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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27화 (327/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27화

세계가 침식된다.

세상은 예전의 사람들이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모든 살아 숨쉬는 것들은 서로 뒤섞이고 기이하게 뒤틀려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로 바뀌었다.

동식물은 물론이고 마물과 아인종들까지.

그 괴이에 노출된 생물들은 종과 먹이사슬의 구분 없이 살육과 포식을 반복했고.

그럼에도 개체수가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 왕성한 생식활동을 벌였다.

이제 이 거스를 수 없이 거칠게 뒤바뀌는 환경 속에서, 인간은 마치 처음부터 외부인이었던 것처럼 고립된 존재가 되어버렸다.

화륵!

별 불꽃이 칼날에 깃들어 피어오른다.

유메미의 격리 결계로 둘러싸인 아델이 화염을 휘감은 찬드라하스로 달팽이 인간을 베었다.

‘금강염사.’

콰우우우!

크게 휘두르는 참격 끝에서 별 불꽃의 사자가 발현.

산을 연상케 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괴이체가 한순간에 사자 형상의 검압에 짓이겨진다.

덕분에 엎드려 있던 달팽이 인간은 얼굴에서 등껍질이 붙어 있는 허리까지, 사정없이 으깨져 점액질이 가득 찬 신체 내부를 그대로 노출했다.

“사격!”

타타타타탕!

그리고 그 순간, 매복해 있던 최윤아와 총을 든 각성자들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거기엔 원래부터 그녀의 휘하에 있던 거너들뿐만 아니라, 원래 총기가 주 무기가 아닌 각성자들도 끼어 있었다.

심지어 유신우의 용기사들과 라이진까지.

여신의 신격을 얻은 아델, 유메미, 레아급의 실력자가 아니고서야, 지금은 개별적인 병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총기를 사용하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퍼퍼퍽! 퍼퍽!

레아가 밤새도록 자신의 피를 쏟아부어 만든 도혈탄(鍍血彈)들이 드러난 달팽이 인간의 체내에 박히며 등껍질과 신체의 연결부로 파고들었다.

인간 지네를 죽였을 때와 같이, 모든 괴이현상을 차단하는 친나마스타의 보호막을 도리어 공격 용도로 사용한 것이다.

다만 그녀가 직접 달라붙어서 대량의 피를 주입하는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해, 미리 탄환들에 극소형 보호막을 씌워두고 총기로 발사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이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죽일 수 없는 괴이체들이 피신처에 다가오는 걸 막기 위해 억지로 고안해 낸 고육지책이었다.

“위치를 이탈하지 마라! 화력을 집중해!”

제자리에 서서 사격중인 각성자들을 향해 최윤아가 소리쳤다.

여기서 공격을 조금이라도 주저하게 되면, 피격으로 인해 경직된 상태의 달팽이 인간이 약간이나마 발버둥 칠 수도 있다.

그러니 기회를 잡았을 때 한 번에 끝장내야 했다.

“으……아!”

하지만 그녀의 호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너 중 한 명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이 허공을 바라보며 공포에 질린 얼굴을 했다.

실제로는 귀신은커녕 에테르의 흔적조차 나타나지 않았으나, 온갖 괴이로 가득한 지금 이 세상에서 아무런 기미도 없이 갑자기 정신이 붕괴하는 것은 흔히 있었던 일.

“칫!”

사격을 하면서도 아군의 상태를 계속 살피던 최윤아는, 그 각성자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났음을 알아챘다.

그래서 곧장 그에게 총구를 겨눴지만.

“안 돼요!”

그의 연인이었던 한 여성 각성자가 낌새를 알아채고는 앞을 가로막고 섰다.

“비켜, 이 멍청아!”

“하, 하지만……!”

“너 때문에 다 죽는다고!”

타앙!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상 증세를 보이던 남자는 곧바로 뒤돌아서서 아군에게 총을 쐈다.

가장 먼저 죽인 그 아군은 다름 아닌 자신을 감싼 연인이었다.

“망할!”

타탕!

최윤아는 그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죽은 여자를 관통해 그 뒤의 남자를 동시에 맞출 작정으로 쏜 두 발.

탄환은 여지없이 가슴과 머리에 명중했고, 남자는 그대로 몸이 기울어졌다.

타타타타탕!

그러나 그는 끝까지 총기를 놓지 않았다.

이미 심장과 뇌를 관통당해 죽은 상태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을 길동무로 삼겠다는 듯, 방아쇠를 당긴 채로 쓰러진 것이다.

총기의 강한 반동은 그의 팔을 사방으로 휘젓게 만들었고, 덕분에 사선이 아군 진영을 마구 헤집어 놓고 말았다.

“커헉!”

“으아악!”

레아가 만든 도혈탄은 모든 물리법칙은 물론이고 비 물리법칙마저도 무시한다.

각성자들을 커버하고 있던 돌과 콘크리트 잔해 등의 엄폐물은 그 탄환의 전진을 전혀 막아주지 못했다.

하물며 연약한 인간의 육체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방어구마저도.

도중에 멈추거나 굴절되는 일 없이, 끝까지 날아가 수많은 목숨들을 앗아간다.

아군 쪽을 향해 난사된 총알들은 순식간에 진영을 붕괴시키기에 충분했다.

‘틀렸다! 이렇게 되면……!’

최윤아는 다행히 그 사격 궤도상에 서 있지 않아 살아남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우웅!

몸통이 반쯤 뭉개져 사라진 거대한 달팽이 인간이 꿈틀거렸다.

그러자 그 몸으로부터 아군 진영을 가로지르는 두꺼운 일직선 왜곡 공간 역장이 발생하더니.

쩌렁!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영역 전체가 통째로 삭제되듯 소멸하고 말았다.

그 범위 안에 들어 있던 각성자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걸로 화력을 집중하고 있던 아군의 3분의 1이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이대로는 전투를 속행할 수 없어요! 퇴각하겠습니다!

결국 격리 결계를 유지하며 전장을 관망하던 유메미는 후퇴를 결정했다.

그녀는 전음으로 통보를 내린 후, 모두를 이지스 인터내셔널 지하의 방공호로 공간 이동시켰다.

* * *

“…….”

방공호 내부가 적막에 휩싸였다.

처음 타카마 시티에서 이곳으로 피해 올 때는 민간인과 전투원들을 합쳐 약 500여 명의 피난민이 있었지만.

지금 남은 인원은 다 합쳐서 겨우 200명 정도.

그동안 조금이라도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가족과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밖에 나가서 싸웠다.

그렇게 단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산화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니 이 을씨년스러운 고요함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젠 어떡하지?”

그 적막을 깨고 라이진이 입을 열었다.

“달팽이를 각개격파할 마지막 기회가 날아갔소. 만약 그놈이 우리 위치를 파악하고 도주한 소형 괴이체들과 합류해서 공격해 오면…….”

그가 유메미를 보며 대책을 요구하듯 현재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공격을 중단하고 후퇴한다는 결정을 내린 건 유메미였으니 말이다.

“……후.”

그러나 이내 그런 말들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거기서는 그녀가 아니라 누구라도 퇴각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망설이지만 않았으면…….”

그런데 이번에는 최윤아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전의 상황을 복기하는 듯,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는 죄책감 가득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윤아 씨가 잘못한 게 아니에요.”

그러자 유메미가 그녀를 토닥였다.

“거기선 누구라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아뇨…… 어차피 죽을 거라면 내가 먼저 쐈어야 했어요. 애초에 증세를 보이면 가차 없이 죽이기로 했는데, 그걸 다른 사람이 감싼다고 해서 망설이는 건…… 모순이잖아요.”

“우린 기계가 아니에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실수하기도 하고,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 순간의 실수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그리고 이젠 그걸로 우리 전부 다 죽게 생겼고. ‘그럴 수 있다’고 넘기기엔…… 너무 가혹한 벌이라고요.”

너무 가혹한 벌.

그녀의 마지막 말이 여신의 신격을 가진 세 사람에게 깊게 와닿는다.

이 모든 상황들이 결국 태초의 신들인 혼돈과 고대신들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도무지 신이 한 것이라고는 여길 수 없는, 그 먼 옛 기억 속의 잔인한 세상이 다시 이곳에 재현되고 있음을 생각해 보면,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그때는 적어도 그들에게 대항할 수많은 불멸자들과 그들을 선두에서 이끈 파괴신 시바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없다.

오직 악화일로.

일말의 희망도 없이 끝없는 내리막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중인 것이다.

“지난번처럼…….”

그때, 민간인들 중 한 명이 도혈탄을 만드느라 기력을 소진하고 누워 있는 레아에게 다가갔다.

“지난번처럼 우릴 보호막으로 감싸서 지켜줄 수는 없나요?”

대놓고 희생을 요구하는 염치 없는 행동 같았지만, 그 역시 살고 싶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말.

그 물음에는 유메미가 대신 대답했다.

“그건 일시적인 단절에 불과해요. 그것도 개개인을 일시적인 새장 안에 가둬두는 거나 마찬가지라…… 사실상 좁은 관 속에서 말라죽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될 뿐인걸요.”

“그, 그럼 그 보호막을 크게 만들면 되잖습니까! 적어도 우리가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의 영역만 확보해 주면…….”

“이 멍청아. 그게 안 된다고.”

레아의 능력을 이용해 어떻게든 살아날 방법을 제시하려던 민간인은, 아델에게 멱살을 잡히고서야 말을 멈췄다.

아델은 꽤 오래전부터 칼리의 신격을 체화하고 있던 터라, 평상시에도 이렇게 종종 신경질적인 성미가 되었다.

“그런 게 됐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우리가 그것도 생각 못 할 바보로 보여?”

“아, 아니…… 으……억.”

“아델 씨, 그만해요! 그러다 죽겠어요!”

그 민간인은 아델의 투기를 받아내기도 버거웠는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유메미가 나서서 상황을 중재하려 했다.

바로 그때.

“……그 사람 말이…… 맞아.”

지금껏 꼼짝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던 레아가 바짝 마른 입을 열었다.

“레아…… 씨?”

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워 간이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동안 너무 많은 양의 피를 사용한 탓인지, 얼굴이 거의 시체에 가까울 정도로 창백해져 있었다.

별 불꽃의 막대한 재생력으로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생명 소진을 한 탓이었다.

“나 조금…… 물 좀…….”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물을 찾았다.

입이 말라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혹시…… 단 것 있어?”

그렇게 한 모금 물을 마시곤, 군것질거리를 찾았다.

그러자 방금 그녀에게 희생을 요구하던 민간인이 품에서 포장된 초콜릿 하나를 꺼내 건넸다.

“여, 여기요.”

“고마워.”

부스럭.

떨리는 손으로 포장을 벗겨 내고, 한 입 베어 먹었다.

레아는 그걸로 충분했는지, 곧바로 다시 포장지를 감쌌다.

그동안 방공호 내의 모두의 시선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건 방금 전에 그녀가 한 말 때문이었다.

“저, 저기…….”

유메미가 그 말의 의미를 듣기 위해 레아를 보며 운을 띄웠다.

“레아 씨, 방금 그 얘긴…….”

“그 말대로야. ……이 영역을 넓게 감싸는 보호막. 만들 수 있어.”

그 순간,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무수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지만 그 희망 이전에, 근본적인 의문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그럼 왜 지금까지는……?”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왜 지금까지 레아는 하지 않았는가.

진작 영역 보호막을 펼쳤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레아의 손에 있었다.

“……이걸 만드느라.”

그녀는 유메미에게 작은 구슬을 건넸다.

겨우 엄지손톱 크기나 될까 싶은 정도의 크기.

그것은 피를 연상케 할 정도로 짙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너무 오래 걸렸지. 미안.”

“이게 뭐죠?”

“우리 미래.”

레아가 유메미의 손을 감쌌다.

“신우가 오면…… 그걸 전해줘.”

“레아 씨……?”

유메미는 그녀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인 것처럼.

미련을 털어낸 눈빛이었다.

“다들 미안해. 이걸 완성하기 전에는…… 죽을 수가 없었어.”

“무슨 말씀을 하는 거예요? 죽는다니?”

“그래도 다들 잘 버텨줘서 다행이야. 완성했을 때 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어버리면 어떡하나, 걱정했거든.”

“레아 씨!”

그녀는 유메미의 성화에도 아랑곳 않고 생각해 둔 말들을 내뱉었다.

남아 있는 기력을 모두 쏟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유메미, 고마워. 아델, 윤아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대체…… 무슨…….”

“초콜릿 맛있었어.”

이윽고, 그녀의 몸 주위로 검붉은 액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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