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런 미친…….”
“전염병이다! 전염병이 분명해!”
“시체에 가까이 가지 마! 옮는다고!”
‘아니야. 이건 전염병이 아니야.’
전염병은 아니다.
그랬다면 벌써 증상이 나에게도 퍼졌을 테니까.
‘진짜 누가 저주라도 걸었나? 하지만 굳이 하인들한테?’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뭐가 아쉬워서?
‘굳이 어렵게 저주를 걸어서 우릴 죽일 필요가 없는데?’
그럼 학생의 소행인 걸까?
‘4학년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통금 시간이 지났는데……. 가만…….’
난 피를 토하며 쓰러진 하인들을 보다가.
문뜩 저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두 다 왼쪽 가슴을 붙잡고 있어.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를 말이야……. 그렇단 건…….’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성을 노려봤다.
‘누군가가 우리의 심장이 있는 심장의 방에 들어간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쓰러진 하인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행동을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시발… 어떤 미친 새끼가……. 규칙이고 나발이고 당장 들어가 봐야겠어.’
통금 시간이 지나면 하인은 성안, 아카데미의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딴 규칙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떤 새끼인지 몰라도 만약 내 심장까지 건든다면 난…….’
규율이고 나발이고 당장 사는 것이 문제였기에.
난 등불을 들고 허겁지겁 성으로 들어갔다.
‘후…….’
다시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5년간의 생활 덕에 스켈레톤들이 어디를 경비하고 있는지 알고.
임프들이 이 시간이면 술을 처먹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보다 대체 어떤 새끼가…….’
통금 시간인 탓인지 성안은 고요했다.
덜그럭-
간혹 순찰 중인 스켈레톤들의 뼈다귀 소리가 울려오기도 했으나.
난 아랑곳 않고 서둘러 3층으로 올라갔다.
‘설마 아직도 심장의 방에 있는 건 아니겠지.’
침입자가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상대가 누구건 나보다 강할 것이란 것이었다.
‘젠장… 지금이라도 교수를 불러야 하나? 아니야… 교수 새끼들은 우리가 죽어 나가건 말건 별로 신경도 안 쓰는 족속들이야. 불러 봐야 나만 통금 시간에 아카데미에 들어왔다고 벌을 받게 될 거야.’
교수들의 도움은 받을 수 없다.
‘시발… 어쩌지…….’
나는 고민하면서도 서둘러 ‘심장의 방’이 있는 3층 좌측의 복도를 내달렸다.
그러던 그때.
두근-
순간, 이상한 감각이 나의 전신을 자극하듯 조여든다.
‘이건…….’
두근-
꼭 내 심장이 누군가의 손에 쥐인 것 같은 느낌이다.
‘누가… 내 심장을… 쥐고 있어…….’
쾅쾅쾅쾅쾅-
떨어져 나간 나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친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나 역시 심장이 터져 나갈 터.
‘뭐라도 해야 돼!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아직 타인의 손에 심장이 들려 있는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걸 봐선.
침입자들은 아직 심장의 방 안에 있는 것 같다.
‘놈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맞붙는 건 안 돼. 내가 하인이라는 걸 놈들이 알게 되는 순간, 상황은 불리해질 뿐이야.’
먼저 난 목을 최대한 내리깔았다.
‘달프 교수의 목소리를 흉내 내자.’
물론 그와 내 목소리가 비슷하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저 침입자들에게 긴장은 줄 수 있을 터.
“거기 안에! 누구야!”
난 복도 끝에 보이는 심장의 방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제발… 나와라……. 제발… 안 쫓아갈 테니까 그냥 나와!’
나의 간절한 염원이 통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달프 교수로 착각한 건진 몰라도.
사사삭-
곧 검은 그림자 몇이 빠른 속도로 방에서 튀어나와 옆 계단을 타고 사라졌다.
‘먹힌 건가…….’
나는 조심스럽게 방 옆으로 다가가.
놈들이 사라진 계단을 내려다봤다.
‘미치지 않고서야 다시 올라오진 않겠지.’
다만 나의 고함 때문인지.
덜그럭-
계단 저 밑에서 스켈레톤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울려왔다.
‘아직 늦진 않았어. 지금 도망가면 딱히 걸릴 일도 없을 거야.’
하나 난 살짝 열려 있는 심장의 방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만약 저 안에 들어갔다가 중간에 잡힌다면… 꼼짝없이 죄를 뒤집어쓰고 죽게 될 거야. 하지만…….’
저 안에서 내 심장을 찾을 수만 있다면.
적어도 오늘처럼 다른 사람의 손에 심장이 옥죄이는 기분은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오히려 이건 기회일지도 몰라. 내 심장을 되찾을 기회…….’
어쩌면 다시는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들어가 보자.’
난 서둘러 열려 있는 문을 젖히고.
심장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방 안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층이 나뉜 나무 선반 위에는 유리병들이 있었는데.
두근-
그 안에서는 살아 있는 것처럼 심장들이 벌떡이고 있었다.
‘아무리 우리가 하인이라고 해도 그렇지… 조리실에는 케르베로스를 둬 관리를 하면서 우리 심장은 이따위로 관리하고 있었다고?’
적어도 유리병에 이름은 적어 뒀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누구 심장인지 찾기 편할 텐… 아, 어차피 죽을 놈들이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카데미에 있어 우리는 그저 물건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바삭-
‘이건…….’
깨진 유리병들이 흩뿌려진 바닥에는.
심장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납작한 물체들 몇이 보였다.
‘이 미친 새끼들이… 나가려면 그냥 곱게 나갈 것이지……. 그보다 내 심장은 어디에 있지?’
선반에는 몇십 개가 넘는 유리병들이 있었기에.
그중에서 내 심장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설마…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저건가?’
난 본능이 이끄는 대로 눈을 돌려 하나의 심장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게 맞는 것 같은데…….’
난 홀린 듯 떨어져 있는 심장을 주워.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 심장을 가져다 대 봤다.
그러자.
사사사사사삭-
심장은 나의 살을 파고 들어가듯 스며들어.
비어 있던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이게… 맞았구나……. 맞았어, 이게 내 심장이야! 내 심장이라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충족감이 나의 가슴을 뿌듯하게 채워 온다.
‘드디어… 드디어 되찾았어!’
마침내 5년간 멈춰 있던 나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하아… 어떤 개같은 새끼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맙다, 개새끼들아.’
내 심장을 터트리려던 놈들 덕에 오히려 심장을 되찾게 될 줄이야.
덜그럭, 덜그럭-
그러나 지금은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다.
심장의 방과 근접한 곳에서 스켈레톤의 소리가 울려온다.
‘이런… 빨리 나가야겠어.’
나는 흘낏 다른 병들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다른 하인들의 심장까지 챙겼다간 의심을 받을 수 있어.’
자칫 유리병을 챙겨 갔다가.
교수들이 다시 우리에게 ‘심장 적출’ 마법을 걸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미안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
내가 있어야 다른 사람도 있는 거다.
덜컹-
난 서둘러 심장의 방을 나가 복도를 내달렸다.
* * *
다음 날.
‘후… 새로 심장 적출 저주는 안 거는 건가.’
전날 밤 갑작스럽게 하인들이 죽는 소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별다른 말이 없는 걸 봐선.
아카데미에서 우리에게 별다른 조치를 하진 않을 것으로 보였다.
‘다행이긴 한데… 진짜 완전 물건 취급 하는구나.’
심장을 빼돌린 걸 걸리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으나.
한편으론 작금의 상황이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지. 심장을 되찾았으니까.’
이제 심장이 생겼으니 남몰래 흑마력을 심장에 축적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언제고 교수들까지 찍어 누를 정도로 강해질 수도 있겠지. 흠… 그러려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카데미 안의 도서관에는 수많은 서적들이 있고.
개중에는 기초적인 흑마법이 적힌 도서들도 있을 터.
‘흑마력을 쌓는 방법이야 알고 있다고 해도,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나 한낱 하인이 도서관에 들어가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하인장 정도는 돼야 도서 정리 명목으로 들어가기라도 할 텐데. 흠… 이번에 하인장이 죽었으니 새로운 하인장을 선출하겠지?’
그리고 난 하인장이 될 요건.
아카데미에서 장수한 하인 중 한 명이라는 점을 충족하기도 했다.
‘저번 하인장은 콘스 교수가 임명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녀가 선택하려나?’
보통 하인장은 교수가 지정한 하인이 하인장이 되었기에.
교수의 추천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고민이네……. 되면 좋긴 하겠다만 솔직히 일이 워낙 많아야지…….’
내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가던 그때.
동료가 다가와 나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한다.
“랄프, 콘스 교수님께서 널 부르셨어.”
“그래? 왜?”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가 봐.”
난 콘스 교수의 호출을 받고 그녀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부르셨습니까, 교수님.”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지?”
“갑자기 동료들이 죽어서 대충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나의 말에 콘스 교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누가 문의 결계를 뚫고 심장의 방에 들어갔어.”
‘그럼 진작 잘 관리를 좀 하든가. 애당초 심장의 방엔 관심도 없던 것들이…….’
“…예.”
“오늘부터 너희도 아카데미 경비를 서는 건 알고 있을 테니,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해.”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학생들도 상대 못 하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아크 교수의 행동을 면밀하게 살펴.”
“…예?”
즉, 그녀의 말은 아크 교수를 감시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아크 교수를 감시하라고? 왜지?’
물론 아크 신관장이 교수로 취임한 지 이틀 만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의심이 되는 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아크 교수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하겠어?’
“학생들이 한 짓일 수도 있습니다.”
“…뭐라고?”
그녀가 싸늘한 눈으로 날 쏘아보자.
‘아차…….’
“그저 더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난 서둘러 변명을 덧붙였다.
“학생이 내 결계를 뚫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렇지요.”
‘하긴… 교수가 설치한 결계를 뚫을 정도면 같은 교수급은 돼야지. 그런데… 어제 로브를 두른 놈은 셋이었는데…….’
하지만 난 구태여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해 봐야 돌아올 것은 ‘마인드 브레이커’ 저주일 테니까.
“앞으로 아크 교수를 더 예의 주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하인들한테도 전달해.”
“알겠습니다만… 원래 이런 사안은 하인장이 전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나의 말에 그녀가 피식 실소한다.
“앞으로는 네가 하인장을 맡아.”
“…예?”
‘나보고 하인장을 맡으라고?’
하인장, 하인을 통솔하는 하인들의 우두머리.
분명 높은 직책인 건 사실이었으나.
난 이 사실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말이 좋아 하인장이지, 실질적으론 그냥 똥받이니까.’
교수들의 요구 사항을 받아 하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시작으로.
아카데미의 전반적인 관리를 해야 하는 자리가 바로 ‘하인장’의 자리였다.
‘교수들의 온갖 요구도 다 처리해야지, 입학식 같은 큰 건이 있으면 그것도 계속 관리해야 하고.’
하지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하인장은 독방을 가질 수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도서관에도 출입을 할 수 있으니까.’
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만, 제가 감히 그런 자리를 맡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더 연륜이 있는 사람도 있는데…….”
“이미 학장님께는 보고해 뒀어. 아크를 감시하려면 하인장 자리가 편하겠지. 다른 놈들보다 눈치는 빠르니 일도 잘할 거고. 그렇지?”
‘눈치가 빠르다고? 매일 갈구기만 해서 몰랐는데, 설마 날 고평가하고 있었던 건가? 확실히 저번 가짜 마법사 사건 뒤로 조금 시선이 달라진 것 같긴 했는데…….’
굳이 나를 하인장으로 선택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하고많은 하인들 중.
‘그러니까… 내가 눈치가 빠른 것 같으니까 아크 교수를 감시하려고 날 하인장의 자리에 세우겠다는 건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콘스 교수는 이번 사건의 범인이 아크 교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뭐, 상관없겠지. 적당히 감시하는 척만 하면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이번에 하인들이 워낙 많이 죽은 탓에 일손이 많이 모자랍니다. 혹시 인원을 더 보충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