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33화
레아가 나를 위해 남겨준 힘.
붉은 정수가 마침내 다시 내 손으로 들어왔다.
“으……. 온몸의 수분이 다 빨려 나가는 기분이야.”
그걸 꽤나 빠른 시일 내에 완성하는 데 성공한 아델은, 급격히 초췌해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왼손에 찬드라하스를 든 채였다.
‘완전한 칼리의 신격을 받아들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굳이 찬드라하스를 꺼내 들고 있었구나.’
찬드라하스는 직접 꺼내 들고 있으면 정신적인 불안정성을 더욱 강력하게 제어할 수 있다.
비전투상황임에도 그걸 꺼내 든 것은, 칼리의 힘을 극한까지 활용하기 위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델의 육신은 상당히 소모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무리하지 말라고 했더니.”
“흥, 내심 기다리고 있었으면서.”
이전의 깍듯하게 예의 바르던 아델과는 정반대의 태도.
이건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거부감이 드는 건 아니다.
아델이 항상 내게 순종적으로 구는 부하여야만 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확실히 몸에 별다른 이상이 있는 건 아니군.’
그녀와 연결된 의지로 몸 상태를 체크해 본 결과, 정수를 만드는 과정에서 딱히 큰 신체적 결함이 생기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저 상당히 큰 피로감이 축적되었다는 것 정도.
다만 방금 말했던 대로, 체내에서 수분이 급격히 빠져나간 것 때문에 몸이 꽤나 야위어 보인다.
아무래도 대량의 혈액이 소모됐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당분간 좀 쉬어. 밥 잘 먹고.”
“왜? 나만 놔두고 싸우러 가게?”
그런데 아델은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움직이려 했다.
“그건 싫어. 나도 같이…….”
휘청.
물론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체력으로 뭘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녀는 곧바로 몸이 기우뚱하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빈혈이 온 것처럼 말이다.
아니, 실제로 피가 부족한 것이니 빈혈이 맞았다.
“으…… 젠장.”
“그놈의 호승심. 네 성정이 칼리처럼 불같이 변한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바보같이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마.”
“누가 무모하다고……. 큭.”
나는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운 다음, 다시 침대에 눕혔다.
“정신 돌아왔을 때 이불킥 할 일 그만 만들고 조용히 쉬어라. 알았어?”
아델이 다시 평소 성격으로 돌아왔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훤하다.
이런 거친 행동들은 원래의 그녀가 의도한 바가 아닐 터이니 말이다.
물론 그 두 인격 사이의 갭도 언젠간 익숙해지겠지만.
“젠장.”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뒤돌아 누운 아델을 뒤로한 채, 정수를 들고서 그대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 * *
촤르르륵.
레아의 핏방울들이 내 몸으로 흘러들어 온다.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붉은 소용돌이가 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과연…… 버거운 힘을 지고 있었군. 레아도, 아델도.’
난 그것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묵직한 이질감을 느꼈다.
적대하는 모든 것을 차단하는, 거절의 힘.
이건 체내에 흐르는 용혈마저도 밀어내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원조인 레아는 이 부분에 대해 별문제가 없었겠지만, 아델은 이것 때문에 권능 사용에 큰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장막의 모양이 불안정했던 건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델은 이 피를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활용했던 모양이다.
광범위한 영역의 인간 개개인을 보호하는 소형 개별 보호막을 펼친다거나.
지난번 지네 괴이체와 싸울 때처럼 자신의 피를 상대의 몸 안에 흘려 넣어 내부 피폭을 일으키는 공격적인 활용.
그리고 그 방식을 확장시켜 탄환에 피를 입혀 무기로 사용하는 도혈탄까지.
단순히 방어적인 사용에 그치지 않고 공격에도 관여하는 활용도를 보여줬다.
그에 비해 아델은 겨우 자신의 손앞에 평면적인 장막을, 그것도 불규칙적으로 펼치는 데 그친 수준.
슈륵. 출렁.
그런 사정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몸 안의 이 이질적인 혈액을 바깥으로 꺼내서 장막을 펼치려 하자, 아델이 했던 것과 같은 형태가 나온 것이다.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난 이걸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특히나 무엇보다도 아몬의 함대를 이용하기로 생각한 이상, 이 권능에 반드시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것들도 다 무용지물이 되고 말 테니 말이다.
‘레아가 해낸 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거기까지 닿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어.’
그래서 난 체내의 혈액을 강제로 반응시켜 힘을 내가 원하는 대로 정제하기 시작했다.
아지다하카의 용혈이 레아의 피와 섞일 수 있도록 억지로 융합시켰다.
-크오오오오!
울컥.
그러자 몸속의 악룡이 반발을 일으켰다.
목구멍에서 피가 솟구쳐 나오며, 몸에 큰 부담이 밀려왔다.
‘좀 참아보라고……. 이게 다 네 주인을 위한 거니까.’
이번엔 날뛰는 아지다하카를 잠잠하게 만들어야 했다.
융합되길 거부하는 레아의 피와 거기에 광폭하게 반응하는 아지다하카의 피.
두 종류의 강대하면서도 상이한 속성을 지닌 피를 한꺼번에 제어하려니, 소모되는 힘이 곱절로 증가하는 느낌이었다.
별 불꽃의 회복력조차 어찌하지 못해 죽어간 레아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것만 같다.
‘젠장, 산 채로 회복이 되지 않는다면 죽고 부활해서 다시…….’
난 이대로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피의 제어를 성공해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난 몇 번이고 죽어도 부활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잠깐. 이렇게 되면…….’
하지만 내 그 생각은 이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내 몸의 일부가 되지 않는 피……. 이러면 부활했을 때 그대로 가지고 있을 수가 없잖아.’
레아의 피는 용혈과 섞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래서야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고 한들, 레아의 피가 여전히 내 몸에 있을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나의 일부가 아닌 외부 물질이나 마찬가지니까.
이를 테면 돌멩이를 쥔 채 죽었다고 해서 돌멩이와 함께 부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젠장. 까다로운 놈을 만났군.’
물론 이 자체가 딱히 추가적인 제약이 되는 건 아니었다.
이 힘을 내가 아닌 다른 이가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죽으면 사라지는 건 그대로이니 말이다.
오히려 나는 적어도 다시 부활할 수는 있는 반면, 그 사람은 그걸로 끝이니 차라리 낫다고도 볼 수 있다.
‘이 힘의 제어 때문에 또 더 기다려야 하나…….’
이제 겨우 결전의 시작점에 섰다고 생각했는데, 또 장애물을 만나 발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레아의 피를 제어하지 못하는 한, 아몬의 저 거대한 함대도 모두 무용지물.
그렇다고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무작정 달려드는 모험을 할 수도 없다.
고대신들까지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상, 내 불멸도 백 퍼센트의 완충 장치가 되어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언제까지 기다려 줄 것인가…….’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부유섬의 주변.
지상은 온갖 수많은 괴이체들로 뒤덮여 있고, 하늘과 우주에도 고대신의 존재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이 부유섬 주변은 이상하리만치 적이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벌써 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거기에는 이곳을 둘러싼 붉은 장막이, 단순한 방어 기능을 넘어 마력의 피탐지마저 방지해 주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수많은 차원들을 지배하는 ‘그 존재’의 의지가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혼돈.’
나는 어떻게든 놈의 허를 찌르고 말 것이다.
조금 무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유메미. 지금 바로 시작하자.”
“네? 뭘요?”
“블러드 코팅.”
“……벌써요?”
유메미가 내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레아의 피를 제어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델의 사례를 이미 봤기 때문에 알고 있다.
그래서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역시, 신우 씨는 우리의…….”
그녀는 나를 마치 우상을 바라보듯 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간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던 자신들이었는데, 내가 복귀하자마자 급속한 상황 반전을 꾀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내게 의지가 되는 마음을 가질 법도 했고, 또 ‘그런 존재’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구세…….”
“빨리 움직이자.”
“……아, 넵!”
난 차마 그녀가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길 바랐다.
그랬다간 결국 나도 똑같은 존재가 될 뿐일 것 같았으니까.
난 언제까지나 인간으로만 남아야 한다.
한 시대를 살다 함께했던 동료들과 같이 사라지는, 필멸자로서 말이다.
* * *
우주공간.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떠다닌다.
그 수많은 별들 중 가장 가깝게 보이는 것은 지구.
태공망은 마치 그 풍경을 비추는 전광판 위에 올라서 있는 것처럼, 안정적인 자세로 서 있었다.
“……쯧.”
그는 굳은 표정으로 발아래의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 지구의 어느 좌표 상공에 뜬 작은 육지.
불투명한 붉은 장막 너머로 무수히 많은 공중전함들이 정박해 있는, 유신우의 부유섬이었다.
“기어이 저 피를 저렇게 사용하고 마는군.”
그는 유신우가 행하는 행동들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의 피를 황금 함대의 선체에 둘러 친나마스타의 방어 권능 효과를 항시 누릴 수 있게 만드는 블러드 코팅.
혼자서 무모하게 모든 고대신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이들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권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략적인 전투를 벌이려는 것이다.
유신우가 제아무리 대단한 힘을 가졌다 하더라도, 다수의 고대신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승산이 없는 일이었는데.
저런 소소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변수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대체 언제까지 저것들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당연하게도 저런 짓을 하기 전에 유신우를 공격했으면 변수가 생길 일도 없었다.
유메미 일행이 유신우와 재회하기 전에.
레아가 부유섬 같은 걸 만들기 전에.
고대신들과 함께 선제타격을 했으면 모두 끝날 일이었다.
그들의 대략적인 위치와 동향은 진작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태공망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가만히 앉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다름 아닌 혼돈의 명령 때문이었다.
“혼돈이시여! 대체 왜 저놈이 저리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까!”
태공망은 답답함에 감히 혼돈에게 대들었다.
유신우가 대적하려는 대상에 태공망 자신뿐만이 아니라 혼돈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건 자명한 일.
그러나 어째선지 혼돈은 유신우를 쉽게 죽일 기회를 모두 날리고 있었다.
그러니 태공망도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거야 물론,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지.
“유희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저놈이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칠수록 더 많은 것들을 당신께 보여줄 수 있으니?”
-그것도 하나의 답이겠구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태공망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질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유신우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나게 위협적인 존재다.
엔트로피 해방의 임계점 돌파 직후 더 많은 고대신들을 불러올 수 있게 되었던 그 시점에도, 그와 정면으로 맞붙으면 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수준이었다.
살아 있는 인간들이라는 인질이 있으니 지지는 않겠지만, 놈이 마음먹고 모든 힘을 해방해 달려들면 최소한 공멸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놈을 봐주는 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동안은 저 역시 힘을 기르고 군세를 가다듬을 시간이 있었지만 이 이상으로는…….”
그래서 태공망은 좀 더 확실하게 끝장내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때마침 혼돈의 충돌 금지령도 있었고, 그 참에 제대로 싸울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 족쇄가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흐름은 유신우에게 점점 더 유리하게 흘러갔다.
그래서 도중에 혼돈의 명령을 어기고 몰래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를 보냈지만, 그것도 결국 실패.
더 시간을 끌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내가 왜 그런 건지, 진짜 이유를 말해줄까?
태공망은 혼돈의 말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무지 진의를 알 수 없는 행동만을 일삼는 혼돈이, 자신의 의도를 대놓고 밝히는 흔치 않은 일.
이 일에 그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내가 원하는 건 네놈이 아니라 그자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으득.
그 말을 듣자마자, 태공망은 금이 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강하게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