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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40화 (340/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40화

태공망은 죽기 직전, 마지막 도박을 했다.

‘자기 자신을 자기 스스로의 공상 속에 가두는 공상’을 현실화하는 것.

산하사직도를 통해 무한 순환의 모순 속에 영원히 자기 자신을 몰아넣는다는 기이한 도박을 말이다.

그건 타자에게 강제로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오롯이 자기 자신과 스스로의 관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실현의 폭에 관한 제한이 없었다.

가짜 태공망을 만드는 건 무수한 외부와의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현실세계에 강제로 비실존의 실체를 끼워 넣는 행위이지만.

이것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사상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일 뿐.

바로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에, 내가 뛰어든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먹히지 않을, 불멸의 함정 속에, 태공망은 나를 가두는 데 성공했다.

“바보 같은…… 큭큭.”

태공망이 자신의 몸을 붙잡고 끼어든 나를 비웃었다.

촤악!

나는 그런 그에게 도끼 형태로 변화시킨 파라슈를 휘둘렀다.

“여긴 현실이 아니야.”

그러자 태공망의 형체가 사라졌다가, 다른 지점에서 다시 나타났다.

마치 환영이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과 같았다.

이미 피나카로 파라슈를 쏘아 맞혔는데도 죽지 않고 멀쩡한 듯 살아 있는 그.

나는 그걸로 내 공격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너라면 반드시 여기에 걸려들 줄 알았다. 나를 어떻게든 죽이고 전쟁을 끝내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테니까. 죽기 직전에 내가 수상한 수작을 부려 네 눈앞에서 사라지면 넌 날 붙잡기 위해 뛰어들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지.”

태공망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내뱉기 시작했다.

그것은 승리감에 취한 자의 만용이자 나에 대한 조롱이었다.

“마지막까지 수를 남겨두고 있었구나, 태공망.”

“그래. 그리고 이로써 넌 패배했다.”

그는 죽어가고 있다.

파라슈 화살에 적중된 목 부위에서부터, 영혼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

다만 그 속도가 매우 느릴 뿐.

무한 순환의 공상이라는 정지세계에 들어온 탓인지,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이곳이 아무것도 없는 어둠뿐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마치 시바가 갇혀 있던 시공간의 끝과도 닮아 보였다.

‘시공간의 끝…… 그렇다면.’

“후우.”

나는 일부러 자포자기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반신만 남은 태공망에게, 지금껏 속에 가지고만 있었던 근본적인 의문을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런 거냐.”

“뭘 말이냐?”

“시바는 너를 친우라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너에 대해 그렇게 믿고 있고. 그런데 왜 배신을 한 거지? 언제부터?”

그러자 태공망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그의 표정.

“배신……이라.”

그건 연기도 아니었고, 진심이 담겨 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대자재천을 배신한 적이 없다. 난 여전히 그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헛소리하지 마.”

“대자재천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고 있다. 혼돈과의 마지막 싸움에서 그분을 타 차원으로 벗어나게 만들고 돌아올 수 없는 그곳에 갇혔지. 넌 그를 만나고 왔을 테고.”

‘다 알고 있는 건가? 혼돈에게 들었나 보군.’

그는 시바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네놈은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냐?”

“이해가 되지 않겠지. 그래. 나도 예전의 나였으면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까.”

태공망은 거기서부터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 *

“처음부터 이렇게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건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자재천과 함께 세상의 부조리와 싸우고자 했으니까. 저 고대신들, 그리고 그것들을 만든 혼돈. 지겨울 정도로 매일 죽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때의 난 그걸 도저히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들고 일어섰다.”

내 머릿속으로 태공망의 기억들이 흘러 들어온다.

현생의 비쩍 말라비틀어진 노인 트롤의 육체가 아니라, 전생의 탄탄한 근육질로 뒤덮인, 불로의 육신을 가진 강건한 불멸자.

그가 수많은 시체들과 파괴된 잔해 한가운데서 울부짖고 있다.

자신이 사랑해마지않던 필멸자들이 기이한 모습으로 뒤틀린 채 죽어 있는 모습에,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분개하는 모습이 보인다.

“자재천과 함께 싸웠지. 그는 강했다. 우리의 미래였다. 누구도 감히 덤벼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저 고대신들에게 대항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내게도 건네줬지.”

시바가 태공망에게 파라슈의 프라나를 전해주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에서, 태공망은 파라슈의 변형인 타신편을 들고 고대신들을 죽였다.

현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한 육체로, 빠르게 움직이며, 적들을 파괴했다.

그의 몸엔 별 불꽃이 둘러져 있었다.

“그렇게 지상의 모든 불멸자들과 힘을 합쳐 싸운 끝에, 고대신들과 함께 혼돈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우린 승리한 것이다.”

멸절 파슈파타를 전개해 혼돈을 타 차원으로 밀어낸 시바.

그는 혼돈과 함께 사라졌지만, 남겨진 불멸자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세상을 되찾았다.

바야흐로 신들의 시대가 오게 된 것이다.

“그랬던 네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이런 짓을 한 거지?”

“처음엔 승리에 심취해 있었다. 그리고 곧 바른 길로 이르는 세상이 올 거라 믿었지.”

신화시대.

무수한 불멸자들이 각각의 ‘신계’에 자리를 잡고서, 원래 그들이 태어난 고향인 하계에 간섭을 하기 시작한다.

내 아흐리만으로서의 기억 속에 담겨 있는 그 시대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불멸자들도 혼돈과 다를 바가 없더군. 사람을 마음대로 죽이고, 아주 작은 이유로 분쟁을 일으키고, 자기들 사이에서도 급을 나눠 지옥에 보낼 자와 그렇지 않을 자를 나누는 짓을 일삼았다.”

그리고 나도 알다시피, 부조리는 혼돈이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이어졌다.

“결국, 주체만 바뀌었을 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지.”

태공망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대목에서 난, 그에 대해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다시 일어서지 않았지? 시바가 혼돈에 대항했듯, 너도 그 쓰레기들을 상대로 싸웠으면…… 아니, 최소한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기라도 했으면 됐잖아!”

그 시대는 내가 살던 시대였다.

그때 태공망이 불멸자들의 부조리를 바로잡아주었다면, 내게 일어났던 비극들은 모두 없는 일이었을 터였다.

오크 종족과의 전쟁도 없었을 테고, 타라도, 모나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야드가르를 빼앗기고, 내가 지옥에 떨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하지 않았을 것 같나?”

“……뭐?”

“나는 몇 번이고 말했다. 몇 번이나 호소했다. 신계의 인원들에게, 우리가 혼돈과 똑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돌아온 건…….”

태공망의 기억 속에서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신들이 그가 있는 곤륜 신계로 들이닥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신들은 태공망을 붙잡았다.

그 과정에서 저항을 하기는 했지만, 타신편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같은 불멸자들을 영멸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호의가 무색하게, 그는 그 자리에서 신들에 의해 결박당한 채 ‘재판’에 회부되었다.

“……지옥행이었다.”

나의 기억과 그의 기억이 겹쳐진다.

무수히 많은 신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 명의 불멸자를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처벌.

다수인 자신들의 의지에 반하면 본보기를 보여주듯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판결을 내리는.

집단 광기의 향연이 말이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내가,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태공망은 그 척박한 땅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모습을 감춘 채 숨어 있었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거기서 폐인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던 그에게, 혼돈이 다가왔다.

“한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 혹시……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그 신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혼돈이 그에게 속삭였다.

-네가 바라던 진정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무엇인가?

그 한마디.

그건 태공망의 정신을 조종하는 술수 같은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정말 속삭이기만 했을 뿐.

“그래. 애초에 이 세상은 혼돈이 만들었다. 불멸자들은 그 뒤에 나타난 부속물일 뿐. 말하자면, 혼돈이야말로 이 세상이라는 몸의 주인이고 우린 그 안에서 자라난 세포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을…….”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세포가 몸의 주인을 공격한다면 그건 병이다. 나와 대자재천은 이 세상의 암세포나 다름없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그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온 분노와 증오심은 너무나도 컸다.

그저 한마디를 건넸을 뿐인데, 오랫동안 지옥의 한 구석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그는 결국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린다’는 생각에 닿고 말았다.

“혼돈과 그의 피조물들의 뜻대로 굴러가는 세상이야말로 제대로 된 세상의 진짜 모습이라는 사실. 그게 바로 내가 다다른 ‘순리’의 진실이었다.”

“저게 순리라고? 저게 정상이라고? 저런 뒤틀린 괴물들이 지상에 나다니면서 서로 죽고 죽이면서 잡아먹는 게?”

“그렇다면 인간이 서로 죽고 죽이는 건 정상인가? 애초에 정상이라는 건 뭔가?”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정상과 비정상이란 건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임의의 개념이 아닌가? 그런 건 절대적 진리가 될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게 자기 자신마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거였나?”

“그래, 결국엔 나 역시 사라지겠지. 그게 순리라면! 그리고 지금,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이 세상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불멸자인 너와 내가 이 무한의 공간 속에 갇히게 됨으로써 말이다!”

나와 같은 동기, 나와 같은 마음, 그리고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는 과정.

어쩌면 나도 그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그 많은 신계들을 파괴하러 다니는 일을 저질렀으니까.

악마들을 지상에 풀어놓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고, 어느 순간부터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져 버리고 마는.

그런 나의 모습이 그에게 투영되어 보였다.

“그럼 왜…… 혼돈은 직접 나를 제거하지 않고 네놈에게 그 일을 시킨 거지?”

“그건…….”

그런데 문득 떠오른 그 당연한 의문에, 태공망은 여태껏 보여줬던 그 자신감이 갑자기 사라지고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까지는 시바 때문에 이쪽 차원에 접근할 수 없었다곤 하지만……. 혼돈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금, 왜 네가 말하는 ‘그분’은 보이지 않는 거지?”

“…….”

난 그 부분을 더 깊게 추궁했다.

이건 그를 몰아세우거나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정말로 궁금했던 것이다.

“애초에 너 하나에게 저것들의 지휘를 맡기고 나와 전면전을 펼치게 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할 이유가…….”

“입조심해라!”

태공망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기분이 몹시 언짢아 보였다.

“그분은 그저 순수한 존재일 뿐이다. 네놈이…… 함부로 판단할 게 아니야!”

‘뭔가 있다.’

거기서 난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와 혼돈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을 말이다.

“너…… 혹시 혼돈에게 버림받은 거냐?”

“닥쳐!”

태공망이 남은 반신으로 내 멱살을 잡으려 했다.

난 뒤로 물러나며 그가 내 몸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

털썩.

그러자 그는 제 몸도 가누지 못한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자신의 공상세계라곤 하지만, 저 너덜너덜한 몸 상태는 현실이었기에 바뀌지 않았다.

“젠장…… 이런 편협한 사고를 가진 놈이 무슨 세상의 질서가 된다고…….”

“세상의 질서?”

“그래! 혼돈께서는 네놈을 선택했다. 네놈이 이 세계에 남은 유일한 불멸자가 되어 ‘세상의 질서’로서 역할을 할 거라고 했다!”

혼돈이 나를 선택한다니.

그것도 날 세상의 질서로 내세운다고?

‘그때 내 몸에 심어진 그것도…….’

“어떤가? 기분이 좋은가? 그런 엄청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서 선택을 받았다는 말을 들으니?”

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태공망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저건 정말로 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 되었군! 넌 결국 나에게 붙잡혀 이 무한 순환의 감옥 속에 갇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바깥에서의 찰나는 이 안에서의 억겁과도 같은 시간! 네놈이 제아무리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다 하더라도, 그땐 이미 이 공허의 세계 속에서 우주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시간보다도 더 긴 시간의 흐름을 경험한 뒤일 것이다! 그럼 넌 의식이 붕괴되어 스스로의 존재조차 희미해진 상태겠지!”

그의 사상은 점점 더 폭주하기 시작했고.

“혼돈께서는 알게 되실 것이다! 자신의 판단이 틀리셨다는 것을! 네놈이 없는 그 세계는, 당신께서 직접 다스리셔야 한다는 것을!”

마침내는 스스로의 판단을 거스르기까지에 이른다.

“너, 바보냐?”

“뭐라고!”

“아깐 혼돈이 ‘순리’라며? 근데 방금 그 말은, 그 순리도 뒤틀릴 수 있다는 걸 너도 인정하는 거잖아?”

“……이…… 이…….”

태공망이 주먹을 쥐고 부들거렸다.

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흑검 아지다하카 소환}

그사이 난 검을 꺼내들었다.

지난번 시공간의 끝으로부터 탈출할 때 사용했던.

파슈파타가 아닌 아지다하카로 전개하는 진 멸절 파슈파타를 펼치기 위해.

찌이잉.

그러자 내 몸 안에 심어진 혼돈의 씨앗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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