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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30화 (330/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30화

날카로운 서늘함이 등 뒤에서 다가온다.

눈앞에 있는 ‘보이는 적’이 큰 동작으로 날 위협하고 있지만, 진짜 위험은 뒤에서 엄습해 오는 ‘보이지 않는 적’.

그 대응으로 나는 제자리에서 뛰어 올라, 아래쪽으로 회전하며 360도로 크게 검을 휘둘렀다.

화륵!

그러자 칼날에 화염이 휘감기며 거대한 원형 검기가 전후로 퍼져 나간다.

전방에서 달려오던 등 굽은 하얀 거인은 그 검은 검기 불꽃에 휘말려 한순간에 소멸했지만.

카앙!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던 보이지 않는 적은 화염 검기가 방출되기도 전에 이미 내 칼에 직접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빠르다.’

나는 그것을 화염으로 떨쳐내려는 의도로 흑화륜을 전개했으나, 접근 속도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던 것이다.

‘초 근접전으로 유도하려는 건가.’

보이지 않는 적은 나와 칼날을 맞댄 상태에서 몸을 더 안쪽으로 과감히 파고들었다.

그것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목으로 온다!’

쉬익! 투쾅!

시선이 아닌, 감각에 의존한 반응 방어.

목을 노리고서 재차 날아오는 상대의 후속 참격에, 나는 비스듬히 검을 세워 몸을 보호했다.

울컥. 퍼퍽.

하지만 받아내는 각이 너무 정직했던 탓일까.

충격은 그대로 칼날을 타고서 내 양손으로 흘러 들러왔다.

다행히 목이 잘리지는 않았지만, 양팔의 근육이 사정없이 분해되어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죽는다.’

몸이 그런 상태가 되어서야, 제아무리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한들 빠르게 반응하는 건 불가능한 법.

체내에 흐르는 아지다하카의 용혈이 두 팔을 빠르게 재생시켰으나.

마이크로초 단위로 쪼개고 쪼개지는 극한의 고속 공방 상황에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지연은 거대한 구멍이 되고 만다.

촤아아악!

머리 위에서 크게 세로로 베어 내려오는 고강도의 일검은, 어떻게든 몸을 틀어 회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투콱.

내려 벤 자세에서 칼날을 반전해 사선으로 되올려치는 우요격(右腰擊)에는 고스란히 허리를 내줘야만 했다.

첫 타를 흘려내기만 했어도, 2격은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직전의 참격을 정면으로 받아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손 쓸 수 없는 무방비가 된 것이다.

‘재생력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권능에 의존해서도 안 돼. 더 빠르게. 더 날카롭게. 오롯이 순수한 무의 업을.’

난 이 보이지 않는 적의 검에 당해 그대로 추락하며 되새겼다.

신을 이길 수 있는 건 신의 힘이 아니라, 인간의 힘이라는 것을.

* * *

수백 번에 달하는 죽음 끝에, 드디어 나는 그것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몸뚱이의 외곽선이 거친 데생으로 그린 것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하나의 몸통에 두 쌍의 다리, 두 쌍의 팔을 가진 괴이한 형상의 인간.

각각의 손에 한 자루씩, 총 네 자루의 검을 든 그것이, 칼날들을 교차하며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검은 네 자루지만 공격은 한 번에 하나씩.’

보이지 않는 적이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그것의 공격 패턴 또한 꿰뚫어 보고 있다는 뜻.

여러 자루의 검을 든 적은 언뜻 보기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검리의 근본을 따져보면 칼을 몇 자루씩 들었건 간에 하나를 든 사람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인간형의 육체.

하반신이 지탱하고 상반신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힘의 흐름 구조를 가진 이상, 여러 자루의 검을 동시에 휘두르는 건 무의미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껏 해봐야 여러 자루로 한 타점을 타격하는, 단순한 궤적의 베기에 그치는 정도.

파캉!

이 녀석의 검 두 자루를 교차하며 휘두르는 참격에, 난 흑검을 세로로 꼿꼿이 세운 채 후방으로 덤블링하듯 뛰어올라 가볍게 받아쳤다.

그로 인한 충격은 여전히 내 몸으로 온전하게 받아내기에 너무 강했지만, 이번에는 전에 비해 각이 훨씬 완만했다.

후웅!

덕분에 빗겨나간 힘은 공중에서 거꾸로 떠 있던 나를 수직으로 회전시켰다.

‘만월청영 17연-일점집중.’

피잉!

그 회전력을 그대로 활용한 만월청영.

17번의 공간을 가르는 참격이 한 지점에, 하나의 시간에 적층된다.

일격으로는 모자란 화력을 연격으로 키우고, 그것을 다시 자르고 잘라 찔러 넣는 날카로운 연속 대회전참이, 네 자루의 검 사이로 드러난 잠시간의 빈틈으로 찔러 들어간다.

‘찾았다. 해답.’

촤악!

괴이체는 그걸로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많은 죽음을 겪은 탓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 모를 정도의 사투 끝에, 드디어 그 개체를 공략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회전력을 꼭 흑화륜으로 전환할 필요는 없었군.’

원래는 발이 뜬 상태에서 공격을 흘려내 몸이 회전하는 상황에선 흑화륜을 쓰는 게 보통이었다.

애초에 공중 상태에서 재빨리 몸을 움직이며 전개하는 기술이기도 했고, 그 회전력을 공격으로 전환하는 효율만 생각해도 그게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화륜은 빠르고 강하기는 해도 섬세한 공격은 아니었다.

방어가 단단한 적의 빈틈을 찌르는 데에는 오히려 달그림자 검식의 기술들, 특히 만월청영이 더 어울렸다.

게다가 신체에 가해지는 회전력을 꼭 회전 공격으로 이어갈 필요 없이, 직선으로 뻗어 방출하는 방법도 습득했으니.

내겐 같은 상황에서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다음 적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가각.

그 순간, 여러 쌍의 다리들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그건 지네형 괴이체가 지금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죽어어어어!”

콰앙!

그걸 인지하자마자 인간 지네가 땅속에서 용암이 분출되듯 튀어 올랐다.

바로 내가 서 있던 그 자리에 말이다.

스륵.

난 그 기습에도 아랑곳 않고 곧장 검과 함께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곤 지네의 위에서 다섯 번째 몸통에 이르러,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신기일섬 반응격.’

쉬익!

지네가 인지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가해진 급습.

간결한 일격이기에 데미지 자체는 만월청영에 비해 강하지 않지만, 내 움직임 자체를 기만술로 가리며 되치는 것이었기에 적중률은 확실했다.

위에서 다섯 번째 몸통에 신체 전체의 중심부인 심장이 들어있다는, 인간 지네의 약점을 저격하기엔 더없이 완벽한 기술인 것이다.

서걱. 츄아아악!

약점이 모두 파악되었음에도, 내게 접근해 오는 동종의 개체들은 그저 죽으러 오는 것일 뿐.

“넌 더 이상 내 상대가 안 돼.”

난 그것의 사체 위에 사뿐히 올라서며 지상에 착지했다.

* * *

‘여기선 더 이상 적수가 될 만한 적이 없는 건가.’

벌써 몇 달째, 이곳 타카마 시티에서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며 괴이체와 싸움을 벌이고 있다.

처음에는 그 수많은 개체들의 물량과 강함에 압도당해 그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할 뿐인 싸움이 이어졌지만.

긴 시간 전투 데이터를 쌓아 올리며 적들의 유형별 약점과 공략법을 터득하기 시작하며 하나씩 처치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권능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한 검술 그 자체의 운용능력도 올라갔다.

힘의 크기는 전과 지금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다루는 기술적인 성장을 이룬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순수한 인간의 힘’으로 혼돈과 고대신이 만든 괴이체들을 잡는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기도 하고.

또한 행성 대기권 내에서 주변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필요한 부위에만 타격력을 집중해서 싸우는 노하우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 내가 싸울 환경이 아군과 뒤엉켜 싸우는 회전(會戰)이 될 것을 생각하면 후자는 매우 중요한 점인 것이다.

‘동료들은…… 아직인가.’

한편, 난 이곳에서 유메미와 아델 등을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피난 갔던 그들의 정확한 도착지가 어디인지 나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워낙 예측이 불가능하고 급박했던 상황이었던 터라 그런 정보들을 공유할 시간이 없었다.

물론 의지 연결을 통해 생각만으로 전할 수도 있었긴 했지만…… 그들이 떠나간 목적지가 결정되었을 시점에는 이미 내가 죽은 후.

그리고 지금은 그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서 의식 연결이 끊어진 상태였다.

덕분에 어떤 방법으로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답답한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컴뱃 레디니스를…… 아니야. 참자.’

여기서 컴뱃 레디니스를 사용해 내게 연결되어 있는 용기사들을 불러낼까 하는 생각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난 이내 그 발상을 접었다.

그들을 내 멋대로 이곳에 불러버리면 공연히 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초에 그런 방법을 쓸 여건이 된다면, 진작 유메미가 공간 이동으로 나를 찾으러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는 건, 지금은 자신들도 여유가 없을 만큼 바쁜 상황이라는 방증이다.

‘설마, 죽은 건…….’

……어쩌면 이미 다들 죽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레아도 있고.’

물론 난 내 동료들을 믿는다.

가이아를 죽이느라 많은 생명력을 소진하긴 했지만, 절대적인 방어 권능을 가진 레아도 있다.

그들은 반드시 때가 되면 나를 찾아올 것이다.

‘지금은 무의 업을 쌓아 올리는 데에 집중하자.’

그렇게 마지막 괴이체를 정리하고 다른 구역으로 움직이려던 찰나.

-신우 형님.

때마침 내게 진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번 기적과도 같이 행해진 소통 이후로 다시 내게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얼마 전.

인지 세계를 초월해 우주를 넘나드는 그에게, 나는 어떤 부탁을 해 두었는데.

-찾았습니다. 형님이 찾는 소년.

그건 바로 발이 묶인 나 대신, 야드가르를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 * *

유메미 일행이 방금 부활한 유신우를 발견하고서 그에게 접근하는 속도는, 찰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빨랐다.

유메미의 단거리 공간 이동을 통해 네 사람이 한꺼번에 그쪽으로 날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우 씨!”

“신우 공!”

유신우가 그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쓱 웃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오랫동안 고독한 전투를 치렀던 그가, 그렇게나 기다려온 동료들을 마침내 만나고서 한 첫 번째 행동은.

-잠시만 거기서 기다려 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거든.

-네?

전음으로 그들을 멈춰 세운 뒤, 칼자루를 움켜쥐는 것이었다.

‘현월, 일섬. 이중정점파쇄.’

번쩍.

곧이어 한순간 모습이 사라지더니, 하늘에 눈부신 섬광이 흩뿌려지고.

파삭!

눈 깜짝할 사이, ‘어떤 거대했던 것’의 사체를 가루로 변하게 했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마물이든 괴이체든 반드시 머금고 있을 체액 한 방울조차 떨어뜨리지 않은 채, 완전히 말라버린 가벼운 가루들만이 쏟아져 내릴 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눈 깜짝할 사이 거대한 괴이체 하나가 소멸해 버린 상황 앞에서, 유메미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종류의 마법적 현상은 물론이고 공간과 차원의 흐름에 대한 자신의 지식으로도 그 현상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방금 유신우의 몸에서 발현된 그 힘이 거대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강력한 힘만으로 어찌하기엔 괴이체는 극히 예외적인 존재였다.

유신우는 우주에 대한 이해를 깔고 있는 유메미조차 설명 불가능한 기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왔구나, 모두들.”

부활하자마자 괴이체 하나를 처치한 그가 그제야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꺼낼 여유를 찾았다.

네 사람은 고생 끝에 찾던 사람을 찾았다는 기쁨에,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드디어…….”

우뚝.

그 안정감도 잠시.

가장 먼저 유메미가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 이곳에 선 모두는 얼어붙고 말았다.

-찾았……다.

거대한 눈동자가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다.

분명 방금 전까지 그런 것은 없었는데.

“아…….”

오싹함에 고개를 들어 올린 유메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구름보다 더 높이, 대기에 가려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남성과 여성의 형상을 한 두 상반신이 한 몸에 붙어 있는 융합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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