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32화 (332/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32화

아몬의 함대가 하나둘 보호막 안으로 들어온다.

친나마스타의 차단막은 적대적인 것은 물리적인 실체뿐만 아니라 에테르의 흐름까지 막으나.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인식된 대상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저건 또 무슨? 저렇게 큰 비행체가 저만큼이나 많이 있다니…….”

라이진이 부유섬 상공을 빼곡하게 메운 황금함대를 바라보며 놀라워했다.

그뿐만 아니라 생존자들 중 원래 이쪽 세계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그 광경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도시가 초창기 대륙의 문명보다는 확실히 발전하긴 했어도, 엘프들이 이룩한 건 그보다 이질적인 종류의 기술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과거로부터 300년이 흐르는 동안, 아몬이 장악한 엘프계는 거기서 더욱 기술력이 발전되었다고 한다.

고오오오.

한편, 하늘을 빼곡히 채울 정도로 많은 함선들 사이에서, 크기가 가장 큰 함선 하나가 이쪽으로 천천히 하강했다.

짙은 마력으로 둘러싸인 유선형의 황금색 전함.

그 배가 아몬이 탄 기함이라는 건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스르륵.

함선이 일정 수준의 고도까지 내려온 그때, 내 눈앞에 검은 날개를 달고 있는 인간형 악마의 형상이 나타났다.

아몬이 입자 분열 도약으로 내 앞에 내려온 것이다.

“오랜만이군, 군주여.”

“그래. 오랜만이야.”

나는 그와 손을 맞잡으며 악수를 나눴다.

마치 내 손을 으스러뜨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강한 악력이 전해져 온다.

물론 지난번에 만났을 때와 달리, 지금의 그는 힘으로 따지면 나보다 한참 아래였기에, 힘을 줘봤자 제 손만 아플 뿐일 터였다.

“그사이 몰라보게 달라졌군. 나도 그동안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네 배들이 전부 움직이면 혹시 모르지.”

“저것들?”

아몬이 위를 올려다보고는, 허탈한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기껏 해봐야 겨우 1개 함대 규모일 뿐이다. 원래 내 휘하에 있던 47개 함대 전부가 만전으로 덤빈다 해도 지금의 네겐 흠집도 내지 못할걸.”

“사, 사십칠…….”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라이진이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지금 우리 머리 위, 부유섬 상공 장막 내부에 블록을 쌓듯이 빼곡하게 모여 있는 저 함선들의 숫자만 해도 엄청나게 큰 규모인데.

원래 가지고 있던 건 그 47배에 달하는 함대 전력이라니.

그 대목에서 나는, 오히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쉽군. 전부 가지고 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전부 가지고 왔으면 이 좁은 보호막 안에 다 들어오지도 못했을 거다.”

“그건 그렇겠군.”

“그리고 그런 대단한 전력을 가지고 있으면 뭘 하겠나. 네 소유의 배 한 척에 함대 전체가 매달려 있는 상황인 거나 마찬가지인데. 오히려 수가 과하면 기동성만 저하될 뿐이다.”

아몬은 프리드웬에 대해 언급했다.

그의 말대로, 현재 황금 함대는 프리드웬과 동기화되어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프리드웬의 동력원에 들어 있는 차원 엔진에 말이다.

“테세우스의 배가 네 손에 들어 있었을 줄이야. 덕분에 타고 내릴 때 굳이 지상에 착륙할 필요가 없어져서 편하긴 하다만.”

“이젠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라 프리드웬이야.”

“뭐, 아무튼 말이다.”

그의 황금 함대는 프리드웬과 동기화되어 입자 분열 도약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엘프계에서 이쪽으로 넘어온 것 역시 그걸 이용한 것.

예전 엘프 함대 내에서 테세우스의 배가 하던 역할을, 이젠 프리드웬이 맡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됐건 너와 네 친구에겐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군. 위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내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해.”

아몬은 이진윤의 의식이 전이된 프리드웬에 의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당시의 정확한 상황은 나도 잘 모르지만,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치 구세주처럼 나타나 그를 살렸다던가.

그리고 그 이후엔 태공망에 의해 휘저어진 엘프계를 수습하고, 살아남은 잔존 병력을 끌어모아 내가 불러낼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 모든 일을 해낸 건 물론 모두 이진윤 덕분.

-…….

다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나와의 접촉이 무한정 지속될 수만은 없는 듯한 모양.

방금 전 아몬을 이쪽 세계에 데리고 온 것을 마지막으로, 의식의 연결이 끊겨 버렸다.

“그래. 그건 차차 얘기하도록 하고…….”

한편, 나는 아몬에게서 시선을 옮겨 그의 등 뒤에 있는 인영을 쳐다보았다.

“으…….”

내 시선에 두려움이라도 느낀 건지, 아몬의 등 뒤로 숨는 작은 몸집.

익숙한 얼굴을 가진 인간 남자 아이.

그 아이는 야드가르였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이 아니었나?”

나와 야드가르 사이에서, 아몬은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었다.

“네 친구가 잘 봐달라고 간곡히 부탁해서, 부하들을 시켜 온갖 대접을 해주면서 데리고 왔더니.”

야드가르는 오히려 나보다는 아몬에게 더 강한 애착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가장 서열이 높은 사람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는 건, 생존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일 터다.

그것도 구출된 직후부터 아몬과 지낸 시간이 거의 몇 달은 되었을 테니, 더더욱 친밀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하지만 그럼에도 저런 모습이 더더욱 묘하게 느껴지는 건.

아무래도 전생에서 처음으로 신을 죽인 후, 악마적 외형으로 변해 가던 내 모습이 아몬에게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몬.”

“뭐지?”

“당분간은 네게 신세 좀 져야 할 것 같다.”

“뭐라고!”

애초에 외모부터가 다른 내가 지금 당장 야드가르에게 ‘내가 네 아빠다’라는 소릴 해봐야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평범한 비각성자 인간에 불과한 저 아이에게 영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 같은 것도 없고.

그러니 지금은 계속 하던 대로 아몬에게 의지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그 귀찮은 짓을 또 하라는 말이냐?”

정작 본인은 펄쩍 뛰는 반응을 보였지만.

“아, 젠장. 위대한 대악마이자 군단장이신 이 몸이 인간 아이의 보모 역할이라니.”

그래도 딱히 싫은 내색은 비치지 않았다.

거기엔 고대신에게 영멸당할 뻔한 것을 구해준 데 대한 부채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짧지만은 않은 시간 동안 나름대로 함께했던 정도 있겠지.

“가자. 인간.”

“……네!”

야드가르가 아몬의 뒤를 쪼르르 쫓아가며 그에게 손을 내민다.

아몬은 마지못해 그런 아이의 손을 잡아줬다.

그 모습이 마치 신들에게 쫓겨 다니던 때의 나를 보는 듯했다.

이따금씩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보던 아이는, 금세 아몬과 함께 입자 분열 도약으로 다시 기함으로 되돌아갔다.

* * *

대량의 나무 상자들이 공터에 쌓인다.

그 안에는 각종 식량과 약품 등을 비롯해 기초적인 광물자원 등 수많은 종류의 물품들이 들어 있었다.

촤르르륵.

그것들은 지상에 내려와 있는 악마들의 손짓에 의해 순식간에 작은 알갱이들로 분열되더니,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함선들로 날아갔다.

“광물 자원을 얻을 수 있도록 시설을 구성하란 건 이것 때문이었군요.”

유메미가 그 광경을 지켜보며 말했다.

“응. 기초 광물 자원만 있다면 저 녀석들의 기술력으로 모든 걸 보급할 수 있을 테니까.”

“과연…….”

황금 함대가 우리에게 합류하면서, 원래 있었던 생존자들에 비하면 몇천 배나 될 정도로 많은 식구가 생겼지만.

이 부유섬 내의 영지가 생산해 내는 물자만으로도 그 전부를 감당하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잉여 물자가 한참 남아 그걸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정도.

“그나저나 엘프계를 점령한 악마들과 동맹을 맺게 되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네요.”

“미리 얘기할 시간이 없었지. 놀라게 해서 미안해.”

“아뇨아뇨. ……아니, 다른 의미로 놀라긴 했지만. 오히려 전보다 상황이 더 나아졌으니 좋은 일이죠.”

“사람들 사이에 불만 같은 건 없나? 악마들과 같은 땅을 쓴다는 것에 대해.”

“음, 처음엔 다들 좀 무서워하긴 했는데…… 이곳 사람들도 여태까지 워낙 온갖 못 볼 꼴들을 봐왔으니까요. 오히려 바깥에 있는 그 흉측한 괴이체들에 비하면, 악마들은 차라리 친숙한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해야 할까.”

“하긴, 그런 사정은 악마들도 마찬가지일 테니 사람들에게 적대적으로 굴 필요가 없겠지.”

생각보다 내부 상황은 아주 매끄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부유섬에 들어온 모든 이들은 혼돈에 의해 미쳐 돌아가는 세계의 벼랑 끝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

그러니 이곳에서 하루하루 살아 숨 쉬는 게 감사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어찌 보면 종을 불문하고 모든 필멸자들이 하나로 뭉쳐 신에 대적하는 구도가 되길 바라던 내 염원이, 이제야 겨우 이뤄진 셈이다.

“실은 저희들, 얼마 전부터 다 같은 인간이라고 부르고 있거든요.”

“음? 그건 무슨 얘기지?”

“여기 있는 사람들요. 드워프, 트롤, 다크엘프…… 그런 식으로 종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인간이라고 하는 분위기가 어쩌다 보니 생겼어요.”

“그래?”

“지나고 보면 종족의 구분 같은 게 다 무의미한 게 아닐까 싶어요. 저 바깥에 있는 기괴하게 뒤틀린 것들과 비교하면, 우린 적어도 두 팔, 두 다리가 있고, 생각할 수도 있고…… 마음도 있잖아요.”

유메미의 시선이 한 인간과 악마가 함께 있는 데에서 멈췄다.

그들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친구처럼 스스럼없는 사이처럼 보였다.

“악마들도 마찬가지고…….”

그 순간 유메미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알 것 같았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지. 우린.”

진짜 적이 누군지도 모른 채 무수히 대립해온 기나긴 세월의 역사.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는 곳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린 서로를 죽고 죽였다.

신들의 농간 위에서 말이다.

심지어 그 신들조차, 더 위에 있는 존재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이젠 그 굴레를 끊어야 할 때라는 걸, 무수한 상실의 경험 끝에 모든 필멸자들이 본능적으로 체득하게 된 것이다.

“만약에 있잖아요.”

그런데 유메미의 표정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였다.

“정말 기적적으로…… 우리가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저것들을 이 세상에서 전부 몰아낸다면.”

그건 깨달음은 얻었지만, 그것이 정말 답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 이후엔 다시는 그런 비극들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혼돈을 비롯한 고대신들도.

타인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불멸자들도.

서로 죽고 죽이도록 싸움을 부추기는 시스템도 모두 사라진다면.

필멸자들의 머리 위에서 우리의 행동을 조작하는 모든 억압자들이 사라진다면.

초월적 존재 없이 오롯한 자유 의지만으로 움직이는 시대엔 완전한 평화가 찾아올까.

……라는 의문.

“그럴 리가.”

나는 그녀의 의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그럼…… 또 싸우게 된다는 건가요? 우리는?”

그리고 거기에 대한 결론도 내린 상태였다.

“그래. 하지만 적어도 싸우는 이유는 스스로 만들어내겠지.”

“…….”

유메미는 여전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에겐 그게 해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선 그 대답만이 우리가 우리로서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결론이었다.

“신우 공.”

그때, 옆에서 우리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라이진이 입을 열었다.

“아델 양이 붉은 정수의 생성을 성공했소.”

그가 전해준 말은, 마침내 우리가 기다려온 역습 준비에 대단원에 다다랐다는 소식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