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4화 (4/200)

4.

‘가만, 제물이라고 했지……. 제물… 제물? 아…….’

순간, 몇 달 전에 있었던 한 가지 일이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에 몇십 명은 되는 성기사들이 아카데미로 끌려왔었지.’

그 덕에 아카데미의 교수들 중.

특히 악마학파의 교수들이 두 손을 들고 환영까지 하지 않았던가?

‘질 좋은 제물이 들어온 덕에 더 고위급의 악마를 소환할 수 있겠다고 했었어.’

심지어 성기사를 산 제물로 쓸 게 아니라.

깔끔하게 죽이고 데스나이트로 만들자는 교수도 있었다.

‘강한 힘을 가진 제물일수록 더 강한 언데드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런데… 성기사들이 잡혀 온 이유가 단순히 교수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해서 끌려온 게 아니었던 건가?’

아크 신관장이 방금 언급한 ‘제물’.

그 한 마디가 갖고 있는 의미는 너무도 명확했다.

‘신성 왕국 레바논이 의도적으로 성기사들을 파견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아카데미의 제물로 쓰기 위함이다? 이게… 말이 되나?’

성기사 한 명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재화가 소모될지.

나로선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흠… 둘 사이에 내가 모르는 거래라도 있었던 걸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겠다만…….’

만약 그렇다면 레바논 왕국은 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걸까?

‘분명 흑마법사들도 성기사 사단에 버금가는 무언가를 거래의 대가로 내놨어야 할 텐데… 그게 뭘까…….’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기껏 해 봐야 언데드 군단이랑 악마 정도인데… 뭐, 설마 저들이랑 적대 관계에 있는 다른 왕국의 습격을 부탁하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에이, 명색이 신성 왕국인데 설마 그랬겠어? 차라리 레바논 왕국 내의 다른 파벌의 세력을 약화시키려고 그랬을 확률이 높겠지.’

나는 아크 신관장을 흘끔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 갔다.

‘여하튼 한 가지 확실한 건, 내 생각 이상으로 흑탑과 레바논 왕국의 관계가 좋은 모양이야. 그래, 신관장이 아카데미에 올 정도면 확실한 거지. 가만… 그럼 주기적으로 신관이나 성기사들이 잡혀 왔던 것도…….’

“쉰관장님… 구게… 무순 말쑴이십니까……? 제, 줴물이라뇨?”

“레바논 님께서 말씀하시길, 모든 생명체에게는 존재 의의가 있다고 하셨지. 자네의 존재 의의는 뭐라고 생각하나?”

“구건… 기사료서… 레바뇬 왕국의 수호를…….”

“틀렸네. 자네의 존재 의의는 바로 기사답게 영예롭게 순교하는 걸세. 하지만 자네는 그리하지 못했지.”

‘…영예롭게 순교하는 거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죽으면 그냥 죽는 거지, 거기에 영예가 어디에 있어? 아니면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건가?’

개소리를 할 거면 적어도 내가 알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해야 할 것 아닌가?

‘하여간 좀 배웠다 싶은 새끼들은 말을 너무 어렵게 한다니까.’

내가 속으로 혀를 차던 사이.

아크 신관장이 계속 말을 이어 간다.

“어… 그… 어… 우리룰… 배신한… 궙니… 까?”

“배신이라니? 그저 자네들은 선택됐을 뿐이네. 그리고 영광스러운 죽음을, 순교를 맞이했지. 자네만 빼고 말이야. 자네는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건가?”

“구… 구게 무슨 말이…….”

“저들이 성기사라는 귀한 제물을 이곳에 처박아 둔 데는 이유가 있겠지. 몸에 하자가 있다거나 아니면… 성마법을 다룰 수 없다든가. 그렇지 않나?”

‘그래… 기억났다.’

아크 신관장의 말에 나는 순간, 옛 기억을 떠올렸다.

‘돈트가 다른 성기사들에 비해 가진 신성력이 너무 부족해서 데스나이트로 만들 수 없다고 교수들이 난리를 부렸었지.’

특히 파스칼 교수가 레바논 왕국에서 시원찮은 제물을 보내왔다고 발광했었다.

‘그땐 뭔 소린가 했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가네.’

돈트는 데스나이트의 제물이 되기엔 가진 능력이 부족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돈트의 목숨을 연명시키게 된 셈이었다.

‘그래서 계속 지하 감옥에 처박혀 있다가 이번에 하인들이 대거 죽어 나간 덕에 나오게 된 건가. 허…….’

“다, 닥쵸! 눼, 눼놈은 우리룰 팔와 넘궜어! 우리를… 흑마법… 솨들에게… 팔아넘… 궜다고!”

돈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자.

아크 교수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팔아넘기다니? 오히려 순교할 수 있는 영예의 장을 만들어 준 거라네.”

“영, 영예의 장이롸고……?”

‘영예의 장? 순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을…….’

“자네는 불행한 사람이지만 아직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네. 순교하게.”

아크 신관장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떠는 돈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일을 방해해서 미안하네. 하던 일을 계속하게.”

“…예.”

덜컥-

아크 신관장이 하인장과 함께 나가자.

나는 말없이 돈트를 흘끔 내려다봤다.

“내가 줴물… 줴물… 줴물… 줴물… 반쬭자리… 순교…….”

돈트의 멍한 동공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의 입에선 같은 단어가 반복하여 흘러나왔다.

‘이건… 완전히 맛이 갔네.’

동공은 멍하고 입 사이론 침이 흘러나오는 게.

꼭 정신병자처럼 보였다.

‘하… 시팔……. 이 정신 나간 새끼랑 계속 한 방을 써야 하는 것도 개같은데, 이 새끼를 어떻게 해야 하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도 툭하면 죽는 세계다.

‘이 새끼 혼자 헛짓거리를 하다가 죽는 건 상관없는데, 문제는 이 새끼가 대형 사고를 칠 경우란 말이지.’

막말로 돈트가 큰 사고를 친다면.

적어도 나를 비롯하여 이 방의 모든 하인들의 목이 달아날 것이었다.

‘아오… 신관장 새끼는 왜 갑자기 방에 찾아와서 지랄을… 아닌가… 어차피 언젠가 벌어졌을 일이긴 했겠네, 시펄…….’

시기만 다를 뿐 언제고 돈트는 아크 신관장을 맞닥뜨렸을 터.

‘그래… 매도 일찍 맞는 게 낫지.’

난 뒤통수를 벅벅 긁적이다가.

룸메이트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하인장에게 미리 말해 놓을 테니까, 저놈은 당분간 스켈레톤 수리 작업에만 투입해.”

“뭐… 뭐라고?! 그 꿀 작업을 저딴 놈한테 맡긴다고? 아니, 왜 그런 짓을 해?”

동료들이 흥분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아카데미 안에서 미친놈들 시중드는 것보단, 스켈레톤 수리를 하는 게 나으니까.’

일단 스켈레톤 수리 작업을 맡은 날엔 아카데미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뭐… 교수나 학생들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게 제일 크긴 하지만. 아카데미 주변에 있는 농지랑 산간을 돌아다니며 스켈레톤들을 수리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니까.’

그저 뼈가 담긴 보자기를 들고 다니며.

스켈레톤들의 마모된 뼈를 갈아 주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마음 같아선 나도 꿀이나 빨면서 뼈나 갈아 주고 싶지. 이 개같은 직업은 어째 연차가 쌓일수록 힘들어 지냐…….’

이놈의 일은 근무 기간이 길면 길수록 찾는 교수들도 많아지는 데다가.

아카데미 안의 웬만한 잡무는 고참급 하인에게 시키려고 했다.

‘에효… 그래, 너희도 꿀 빨고 싶겠지. 하지만 누군가는 똥을 맡아야 하지 않겠냐?’

“그럼 저 새끼가 미쳐 가지고 헛짓거리라도 하게 놔둘까?”

나의 말에 룸메이트들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당연하지! 사고를 쳐 봐야 저 새끼만 죽을 텐데 무슨 상관이야?”

“기억 안 나? 저번에 보프가 신관 시체 두 구를 태워 먹었다가 어떻게 됐는지?”

나의 물음에 룸메이들이 침을 꿀꺽 삼킨다.

“그건…….”

“그 방의 방장을 포함해 전원의 목이 떨어져 나갔어, 전원.”

‘그 사실을 알면서도 놔두자고? 어휴, 이 답답한 새끼들…….’

나는 바닥에 있던 카드 뭉치를 들어 적당히 섞곤 그들 앞에 내밀었다.

“한 장씩 뽑아.”

“뭘 하는 건데?”

“돈트를 스켈레톤 수리 작업에 뺄 게 아니면, 가장 낮은 숫자가 나온 녀석이 돈트를 맡아. 그리고 그다음 낮은 숫자를 뽑은 두 사람이 신입 두 사람을 교육하고. 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나의 말에 룸메이트들의 눈이 번뜩인다.

“높은 숫자를 뽑으면 된다는 거네?”

“스켈레톤 수리 작업으로 빼는 방법도 있다.”

“누구 좋으라고 그런 짓을 해? 그냥 저 새끼가 미친 척하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난 그냥 뽑으련다.”

카드를 가져간 룸메이트들이 한 명씩 들고 있던 카드를 뒤집기 시작한다.

“아싸! 9다!”

“하… 5네……. 니미럴…….”

동료들 간에 희비가 엇갈리는 사이.

나도 카드 한 장을 들어 천천히 뒤집었다.

‘제발… 똥만 피해 가자. 똥만 피해…….’

[2]

‘이런 시팔…….’

하고 많은 숫자 중, 설마 가장 낮은 숫자를 뽑을 줄이야.

‘아오… 어째 이런 내기는 왜 꼭 말한 놈이 걸리는지를 모르겠네.’

“줴물… 줴물… 줴물… 줴물…….”

‘내일부터 저 똥 덩어리 새끼를 달고 다녀야 한다고?’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돈트를 보니, 괜히 화딱지가 치밀어 오른다.

‘차라리 좋게 생각하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라면, 차라리 옆에 두고 지켜보는 게 나을지도 몰라.’

돈트를 계속 내 옆에 데리고 다닌다면.

혹시나 놈이 사고를 치더라도 최소한의 방비책을 강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 아무것도 모르고 목이 잘리는 것보단 그게 나을 수도 있지.’

“푸하하하하하! 랄프! 내일부터 저 새끼는 네가 잘 챙기는 것 알지?”

“…그래, 망할 놈들아.”

* * *

다음 날, 아침.

‘안 닦아도 깨끗하기만 한데, 무슨 놈의 청소를 이렇게 빡세게 시키는지 모르겠네.’

나는 아카데미 2층에 전시된 악마들의 동상을 바삐 닦다가 흘낏 옆을 쳐다봤다.

“…….”

‘저 새끼는 언제쯤 정신을 차릴까……. 표정이라도 좀 감추든가.’

돈트의 얼간이 같은 얼굴을 보던 난 걸레질을 멈추곤.

놈에게 소리쳤다.

“학생들에게 쓸데없이 책잡히기 싫으면 얼굴 펴고 일해라.”

표정 관리는 하인이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이었다.

‘인생에 불만 있냐고 지랄하는 새끼들이 태반이니까. 가만… 아니지. 차라리 그냥 놔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나는 차라리 학생이 돈트에게 시비를 걸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어차피 저런 놈은 몇 달도 못 가서 죽겠지. 큰 건만 막는다면 나한테 피해가 돌아올 일도 없을 거고……. 그래, 차라리 그 편이 낫겠어.’

어차피 죽을 놈은 금방 죽어 나갔고.

내 눈에 돈트는 확실히 ‘죽을 놈’이었다.

‘살 사람은 살아야지.’

별다른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시펄… 알 게 뭐야,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지.’

난 영웅도, 엄청난 힘을 가진 용사도 아니다.

‘그만한 힘이 있었다면 진작 여길 떴겠지. 하아…….’

나는 고개를 젓곤 옆으로 이동하여 벽면을 닦아 나갔다.

“…기본적으로 흑마력을 가진 존재가 성마법을 방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 하지만 방금 보여 준 대로만 한다면 성마법을 파훼하는 것도 가능하다.”

‘흠… 이 방이 아크 교수의 교실인가. 기억해 둬야겠어.’

벽면 너머로는 아크 교수의 음성과 학생들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뎅, 뎅-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허허, 다음 시간은 성마법, 홀리 라이트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수업할 테니 다들 예습을 해 올 수 있도록.”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다음은 무슨 수업이야?”

“베크 교수의 마수를 다루는 법, 너는?”

“달프 교수의 악마학개론을 들어야 돼. 나도 빨리 임프를 소환해서 계약하고 싶다.”

1학년들이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누며 나의 옆을 스쳐 지나간다.

‘아직 하루밖에 안 돼서 그런가? 시비 거는 놈은 없어서 다행이네……. 아니면 정말 콘스 교수가 입학식에 뒀던 하돌프의 석상이 먹혔던 건가? 조금은 사람 같은 새끼들이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멀어져 가는 1학년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던 그때.

“아크 신관장… 아크 신관장!”

내 옆에서 조용히 벽면을 닦고 있던 돈트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더니.

아크 신관장이 있는 교실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 저 미친 새끼가?!’

차라리 학생은 괜찮다.

당사자만 목이 떨어지고 말 테니까.

하지만 교수는 다르다.

‘교수에게 대든다면… 무조건 전원 사형이다……. 저 미친 새끼가 내가 그렇게 말을 했었는데도…….’

하인은 교수들과 학생들을 건드릴 수 없다.

전날 밤, 돈트에게 그 사실을 주입하고 또 주입했건만.

저 새끼의 귓가에는 닿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버텨 왔는데……! 스켈레톤이 될 수는 없어!’

당장 밭을 갈고 나무를 패는 스켈레톤들 중에선.

나의 선배 격이었던 하인들도 있었다.

교수 옷자락에 물을 쏟았던 전전대 방장, 게판.

실험 도구를 옮기다가 깨 먹은 맞선임, 테루.

그 외에도 별 같잖은 이유들로 심통이 난 교수들에게 죽음을 맞이한 나의 선임들.

그들과 같은 꼴이 될 수는 없다.

“야! 돈트!”

난 황급히 놈의 뒤를 쫓아 ‘성마법 방어학’ 교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넌 우리를 팔았어! 레바논 님의 믿음을 팔았다고! 이 비열한 위선자 새끼가!”

하지만 고성을 지르며 아크 교수에게 달려드는 돈트의 등을 바라보며.

내 머릿속에 한 가지 단어가 스쳐 갔다.

‘아… 좆됐네…….’

“허허, 위선자라……. 존재 의의를 저버린 자는 더 이상 레바논 님의 종이라고 할 수 없는 법이네.”

아크 교수의 손에 들려 있던 메이스가 허공에 들리고.

퍼억-

짙은 타격 소리와 함께 돈트의 몸이 뒤로 나자빠져 나의 발치 앞을 굴렀다.

“으으… 으으…….”

얼굴이 함몰되어 몸을 부르르 떨던 돈트의 몸이 곧 축 처지자.

‘아… 시팔… 어떡하지? 분명 엄청 화가 났겠지.’

난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근데 생각해 보면 애당초 아크 교수가 자초한 일이잖아? 아크 교수랑 돈트가 합작해서 싸지른 똥이잖아?! 근데 왜 똥은 내가 치워야 하는 건데?’

하지만 똥은 똥이고 일단 살아야만 한다.

‘용서를 빌어야 되나? 아냐, 자기 나라 성기사도 팔아먹는 놈한테 용서를 빌어 봐야 뭐 하겠어? 가만…….’

순간, 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아크 교수가 온 지 겨우 하루밖에 안 됐잖아? 그럼 아카데미의 규율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 않을까?’

교수에게 대든 하인이 있다면.

해당 하인이 묵고 있는 방 안의 하인 전원이 교수의 말 한 마디에 따라 죽게 된다.

‘그리고 의외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교수들이 적단 말이지?’

물론 교수들이 정말 모르는지.

아니면 알고도 사고를 친 하인만을 처분하고 넘어간 건진 모른다.

‘여하튼 아크 교수가 그 규율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돈트만 죽는 선에서 이 일을 마무리 지을 수도 있겠어…….’

물론 전날 하인장이 아크 교수에게 아카데미의 모든 규칙을 털어놨을 가능성도 있었으나.

그건 현실성이 떨어졌다.

‘하인장이 그렇게 입이 가벼운 양반은 아니니까. 말했다고 해도 설마 그걸 다 기억하겠어? 아냐, 그래도 혹시 몰라. 전부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도무지 이 빌어먹을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상대는 신관장… 신관장이야. 다른 흑마법사 교수들처럼 생각하면 안 돼. 하지만 행동하는 건 흑마법사랑 다를 게 없잖아?’

막말로 당장 아크 교수가 흑마법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난 납득할 자신이 있었다.

‘저 미친 늙은이의 심기를 건들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지금 상황을 넘겨야 돼. 지금은 그것만이 살 길이야.’

난 교실 한편에 있는 레바논 여신상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곤죽이 된 돈트를 보며 입술을 뗐다.

“결국 레바논 님의 계획대로 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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