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38화
모든 전투 준비가 끝났다.
아몬의 함대는 전 함선이 레아의 피로 도배되었고, 각 함 내부에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자체 수리용 자재들까지 갖췄다.
혹여 태공망에 의해 공격당한다 하더라도, 균열부에 블러드 코팅이 완료된 수리기재들을 덧대기만 하면 끝.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웬만한 방어력은 보장될 것이다.
“적은 움직임이 없는 건가.”
“아직 피해 회복이 완료되지 않은 것 같아요.”
내 물음에 유메미가 대답했다.
그녀는 마력시야에 공간 이해력까지 더해 나보다 훨씬 더 먼 거리의 상황을 보다 더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었다.
“지난번 전투에서 신체가 훼손당한 고대신들의 회복이 생각보다 많이 더뎌요. 저런 존재들이라면 초재생은 기본일 텐데…… 아마도 블러드 코팅 공격이 유효했던 모양이에요.”
“단순한 파괴력뿐만 아니라 재생을 늦추는 효과까지 있는 거군. 확실히 제어한 보람이 있어.”
“신우 씨 몸은 어때요? 저번엔 블러드 코팅 피로 때문에 다리까지 너덜너덜해져서 돌아왔잖아요.”
“지금은 괜찮아.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해졌으니까. 레아가 하던 것들을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은 돼.”
난 그 말을 하면서도, 우리 위의 하늘을 감싼 거대한 장막을 보며 새삼 그녀의 업적을 되새겼다.
‘이렇게 무제한으로 유지되는 대규모 장막을 펼치는 건 나도 불가능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 인류를 지키는 선택을 한 레아.
솔직히 지금의 나는 목숨까지 던진다 하더라도 이런 걸 만들어내진 못한다.
인류의 마지막 보루인 이 부유섬은, 전적으로 그녀의 희생에 의해 만들어진 성스러운 방주인 것이다.
‘승리로 갈 수 있는 조건은 레아가 모두 만들어줬다. 난 이걸로 사람들을 해방시키기만 하면 된다.’
이제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남은 건 적절한 타이밍을 선택하는 것뿐.
“모든 것이 만전의 상태인 지금, 적은 아직까지 피해를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당장 공격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것 같지만…….”
“문제는 태공망이겠네요.”
“그래. 그 녀석이 들고 있는 타신편이 적에게는 유일한 열쇠니까.”
저쪽의 공격 양상은 분명, 태공망이 타신편을 휘둘러 아군 보호막에 균열을 낸 다음, 그곳에 고대신들의 공격을 집중시키는 방식이 될 터였다.
즉, 그가 휘두르는 공격의 적중 유무가 아군 각 함선의 생사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뜻.
따라서 이쪽의 입장에서도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태공망의 움직임이었다.
“그 녀석은 지금 어디에 있지?”
“달 뒷면에 숨어 있어요. 가만히 선 채로요. 딱히 뭘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가.”
“전략을 구상하는 중일 수도 있겠죠. 저번엔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가 왕창 깨졌으니, 이번엔 분명히 뭔가 다른 수를 구사하려 할 거예요.”
“그렇게 하기 전에 놈을 먼저 잡아야겠군.”
이 전쟁은 쉽게 말하면, 태공망과의 술래잡기라고 할 수 있다.
그놈을 죽이는 순간, 다른 모든 고대신들은 우리의 거대 표적이 될 뿐.
심지어 혼돈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몰라도 고대신들에 대한 명령 권한을 그에게 전적으로 일임했으니.
태공망을 잡는다는 것은 곧 적의 수장을 잡는 것과도 같았다.
“위치는 확인됐고, 적의 피해 수복이 완료되지 않은 지금. 기습적인 선공을 취하기엔 적기다.”
공격을 진행하기엔 지금이 최상의 시기.
하지만 그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었다.
“유메미.”
“네?”
“블러드 코팅 아머는…… 아직이겠지?”
그건 사람이 입을 수 있는 크기의 도혈 방어구인 블러드 코팅 아머의 완성 여부였다.
“가동부의 설계가 아직 미흡하다고 들었어요. 엔지니어들은 도저히 해결이 안 돼서 완성이 불가능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가. 아쉽네.”
블러드 코팅은 고정된 고체 표면에만 두르는 게 가능하다.
설령 그 고체 자체가 부드러운 성질을 가졌다 하더라도, 블러드 코팅이 되는 순간 고강도의 금속처럼 성질이 딱딱하게 변한다.
그렇다 보니, 사람이 입는 갑옷의 관절 가동부를 블러드 코팅으로 감싸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물론 일반적인 용도의 갑옷이라면 그건 아무런 흠이 아닐 것이다.
방어구로서의 성능은 급소 부위만 판으로 덧대는 경갑 형태로도 효과가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우리가 상대하려는 적은 고대신이다.
관절부의 가동을 위해 약간이라도 틈이 있는 설계를 취한다면, 그 사이로 광기의 기운이 흘러들어가 착용자를 순식간에 미쳐버리게 만들 것이다.
즉, 현재의 전장에 맞는 용도로 갑옷을 제작하려면, ‘모든 부위가 고강도 소재이면서 외부로부터 빈틈없이 밀폐되는 형태’라는 모순적인 과제를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착용자가 사이보그인 라이진처럼 팔다리를 자유롭게 떼고 붙일 수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달성이 불가능했다.
밀폐 문제 때문에 관절 사이로 얇은 전선 하나조차 통과시킬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통짜 부양 덩어리이면서 입자 도약이라는 공격 수단을 갖춘 함선만이 유독 특별히 그 조건에 부합하는 형태였다.
“……윤아 씨 때문이죠?”
그 문제를 언급하자마자 유메미가 최윤아에 대해 말했다.
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바깥에 내보낼 수는 없어. 그게 안 된다면…… 여기서 기다리게 하는 수밖에.”
“제가 잘 보고 있을게요.”
이 안에서 서포트를 담당하고 있는 유메미가 그런 말을 했다.
그건 그녀가 최윤아를 감시하겠다는 의미였다.
“부탁하지.”
작은 불안감.
사소해 보이지만, 언제든 큰 균열로 이어질 수 있는 조그만 변수를 떠안고서.
난 다시 프리드웬에 탑승했다.
* * *
적은 달 궤도 주변에 밀집해 있다.
거대한 사이즈의 고대신들이 그 주변에 위치해 있으니, 마력시야나 초감각을 사용하지 않아도 태양빛에 반사된 그들의 실루엣이 선명히 보인다.
거리는 당연하게도 상당히 멀다.
일전의 전투에서 적이 지구 근처까지 다가온 후에야 도약 공격의 사거리에 도달했던 걸 생각해 보면.
‘적에게 닿기까지는 대략 40번의 입자 도약이 필요하다. 도약의 간격이 짧다고는 해도, 총 이동시간은 최소 10분 이상에서 15분. 적이 우리의 접근을 파악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야. 사방이 탁 트인 우주 공간이라 은폐할 수도 없다.’
선제 공격을 하는 우리는 지난번의 적과 같은 입장이 된다.
기동성 자체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높긴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저 광활한 전장에선 그마저 상쇄되고 마는 무용의 장점인 셈.
‘그래도 갈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타이밍을 놓칠 수는 없다.
적이 저쪽에서 우리와 싸우기 위한 대비를 하고서 함정을 파놓는다 해도, 저들이 먼저 만반의 준비를 마친 다음 공격을 해오게 만드는 것보다는 사정이 낫기 때문이다.
앞으로 주어질 모든 타이밍 중 지금이 가장 최선이라면, 지금 움직여야 한다.
“전 함대, 연속 입자 도약 개시.”
[차원 엔진 동기화]
[입자 분열 도약 활성화]
곧 프리드웬을 중심으로 구성된 아몬의 함대 전체가 하나의 에너지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붉은 빛을 띠는 황금, 적금색의 함대가 일제히 입자로 분열된다.
그리고 그 안에 탑승하고 있는 모든 승무원들도 함께 거기에 동화되었다.
대략 20초 정도의 에너지 축적 시간이 지난 후, 잠시 동안 눈앞이 깜깜해지며 모든 감각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파앗.
발아래에 거대한 지구가 보이는 우주 공간까지 도달했다.
“목적지는 달. 최소 거리로 최대 속도로 도약을 지속한다.”
그리고 또 한 번 프리드웬의 엔진이 움직인다.
목표에 닿기까지 걸리는 약 10분 동안 달이 움직이는 속도를 고려해, 가장 최적의 도약 루트를 따른다.
‘태공망은 어떻게 나올까…….’
그동안 난 계속해서 놈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할 태세를 갖췄다.
‘놈이 선택할 수 있는 공격 방식은 기껏 해봐야 2가지겠지. 고대신들을 마무리 짓는 게 가능한 나를 집중 공략 하거나, 아니면 힛 앤 런으로 도주하면서 아군 함선의 숫자를 차례차례로 하나씩 줄여 나가는 것. 어느 쪽이건 난 한 가지 방식만을 유지하면 돼.’
그렇게 이동을 시작한 지 대략 3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자 예상한 대로, 저쪽에서도 움직임을 취하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 거지?”
“달을 중심에 두고서 사방으로 퍼지려는 것 같습니다.”
그 움직임의 방향성을 가장 먼저 알아챈 건, 함께 프리드웬에 탑승한 아델.
처음엔 방향성 없이 무작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달을 중심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퍼지고 있었다.
“우릴 감싸서 포위하려는 건가? 마치 보자기처럼.”
“그게 아니면 화력을 집중하기 위한 대형으로 선 것 같습니다.”
고대신에 비하면 한 점에 모여서 움직이는 거나 다름없는 우리를 상대로, 저쪽은 면 단위의 공간을 장악한 채 싸운다.
우릴 상대하기엔 저게 최적의 포지션이라 판단한 거겠지.
실제로 지난번의 전투에서 뭉쳐 있는 고대신들은 질량 타격에 의해 한꺼번에 다수가 무력화되고 말았다.
그런 불상사를 피하려면 각 개체 간의 거리를 최대한 띄우는 게 올바른 선택.
게다가 어차피 적이 우리에게 실질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메커니즘을 생각해 보면, 화력을 한 점에 집중시키에도 좋은 저 대형은 꽤나 효율적이다.
‘과연 실전은 어떨까……!’
나는 그들이 갖춰 놓은 그 진형 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노려야 할 건 한 가지뿐이니까.
“적이 퍼지면, 우린 모여서 각개격파를 하면 그만이야!”
후웅!
달 쪽에서 빛무리로 된 광선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이건 저들이 행할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의 공격일 터.
빛의 기둥은 우리 함대를 직격으로 덮쳤지만.
‘통하지 않는다!’
블러드 코팅된 함대의 선체들은 그 공격을 받아내고도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저 우직하게 도약 진형을 유지한 채 앞으로 전진할 뿐.
“겁먹지 마! 지금 우린 무적이다! 저것들의 공격은 선체에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다!”
-믿겠다, 군주여!
아몬이 내 격려에 호응했다.
그를 따르는 악마들은 이탈 없이 끝까지 함대 대형을 유지했다.
‘적과 조우까지, 앞으로 3회!’
이윽고 우린 달 표면의 크레이터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까지 접근했고, 거기서 난.
“아델, 도착할 때까지 함선 밖으로 나가지 마!”
“예? 그게 무슨 말씀……?”
츄악!
갑판으로 나가, 붉은 검날로 선체 모서리에 진 그림자를 베어냈다.
그러자 상반신이 동강 난 검은 인영이 드러났고.
{유결부 파라슈 변형}
곧장 망설임 없이 그 머리를 도끼로 내리찍었다.
“그, 그건?”
에레보스.
부유섬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암흑 속에 숨은 채 나의 행동을 감시하던 고대신.
놈은 여태껏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전부 파악하고서 태공망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즉, 저쪽은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다 알고 있다는 뜻이다.
나를 중심으로 함대들이 함께 움직이며, 무력화된 개체들을 유결부로 하나씩 마무리해 나간다는 기동 전술을 말이다.
“맡긴다, 아델!”
그렇기에 난 그 틈을 찌를 것이다.
터엉!
발밑의 갑판을 박차고, 날개와 다리에 모든 힘을 집중한다.
매 도약마다 충전 시간이 필요한 차원 엔진의 입자 도약보다 더 빠른.
나 자신만을 이동시키는 기술인 신속을 전개한다.
쉬이이익.
주변 공간이 길게 늘어지고, 시야가 암흑으로 뒤덮이려던 찰나.
저 앞의 아주 작은 탈출구에.
그 엿 같은 초록색 주름진 얼굴이 보인다.
“일대일로 붙자! 태공망!”
화악!
에레보스를 쳐 죽였던 신살의 도끼가, 당황한 놈의 미간을 향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