 뭔가 부작용이나 여파가 있을 법도 한데, 왜 그런 건 안 적혀 있는 건데?’
쉽게 얻은 건 쉽게 사라진다.
방법이 너무 간단하니 도리어 의심이 요동친다.
‘하지만… 내게 달리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야.’
이제껏 읽은 책들 중,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 것은 이게 유일했다.
‘그래. 어차피 내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도전이라도 해 보자.’
적어도 그렇게 해야 스켈레톤이 돼도 조금 덜 억울할 것 아닌가?
난 책을 덮곤 먼지떨이를 흔들고 있는 도프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도프! 다음에 또 올게요.”
[벌써 가?]
“네, 가 볼 곳이 있어서요. 스켈레톤이 되기 전까진 계속 올 거니까 너무 시무룩해하지 마시고요.”
[그래. 가 봐.]
난 도서관을 나가.
곧장 아카데미 밖에 자리하고 있는 시체 소각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놈의 냄새는 도통 익숙해지질 않네.’
저녁이 넘어 가동을 멈춘 시체 소각장이었으나.
시체를 태우고 남은 냄새는 망령처럼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좋아. 한번 해 볼까……. 일단은 먼저 음기가 가득한 곳에서 기운을 느끼고…….’
난 교수들의 수업을 상기하며.
코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기운을 느끼는 건 쉬운데 이걸 심장까지 가져간다는 느낌을 받는 게 쉽질 않네.’
5년간 아카데미에서 구른 덕일까.
흑마력이 어떤 느낌인지는 금방 느꼈으나, 그걸 어떻게 심장에 축적하는지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심장에 쌓는다……. 심장에… 아 씨… 일단 심장까지만 보내면 되는데…….’
물론 심장에 쌓는 것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그 뒤로 마력을 오염시켜 흑마력으로 전환하는 ‘흑마력 기관’도 만들어야 하는 등.
내가 가야 할 길은 너무도 멀었다.
‘그래도 이것만 어떻게 하면… 음…….’
순간, 몸 안을 맴돌다가 나가기만 하던 음의 기운 중 일부가.
심장 부근에서 꼬리를 흔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건가?!’
몇 시간 만에 얻은 느낌이다.
이 느낌을 놓칠 수는 없다.
‘이 기운을 심장에서 회전을 시키면…….’
그런데 내가 교수들의 이론을 상기하며.
천천히 음의 기운을 심장 주변으로 돌리기 시작하려던 그때.
화아아아악-
돌연 심장 한편에서 웅크리고 있던 신성력이 고개를 들고.
회전하려는 음의 기운, 흑마력에 몸을 부닥치는 게 아닌가?
콰아아앙-
심장에서 일어난 격한 충돌 때문일까.
‘이런 시발… 이런 건… 책에 안 적혀… 있었는데…….’
“커흑…….”
난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입에서 피를 쏟아 냈다.
‘지금이라도 마력의 회전을… 멈춰야 하나…….’
두 기운은 심장을 두고 맹렬히 다투고 있었고.
“우웨에엑…….”
두 기운이 맞부딪칠 때마다.
나는 토악질을 참지 못하고 피를 게워 냈다.
‘미친… 이러다… 죽겠다……. 안 되겠어… 지금이라도… 멈춰야…….’
그러나 내가 싸움을 말려 보려고 해도.
이미 두 기운은 나의 통제를 벗어났다.
쾅, 쾅-
‘그만… 그만해……! 멈춰!’
하지만 내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두 기운은 움직임을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사사사사삭-
이제는 오히려 심장을 두고 뱅글뱅글 돌기까지 시작했다.
‘으으으으…….’
이제는 차라리 뭐가 됐든 좋으니 어느 한쪽이 빨리 이겼으면 좋겠다.
‘이러다 심장이 터져 나갈 것만…….’
내가 가슴을 움켜잡은 채 헐떡이던 그때.
사사사사사사삭-
내 심장을 두고 원을 그리던 두 기운이 점점 옅은 회색의 고리를 그리기 시작했고.
고리의 숫자가 세 개를 그릴 무렵이 되어서야.
웅웅웅-
‘끄, 끝난 건가…….’
두 기운은 소멸한 것처럼 내 심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만약 이렇게 생을 마감했다면.
스켈레톤이 되어서도 억울함을 삭이지 못했을 것이다.
‘시발… 그딴 책을 믿은 내가 등신이지, 어우…….’
역시 남들이 거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쨌건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확실히 신성력이 없어진 것 같긴 하네.’
더 이상 내 심장에서 신성력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아니,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뭔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느낌이 애매한데? 근데 가만… 이건 뭐야? 고리가 하나, 둘… 셋? 셋?!’
심장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세 개의 고리.
그것은 분명 내가 3서클의 흑마법사가 되었음을 증명했다.
‘맙소사…….’
나는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서둘러 서클을 회전시켜 봤다.
‘근데 어째 조금 느낌이 이상한데… 원래 흑마력이 이런 건가?’
내 마력은 평소 교수들이 보였던 어두침침한 느낌이라기보단.
뭔가 흐리멍덩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신성력이 섞여서 그런가? 에이 씨, 뭐 어때? 결과가 좋으면 장땡이지.’
몸 안의 신성력도 없애고.
단숨에 3서클의 흑마법사와 버금가는 양의 흑마력을 손에 넣었다.
‘이러면 아크 교수를 만나도 상관 없… 진 않겠네.’
신성력은 없앴어도 내 몸 안을 맴도는 마력을 그가 파악하게 된다면.
난 꼼짝없이 죽게 될 것이다.
‘미치겠네……. 결국 어떻게든 내가 마력을 갖고 있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데…….’
교수들과 직접적인 접촉만 하지 않는다면.
내가 마력을 갖고 있는 사실을 들킬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크 교수가 날 의심하고 있는 이상, 접촉을 피하긴 어려울 텐데…….’
하나 당장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난 한숨을 내쉬며 숙소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
“기상! 기상해!”
아직 채 동도 트지 않은 대지 위로.
사내의 고함과 종소리가 울린다.
“음…….”
‘어떻게 이놈의 기상 소리는 하인장이 돼도 개같이 들리는지 모르겠네. 그래도 혼자 자니까 확실히 좋긴 하네.’
난 느긋하게 침구류를 정리하곤.
새롭게 배정 받았던 개인실을 나갔다.
“나오셨습니까?”
“음, 그래.”
각 방의 방장들을 필두로 집합한 하인들을 보며.
난 무심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제 전달하지 못한 사항을 간단히 전달하겠다. 오늘까지는 각자 정해진 일을 수행하고, 오늘 저녁에 작업 개편을 할 예정이다.”
“작업 개편 말입니까?”
“그래,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 앞으로는 방마다 담당 구역을 정할 생각이다.”
나의 말에 하인들이 수군거린다.
“그럼 한번 일이 정해지면 계속 그것만 해야 한다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그냥 지금처럼 적당히 돌아가면서 하면 되지, 뭘 개편을 한다는 거야?”
‘뭐, 그렇겠지.’
하인들의 반발은 예상했다.
누구나 쉬운 일을 하길 원하지,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일을 하면, 일이 바뀔 때마다 계속 내가 집합시켜서 설명을 해 줘야 하잖아? 매번 그 짓거리를 귀찮아서 어떻게 해?’
전대 하인장은 그랬을지 몰라도 난 아니다.
‘일단 내가 편해야지.’
“전담 구역은 각 방의 방장들이 카드를 뽑아서 정하든가 하고, 아 참. 그리고 오늘은 누더기 골렘 작업이 있다.”
내 말이 끝나자.
누구 할 것 없이 하인들의 표정이 굳어 간다.
‘그럴 만도 하지. 시체 썩은 내를 맡으면서 사람의 가죽들을 꿰매야 하는데 누가 좋아할까.’
더욱이 누더기 골렘의 크기가 워낙 큰 만큼.
일이 하루 만에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며칠을 교수들의 갈굼을 받으면서 가죽을 꿰매야 하는 거니까. 진짜 개같은 일이었었지.’
하지만 이제 내가 그 작업을 할 일은 없다.
‘하인장이 그런 일을 해서 쓰나.’
“어디 자원할 방이 있나? 지금 자원하는 방에는 가장 우선적으로 쓸 만한 신입들을 배치해 준다.”
“…….”
하지만 나의 물음에 방장들은 서로의 눈치만 볼 뿐.
누구 하나 답하는 이가 없었다.
‘폐급 신입을 빼 주겠다는 데도 자원을 안 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나는 방장들의 면면을 훑다가.
7번 방의 방장을 보며 입을 뗐다.
“그럼 누더기 골렘 작업은 7번 방이 맡아.”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 저희 방이 그걸 해야 되는 겁니까?”
“너희는 최근까지 스켈레톤 수리 작업 위주로 했잖아. 꿀을 빨았으면 고생도 좀 해야 할 것 아냐.”
나의 말에 7번 방의 방장이 눈을 부릅뜬 채 소리친다.
“그냥 공평하게 카드를 뽑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이건 너무 불공평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명령을 거부하겠다, 이런 뜻인가?”
“전대 하인장님께선 모든 일을 최대한 공평하게 처리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새끼 봐라……. 하인장한테 항명을 해?’
어쨌건 난 하인들을 통솔하는 우두머리가 됐다.
그런데 그런 내게 반항을 한다는 건.
교수에게 학생이 대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새로 하인장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주도권을 잡고 싶은 모양인데, 어림도 없지.’
7번 방의 방장도 4년 남짓을 살아남은 하인이긴 했으나.
그래 봐야 결국 하인장의 밑이었다.
“전대 하인장은 그랬었지. 하지만 난 아냐.”
난 7번 방의 방장을 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오늘 베크 교수님께서 포획한 마수를 이동시킬 인원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야간작업도 7번 방이 맡는 걸로 한다.”
“…예?!”
나의 말에 7번 방의 하인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갔고.
반대로 다른 하인들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마수를 운반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니까.’
베크 교수가 수업을 위해 포획한 마수들.
그놈들을 운반하다가 갑자기 사슬이 끊어지는 등, 사고로 인해 죽은 하인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건… 과한 처사 아닙니까?!
“누더기 골렘 작업에 마수 이동 작업까지 저희가 맡으라니요?!”
7번 방의 하인들이 화급히 소리치자.
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원망하려거든 너희 방장을 원망해. 하인장의 말에 말대꾸를 해? 내가 1년 차 때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
“그건 그렇지만…….”
7번 방의 하인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던 그때.
7번 방의 방장이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건 거절한다!”
“거절한다는 반말이고.”
“너 같은 새끼가 하인장이라고? 난 따를 수 없다!”
그의 일갈에 난 피식 미소를 흘렸다.
“나보다 짬도 딸리는 게 왜 이렇게 불만이 많아? 콘스 교수에게 가서 따지든가. 그것도 꼬우면 계급장 떼고 한판 붙든가.”
나의 말에 하인들 사이로 수군거림이 퍼진다.
“푸라틴 방장이 제일 힘이 센 것 아니었어?”
“그럴걸? 저번에 보니까 시체들도 한 번에 몇 구씩 나르던데…….”
“랄프가… 아니, 하인장님께서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저들의 말이 맞다.
‘힘으로만 따지면 하인들 중에서 푸라틴이 제일 힘이 세긴 하겠지. 그러니 지금 이렇게 반항하는 거고.’
전대 하인장도 푸라틴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최대한 공평하게 일을 배분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난 다르지.’
심장에서 회전하고 있는 3개의 서클과 흐리멍덩한 마력이 있는 한.
내가 놈에게 밀릴 일은 없다.
‘내가 힘은 딸려도 마력을 잘 사용하면 놈을 제압하는 것 정도야 쉬우니까.’
“계급장 떼고 붙자고?! 푸하하하하하! 내가 못 할 줄 알고?!”
희번덕 눈을 뜬 푸라틴이 주먹을 쳐들려던 그때.
난 흐리멍덩한 마력을 실은 주먹을 들어.
냅다 놈의 얼굴을 후려쳤다.
으직-
얼굴이 함몰된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푸라틴의 몸이 허공에 잠시 떴다가 삽시간에 지면을 굴렀고.
‘뭐야, 이거……. 힘 조절을 한다고 한 건데, 자칫 잘못했다간 죽일 뻔했네…….’
물론 푸라틴을 죽인다고 해서 죄를 짓는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죄를 저지른 것은 푸라틴이었고.
그걸 교육하는 것 역시 하인장의 임무였으니까.
‘교육하는 중에 죽을 수도 있지.’
“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나, 나도 몰라. 나도 제대로 못 봤다고…….”
“방금 하인장님이 푸라틴을 친 것 아냐?”
하인들이 나동그라진 푸라틴을 보며 수군거리는 사이.
“으으으…….”
난 하인들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앞으로 내 명령에 항명할 놈은 언제든 나와도 좋다.”
“아… 아닙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하인들이 화급히 소리치자.
“그럼 이제 일들 하러 가! 그리고 7번 방은 이번 달 동안 큰 작업들을 도맡아서 처리한다. 불만 있나?!”
내가 푸라틴을 내리깔며 묻자.
“어… 없습니다!”
7번 방의 하인들이 목을 바짝 세운 채 소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