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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28화 (328/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28화

레아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희생되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했다.

다만 그 사상에는 두 가지 결점이 있을 뿐.

하나는 더 나은 숨겨진 대안이 있음에도 섣불리 결정을 내려 불필요한 희생을 낼 수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정작 그런 비정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결정자 스스로가 희생되는 게 옳은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난…… 틀리지 않았어.’

레아는 마지막까지 그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자신의 남아 있는 모든 것들을 쏟아부었다.

가이아의 피조물을 마주하고서 오히려 스스로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면 더 큰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뒤, 때를 기다리며 미래를 대비했다.

자신의 피로 탄환을 물들이는 도혈탄을 만들어 시간을 벌고.

그동안 유신우에게 넘겨줄 ‘미래’를 축적했다.

그리고 그 미래가 완성되었을 때, 남아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그로써, 인류 최후의 방주가 완성되는 것이다.

“레아 씨, 지금 뭘 하려는 거예요! 당장……!”

“방해하지 말아줘. 이제 내 차례가 온 것뿐이니까.”

“차례라니…….”

유메미는 반문을 하면서도 레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줄곧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결정을 내려온 그녀를 지켜봐 왔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감정적으로는 그 명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과론적으로는 옳은 쪽으로 흘러갔고, 대안이 없었기에 반대하지 못했을 뿐.

게다가 항상 레아가 옳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때도…… 우릴 버리고 떠났을 때도…….”

그녀가 아후라 마즈다 쪽으로 간 결정은 결론적으로도 옳지 못한 일이었고, 그 논리 도출 과정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살릴 수 있는 인간의 숫자’에만 집착해서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동료를 손쉽게 버리고 떠난다니.

“항상 그런 식으로…….”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숭고한 희생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유메미가 보기엔 결국 자기 생명마저 도구처럼 쓰고 버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아 보인 것이다.

“미안. 이게 나야.”

“…….”

그녀의 몸 주위로 떠오른 혈액의 양은 점점 더 불어나, 용솟음치는 회오리로 변해갔다.

콰직.

머리 위의 높은 천장을 뚫고, 외부의 하늘까지 닿았다.

그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를 말리거나 만류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초조한 눈길로 바라보기만 할 뿐.

애초에 그녀의 절대 보호 권능은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도 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개개인이 떠올리고 있는 생각 또한 그런 상황에 크게 일조했다.

‘방금 그 보호막을 이 영역 전체에 씌울 수 있다고 했어.’

‘우린 그럼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되는 건가?’

‘저 사람 하나만 희생하면…….’

어찌 보면 이기적일 수도 있는 생각들.

하지만 마지막까지 몰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 중에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게다가 여기서 레아의 행동을 막는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녀의 희생보다도 더 나은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책임.

촤아아악!

이윽고 레아의 몸에서 뻗어 나온 선혈은 주변의 넓은 공간을 구형의 막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이 세계, 모든 차원의 그 어떤 존재라도 주인의 의지에 반하는 침입을 할 수 없는 영원의 벽이 펼쳐진 것이다.

쿠쿵.

그리고 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어……? 어?”

“무, 무너진다!”

난데없이 발생한 지진에 방공호의 벽과 천장에 균열이 나타났다.

곧 벽이 무너져 내리고, 구멍 난 천장을 중심으로 파열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모두 이쪽으로!”

유메미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마법으로 건물 안에 원형 보호막을 만들었다.

레아의 것보다는 크기도 작고, 방어 능력도 압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무너지는 건물 잔해 정도의 물리적 충격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사람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아직 남아 있는 물자들을 모아놓은 창고 쪽에도 벽을 둘렀다.

그리고는 변화하는 주변의 상황을 주시했다.

덜컹.

“하늘로…… 떠오른다?”

순간, 땅을 딛고 서 있던 다리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아래의 땅이 하늘로 급격하게 떠오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후우웅!

아니나 다를까, 방공호가 무너지면서 드러난 구멍 바깥으로, 외부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붉게 사막화된 지옥과도 같은 황무지에서,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로.

이들이 위치해 있는 주변 영역이 통째로 날아오른 것이다.

“이럴 수가…….”

“땅이…….”

그 상승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곧 사람들은 무너진 방공호의 벽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 떠오른 땅을 감싼 붉은 보호막의 경계면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곳에서 그들이 본 것은.

“부유하고 있어.”

하나의 거대한 부유섬이 된 피난처의 모습이었다.

* * *

아래쪽의 지상은 여전히 그 괴이체들로 뒤덮여 지옥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지만.

이곳은 그와는 대비되게 어떠한 위협도 없이 평화로운 상태.

“저길 봐! ……저기에 뭔가 있어!”

한편, 이 부유섬에는 또 다른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중앙에 생겨난 거대한 절벽이었다.

땅이 두 갈래로 넓게 갈라지며 그 아래에 있던 지하 공간이 드러난 것이다.

“……성이라고?”

그 지하 공간에는 작은 성이 있었다.

이 시대의 것과는 이질적인, 돌벽을 쌓아 올려 만든 건축물.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서 살기엔 조금 작은, 달리 말하자면 저택을 연상케 하는 크기였다.

이곳의 사람들은 그 건물의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이런 대도시 아래의 방공호보다 더 아래에 파묻힌, 마치 유적 같은 저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사람들 중 그 건물의 용도를 알아보는 이는 소수였는데.

“저건 내성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프리드웬을 타고서 미래로 건너온 과거인들.

한때 클랜이 점유하던 영지가 곧 자신들의 집이었던, 알포드 클랜의 클랜원들이었다.

“저게 있다면 우린……!”

“내려가 보자!”

그걸 알아본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물론 그 과거인들은 모두 전투원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체 능력이 평범한 민간인들은 그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찾았다! 성주의 집무실이야!”

이들이 말한 ‘내성’은 그리 크지 않았기에,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방을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중세시대 풍의 수더분한 인테리어로 뒤덮인, 성주의 집무실.

그 가운데에 위치한 책상에, 한 각성자가 다가가 손을 올렸다.

그러자.

{성 관리 시스템의 잠금이 해제되었습니다.}

“되, 된다! 됐다!”

익숙한 메시지가 떠오르는 것을 보자마자, 그 각성자가 소리를 질렀다.

메시지는 그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기에 다른 이들에겐 그가 허공을 응시하며 난데없이 기뻐하는 걸로만 보였지만.

여기까지 내려온 전투 능력을 갖춘 자들은 대부분이 과거에서 온 자들이었기에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알포드 클랜이 본성을 획득했습니다.}

{점유자: 알포드 클랜}

{소유주: 유신우(클랜 마스터)}

{당신의 접근 권한은 3단계(일반 클랜원)입니다.}

희망이 보인다.

비축 식량이 바닥날 때까지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이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내성의 관리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은, 즉 이 주변 영역이 과거의 ‘성 시스템’에 종속된 영역이라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들은 외부와 단절된 이 보호막 안에서도 시스템의 요소만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멸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여지를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이지스 인터내셔널 지하에 이런 곳이 묻혀 있었다니…….”

“모종의 이유로 이곳을 파묻고 그 위에 도시를 건설한 건가?”

“어쩌면 300년 동안 자연적으로 묻힌 것일 수도 있고.”

사람들은 이 내성이 여기에 있는 이유에 대해 추측했다.

인위적으로 파묻었든지, 아니면 자연적으로 파묻혔든지.

어느 쪽이 되었든 때마침 이곳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게 기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당장 그분들을 데려오자!”

“그분들?”

“그래! 간부들! 아직 마스터는 돌아오지 않았지만……간부들이 온다면 2단계 접근 권한을 열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성 관리가 가능해질 거라고!”

각성자들은 곧장 발걸음을 돌려 유메미 등이 있는 방공호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일반 클랜원들에게는 관리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는 권한이 제한되어 있으니, 간부들을 데려오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절벽을 빠져나와 무너진 방공호 쪽으로 되돌아갔다.

“아델 님! 유메미 님! 저쪽에…….”

그러나 그 각성자들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자마자 침묵해야만 했다.

여기선 감히 큰 소리로 떠들어선 안 될 것 같은, 숭고한 공기가 그 안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레아 씨…… 고마워요.”

유메미가 새카맣게 말라붙은 채 무릎 꿇고 앉은 인간의 해골을 감싸 안았다.

그 새카만 뼈대의 주인은 누구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모든 생명력을 불태워 기적을 일으킨 여신.

친나마스타, 레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방주를 건설하고서 영혼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산화해 버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선지자가 그곳에 있었다.

아델도, 최윤아도, 라이진도.

이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그녀를 애도했다.

* * *

그로부터 몇 주가 흘렀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방주 위에서 지내며, 이곳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생존의 활로를 찾아냈다.

내성의 영지 관리 시스템을 사용해 농토를 생성하고, 그 위에서 농사를 지었다.

무한히 물을 생성하는 우물을 구축해 수원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외에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설비들을 구성해, 이제는 겨우 그럭저럭 비축 식량에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는 모두 영지 시스템상 자원으로 요구하는 골드를 소비함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이젠 골드도 다 떨어졌나…….”

물론 그 시스템이 만사를 해결해 주는 건 아니었다.

지금은 그야말로 기초적인, 겨우 생존만 할 수 있는 수준의 설비밖에 구축하지 못한 상태라 좀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발전이 절실한 상황.

그러나 영지의 발전 수준을 높이려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골드가 필요했다.

십시일반 모은 생존자들의 보유 골드도 이제는 다 써버린 지 오래였고.

레아가 만들어준 이 좁은 방주 영역 내에서는 그만한 돈을 뽑아낼 원천을 아무리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지스 인터내셔널 녀석들, 어지간히도 돈을 꼼꼼히 챙겨서 나갔던 모양이오. 시가지를 다 뒤져봐도 골드를 축적해 놓은 금고는 없더군.”

“애초에 그 돈으로 저 방공호에 물자를 쌓아둔 게 아닐까요?”

“……그런가.”

라이진은 나름대로 자신의 지식을 살려 남아 있는 골드를 찾으려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모양이었다.

“이 안에 무한히 마물이 생성되는 던전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런 때에 마스터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아델의 말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지금껏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유신우.

그가 가진 무한에 가까운 골드와 다이아라면, 이곳의 상황도 급격하게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좋아지는 수준을 넘어 이 세상을 바꿔 버릴 수도 있는 수준의 영향력을 가진 게 바로 그였다.

“하지만…….”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지 않았다.

분명 부활을 했어도 한참 전에 했어야 할 그가.

벌써 몇 달이나 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젠 그가 더 이상 부활하지 못한다고 믿는 것이 더 속 편할 정도.

“……찾아보는 게 어떻겠소?”

그때, 라이진이 제안했다.

“찾아본다니……신우 씨를요?”

“그렇소.”

“하지만 어떻게?”

“그때 레아 양이 건네준 그것……. 그게 우리 ‘미래’라고 말하지 않았소?”

그는 유메미가 품속에 가지고 있는 레아의 마지막 유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미래는 신우 공에게 달려 있고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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