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진짜 신관장이라고?’
나는 하얀 사제복을 입은 노인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이곳은 흑마법사들을 육성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신관장이 방문을 했다?
‘성기사들의 훈련장에 흑마법사가 등장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신관장의 행동에는 어떠한 근거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도 보이질 않았다.
‘에이, 설마… 아니겠…….’
나는 혹시나 신관장과 방문객들이 전투라도 벌일까 싶어.
얼른 기둥 뒤로 몸을 숨기고 현장을 주시했다.
“아크 신관장이라니… 신관장이 여긴 어쩐 일로 온 거지?”
“글쎄. 새로운 입학생들을 축하하러 온 걸지도 모르지.”
“허… 내 아들보고 신관의 축복이라도 받으면서 입학을 하라는 건가?”
하나 어째선지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신관의 등장에 의문을 보일 뿐.
딱히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흑마법사와 신관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은 앙숙 관계 아니었어?’
그런데 어째서 방문객들은 그저 사태를 관망할 뿐인 걸까?
내가 좀처럼 의문을 해결하지 못하던 그때.
“흑마법사 아카데미의… 학장님이신… 볼드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하인장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리고.
저벅, 저벅-
무뚝뚝한 표정을 한 노인이 고요함을 찢으며 연회장으로 들어온다.
‘저 늙은이는 어째 늙지를 않는 것 같네. 리치화한 것 같지는 않은데…….’
“올해는 신입생들이 꽤 많군.”
학장, 볼드가 신입생들의 면면을 훑던 중.
“학장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카데미에 신관이라니요? 설마 입학식의 축사를 놈에게 부탁하기라도 한 겁니까?”
“신성한 배움의 장소에 레바논의 종이 왔다는 건, 저희를 능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저 신관 놈이 이곳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구역질이 납니다.”
“학장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크 신관장을 아니꼽게 보던 일부 학부형들이 학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한다.
‘하긴… 명색이 최고의 교육기관인 이 아카데미에 신관장이라니… 나 같아도 욕했겠다.’
난 저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학장의 입을 주시했다.
‘학장은 뭐라고 말하려나? 분명 신관장이 온 데는 저 양반의 입김도 어느 정도 작용을 했을 텐데……. 어쩌면 학장이 학부형들에게 사과하는 절경을 볼 수도 있겠는데?’
“잘됐군. 이참에 미리 이야기를 해 놓지. 아크 신관장, 이쪽으로 오겠나?”
“허허, 그러지요.”
볼드의 손짓에 아크 신관장은 순순히 그의 옆에 선다.
‘저게 대체… 무슨 광경이야?’
흑마법사 아카데미의 학장 옆에 신관장이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을 보게 될 줄이야.
내가 혀를 내두르던 그때.
“올해부터 아크 신관장은 우리 아카데미의 새로운 교수로서 일하게 됐네.”
학장의 입에서 묵직한 한마디가 흘러나왔고.
일순간 연회장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맴돌았다.
‘…교수? 신관장을 교수로 쓰겠다고? 흑마력에 뇌가 절여지기라도 한 건가?’
대체 학장이 무슨 생각을 갖고 저런 짓을 한 건지 궁금했으나.
“움직여! 석상 가져와!”
어느덧 입학식이 시작된 탓에 난 더 이상 생각을 이어 갈 수 없었다.
그그그그긍-
‘본보기로 전시한다더니 진짜로 전시를 할 줄이야……. 콘스 교수도 여간 미친 게 아니라니까.’
난 석상이 된 하돌프를 연회장 안에 밀어 넣은 뒤.
하인장을 뒤따라 다른 하인들과 함께 조리실로 이동했다.
‘왜 신관장이 온 건지 궁금하지만, 하인이 입학식에 참석할 수는 없으니까.’
* * *
그날 밤.
‘어후… 삭신이야……. 뭔 놈의 밥을 그렇게 많이 처먹는지…….’
난 일정을 끝내고 아카데미의 옆의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벌써부터 내일이 걱정된다. 아까 눈매 사나운 새끼 봤어? 그 눈까리는 사람 몇십은 죽여 본 눈까리야. 딱 보면 알지.”
“옆의 손이 시꺼먼 놈은 어떻고? 보니까 시체만 징하게 만진 놈이 분명하다니까?”
안에선 먼저 들어와 있던 룸메이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매년 있었던 일이잖아? 그보다 난 신관장이 의외더라.”
난 슬며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긴… 신관장이 교수라니? 난 듣도 보도 못 했다고?”
“랄프, 넌 뭐 좀 아는 것 있어?”
“나라고 뭘 알겠냐?”
나의 대답에 룸메이트들은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넌 이 방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았잖아.”
동료의 말이 맞다.
‘나보다 고참이었던 놈은 어제 목이 잘렸으니까…….’
그 탓에 이제 이 방의 실질적인 리더는 내가 됐다.
“이런 일은 나도 처음이야.”
“이런 아카데미에 들어올 정도면 여간 미친놈이 아니겠지?”
“그래도 콘스 교수만 할까? 신관장이 뭘 시킬지는 몰라도 그 쌍년이 부패시킨 시체를 치우는 것보단 나을걸?”
동료의 말에 나를 비롯하여 누구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래도 신관장이면 시체나 생사람을 쓰는 일은 없겠지.’
하지만 아크 교수가 정상일지 아니면 정상인 척하는 미친놈일지는 겪어 봐야 알 일이다.
‘차라리 대놓고 미친놈인 게 나은데…….’
내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던 그때.
벌컥-
돌연 나무 문이 벌컥 열리고.
하인장이 집 안으로 들어와 손가락으로 날 가리킨다.
“랄프, 잠깐 나와라.”
“예? 예.”
아카데미에서 8년 넘게 장수한 하인장의 명령이었기에.
난 군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 집 밖으로 나갔다.
“어쩐 일이십니까?”
“신입들이다.”
하인장이 집 밖에 서 있는 남자 몇을 가리키자.
난 조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벌써 인원이 증원된 겁니까? 이제 감옥에 실험체들도 몇 없던 것 같았는데 말이죠.”
“결과에 의문을 갖지 마라. 우리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너도 이제 잘 알잖아?”
하인장은 나의 어깨를 툭 치곤 계속 말을 이어 간다.
“신입들 간수 잘해라. 만약 신입들이 사고를 친다면 네가 그 책임을 물게 될 수도 있어.”
“그런데 당연히 심장 적출은 다 끝낸 녀석들이겠죠?”
심장 적출.
혹시나 하인들이 도망갈 것을 우려하여 교수진이 건 저주이다.
‘아카데미에서 도망치려고 하면 바로 빼 놓은 심장을 터트려 죽이겠지.’
내가 씁쓸히 묻자 하인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지. 교수님께서 심장 적출 외에도 다른 저주들도 확실히 걸어 두셨다고 하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렇습니까?”
‘후우… 그럼 적어도 자다가 칼을 맞거나 집이 불탈 일은 없겠네.’
교수가 건 저주 중에는, 하인들이 서로를 죽이지 못하게 하는 저주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다행이군요. 3명입니까?”
“그래. 철저하게 교육해라.”
“그러죠. 쉬십쇼.”
하인장이 다른 신입 하인들을 끌고 사라지자.
나는 우두커니 서 있는 3명의 신입들을 보며 혀를 찼다.
‘아오… 이 새끼들을 또 어떻게 교육하라고…….’
“따라 들어와.”
“…….”
내가 신입들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뭐야? 신입들이야?”
“어제 물갈이가 됐는데 벌써? 빠르네.”
“절반가량이 죽었는데 당연히 보충을 해야지. 그보다 랄프, 신입 새끼들 신원은 파악했어?”
룸메이트들은 환호하며 나를 맞이했다.
“이제 확인해야지. 교육도 좀 하고.”
나는 대충 대답하곤 자리에 앉은 신입들을 바라보며 입술을 뗐다.
“야, 빡빡이. 너, 어디 출신이야?”
“저, 전 페른 왕국에서 나무를 패다가 잡혀…….”
“나무꾼? 좋아. 넌?”
내가 대머리 옆에 있던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
어째선지 남자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새끼 봐라……. 야, 내 말 안 들리냐? 어디서 왔냐고.”
“난, 난 레바논 왕국의 기사다! 고작 하인 따위가 감히…….”
내 욕지거리에 화가 난 것일까.
자신을 기사라 칭한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치자.
뻐억-
“커윽…….”
난 냅다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나를 부를 땐 존칭을 써라. 알겠냐? 앞으로 랄프 방장님이라고 불러라.”
“고작 하인 새끼가 웃기는 소리를 하는…….”
뻐억-
나는 다시 기사의 면상에 주먹을 갈기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오… 하필 이딴 새끼가 같은 방에 들어왔대?’
기사, 마법사, 신관.
모두 하나같이 자존심이 높은 족속들이고.
이런 놈들은 꼭 높은 확률로 사고를 친다.
‘저번에 들어왔던 마법사 새끼가 콘스 교수의 방에서 지팡이를 훔쳤었지……. 후…….’
그 때문에 난 몸이 부패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뚜렷하게 알게 됐었다.
‘이런 새끼들은 사전에 철저하게 교육을 해 놔야 뒤탈이 없단 말이지.’
“저 새끼 좀 적당히 교육해 둬.”
나의 말에 룸메이트들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기사? 니미, 네가 밖에서는 기사였을지 몰라도 잡혀 온 이상, 넌 그냥 하인 나부랭이다. 알겠냐?”
“대답?”
“헛… 소리… 하지…….”
“하 씨… 귀찮게 됐네. 일단 패.”
뻐억-
기사가 방구석에서 두들겨 맞고 있는 사이.
“넌? 어디 출신이야?”
난 마지막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 페른 왕국에서 왔습니다. 농부였습니다.”
‘나무꾼에 기사에 이어 농부라……. 뭐, 그게 사실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이놈들이 바깥에서 무슨 일을 하다 잡혀 왔건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바깥에서 뭘 했건 간에 이곳에서 사고만 안 치면 되는 거니까.’
“상황 판단이 빨라서 좋네. 이제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해. 우리의 말을 따라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면 된다. 그러면 적어도 저놈처럼 맞는 일은 없을 거야.”
내가 눈짓으로 기사를 가리키자.
앉아 있던 나무꾼과 농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내 말을 따른다면 죽을 확률도 낮아지니, 명심들 해라.”
“…죽을 확률 말입니까?”
“그래. 애당초 감옥에 갇혀 있던 너희가 왜 보충 인원으로 투입됐을까?”
나의 말에 담긴 속뜻을 읽은 것일까.
두 남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너희는 저기 구석 자리를 써라. 그리고 새벽에 종소리가 울리면 바로 기상해라.”
“…예.”
나는 두 신참의 어깨를 쳐 주곤.
“비켜 봐.”
흉한 몰골이 된 기사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
“…….”
짝-
“대답.”
“…나는 돌아갈… 거다… 난… 레바논의… 성… 기사다…….”
“하…….”
내가 재차 손을 들어 놈을 후려치려던 그때.
덜컥-
돌연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온다.
“허허, 이곳이 하인들이 생활하는 공간인가. 허름하군.”
“아닙니다. 이런 쉴 곳이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신관장이 왜 여길 온 거야?!’
굳은 표정의 하인장과는 반대로 아크 신관장은 밝게 웃으며 방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무리 교수라고 해도 그렇지… 신관장이 저렇게 막 돌아다니게 해도 되는 건가?’
대체 학장 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저건 뭘 하고 있는 건가?”
아크 신관장이 얼굴이 퉁퉁 부은 기사를 가리키자.
“그게…….”
하인장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말하기를 주저한다.
“…어어? 어어어어? 쉬… 쉰관장님?! 쉰관장님!”
그사이 아크 신관장을 알아보기라도 한 것인지.
기사가 신관장을 보며 화급히 소리친다.
“아크 쉰관장님! 줘… 줘는 12기사단 쇼속, 돈트윕니다! 쉰관장님! 절… 절 구원해 쥬십시오! 절… 살려 쥬십시오! 제발…….”
‘씨팔… 좆됐네…….’
절규하듯 소리치는 기사를 보며.
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 새끼도 레바논 왕국 출신이니까 분명 이 새끼를 도와주려고 하겠지.’
레바논 왕국의 신관과 기사.
그 연결 고리는 한낱 하인 따위가 부술 수 있는 게 아닐 터였다.
‘하 씨… 하필 왜 이럴 때 와 가지고……. 어쩐다… 신참 교육이라고 말해 봐야 늙다리 신관장 놈이 들어 먹기나 할까?’
그럴 리가 있나.
당연히 돈트라고 하는 저놈을 감쌀 것이 뻔했다.
‘오히려 기사를 팼다고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상대는 신관이자 아카데미의 교수다.
막말로 나를 비롯해 지금 이 방에 있는 하인들이 모두 신관장의 손에 죽어도.
신관장이 큰 책임을 물지는 않을 것이었다.
‘최대한 신관장의 심기를 안 거스르는 선에서 변명을 해야 하는데…….’
내가 바삐 머리를 굴리고 있던 그때.
“레바논의… 기사라고?”
아크 신관장이 돈트의 앞으로 다가가 묻는다.
“그, 그렇슙니다! 신관좡님! 레바뇬의 기솨들과 쉰관들이 이 지욕 같은 굣을 멸하러 온 궛이군요! 아아, 레바뇬이쉬여! 당쉰의 인됴에 감샤할 따름입뉘다!”
돈트가 이제 자신은 살았다는 것처럼 하늘을 보며 부르짖었고.
‘저게 무슨 개소리야?’
난 그런 돈트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러니까 저 새끼는 지금 레바논 왕국에서 아카데미를 공격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말하는 꼴을 보니 그런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놈은 착각을 해도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쉰관장님! 이놈둘은 지욕 불구뒁이에 빠져도 쉬원찮을 놈듈입니다! 이놈듈을 벌해 주쉽쇼! 레바뇬의 정의룰 보여 주쉽쇼!”
돈트가 신관장의 손을 붙잡고 부르짖자.
“허허… 자네… 12기사단 소속이라고 했나?”
“예! 구렇슙니다! 정의가 살아 있슘을 보여 주쉽쇼!”
“12기사단 소속이라……. 아… 허허…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그런데 말일세…….”
아크 신관장이 돌연 머금고 있던 미소를 지우곤.
무표정한 얼굴로 돈트를 내려다본다.
“제물로 쓰였어야 할 자네가 왜 살아 있는 건가?”
“…예?”
뜬금없는 신관장의 질문에 돈트는 멍한 표정으로 신관장을 올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