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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45화 (345/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45화

혼돈에 의해 씨앗이 뿌려져 지상에 정착한 최초의 인류, 아후라 마즈다는 권능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그저 불을 피우고 바람을 일으키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나중에는 조금 더 복잡한 일들도 가능했다.

그리고 그의 몸은 곧 죽음과 부활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분열을 거듭해 동족을 만들어냈고, 인류라는 하나의 종이 되었다.

이들은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쳐 일평생을 생존에 매진해야만 했는데.

그 거친 환경이란 바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마물과 괴이체들, 그리고 고대신들이었다.

“우린 옛 기억을 되살려 인간으로서 가장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적들을 만들어 네 선조들을 억압했다.”

“자신이 뿌린 씨앗을 자신이 파괴한다. 그게 네 ‘실험’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공통의 적. 거대한 위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행위. 그 안에서 가끔 인류는 한 단계 위의 문명으로 발돋움하곤 하지. 물론 그게 모든 상황에서 통용되는 정답은 아니나, 적어도 너희 세계에서는 그랬다. 그게 우리가 너희들 실험군에 가한 ‘변인’이었다는 말이다.”

무수한 살육과 탄생이 반복되는 나날들.

인류는 아무 이유 없이 자신들을 공격하고 죽여 대는 거대한 존재들을 두려워하거나, 혹은 동경했다.

혼돈이 만든 괴생명체일 뿐인 그것들에게 ‘신’이라는 호칭이 붙은 것도 바로 그 시절의 산물.

하지만 그 고대신들의 불멸성을 질투하고 영원한 삶을 추구한 한 인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길가메시.

최초의 불멸자였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능들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영원한 삶을 얻었다.

그리고 그 힘은 곧 고통받던 수많은 인류에게 퍼져 나갔다.

그로 인해 세상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마침내 새로운 신화의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불멸자들. 그들은 나에게 있어 한 줄기 빛과도 같았지. 엔트로피의 역전에 관한 해답을 줄 중요한 단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는 신들은 그 자체로 우주의 엔트로피를 정체시키는 불가사의한 영역을 품고 있다, 라는 건가.”

“잘 알고 있군. 내 정신 속에 들어 있는 지식을 단번에 끄집어낸 걸 보니, 이제 슬슬 너도 나의 군체 의식에 동화되고 있는 모양이야.”

엔트로피는 반드시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죽어서 한 줌의 흙이 되는 과정 역시 그 법칙에 철저히 구속된 과정이다.

설령 어떤 생명체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 역시 생명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필연적으로 증가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세계의 불멸자들은 달랐다.

이들은 존재 그 자체가 증가해야 할 엔트로피를 붙잡아두는 역할을 하는 자들이었다.

그렇게나 깊고 방대한 지식을 가진 혼돈조차 인지 불가능한, ‘불가사의 영역’을 통해서 말이다.

이는 소멸해가는 자신들의 우주를 구원할 첫걸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엔트로피 역전이라는 지상과제에 도달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증가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큰 도약을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군. 하지만 그 후엔 알다시피, 불멸자들이 너를 우주 바깥으로 내쫓아버렸지.”

이후에 벌어진 일은, 굳이 혼돈의 기억을 들여다볼 것도 없이,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신화대전.

시바를 필두로 한 불멸자들이 혼돈과 고대신들을 몰아낸 전쟁.

“그래. 사실 솔직히 말하면 그건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 우주 정도는 손쉽게 파괴해 버릴 수도 있었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수위를 조절해 그냥 제압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가능성을 더 끌어내고 싶었거든.”

그의 기억 속에서 시바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현실 세계에 고대신의 모습으로 나타난 혼돈을 상대로, 멸절 파슈파타를 사용해 그를 동떨어진 시공간으로 쫓아냈다.

“기껏해야 우리의 초창기 수준도 되지 않는 문명 수준을 가진 너희가, 권능으로 시공간을 베어낸다는 사실은 경악할 일이었지. 게다가 그 조그만 도구.”

시바의 손도끼, 파라슈가 보였다.

“저건 너희가 우연히 만들어낸 불가사의를 인위적으로 제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내 지식으로도 규명할 수 없는 신기가, 이 우주에서는 무려 둘이나 나타났던 거다.”

그 대목에 혼돈에게선, 흥분한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미 억겁의 세월을 살아와 감정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일 것 같은 이 거대한 존재에게, 아직도 그런 마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런 지식에 대한 본능적 탐구심이 지금까지도 혼돈을 움직이게 한 진짜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대단한 걸 해낸 불멸자들이, 스스로 좀 더 많은 발전을 이뤄서 너에게 더 좋은 성과를 가져다주길 바랐던 거군.”

“그렇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 전쟁만으로도 벌써 세상은 멸망 직전까지 간 상황인데, 불멸자들은 그야말로 아예 멸망을 각오하고서 덤벼들었으니까.”

“패배해서 사라진 연기를 하지 않으면 귀중한 실험체를 모두 잃는다……. 네 입장에서는 그게 당연한 선택이었겠군.”

혼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같은 모습을 한 그는 적극적으로 몸짓과 표정을 활용해 나를 이해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건 내 오판이었어. 이미 엔트로피의 정체라는 현상 자체가 내 지식의 범주를 벗어난 일이었는데, 그게 만들어낼 또 다른 연쇄 효과를 생각하지 못한 거야.”

‘불멸자들이 늘어나면서 이 우주에 다시 접근하지 못한 것.’

나는 이 부분에서 그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온전히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다.

예전, 내 생각을 읽고 들여다보던 신들에게 나의 의중을 숨기던 것과 같은 감각으로.

“그 연쇄 효과가 뭔지 알고 있나?”

그 방법은 통했다.

혼돈은 나의 생각을 읽지 못했는지, 자신이 내뱉은 단어를 재차 언급하며 물음을 던졌다.

“글쎄. 말해주면 알지도 모르겠군.”

그래서 난 거기에 태연하게 받아쳤다.

“내가 이 우주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거야. 한 우주에 정체 엔트로피를 형성하는 불가사의 영역이 너무 많아지면 그 우주는 외부 우주로부터 고립되는 현상이 생겨버려. 그런데 내가 없는 동안, 불멸자들의 숫자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 버린 거지.”

물론 이건 굳이 숨길 이유가 없는 정보였다.

이미 혼돈이 알고 있는 걸 넘어서, 스스럼없이 나에게 세상의 지식에 대해 다 말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어차피 그가 나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넌 내 생각을 꿰뚫는 것조차 못하고 있지.’

내가 필요했던 것은 그저 그가 지금도 내 생각을 완벽하게 지배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확증.

그리고 그건 방금 전의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그래서 그다음은? 다시 이 우주에 접근하지 못하게 된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그건 우연한 계기였어.”

그의 말과 함께 눈앞에 우람한 체격의 도복을 입은 건장한 트롤이 나타났다.

현시대의 비쩍 마른 병약한 늙은이가 아닌, 육체로만 보자면 발할라의 그 강대한 오크 신들보다도 강해 보이는.

예전 신화시대의 태공망이었다.

* * *

신화대전이 마무리되고서 꽤나 긴 시간이 흐른 후, 태공망은 예전 같지 않은 신들의 세태에 불만을 가졌었다.

자신들의 피를 이어받은 필멸자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그저 유희 거리로 여기고.

서로 다소간의 언쟁이 있었다는 이유로 지상에 거대한 상흔이 남을 정도의 대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신들 내에서도 신분을 나눠 차별을 일삼다, 결국 다시는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지옥이라 이름 붙인 척박한 행성에 가둬버리기까지 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라. 우리가 그렇게도 증오하던 혼돈, 악신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런 세태에 염증이 난 태공망은 신들을 강력하게 질책하고 무력까지 써 가며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그가 원하던 결과는 오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번 그에게 들었던 대로, 지옥에 추방되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

-모두…… 돌아가야 한다. 혼돈이 있던 때로……. 그래, 그것이 순리다.

태공망은 지옥에서 무수한 시간 동안 홀로 사유한 끝에 혼돈을 불러들이는 것이 정답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생각을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 그는, 세계에 미세하게 남아 있던 혼돈의 흔적을 찾아 마침내 의식 속에서 접촉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의 영향력을 다시 이 우주로 되돌리게 하기 위한 길고 긴 여정의 시작.”

혼돈을 등에 업은 태공망은 본격적으로 그의 계획을 실행했다.

물론 혼돈은 여전히 이 우주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지만, 그의 방대한 지식은 미약하게나마 태공망이라는 몸을 통해 발현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지옥으로부터의 탈출을 성공해 냈고, 마침내 한 인간 남자와 접촉하는 데에 이른다.

다름 아닌 전쟁터에서 말이다.

투콱!

거대한 오크 군세에 맞서 싸우는 인간 남자의 미숙하기 짝이 없는 칼이 태공망의 가슴을 꿰뚫는다.

태공망은 트롤이었지만, 피부색이 같은 초록색인 데다 체형까지 트롤 중에서도 특출 난 근육질이라 오크들 사이에 아무 위화감 없이 섞일 수 있었다.

바로 그 전장에서, 그는 자신을 찌른 남자의 검을 통해 시바의 운명을 떠넘긴 것이다.

-아흐리만!

그 남자가 바로 나였다.

-이제 군인 같은 건 그만두고 나랑 결혼해서 농사짓고 살자. 응?

그 후로 타라를 만나 결혼하고, 전장을 오가며 공적을 쌓았다.

경험이 늘면 늘수록 힘도 더욱 강해졌으며, 스스로의 힘만으로 신의 가호를 받은 이종족을 물리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게 다 순수한 내 업에 의한 게 아니라…… 당신의 계략의 일부였던 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그리고 나는 타라를 잃고, 모나를 만나고, 다시 그녀를 잃고, 야드가르를 잃고…….

다시 태어난 현생에서 레아와 최윤아와 아델과 유메미를 만나.

세상 모든 불멸자들을 소멸시키겠다고 마음먹었던 내 계획은 결국 성공하고 말았다.

혼돈이 다시금 이 세상에 간섭할 수 있게 하는 교두보를 놓아주게 된 것이다.

“마하비드야의 아바타라들……. 그녀들이 내 옆에 있었던 것도…….”

“그것도 너의 인생을 이 길로 이끌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운명의 톱니바퀴였다.”

내 인생은 결국 전부 그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인생이었다.

누구보다도 자유를 위해, 부당한 억압을 배제하기 위해 부단히 달려왔던 나는.

종국에 이르러 사실 그 모든 행위들이 다 다른 누군가에게 조종당한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대체 왜…….”

난 눈앞에 있는 나 자신의 멱살을 붙잡았다.

“왜 날 선택한 거지? 이런 건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 그리고 그자도 지금 너처럼 똑같은 질문을 던졌겠지.”

나는 내 손을 뿌리쳤다.

“그냥 선택된 거야. 이 장대한 실험의 한 실험구로서.”

“하…….”

그러고는 몸의 크기를 거대하게 늘렸다.

이제 거인이 된 나는 아주 작은 몸집의 나 자신을 아래로 내리깔아보았다.

원한다면 언제든 밟아 죽일 수 있는 한낱 미물인 개미를 쳐다보듯이.

“알겠나? 나는 이 우주의 ‘불멸자’란 비정상 존재들이 필요해. 하지만 그들이 너무 많아지면 내가 이 우주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모순이 생기고 말지. 그렇기에 나의 의도를 달성해 줄, 그러면서도 통제하기 쉬운, 단 하나의 불멸자를 남겨두기로 정한 거야.”

거대한 내가 쪼그려 앉은 자세로 조그만 내 얼굴에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지금의 너는 그야말로 그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자다. 너 자신이 불멸자이면서, 단순히 시바의 무구를 그대로 이어받기만 한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기까지 했지. 심지어 그 작은 손도끼 따위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한 것으로!”

악의의 대전당이 발동된다.

그 안에 구속된 무구들이 이쪽으로 칼날을 겨눈다.

“게다가 친나마스타가 만들어 낸 피의 권능…… 그 역시 엔트로피와 관련되어 있지? 세계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장막을 만들어내는 그것. 넌 그 피까지 가지고 있는 상태야.”

환희가 차오른다.

혼돈이 일으킨 감정이 전이되어 나의 마음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 우주를 구원해 줄 완벽한 구세주가 아닌가!”

정신이 군체 의식 속으로 점점 잠식되어 간다.

껍데기만 현실에 남긴 채, 나라는 자아는 혼돈 속으로 동화되어 간다.

“그래……. 구세주.”

그렇게 나와 혼돈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져 가던 찰나.

“……나의 우주를 구원할.”

나를 겨누던 모든 악의의 전당 무구들이, 방향을 바꿔 혼돈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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