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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47화 (347/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47화

유메미가 레아의 피로 만든 보호막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불가사의 영역에 의해 엔트로피가 강제 조정되어서 비정상적인 정체 현상을 일으키는…….

스치듯이 지나갔던 이야기지만, 기억 속에 확실히 들어 있었다.

그 기억이 아까 전 혼돈이 했던 말과 교차되며, 나는 하나의 돌파구를 찾아냈다.

‘대량의 붉은 장막을 한꺼번에 생성하는 것은 그만큼의 불멸자가 새로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일. 그러면 혼돈은 다시 이 우주에 접근하지 못하게 된다.’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쫓아낼 수는 있는 방법.

압도적인 힘을 지닌 혼돈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로부터 도망치는 것만은 가능하다.

신화시대의 모든 불멸자들을 합친 것보다 곱절로 더 많은 양의 엔트로피를 한꺼번에 비정상 정체시킨다면 말이다.

그러려면 적어도 하나가 아닌 다수, 규격을 넘어선 수준의 붉은 장막 형성으로 광범위한 영역을 가득 채울 정도의 보호막을 형성해야 한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생명력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부활 권능을 강화시킨 덕에 죽음으로 레아의 정수가 사라지지는 않게 된 모양이지만……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면서 보호막을 만드는 식으로는 안 된다. 도중에 혼돈이 눈치챌 거야.’

문제는 그렇게나 많은 양의 보호막을 한꺼번에 만드는 건 엄청난 양의 생명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레아는 그 부유섬 하나 정도를 둘러쌀 크기 정도의 장막을 만드는 데에도 자신의 생명력을 모두 소모했다.

물론 당시 그녀에 비하면 지금 내가 가진 힘이 월등히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화시대의 모든 불멸자들을 다 합친 것과 같은 수준의 엔트로피를 정체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임이 틀림없다.

혼돈이 눈치채지 못하게끔 단번에,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장막을 펼치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애버려야 한다.

‘……이미 여기에 온 순간부터, 각오는 하고 있었다.’

나는 혼돈이 나에게 격의 차이를 보여주려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는 동안, 그에게 들키지 않게끔 준비를 마쳤다.

레아의 피를 사방으로 흩뿌려 놓은 다음, 단숨에 광대한 영역을 가득 채우는 장막의 건설 계획을.

“그런데 말이야.”

“음?”

평소의 혼돈이라면 내 이런 계획도 모두 예측했을 터다.

나의 생각을 읽지 못한다 해도,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그라면 내 행동만 보고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세상에 대한 초월적인 통찰력을 가졌다고 해도…… 그런 사람이 계속 좁은 면만 보고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게 마련이거든.”

하지만 놈은 그저 나를 억눌러 길들이겠다는 일념에 눈이 멀어 전체적인 상황을 조망하지 못했다.

동등한 차원에서 압도적인 힘으로 몰아붙이면 스스로 무릎 꿇을 거라는, 그 오만한 생각에 내 행동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다.

“잘 가. 다신 만나지 말자.”

곧 나는 내 육신의 모든 생명력과 함께, 영혼에 남아 있는 에너지까지 모두 소진해, 붉은 장막을 펼쳤다.

지금껏 내 삶에서 쌓아온 모든 업을 전부 휘발시켜 그 안에 퍼부었다.

“잠깐, 그렇게 하면 넌 영원히……!”

“그래. 소멸하겠지. 너는 그저 수많은 우주들 중 한곳에 접근하지 못할 뿐이겠지만, 나는 영혼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겠지. 이만큼 지랄 맞은 교환비가 따로 있을까.”

“그렇게까지 하면서 네 우주를 지키려는 건가? 얼마 남지도 않은 그 인간들을 위해?”

“어.”

혼돈의 영향력이 사라진다.

그는 여전히 내게 자신의 의식을 전달하고 있지만, 그뿐.

이미 실질적인 영향력 행사는 불가능해진 상태였다.

“바보 같은 자식. 가만히 있었으면 넌 모든 우주를 통틀어 최고로 발달한 지성체인 우리와 동화될 수 있었다. 미개한 피조물이, 진짜 창조신과 하나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기회를 이런 식으로 걷어찬다고?”

“그것도 결국 네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뿐이잖아.”

나는 사라지는 혼돈에게 조소를 날렸다.

“내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네놈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조작된 삶일 뿐이었다. 너와 동화된다면 단일한 개체로서의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너의 노예가 되는 거지. 난 그게 싫었다.”

“겨우 그까짓 자존심 때문에…….”

“자존심 같은 게 아니야. 이건 스스로 판단하고 사고하고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로서, 해야만 하는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의 행사일 뿐.”

그와 나 사이에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 붉은 장막들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한다.

하나하나가 행성 하나를 감쌀 수 있을 크기의 대형 보호막.

그것들이 수천억 개.

허공에 흩뿌려져 나간 핏방울들의 개수만큼 펼쳐졌다.

이미 정체 엔트로피의 양은 신화시대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영역에 도달한 지 오래다.

이로써 향후 혼돈은 물론이고 이 우주에는 그 어떤 외부 존재도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런 기적을 펼칠 수 있는 업이 쌓인 것조차, 혼돈 네놈의 의지 덕분이었다고 해도, 이 쌓은 업을 소모하는 건 나의 의지야. 이걸로 나는…….”

인류가 타의에 휘둘리는 것은 오늘로 끝이다.

“……비로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 거다.”

혼돈의 의지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와 함께 나의 의식도 점차 희미해져 간다.

나 자신이 지워져 간다.

‘……작별인사도 못 했군.’

그 찰나의 순간, 아직 혼수상태에 빠진 유메미가 떠올랐다.

주변 정리를 하느라 보지 못했던 최윤아와 라이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침상 위에서 끝을 예감하던 아델의 눈빛과.

바뀐 내 모습에 낯설어하는 야드가르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제대로 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떠난 게 아쉽고 후회된다.

하지만 그렇게 질질 끌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마음이 약해져서, 쉽게 결단을 내리지도 못했겠지.

이거면 된 거다.

돌고 도는 에테르의 순환 속에서 몇 번이고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날 그들이, 내가 겪은 일을 반복하지 않게 했으니 됐다.

물론 그 미래에 나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신우.”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레아가 내게 손을 내민 채로 서 있었다.

“수고했어. 이제 같이 가자.”

그 뒤엔 이진윤도 함께였다.

나는 잠시 눈을 비비고 앞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그렇구나. 끝이 아니구나.”

난 담담하게 레아의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진윤이 손짓하는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나를 속박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은 채.

시바의 운명도.

아지다하카의 힘도.

앙그라 마이뉴라는 이름도.

떨어져 나가는 껍데기들을 모두 이곳에 남겨두고.

나는 세상을 떠났다.

* * *

기이잉.

철컹, 철컹.

무미건조한 쇳소리와 함께 캡슐의 잠금장치가 해제된다.

쉬이익.

캡슐 내부에서 공기가 빠지면서 동시에 투명한 액체가 넘쳐흘렀다.

그 안에서, 작은 몸집의 여자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유메미였다.

“지금이…… 몇 년이죠?”

유메미는 긴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현재 연도를 물어보았다.

“인류력 99년 14월 11일입니다.”

그러자 흰 가운을 입고 태블릿 패드를 든 여성 연구원이 다가와 그녀에게 대답을 해 주었다.

“아리사카 선생님은 이번이 3번째 동면 해제이고, 마지막 동면으로부터 12년 만에 깨어나셨습니다.”

그러고는 익숙한 듯 그녀가 궁금해할 답변들을 기계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12년.”

이어서 연구원은 태블릿 화면을 통해 각종 장치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절차를 마치자, 방진복으로 온몸을 감싼 직원 두 명이 유메미에게 다가와 그녀를 들어 올린 다음, 옆에 있는 이동식 침대에 눕혔다.

“병실로 이동해 바이탈 체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들은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준 뒤, 이동식 침대를 밀어 건물 내의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동면실을 벗어난 다음 드러난 건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익숙한 병원 복도.

유메미는 누운 채로 주변을 둘러보며, ‘여긴 별로 변한 게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자신을 데리고 가는 연구원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번에는 전보다 조금 일찍 깼네요?”

“예. 지난 동면 해제 때 제시하신 이론의 규명과 응용이 상당히 빠르게 이뤄졌거든요. 덕분에 마도역학 영역에서 꽤 많은 발전이 이뤄졌습니다.”

“아하. 잘됐네요. 다행이다.”

지금의 유메미는 마력의 원천을 잃어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탄기의 신격을 통해 얻은 머릿속의 지식은 여전히 그대로였기에, 그걸 통해 인류 발전에 공헌하고 있었다.

물론 현재의 인류가 가진 기술기반으로는 유메미의 지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녀는 동면과 해제를 반복하며, 기술력의 큰 도약이 있을 때마다 긴 잠에서 깨어나 인류에게 새로운 도전과제를 던져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동면을 하게 된 첫 번째 이유.

다만 그녀의 동면의 이유는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여전히 아리사카 님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세포 붕괴의 원인은 찾지 못했습니다만…….”

유메미는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몸의 모든 세포들이 원인 모를 이유로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마력을 잃게 된 원인인, 가슴의 관통상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이 밝혀졌을 뿐.

본인이 가지고 있는 초월적인 지식의 서고 안에도 그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그래서 그 불치병을 치료할 의료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유메미는 아주 짧은 활동시간 외엔 모두 잠든 채로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래요?”

“언젠가는 꼭 찾아서 완치할 수 있을 겁니다. 제 세대에 불가능하다면, 다음 세대에 이어서라도…….”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태도를 유지하던 그 젊은 연구원은 금세 감정에 북받친 모습을 보였다.

유메미에게는 그저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일 뿐이지만, 그 연구원에게는 오랫동안 책을 통해, 그리고 캡슐의 유리 덮개 너머로 접해온 인물이었기에 가깝게 느껴진 탓이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아리사카 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 같은 마도역학 덕후한테는…….”

연구원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러자 유메미가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네? 아…… 저는, 마리입니다.”

“마리 양. 반가워요.”

유메미가 마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여, 영광입니다!”

마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녀의 악수를 받았다.

유메미는 그런 그녀를 보며 빙긋 웃었다.

깨어날 때마다 수십 년씩 흘러가 있는 시간.

그때마다 사라지는 주변인들.

그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물밀 듯이 닥쳐오는 외로움을 이겨내려면,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인연을 잃는 것을 두려워해 사람들을 멀리하면,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미쳐 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유메미는, 이번의 동면 해제에서 눈을 뜨고 처음 본 사람인 마리와 친해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 * *

“몸 상태는 정상입니다. 다만 세포 붕괴의 진행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습니다.”

바이탈 체크를 마친 담당의가 유메미에게 말했다.

“그 붕괴의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몸이 급격히 고장 나기 시작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그로 인한 합병증 때문에 먼저 죽게 될 가능성이 높을 테고요.”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네요……. 이렇게 다시 깨어날 수 있는 것도.”

“안타깝게도……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다시 동면을 하셔서 먼 미래에 깨어난다면, 기적적으로 발전한 의료기술로 완치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지금은 가망이 없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유메미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눈앞에 놓인 죽음에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때가 되면 떠나는 게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듯, 이제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을 뿐이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의사가 유메미 쪽을 바라보자, 유메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연구실 직원이 곧바로 병실 문을 열었다.

덜컥.

“누님!”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그 노인이 ‘누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른 대상은, 다름 아닌 유메미.

“야드가르?”

유메미는 그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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