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48화
“깨어났다는 말을 듣고 바로 왔습니다. 몸은 괜찮으세요?”
“아…… 응. 아니, 네. 에?”
유메미가 친근하게 구는 야드가르를 보며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아 보이는 야드가르에게 반말을 해야 할지, 존대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이, 왜 이러십니까, 누님. 왜 이제 와서 어색한 척.”
물론 야드가르 입장에선 나이를 먹었어도 예전과 변함없이 ‘어른’인 유메미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이해가 안 되긴 했다.
자신이 나이가 들면서 말투가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누님이라는 호칭 좀 어떻게 하면 안 될까?”
“왜요?”
“좀 징그러워서.”
“징그럽기는 130살이나 먹고 아직 20대 얼굴인 누님이 더 징그러운 거겠죠.”
“야드가르…….”
유메미는 갑자기 들이닥쳐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한 야드가르를 보며 이마를 짚고 탄식했다.
“그 귀엽던 꼬마 아이가 이렇게 능글맞고 징그러운 할아버지가 되다니.”
“허허, 뭘 그리 새삼스럽게. 12년 전에도 절 봤잖습니까. 그때도 이 얼굴이었는데.”
야드가르는 올해로 110세가 넘은 나이였다.
따지고 보면 마지막으로 유메미가 깨어난 12년 전에도 90세가 넘은 나이였으니, 변한 건 딱히 없는 셈.
물론 유메미의 입장에선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그의 모습이 ‘새삼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건강해서 다행이네.”
“누가 들으면 제가 무슨 죽을 때 다 된 사람인 줄 알겠습니다.”
“너 나이 정도면 그런 말 들을 때 아니야?”
“에이. 저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은퇴하려면 한 30년은 남았다고요.”
“그래?”
야드가르가 소매를 걷어 자신의 오른팔에 이식된 사이버웨어를 내보이며 말했다.
인류의 기대수명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켜 준, 신체를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는 기술.
물론 그건 원래부터 있었던 기술이긴 하지만, 100년 전의 전쟁으로 인해 소실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인류는 빠르게 그 기술들을 수복하고, 이제는 오히려 그때의 문명을 넘어선 수준까지 올라서 있다.
유메미 역시 그 기술의 수혜를 받고 있는 몸이었고 말이다.
“아직 아리사카 선생님의 전자 의안 조정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야드가르 교수님?”
“아, 미안해, 마로니. 내가 너무 마음이 급해서.”
담당의가 유메미의 눈을 가리키며 말하자, 야드가르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둘 사이에는 원래부터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듯이 보였다.
“급해?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하기라도 했던 모양이지?”
“아아, 네, 누님. 너무 엄청난 거라서 빨리 말씀드리고 싶었거든요.”
“뭘 발견했길래?”
“엔트로피 반전의 특이점이요.”
* * *
조정과 검사를 모두 마친 유메미는 야드가르와 함께 병원을 벗어나 차량을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야드가르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차원연구소.
그런데 두 사람은 그곳으로 가기 전에, 먼저 다른 곳을 들렀다.
“동면에서 해제되면 항상 여기부터 오시는군요.”
“계속 기억하고 싶으니까.”
두 사람은 언덕 위의 거목을 올려다보았다.
그 거목 아래엔,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한 듯 꽃다발들이 놓인 누군가의 무덤이 있었다.
무덤의 묘비엔 아래와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최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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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어머니]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살 수 있는 땅이 얼마 남지 않은 전쟁 후의 세상에서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다시 뺏고 빼앗는 싸움을 시작했겠지.”
지금의 세상이 예전과 같은 모습이 된 것은, 전적으로 최윤아의 영향력이 컸다.
전쟁 직후, 황폐화된 대지와 독성 대기로 가득 찬 지상은 그야말로 지옥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최윤아가 지상을 과거의 모습으로 복구하는 데에 평생을 바친 결과, 이 땅은 다시금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실상 그녀 혼자의 힘으로 이 행성 하나를 테라포밍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
그렇게 강력한 권능을 쉬지 않고 행사하며 대지를 회복시킨 최윤아는, 결국 그 대가로 50살도 되기 전에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누님도 참, 무슨 역사 교과서 같은 소릴 하시네요.”
“나한텐 불과 몇 개월 전 이야기거든.”
“뭐, 그렇긴 하죠.”
야드가르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저도 얼마 전 일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거의 80년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나보다는 네가 더 많이 가지고 있겠지? 윤아 씨에 대한 기억은.”
“뭐…… 그렇죠. 저와 모나…… 아니, 아델 누나에게 많이 도움을 주셨으니까.”
최윤아는 그 권능 덕분에 전쟁 이후의 사회에서 금전적으로는 풍족한 삶을 살았다.
그 물질적 기반으로 아델과 야드가르, 유메미에게도 많은 지원을 해주었고 말이다.
“이젠 윤아 씨도, 아델 씨도, 라이진 씨도 없고……. 나도 얼마 안 남았네.”
유메미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수명을 생각하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야드가르가 손사래를 치며 기겁했다.
“어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저 같은 늙은이도 아직 앞날이 창창한데.”
“그런가? 나보다 네가 먼저 가려나?”
“그건…… 흠.”
“미안. 너무 우울한 얘기다. 그치?”
“아니에요. 이젠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요. 전 어제도 동료 교수 장례식장에 다녀왔는걸요.”
“에.”
또 누가 죽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야드가르를 보며, 유메미는 또다시 시간의 흐름을 체감했다.
어찌 됐든 그녀의 육신과 의식은 여전히 예전 20대의 모습 그대로였으니, 변화를 따라잡기 힘든 게 사실.
“아무튼, 옛날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빨리 연구소로 갑시다. 지금은 앞을 보자고요.”
“응.”
야드가르는 그런 그녀를 다시 차량에 태웠다.
그러고는 원래 가려고 했던 목적지인 연구소로 향했다.
* * *
온갖 발전된 설비로 가득한 연구소 가운데, 주변 환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물체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선체가 강철로 만들어진 한 척의 대형 범선, 프리드웬이었다.
“이 배…… 아직도 움직일 수 있는 거였어?”
유메미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야드가르에게 물었다.
“당연하죠. 애초에 100년은커녕, 수만 년이 지난 후에 발견되고도 멀쩡히 움직인 배였던걸요.”
“몰랐어. 그 전쟁 이후로는 본 적이 없어서 전투 중에 격파당한 줄 알았는데.”
“그때 좀 많이 손상되어서 수복하는 데 애먹긴 했지만…… 아무튼 보다시피, 이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나. ……그래서 이걸 타고 그 ‘엔트로피 반전의 특이점’에 도착할 수 있다고?”
“그렇습니다.”
유메미는 12년 전, 직전의 동면 해제 때 석학들에게 던져주었던 자신의 지식을 떠올렸다.
어쩌면 인류의 문명 수준을 단숨에 몇 단계나 뛰어넘게 만들지도 모를, 바로 그 난제를 말이다.
지금 야드가르가 하는 이야기는, 그 난제의 이론적 해석을 넘어서 실증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소리였다.
“확실히 이 배에 있는 차원 엔진이라면 공간 도약이 가능하겠지만…… 그건 내가 제시한 개념과는 조금 많이 동떨어진 이야기일 텐데.”
“단순히 공간 도약이라면 그렇겠죠. 게다가 지금은 원래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면세계’로의 차원 도약도 불가능해진 상태이고요. 이 배로 할 수 있는 건 기껏 해봐야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입자 분열 도약’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럼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네 말대로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잖아.”
“순수한 이 배 자체의 기능만으로 따져보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응? 그럼…….”
그 순간, 야드가르는 회심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특정한 장소에서 발생하는 공간 왜곡을 이 배로 돌파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특정한 장소?”
“혹시 들어보셨나요? 신계 아발론이라고.”
“신계……?”
야드가르가 손짓하자, 연구소 내 설비로부터 홀로그램 영상이 둘 사이에 떠올랐다.
중앙의 별 하나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여러 개의 행성들.
그건 어느 항성계를 비추는 영상이었다.
“예전 신화시대에 신계라 불렸던 영역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먼 우주의 행성들이라는 건 이미 밝혀진 사실이죠.”
“그렇지. ……이론적으로는.”
“그리고 지금에 와서 그 행성들로 가는 방법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앙그라 마이뉴가 일으킨 신계 붕괴.
시스템과 수호령이 존재할 때는, 권능이라는 방법으로 제한적이나마 그곳과 연결될 수도 있었지만.
100년 전 전쟁이 종료된 후 시스템이 소멸한 다음엔 모든 인류의 그곳으로부터 영원히 멀어지게 되고 말았다.
“단 한 곳만 빼고.”
“단 한 곳?”
야드가르가 다시 한번 손을 움직이자, 눈앞에 떠오른 항성계 홀로그램이 확대되었다.
그러고는 조각조각 파괴되어 있는 어느 행성을 비췄다.
“프리드웬을 사용해 건너갈 수 있는 마지막 영역. 아발론입니다.”
“거길 어떻게 찾은 거야?”
“제 머릿속에 남아 있었거든요. 그곳으로 건너가던 기억이. 대륙 서쪽 원양의 특정한 지점에 도달하면 닿을 수 있는 천상계.”
야드가르에겐 유신우가 아흐리만이던 시절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신들의 표적이 된 그들이 피신을 위해 아발론으로 도망치던 그때.
결과적으로는 아후라 마즈다를 비롯한 아발론의 신들에게 속아 함정에 빠진 일이 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야드가르는 그 기억을 되살려 지금 인류에게 주어진 난제를 풀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물론 정확한 좌표를 밝히는 데에 애를 먹긴 했지만, 어쨌든 찾아내긴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미 시험항행도 10번이나 진행했고요.”
“그래서 이제 날 깨워서 증명하려는 거야? 내가 제시한 이론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데 유메미는 그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
“신계로 이동하는 건 결국 다른 행성으로 넘어가는 것에 불과한 일이야. 그저 먼 거리를 도약하는 것뿐이라는 거지. 이게 엔트로피 반전의 특이점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그러자 야드가르가 다시 한번 눈앞의 홀로그램에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아발론이 그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항성계의 행성일 뿐이라면 의미가 없겠지만, 여긴…….”
눈앞의 영상이 처음의 항성계를 비추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갑자기 피어올랐다.
항성계 전체를 가득 채운, 붉은 거품들이.
“이 거대한 성계 전체가 붉은 장막으로 둘러싸인 격리공간이에요.”
“설마…….”
“맞아요. 그 부유섬의 붉은 장막. 내외부가 완벽하게 차단되어서, 우호적 대상과 그 몸에 닿은 물질이 직접 통과하는 것 외엔 모든 에너지와 질량의 이동이 차단되는 영역. 그렇다 보니 원래는 이곳을 공간 이동으로 넘나드는 게 불가능하지만.”
“프리드웬을 타고 아발론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가능하다?”
“그렇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측되는 물리 현상들이 당신이 제시한 이론에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탐사로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그 미지의 영역을 단숨에 밝히게 되는 거예요.”
“그런…….”
유메미는 눈앞의 붉은 거품으로 가득 찬 항성계를 빤히 바라보았다.
야드가르의 말대로라면 확실히 대단한 진전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어떻게 이게 여기에?’
그 항성계를 가득 채운 정도의 광범위한 붉은 장막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설마.’
물론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신우 씨가…….’
까마득할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른 지금, 유메미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지점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야드가르와 유메미를 비롯한 21명의 탐사대는 프리드웬을 타고서 아발론에 도착했다.
“여기가…… 아발론?”
은하수가 수 놓인 투명한 밤하늘.
녹음이 우거진 푸른 땅과 시냇물.
파괴된 행성을 붉은 장막이 둘러싸고 있다고 들었기에 지옥과 같은 풍경일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이상향 속 별천지 같은 의외의 모습에 유메미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역시, 누님도 이 풍경에 놀라시는군요.”
“어떻게 된 거야? 신계는 먼 옛날에 파괴된 시점에서 이미 지옥 이상으로 황폐화되었을 텐데…….”
“상식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여긴 모든 게 다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뿐이에요. 애초에 우리가 이곳으로 넘어온 것부터가 기적이고.”
“허어…….”
분주하게 움직이며 각종 관측 장비를 설치하는 탐사대원들.
그 사이에서, 유메미는 쪼그려 앉아 땅에 피어난 한 무더기의 꽃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뒤로, 야드가르가 다가왔다.
“참 이상하죠?”
“뭐가?”
“마치 누군가의 손길이라도 닿은 것처럼, 가꾼 흔적들이요.”
“가꾼 흔적들…… 누군가?”
“네.”
그 순간, 유메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야드가르의 팔을 움켜쥐며 몰아붙였다.
“너…… 뭔가 알고 있는 거야?”
사실 모르는 게 이상한 것이었다.
그 전쟁의 과정들을 분명히 지켜봤었던 그가.
이 멀고 먼 우주 어딘가에 뜬금없이 펼쳐져 있는 붉은 장막들을 보고도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다른 이도 아닌, 자신의 아버지가 환생한 인물이 구사하던 그 권능에 대해 말이다.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야드가르는 대답하는 대신, 어딘가로 향했다.
유메미는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개울을 건너, 꽃밭을 가로질러.
완만한 언덕을 올라, 꼭대기에 위치한 작은 통나무집에 도착했다.
* * *
“여긴?”
“예전에 제가 아버지와 함께 잠깐 살았던 곳입니다. 이젠 너무 오래된 기억이긴 하지만.”
유메미는 그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이 신계에 살았다니.
그러나 야드가르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그 시대의 기억 중에선 가장 평화로운 때였던 것 같아요. 하루가 멀다 하고 적과 싸우러 나가던 아버지가 더 이상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거든요.”
“그럼 여기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돌아온 걸지도 몰라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서. 이 흔적들은 어쩌면 아버지가 남긴 걸지도 모르죠.”
망상이나 다름없는 생각이었다.
에테르마저 소멸한 유신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니.
물론 애초에 이 공간 자체가 기존의 상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가능성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정말로 누군가 살았던 듯한 이 흔적들은 더더욱 그런 희망을 선명하게 만들어줬다.
“뭐, 매번 올 때마다 허탕이긴 했지만요.”
야드가르는 익숙한 듯 통나무집의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의 손잡이를 덥석 붙잡아 돌렸다.
“문을 열면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지만, 막상 그 안에는…….”
덜컥.
문이 열리고, 집안의 풍경이 드러났다.
그 안을 들여다본 유메미의 두 눈은.
“……아무도…….”
“왔구나.”
천천히.
“……신우…… 씨?”
커졌다.
“어……?”
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두 사람의 귀에 들어왔다.
유신우.
100년 전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서 여태껏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두 사람을 집안에서 맞이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잠깐만.”
“신우 씨…….”
야드가르는 두 눈을 비볐다.
유메미는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 두 사람에게, 유신우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얼른 들어와. 거기 서 있지 말고.”
그건 현실이었다.
잠깐 보였다 사라지는 환영도, 마음속에서만 머무는 심상도 아니었다.
와락.
유메미가 그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러나 흩어지거나 통과하지 않았다.
말인즉, 유신우는 지금, 살이 맞닿을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실체로서, 이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도대체…….”
“보다시피. 난 이 영역으로 건너올 수 있어. 마음대로 올 수도 없고,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이지만.”
“그, 그럼 신우 씨는 지금 살아 있는 거예요?”
유메미가 그를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지금 그가 어떻게 여기에 존재하는 것인지.
왜 그동안 나타나지 않은 것인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너무도 많아, 정리되지 않은 말만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삶과 죽음…… 지금의 나는 그런 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는 상태야.”
“그럼 대체……?”
“그보다, 이리 와서 이야기 좀 할까?”
유신우는 그런 그녀를 토닥이며, 문밖에 멀뚱거리며 서 있는 야드가르에게 다가오라 손짓했다.
야드가르는 어색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버지…….”
“드디어 다시 만났구나. 그렇게 오랫동안 널 구하려고 했는데.”
긴 세월 동안 너무나도 늙어버린 아들의 모습에.
그리고 시대를 거슬러 환생하며 바뀌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에.
부자는 서로가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 불편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미안해요.”
“그런 말 하지 마. 미안한 건 나지. 그리고 나도 보고 싶었어.”
하지만 여전히 그때의 마음만은 그대로였다.
무엇보다도 짧지만 소중한 기억이 깃들어 있는 이 장소였기에 더욱 그랬다.
뜻밖의 재회.
이윽고 그들은 감격을 뒤로한 채 식탁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정겨운 손님을 맞이한 집주인처럼, 유신우는 그들에게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어?”
“…….”
유신우의 물음에 두 사람은 침묵했다.
“그런가. 하긴,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지.”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윤아 씨는 평생 파괴된 땅을 복구시켰어요.”
그러자 유메미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유신우가 궁금해할 사람들의 삶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 공로로 ‘대지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붙여지고,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풍족하게 살 수 있었죠.”
“결국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힘을 쓰는 데 전념했구나. 그만큼 보상도 받았고. 잘된 일이야.”
“아델 씨는 야드가르가 자랄 동안 엄마의 역할을 대신했어요. 덕분에 보다시피 훌륭하게 자랄 수 있었고요.”
“그럼 따지고 보면, 아델 덕분에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아델에게 고마워해야겠는걸.”
“라이진 씨는 여생을 여행이나 하며 살겠다고 떠나더니, 행방불명됐어요. 지금도 어디서 살아 있을지, 죽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것도 본인의 의지대로 사는 거니까, 좋은 일이겠지.”
“그리고 전…….”
그렇게 모두의 이야기들을 마친 유메미는, 잠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다 머뭇거렸다.
여러 가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왜인지 그 순간엔 기억의 필름의 마지막 장면만이 계속해서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대뜸 그 마지막 장면만을 내뱉었다.
“전 곧 죽어요.”
“누님…….”
야드가르가 그런 유메미를 만류하듯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유메미의 눈에는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삶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신우 씨.”
“응.”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직감하고 있었다.
오늘이 이곳에 올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육체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불치병을 치료할 기술을 찾고 있다고는 하나, 그건 허황된 소망일 뿐.
필멸자는 반드시 한계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동면 해제가 유메미에게 있어서는 바로 그 한계 지점이었다.
“우리가 또다시 지금처럼…… 이야기하고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을까요?”
유신우가 재차 묻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유메미의 손을 꼭 붙잡고 대답했다.
“물론이지.”
확신에 찬 대답.
그건 그저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하얀 거짓말 같은 게 아니었다.
진실을 말하는 얼굴이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말하는 유신우 본인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다행이다.”
대답을 들은 유메미는 안도감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여느 때보다 활짝 웃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깨어 있는 시간은 짧았지만 100년 중 가장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다 됐어.”
잠시 후, 유신우는 한참 동안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는 건가요?”
“응. 오랫동안 여기에 있을 수는 없거든.”
“아…….”
“걱정하지 마. 우린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너도, 야드가르도.”
아쉽지만, 이제 보내줘야 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유신우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건 제한적인 시간뿐.
“머지않은 날에 또 기회가 있을 거야. 그러니 그동안 잘 지내고 있으라고. 후회 없도록.”
“……네.”
곧이어 그의 등 뒤에서 하얀빛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공간 왜곡이나 포탈 등의 차원문과는 다른 종류의, ‘저편’으로 넘어가는 문.
유신우는 그 너머로 발을 내디디며 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또 보자.”
유메미와 야드가르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구구절절한 인사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분명 또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듯이,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것일 뿐이었다.
“가자.”
“네.”
두 사람도 텅 빈 집안을 뒤로하고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고는 탐사대가 기다리는 귀환 지점으로 돌아갔다.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