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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46화 (346/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46화

그건 가망 없는 싸움이었다.

애초에 싸움이라고 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존재 이상의 그 무언가에게 덤빈다는 일이 성립하는 이야기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할 정도로 멍청할 줄은 몰랐는데.”

혼돈은 내게 조롱조로 말했다.

화악!

내 손을 따라 움직이는 악의의 대전당 무구들은 그의 몸을 순식간에 관통했다.

물론 거기에 어떤 질량의 감각이 느껴지진 않았다.

혼돈이란 존재는 물리적 실체를 가진 무언가가 아니라, 무형의 정신체였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 너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너를 위해 배려해 준 것뿐이라는 걸 알고 있나?”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계속해서 무구들을 날리고 있을 뿐.

“이해할 수 없군. 이쯤에선 네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나를 어찌해볼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걸 깨닫고도 남았어야 할 터인데.”

나도 알고는 있었다.

이 현격한 차이는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근성이나 노력으로 좁힐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애초에 진짜 혼돈이 보고 있는 건, 보통의 인간이 직관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다.

이를테면, 축이 4개인 좌표평면 위에 매우 복잡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혼돈은, 우리에게 있어선 상상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그런 영역 위에 살고 있는 자라는 것이다.

개미와 인간의 싸움이라는 건 여기서부턴 단순한 비유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쉬익! 투쾅!

난 그대로 두 자루의 무구를 서로 부딪혀 공간을 찢었다.

그리고 그 균열 사이로 뛰어들어 혼돈에게서 멀리 떨어지려 했다.

“벗어나려고? 거리를 벌려서 상황을 보고 전략을 떠올릴 시간을 벌어보려고? 미안하지만 그건 다 허사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저 너머 어딘가의 외딴별의 세계로 도망쳐도, 혼돈은 변함없이 내 뒤에 있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도, 전혀 멀어지지 않았다.

‘큭. 혼돈과의 거리는 공간 개념으로 규정된 게 아니라는 건가.’

적어도 최소한 0.1초라도 그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길 바랐던 내 의도는 사정없이 깔아뭉개졌다.

혼돈은 그런 나를 그저 한심하다는 듯이 내리깔아보고 있을 뿐.

“그래. 네가 원한다면 너의 방식으로 대화에 응해주지.”

그러더니 그는 태도를 바꿔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육신을 물리 세계에 구현하고, 질량이 있는 몸으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혼돈의 입장에선 사실상 자기 자신을 아래 차원으로 다운그레이드한 셈이나 다름없지만.

그럼에도 그와 나 사이의 격차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이런 걸 원한다면!”

콰앙!

“커헉!”

혼돈은 그 육신으로 내 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반응할 기회도 없었다.

그의 접근을 느꼈을 때는, 이미 목 아래의 몸통이 타점을 중심으로 전부 분쇄되어 팔다리의 끝부분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만 남은 채 고속으로 우주를 가로질러 저 멀리 튕겨 나갔다.

‘회복을…… 해야 한다…….’

촤르르륵!

그 와중에 나는 체내의 용혈을 사용해 파괴된 육신을 급속도로 회복해 나갔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의식을 붙잡고서 쓰러지지 않으려 버티고 또 버텼다.

“애쓰는 모습이 안타깝군!”

‘젠장!’

겨우 상반신의 절반과 한 팔만을 회복한 상태에서, 혼돈은 다시 내 머리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물리적인 실체를 만들어낸 상태이기에 아까처럼 거리 자체가 아예 벌어지지 않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런 게 이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놈은 빨랐다.

여태까지의 적들처럼 어떤 특수한 권능 같은 걸 사용하는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빠르게 움직이고 강하게 휘두를 뿐인, 압도적인 힘의 소유자였다.

퍼엉!

난 그 순간 거의 본능적으로 얼굴 정면에 붉은 장막을 펼쳤다.

형태는 불안정하지만, 차단 능력만큼은 확실한 방어권능.

실체화한 혼돈의 주먹은 당연히 거기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었다.

“하!”

그러나 그는 그것을 보고도 여전히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이게 정말로 나를 막을 수 있는 방패라고 생각하는 건가?”

파앗!

그러고는 재차 그 장막 위로 주먹을 내던졌다.

얼마든지 뒤로 돌아서 나를 공격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않고 장막 위로 똑같이 뻗었다.

그리고 통과했다.

투쾅!

“그런 조악한 권능을 우회해 간섭할 지식은 차고 넘친다!”

레아의 붉은 장막은 마치 허상에 불과하다는 듯이, 그가 내지른 주먹은 그걸 통과해 내 안면을 그대로 강타한 것이다.

그걸로 난 온몸이 파괴되어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스르륵.

곧 내 몸은 그 자리에서 다시, 무에서 유로 창조되었다.

원래 내가 가진 불사 능력은 한 번 죽으면 다시 부활할 때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리는 길가메시의 권능이었지만.

혼돈의 기억을 들여다보면서 얻은 지식의 편린으로 이 불사 권능을 후대 불멸자들이 지녔던 즉시 부활 권능으로 변형시켰다.

“호오! 그사이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킨 건가!”

혼돈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더욱 흥미를 보였다.

“정말 완벽한 실험체로군! 더더욱 너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어!”

혼돈은 거기서 육체의 형태를 변형시켰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과거의 모습, 날개와 꼬리가 달린 반인반마, 앙그라 마이뉴로.

퍼엉! 펑! 퍼펑!

그리고 혼돈은 방금 전보다 더욱 속도를 높여, 내게 연달아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 한 방 한 방은 나를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버릴 만큼 강력했고.

부활 능력을 개변한 것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내가 다시 살아날 때마다 눈 깜짝할 사이 몸이 부서져 나갔다.

‘이대로는 안 돼……. 죽음과 재생 사이의 간격을 좁혀야 한다.’

난 그런 혼돈에 맞서기 위해 부활의 속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예전 불멸자였던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그가 그렇게나 소유하길 원하던 이 지식을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서.

그리고 마침내.

촤악!

나는 놈의 주먹이 닿기 전에, 흑검을 휘둘렀다.

어떠한 기술도 담지 않은, 그저 순수한 베기.

다만 거기엔 레아의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허공에 붉은 선혈이 마구 튀어 나갔다.

* * *

“이게 무슨……?”

혼돈은 주먹을 내지르려다 도중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자신의 뺨에 묻은 레아의 피를 닦고서, 손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런 걸로 날 잡으려고?”

나는 아랑곳 않고 그에게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촤악!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레아의 피를 묻힌 채였다.

“지금 내가…….”

물론 혼돈은 내게 단 한 번의 공격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내 반응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로 모든 공격을 피하며, 내게 손을 뻗었다.

“네놈이 상대하던 고대신과 동급의 존재로 보이는 건가?”

퍼퍼퍽!

그러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형의 힘들이 날아와 내 몸을 짓눌렀다.

“큭!”

난 그 상태로 허공에 묶인 채 모든 움직임이 봉쇄되고 말았다.

“너를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단순히 지금처럼 육체를 몇 번이고 분쇄시키는 걸 넘어, 네가 하는 것처럼 ‘영멸’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압도적인 우월감을 만끽하는 혼돈.

그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조소를 날리는 것뿐.

“흐…… 그럼 어디 한번 해봐.”

“내가 못 할 것 같나?”

촤악!

혼돈은 내 팔을 자신의 손으로 내려쳤다.

팔은 그대로 잘려 나갔다.

“끄아아아악!”

그 고통은 단순히 몸이 잘리는 감각이 아니었다.

내 안의 심원한 본질을 찢어버린 느낌.

영원히 수복할 수 없는.

에테르가 떨어져나간 것이었다.

“내가 말했지. 너희들의 그 ‘엔트로피 정체현상’을 우회해 간섭할 방법은 차고 넘친다고. 불멸이라는 현상 자체를 건드리지는 못하더라도, 그 안에 담겨 있는 너희의 영혼을 없애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붉은 장막도 내 앞에선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라고.”

하지만 난 그런 위기 상황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혼돈을 도발했다.

“그래? 크큭…… 그럼 나보다는 한 수 아래네.”

“……뭐?”

“내 무구들은 불멸 자체를 없앨 수 있거든. 그걸로 장막도 깨뜨릴 수 있고. 근데 넌…… 통과는 할 수 있어도 없애진 못한다는 거잖아.”

내 말을 들은 혼돈은 내게서 모든 속박을 해제했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

그러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왜 웃지? 자존심이 상하기라도 한 건가? 나 같은 미물에게?”

“아니, 그 반대다.”

그는 나를 마주한 채 양팔을 벌렸다.

마치 안기라는 듯한 제스처.

“오히려 기쁜 일이지. 나의 자식이 이 아비가 닿지 못한 곳까지 닿았으니.”

“자식……?”

“그래, 자식. 너는 내 자식이다. 내 아들이다. 내가 만들었고, 나에게서 태어난 아들. 자, 이리 와서 아비의 품에 안기거라.”

“개소리하지 마.”

푸확.

나는 그에게 나 대신 칼날을 안겨줬다.

하지만 그의 육신에 난 상처는 칼날이 닿자마자 회복을 시작했고, 찔러 넣은 검을 빼내자 상처도 원래부터 없었던 듯이 아물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내 행동은 신경 쓰지 않고서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어린 자식이 어른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건 분명 대단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게 곧 아버지에게서 벗어남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 아이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홀로 살아갈 수는 없는 불완전한 존재인 것이다.”

“내가 그런 존재라고?”

“그렇다. 말하자면, 난 너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뜻이다. 원한다면 이 세계는 언제든지 끝장낼 수 있다. 우주 전체를 양자 단위로 분해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너희 우주를 여태껏 이렇게까지 내버려 둔 건, 전적으로 나의 필요 때문이었다.”

“큭큭. 예상치 못한 실수로 접근도 못하던 때가 있었던 건 잊었나 보군.”

“그래. 그것도 인정하지. 그때의 내 실수를. 그래서 지금은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너를 여기까지 키워서 이 우주의 유일한 불멸자로 만든 것 아니겠나?”

혼돈은 계속해서 나를 훈계하듯 손가락질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 필요’가 사라진다면, 난 널 죽일 수밖에 없어. 이렇게까지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말이야. 저기 남아 있는 나머지 인간들까지도.”

그의 손가락은 어느새 시공간 균열 너머에 있는 지구를 가리키고 있었다.

라이진, 최윤아, 아델, 유메미, 야드가르.

모두가 살고 있는 그 행성을 말이다.

“그리고 실험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그동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너희 우주의 물리법칙을 좀 더 세심하게 통제해서 새로운 인류에게 계승하면 그만이다. 거기에 걸리는 시간도 내게 있어선 찰나에 불과하니, 문제 될 것은 없다.”

“필요가 없어진 자식을 죽이고 새 자식을 낳는다니……. 정말 매정한 아버지로군.”

“흐흐.”

그러나 나에겐 그의 협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준비는…… 끝났다.’

오히려 그렇게 떠들어준 것이 나에겐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음?”

“아무리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세상에 대한 초월적인 통찰력을 가졌다고 해도…… 그런 사람이 계속 좁은 면만 보고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게 마련이거든.”

나는 억지로 내려앉으려는 눈꺼풀을 붙잡으며, 혼돈에게 칼을 내밀었다.

힘이 쭉 빠져나갔지만, 어떻게든 버텼다.

마지막 한 방을 위해.

“나도 너랑 똑같아. 난 널 죽이진 못하지만…… 우회적으로 간섭할 방법은 알고 있어.”

“그게 무슨……?”

그가 주변의 상황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수천억 개의 새빨간 점들이 무수히 퍼져 나가는 검은 우주.

그곳을 향해 왼손을 내밀었다.

“설마……!”

“잘 가. 다신 만나지 말자.”

그리고 레아의 피에 담긴 힘을 발동시켰다.

곧, 한 항성계 전체를 뒤덮는 붉은 거품들이 시야를 새빨갛게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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