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31화 (331/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31화

단 5초면 충분했다.

유메미가 피난처로 향하는 차원문을 열고 그 안으로 도망치는 데까지는.

하지만 이곳에서 그 시간은 영겁과도 같은 길이.

입밖으로 말을 꺼낼 여유조차도 주어지지 않는다.

바깥에서 보기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고대신과 우리들 사이에서 무수한 공방이 펼쳐진다.

콰우우우!

하늘을 가득 뒤덮은 거인의 여성형 상반신, 이자나미가 손을 휘둘렀다.

마치 날벌레를 잡기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손바닥으로 우릴 짓눌러 죽이려는 모양.

‘압력이……!’

그 순간 온몸에 가해지는 기압이 눈에 띄게 느껴질 정도로 높아졌다.

저 거대한 손바닥이 크기에 맞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떨어지니, 그 사이 공간에 존재하던 대기가 급속도로 압축된 것이다.

파아앗!

그와 동시에 이자나미의 손바닥에선 새하얀 플라즈마 빛이 발하기 시작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울 기세의 뜨거운 열기가 머리 위로 들이닥쳤다.

그 모든 현상들은 어떤 종류의 마법이나 권능으로 일어난 게 아니었다.

그저 내려쳤을 뿐인 저 거대한 손바닥의 부피와 질량이 만든, 순수한 물리적 현상.

말하자면 저 고대신은 단순한 팔 휘두르기만으로 자연계에 대재앙을 일으키는 공격을 행한 셈이었다.

‘내가 상대한다.’

-하지만……!

난 아마도 여기서 저것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 터.

‘유메미, 너는 당장 차원문을 전개해.’

1초가 아깝게 흐르는 지금, 난 유메미에게 도주로를 형성하라는 의지를 전달한 후, 곧장 흑검을 쥐고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화력은 화력으로 받아친다.’

지금 이자나미가 행하는 팔 휘두르기는 그리 까다로운 공격이 아니다.

상성을 이루는 마법적 요소가 포함된 것도 아니고, 가이아가 만든 피조물처럼 평범한 공격은 먹히지 않는 독특한 기믹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저건 단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압도적인 질량과 속도, 범위를 가진 물리공격일 뿐.

그렇기에 그만큼 상응하는 파괴력으로 받아내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상쇄할 수도 있다.

‘이걸로.’

긴 시간 동안 이곳에서 괴이체들을 상대하며 깨달은 변형기술.

그건 바로 내가 쏘아낸 투사체를 내가 추격해 검으로 직접 베어내는 것이었다.

‘1격, 금강염사.’

투사체를 날리는 기술들은 기본적으로 정점화력지점이 존재한다.

발출한 이후부터, 위력은 비행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증가하다가, 특정 시점에서 감소하고 결국 최대사거리에서 소멸하는 것이다.

정점화력지점이란 바로 그 위력의 증가세가 역전되는 시점.

화아악!

‘2격, 신기일섬.’

그리고 그 특성은 투사체를 발사하지 않는 근접 공격에도 적용된다.

아니, 오히려 근접 공격이야말로 정점화력 개념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복싱에서 머리를 움직여 상대의 팔이 다 펴지기 전에 맞아주거나.

혹은 타점보다 뒤에서 맞음으로써 위력을 감소시키는 테크닉이 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검을 휘두르는 것도 마찬가지로, 참격이 형성하는 호선의 끝부분에서 위력이 최대치가 되는 것이다.

‘이중정점파쇄(二重頂點破碎).’

바로 그 성질을 활용해, 제1격인 투사체의 화력정점을 제2격인 근접공격의 화력정점으로 돌파하는, 시간상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을 실현하는 이 기술은.

단순한 위력 증폭의 영역을 넘어, 상식을 초월하는 현상을 일으키는 비기였다.

번쩍!

화염으로 구축되어 달려나가는 사자의 뒤로 안개처럼 접근해, 일섬으로 베어내는 순간, 칼끝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그리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힘의 파동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손바닥으로 퍼져 나갔다.

불룩. 불룩.

이윽고 이자나미의 손에서 울퉁불퉁한 종양 같은 것들이 피어나오는가 싶더니.

콰쾅!

천둥소리의 몇 배는 될 듯한 굉음과 함께, 저 거대한 살덩이는 육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끄아아아아!

이자나미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저 짜증 나는 목소리가 뇌리에 직접 전달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기분.

하지만 여기서 주춤거릴 시간은 없었다.

-네놈이 내 누이를!

저 거체의 나머지 반신, 이자나기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저건 물리력으로 막을 수 없다. 레아의 보호막만으로 방어가 가능하겠지만…….’

나는 흘끗, 시선을 뒤로 돌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재생하는 듯 느리게 움직이는 유메미 일행이 보인다.

지금 나는 저들의 반응 속도로도 쫓을 수 없는 시간 속에 있다.

‘……지금 이곳에 레아는 없어. 그러니 방법은.’

당장 이자나기의 공격을 회피할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조금 극단적인 수를 써서라도 공격을 막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마하 프랄라야…….’

자칫하면 지상 전체가 휘말릴지도 모르는 높은 리스크의 권능.

하지만 난 이미 이것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데에 성공한 적이 있다.

물론 실전에서 써본 적은 없기에 어떤 후속 변수가 나타날지 모르지만…….

가만히 손가락만 빨다가 다 같이 죽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낫다.

번쩍번쩍번쩍.

이자나기의 온몸에서 눈동자들이 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한다.

저 시선이 우리에게 닿기 전에, 진 멸절 파슈파타로 사이의 공간을 갈라 시야를 차단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

-나한테 맡겨!

괴리된 시간의 흐름을 뚫고, 아델이 내 뒤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녀의 모습은 칼리의 신격을 거의 완전히 뒤집어 쓰기라도 한 것인지, 피부가 완전한 잿빛으로 변한 상태였다.

심지어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지난번에 봤던, 몸매를 거의 드러낸 예의 갑주로 변한 모습.

지금 그녀는 아델보다는 칼리에 훨씬 더 가까운 존재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물론 지금 그녀의 육체 능력이 고도로 상승한 상태라 하더라도, 이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을 터이겠으나.

그런 내 예상은, 그 자리에서 바로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투웅!

그녀의 펼친 손바닥에서 붉은 핏방울들이 뻗어 나와 전면에 넓은 장막을 펼쳤다.

그건 레아의 단절 보호막.

그녀가 사용하던 것과는 달리 불규칙적으로 접혀 있지만, ‘절대권능방어’라는 기초성능만큼은 완벽하게 같은 것이었다.

‘아델, 네가 어떻게……?’

그걸 본 내 머릿속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레아의 신격인 친나마스타가 가진 고유 권능을 어떻게 아델이 사용한 것인지.

-설명은 나중에! 장막이 없어지기 전에 얼른 차원문으로 들어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아델은 그 장막을 펼쳐놓고는, 곧장 뒤로 돌아 유메미가 있는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곳엔 어느새 차원문이 열려 있었고.

라이진과 최윤아가 먼저 들어간 후, 유메미와 나, 그리고 아델이 그 뒤를 따랐다.

스륵.

여기까지 5초.

고대신과 조우한 직후부터, 전원이 퇴각하기까지 흐른 시간이었다.

* * *

나는 조촐하게 꾸며진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무 바위를 가져다 놓은 듯한 울퉁불퉁한 비석과 그 앞을 가득 장식한 말라 비틀어진 야생화들.

척박한 땅과 없는 살림에도 어떻게든 이 무덤의 주인을 기리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레아 아르노]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쳐다봤다.

이 거대한 방주를 만들고서 스러져 간 영웅.

그녀의 유해가 이 아래에 묻혀 있다.

“그렇게 된 거군.”

나는 이곳에 오고 난 뒤에야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영원히 지속되는 보호막…… 방주. 이것 때문에 진윤이가 이곳의 위치를 찾지 못했던 건가.’

이진윤과 소통하게 된 후, 나는 타 차원에 있는 야드가르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그보다는 같은 차원에 존재하는 유메미 일행의 생사를 확인하는 게 더욱 빠를 터.

하지만 난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그럴 수가 없었다.

이진윤을 통해서 살아 있는 것도, 죽어 있는 것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어딘가에 있을 이들이 날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물론 레아의 보호막이 차단 작용을 한 것 때문이라고는 대충 짐작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광범위한 영역을 덮을 수 있을 줄이야.’

알고 보니 그 모든 것들이 레아의 절대 방어 권능 때문이었다.

그건 자신의 생명력을 전부 소진해가면서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은 희망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그 이진윤조차 닿지 못한 단절의 힘. 이건 어쩌면 혼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몰라.’

난 스스로를 희생해 가며 자신의 유산을 남긴 레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나에게, 아니, 모든 살아 있는 인간에게 미래를 선물하고 떠났다.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신념을 완벽하게 관철해 낸 것이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지킨다는 게 언제나 옳지는 않다. 나 역시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 하지만, 적어도 그건 그녀 스스로에게만큼은 옳은 일이었다. 그걸 실천해 냄으로써 레아는 승리자가 된 거야.’

다음은 내 차례.

이제 난 레아의 의지를 이어받아 나의 신념을 관철시킬 것이다.

모든 불멸하는 존재들을 없애고, 살아 있는 자들에 대한 억압을 배제한다는 신념을 말이다.

* * *

“유메미.”

“네.”

“방주의 관리에 대한 모든 권한을 너에게 위임한다.”

{대상 <아리사카 유메미>에게 1단계 접근 권한 대리 자격을 부여합니다.}

{999,999,999,999,999,999 골드를 대상에게 건넵니다.}

영지 관리 시스템은 아직까지 살아 있다.

난 유메미에게 클랜 마스터의 관리 권한을 넘긴 뒤, 99경에 달하는 골드를 건네주었다.

그녀에게 이 일을 맡긴 건,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아리사카 클랜’의 마스터였던 그녀가 ‘영지 관리 시스템 시대’의 행정에 가장 익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걸로 지금 당장 갖출 수 있는 모든 시설들을 갖춰줘.”

“아…… 네!”

“그리고 한 가지 신경 써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게 뭐죠?”

“되도록이면 광물 자원을 최대한 많이 확보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광물 자원을요? 그걸 왜…….”

유메미가 의구심을 보였다.

그녀는 지금 같은 때에 굳이 광물 자원을 확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깥에 있는 적들은 어지간한 제조 장비로는 상대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특수한 능력을 가진 나와 레아, 유메미 본인의 힘만으로 돌파해 나가는 것이 답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하다간 전 우주에서 달려드는 저 광범위한 스케일의 적들을 다 상대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다간 방주 안에 갇힌 채 몇천, 몇만 년을 보내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이유가 있어. 일단 부탁할게.”

“네, 그렇게 할게요.”

유메미는 곧 부유섬 중앙의 내성 건물로 들어갔다.

이윽고 이 방주 안의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농작물 수확량 증가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농작물 다양성 확보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습니다.}

{자동 수확 인형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불필요 시설물 제거가 완료되었습니다.}

{고급화 확장 주택가 구역이 지정되었습니다.}

{마법 광산 구입이…….}

예전 알포드 성에서 꽃피웠던 찬란한 문명이 다시금 이곳에 세워진다.

도심 잔해물 사이에 듬성듬성 배치되어 있던 허름한 시설들은 순식간에 거대한 건축물로 변화했고.

부여된 마법에 의해 대부분의 설비들이 자동화되어 돌아가는 마법 도시로 탈바꿈했다.

제대로 된 영양조차 섭취하지 못하던 생존자들은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부유섬의 풍경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이럴 수가……!”

“우린 살았다!”

난 그런 풍경을 뒤로하고서, 부유섬의 가장자리로 날아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다.

스르륵.

혼자서 붉은 보호막 바깥으로 빠져나온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익숙한 이름을 불렀다.

‘진윤아. 부탁한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원 너머 의식으로 연결된 이진윤이, 내가 있는 곳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는 실체화된 육신이나 영혼을 가질 수 없기에 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지만.

그 대신 어떤 ‘특별한 물건’에 의지를 깃들게 할 수 있었다.

우우웅.

하늘에서 거대한 파동이 퍼져 나간다.

그 가운데에서 뾰족한 물체가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곧 철갑으로 둘러싸인 배 한 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철선 프리드웬.

그리고 그것의 차원 엔진을 도약의 주축으로 삼은.

우웅. 우웅.

우우웅.

-드디어 재회했군. 나의 군주여.

아몬의 황금함대가, 뒤이어 이 세계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