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39화
적에게 정보를 흘리기 위해, 아군마저 속이면서 얻어낸 기회.
에레보스는 프리드웬의 표면에 달라붙어 우리의 대화를 엿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행동과 표정까지 살펴보았다.
그렇기에 필담 같은 것으로라도 작전을 변경하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 기회를 나는 어떻게든 살려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촤악!
도끼를 내려치는 순간, 놈이 측면으로 몸을 튕기며 회피해 냈다.
나는 신속으로 뛰쳐나온 직후라 관성 때문에 똑바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기동성은 여전히 내 쪽의 월등한 우위.
나는 날개를 펼쳐 별 불꽃을 역분사하며, 다시 방향을 급선회해 도망치는 태공망에게 날아들었다.
“넌 여기서 반드시 죽는다!”
나와 시바를 배신하고 세상을 무너뜨리려 한 악질.
결국은 이놈도 다른 불멸자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처음엔 거창한 대의 같은 걸 품고 있었겠지만, 긴 시간 동안 깨어 있으면서 나타난 정신적 결함은 피하지 못했다.
시바처럼 너무 거대한 악의 앞에서 좌절하고 무력감 속에 파묻히거나.
태공망처럼 변질된 사상으로 악의를 퍼뜨리는 데에 앞장서는 것.
불멸자의 영원한 삶 끝에 존재하는 미래는 오직 그 둘밖에 없다는 게, 그로써 증명된 것이다.
‘그러니 모든 걸 끝낸다! 오늘, 바로 지금. 나도, 네놈도!’
슈학!
다시 한번 도끼를 휘두른다.
태공망은 이를 악물고서 그걸 간신히 피해냈다.
이쪽이 아무리 빨라도 짧은 손도끼의 사거리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 계속해서 거리를 두며 빠지는 그 녀석에겐 맞질 않았다.
게다가.
큐웅!
놈을 지키기 위해 주변 고대신들이 쏘아내는 권능들이 나를 방해했다.
그럴 때마다 붉은 장막으로 몸을 감싸 쇄도해 오는 공격들을 완벽하게 방어해 냈지만, 장막을 펼치게 되면 제자리에 멈춰야 하므로 움직임에 제약이 걸린다.
그사이 태공망은 나와 더욱 거리를 벌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마력시야도, 초감각마저 권능이 뒤덮었어.’
초격에 죽이지 못한 탓에, 점점 더 공격이 내 쪽으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고대신들이 내뱉는 무수한 광채의 빛무리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 물질들.
그것들이 한꺼번에 뒤섞여 내 감각들을 방해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태공망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집중되는 공격에 파묻히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놈이…….’
아군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수십 초.
난 적진 한가운데에 고립된 채.
태공망이 몰래 다가와 내게 타신편을 휘두르기를.
‘……내 뒤를 치겠지!’
기다렸다.
{마검 파슈파타 변형}
{진 멸절 파슈파타 전개}
‘마하 프랄라야 파슈파타스트라!’
마음속으로 읊조린 진언과 동시에, 파슈파타를 꺼내 들며 힘을 급격하게 압축시킨 다음 뒤로 돌면서 종방향 세로베기를 날렸다.
발 아래쪽의 달을 기준으로 아군이 다가오는 방향을 ‘측방’으로 규정한 채, 내 후면의 상하를 넓게 커버하는 거대한 참격을 날린 것이다.
별을 창조해 낼 정도의 막대한 에너지를 담은 진 멸절 파슈파타로 말이다.
‘놈은 내 반응의 시야각을 최대한 좁히기 위해 반드시 후방을 노린다!’
그건 상대의 움직임을 읽거나 느낀 게 아닌, 전적으로 예측을 통해 내린 결론에 의해 내지른 공격이었다.
아무리 감각이 차단되었다고는 하지만, 태공망 입장에선 내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적일 테니.
반격의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정후방으로 돌아 들어와 공격을 할 거라는 예측 말이다.
특히나 아군 함대와 동떨어져 혼자 있는 나는 놈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처럼 느껴졌을 테니,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신중하게 움직이려 할 터였다.
다만 변수는 정후방의 상하 방향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걸 한꺼번에 커버하기 위해, 진 멸절 파슈파타라는 큰 기술로 종베기를 시전한 것이다.
이러면 놈이 어느 위치에 있건, ‘뒤’라는 방향만 맞다면 반드시 적중당할 수밖에 없다.
“크악!”
그리고 내 예측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거대한 아공간 압축의 참격이 직선으로 뻗어 나가, 타신편을 들고 다가오던 태공망의 오른쪽 반신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찢어버렸다.
위치가 살짝 왼쪽으로 틀어져 날아간 탓에 참격이 직접 닿은 건 아니었지만, 마치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듯 조각조각 입자화되어 찢겨 나간 것이다.
‘발산하려는 항성 창조의 힘을 뒤집어 안쪽으로 압축하려는 성질을 지니게 한 진 멸절 파슈파타……. 효력 범위가 크게 줄어들어 통제가 용이하지만, 블랙홀을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라 위험하다.’
콰우우!
참격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더욱 거대한 힘으로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실제로 태공망의 오른쪽 반신이 그 안으로 이끌려 소멸하고 있을 때, 주위의 다른 고대신들의 몸은 물론이고, 아래쪽의 달 표면마저 입자 분해되기 시작했다.
저대로 내버려 둔다면, 태공망의 육신은 완전하게 파괴될 테고 다른 고대신들까지 일거에 싹쓸이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주변이 남아나지 않겠지.’
이 위험한 힘의 영향력은 비단 적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터전인 지구와 태양까지 뻗어 나갈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나는 저 힘을 봉인시켜야만 한다.
촤르륵!
왼손 안에서 회전하던 피의 구체가 앞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사방으로 파괴의 마수를 뻗쳐 나가던 국소 규모 블랙홀 주변에서.
파앗!
구형으로 펼쳐져 그것을 감쌌다.
진 멸절 파슈파타의 반전된 참격은 그 붉은 장막이라는 작게 동떨어진 세계 속으로 격리되었다.
‘잡았다!’
{유결부 파라슈 변형}
그리고 난 그대로 반신이 찢겨 나간 태공망을 향해, 파라슈를 움켜쥐고서 달려들었다.
“나는 절대…….”
그 순간, 태공망이 남은 왼손으로 타신편을 놓고 품속에 넣더니, 작은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태극도?’
그건 내게 불사의 힘을 얻게 해준 신물.
신마저 잡아 영원히 봉인하는 최강의 도구처럼 보였다.
‘하지만 태극도는 그때 내가 먹어서 없애버렸다. 그건 파라슈처럼 개념의 무구도 아니라서 여러 개가 존재할 수 없어.’
상식적으로 저건 태극도일 리가 없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난, 무턱대고 덤벼들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놈의 다음 행동을 살폈다.
촤아악!
두루마리가 펼쳐지자, 그 안엔 텅 비어 있는 여백과 함께 ‘산하사직도’라는 글자가 한자로 쓰여 있었다.
‘태극도와는 또 다른 보패인가.’
“죽어라!”
곧이어 주변에서 무수히 많은 태공망들이 나타나 내게 달려들었다.
‘뭐지? 이건…….’
투콱!
난 그것들 중 하나를 향해 파라슈를 휘둘렀다.
그러자 영혼이 소멸당한 것처럼 움직임이 그대로 멈췄다.
손에 느껴지는 감각은 실제 에테르체를 베어낸 것과 같았다.
하지만 죽은 개체는 곧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환영인가?’
투쾅!
남은 것들 중 몇몇이 공격 주문을 사용해 내게 견제를 했다.
그 자체로는 그리 큰 위력이 아니지만, 중요한 건 모두 실제처럼 어떻게든 타격을 입히기는 한다는 사실.
흑검 아지다하카로 그런 그들을 전부 베어내자, 난 곧 저 ‘산하사직도’라는 보패의 정체를 알아챘다.
‘그렇군. 이건 환영을 실재하는 물질로 만들어내는 신물이다. 각 개체들의 성능이 빈약한 걸 보니 힘을 구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이지만.’
그 와중에 본체인 태공망은 그것을 펼친 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저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제대로 마음먹고 기만전술 용도로 사용했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겠지만…….’
난 붉은 장막을 펼치고 다가오는 수많은 공격들을 받아내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한순간의 위기 탈출을 위해 아깝게 낭비했군.’
이 전쟁은 숨겨둔 비기를 먼저 꺼내는 쪽이 불리한 전쟁이다.
블러드 코팅, 타신편, 에레보스, 진 멸절 파슈파타, 산하사직도.
예상치 못한 것들이 튀어나오면, 각자는 아주 조금씩의 빈틈을 내보인다.
그럴 때마다, 그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혹은 새로운 숨겨둔 무기를 꺼내는 식으로 대응해 나가는 것.
그리고 그 대응의 타이밍을 가장 최적의 때로 고르는 것.
태공망은 바로 그 부분에서 실수했다.
산하사직도는, 이런 곳에서 꺼낼 무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공격해 오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안 됐었다. 너흰 출혈을 각오하고서라도 몰아쳤어야 했어.’
그 대가로 저 녀석은 내게 크나큰 빈틈을 드러내고 말았다.
‘너는 내가 접근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고대신들의 집중 공격과 산하사직도로 만든 무수한 가짜 태공망들의 쇄도 사이로, 본체가 힘겹게 몸을 추스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도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놈은 나와 같이 초재생 능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저런 부상을 가지고는 단순히 도망치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터.
그렇기에 임기응변으로 꺼낸 산하사직도에 모든 걸 맡기고, 내 접근만을 경계하면서 무작정 도망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난 그런 그에게, 내가 남겨 두었던 마지막 비기를 주머니 속에서 꺼내 보였다.
{마궁 피나카 변형}
{파라슈 장착}
‘잘 가라.’
사방에서 쇄도해 오는 공격을 차단하는 붉은 장막의 가운데, 화살 하나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구멍을 만든 후.
그 사이로 신살의 기운이 담긴 화살을 쏘아낸다.
피잉!
다른 마법이나 권능으로 구사하는 공격에 비하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통의 화살.
그 안에는 파라슈의 신살 외엔 어떠한 특수한 힘도 담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겉보기엔 전혀 화려해 보이지 않았고, 마력 감각으로도 그 존재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주변에 보이는 환경이라곤 새까만 허공밖에 없는 이 우주 공간에서, 그 작은 화살이 날아드는 걸 육안으로 확인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것이다.
‘맞았다!’
화살이 태공망의 뒷목으로 정확하게 파고든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콱!
“끄아아악!”
영혼을 가차없이 소멸시키는 화살촉이 그를 침식해 들어간다.
이걸로 놈은 영원히 끝이다.
‘이겼다! 이 전쟁은 우리가……!’
그런데 그 순간.
부우욱.
태공망의 발끝으로부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뭐지?’
그것은 곧 태공망의 몸 전체를 타고 올라가 집어삼켰다.
아래에서부터 머리까지.
그 연기가 집어삼키는 부분부터, 태공망의 신체가 사라지고 있었다.
‘설마?’
아무리 봐도 저게 놈의 몸이 소멸되는 과정 같은 걸로는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파라슈로 베어 죽인 신이 저런 식으로 사라지는 경우는 본 적도 없고.
오히려 그건 마치, 어딘가 다른 공간으로 그를 이동시키는 모양새 같았다.
‘마지막까지 수를 감춰뒀던 건가. 제길! 귀찮은 자식……!’
태공망은 이미 파라슈의 화살에 명중됐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반드시 곧 죽는다.
하지만…….
이 찝찝한 기분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개수작 부리지 마!”
죽은 후에 그의 몸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뭐가 됐든 놈들이 그렇게 한다면, 거기에는 꿍꿍이가 있게 마련이다.
죽기 직전의 마지막 발악.
그런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적을 놓쳐 버리는, 그런 허무한 패배를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쉬이이익!
그 순간 나는 신속을 사용해 놈이 있는 위치까지 순식간에 닿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예전, 지옥으로 도망치려던 염라를 붙잡아 억지로 끌고 나왔던 때와 같이.
놈의 멱살을 쥐고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검은 안개가 태공망뿐만 아니라 내 몸까지 집어삼켰다.
‘나까지 데리고 가겠다면 따라가서 죽여주마!’
{유결부 파라슈 변형}
그리고 도끼를 손에 쥔 채.
태공망과 함께 어둠 속 저 너머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