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26화
달 표면이 깨지면서 그 안에 들어 있던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알을 깨고 나오는 동물의 새끼처럼, 표피가 꿈틀거리며 살아 있는 하얀 생명체.
그 거대한 질량체인 달 속을 가득 메우듯이 들어 있던 그것은, 거대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달 안에 저런 게 있었다고……?”
아몬은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금껏 엘프들의 기술을 유용해 우주를 개척하면서, 달에 대한 탐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부 구조에 대한 연구는 진작 끝났었고, 심지어 본성인 벨 가이아 쪽 표면에는 악마들이 세운 전초기지도 있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달은 더 이상 미지의 영역이 아닌, 아몬의 영토에 포함된 곳이었는데.
쿠구궁.
갑자기 그 내부가 드러나며 여태껏 알려진 적 없는 존재가 튀어나온 것이다.
마치, 지금 이 순간 갑자기 다른 차원의 존재가 달 내부로 옮겨 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자나기…….
-이자나미…….
이윽고 그 소름 돋는 목소리는 아몬의 머릿속에도 울렸고.
곧 그는 눈앞에 나타난 것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존재하던…… 고대신.’
달 안에 들어 있던 하얀 생명체는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펼쳐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마치 페인트를 뒤집어쓰기라도 한 듯이 새하얀 피부를 가진 거대한 인간.
그 형상은 하나의 하반신을 중심으로, 각각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두 개의 상반신이 샴쌍둥이처럼 붙은 모습이었다.
남매이자 부부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증오하는 기묘한 감정들을 한 육신에서 공유하는.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마침내 그 거체를 완전히 내보인 것이다.
“으…… 으…… 으아아아!”
푸확!
아몬과 한배에 타고 있던 악마 하나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칼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리고 또 다른 악마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고는 어딘지 모를 상대를 향해 연신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고대신의 강림을 목도한 필멸자들은, 그 자체만으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미쳐 버리고 만다.
아인종도 아니고, 살의와 폭력에 훨씬 더 익숙한 악마들조차 거기엔 예외가 없었다.
이는 단순히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감 같은 것이 아니라 생의 의지에 대해 직접적인 간섭이 일으킨 생리현상이었기에 자의로 거부하지도 못했다.
요컨대, 필멸자로서의 생존 본능이 역으로 죽음에 대한 선호로 뒤바뀌고 마는 것 같은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정신력이 약한 녀석들은 저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쿵! 쿠쿵!
-군단장님! 함 내 반란이! 으아아아!
곧 아몬의 함대는 자결과 폭동으로 점철되어 혼란이 일기 시작했다.
출전해 있는 함선들 상당수가 이상 반응을 보이며 서로 부딪히거나 내부 폭발로 붕괴하고 있었다.
츄악!
“이상 반응을 보이는 자들은 모두 죽여라!”
결국 아몬은 함 내에서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이던 부하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이 상태가 지속되도록 내버려 두면 전함이 그에 의해 순식간에 전복되고 말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망설이면 다 같이 죽는다! 동료를 위해서라도 그 동료를 죽여라!”
내부로부터의 붕괴야말로 군진이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위협.
아몬은 단호한 결단으로 함대의 혼란을 수습해 나갔다.
슈우우웅!
그의 디시그마 전함이 최대 추력으로 가속했다.
그리고 전장을 가로질러 아군이 밀집되어 있는 공역으로 접근.
투투퉁! 투웅!
40문의 함포가 제각기 다른 표적을 조준하고선, 고열압선형포를 난사해 댔다.
겉보기엔 단순히 사방으로 아무렇게나 쏘는 것 같았지만, 실은 모든 방향의 포격이 예외 없이 명확한 표적을 지정하고 있는 정밀 사격이었다.
‘괴생물체의 접근을 방어하기 위한 효력사. 동시에 아군 배반자를 요격. 되도록이면 유폭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변화하는 전장 상황을 한 번에 인지하며 모든 상황에 정확한 대응을 가한다.
디시그마 함선은 동체가 아몬의 두뇌와 마력원에 직결되어, 그의 사고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움직였다.
과거엔 고도의 상황 판단 능력으로 전장에서 군단을 지휘하던 그의 능력이, 지금은 함선 조종으로 여실히 발휘되고 있는 중이었다.
‘접근 중이던 인간형 개체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나타난 직후부터. 왜지?’
한편, 사마엘이 출격하게 된 원인인 인간형 개체, 야드가르는 이쪽으로 날아오던 도중에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덕분에 아몬은 그쪽에 대응할 필요 없이 흐트러진 전열을 다듬는 데 집중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갑자기 바뀐 적의 태도에 의아한 것이 사실.
‘설마, 고대신이 저 녀석들과?’
그 순간, 그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난데없이 달 속에서 나타난 저 고대신이, 지금 아군을 공격해 온 적과 한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불행하게도, 너무나도 정직하게 맞아떨어지고 말았다.
쿠구구궁!
거대한 이자나미의 팔이 허공을 휘젓는다.
달과 같은 크기의 인간형 육신이 휘두르는 것인 만큼, 움직임은 멀리서 보기에 느릿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수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단숨에 공간 채로 찢어버리는 고대신의 손짓.
그 범위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할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안 돼!”
겨우 재정비를 할 수 있게 되나 싶었던 아몬의 함대는, 그 한 번의 손짓에 휘말려 반수 이상이 격파되고 말았다.
방금 전 그것이 일으킨 정신공격으로 인한 피해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전멸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지금까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와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던 아몬은.
결국 이 억지에 가까운 불가사의의 연쇄 속에서 절망하고 말았다.
한때 신들을 몰아넣은, 악마 군단장이었던 그조차 눈앞의 고대신 만큼은 감히 상대할 생각 자체가 들지를 않았다.
‘파괴신 시바……. 그자만이…….’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엔 고대의 전설적인 존재.
신 중의 신이라 불리는 시바에 관한 기억이 떠올랐다.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후대 신들을 이끌고, 저런 기괴한 힘을 가진 고대신들을 타 차원으로 몰아냈던, 그 시대의 기억이 말이다.
‘……승리할 수 있다.’
아몬은 또다시 쇄도해 오는 이자나미의 오른팔을 가만히 바라고 있었다.
* * *
“……큭큭. 됐다. 이걸로 끝이다.”
태공망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하게 되어 기쁨을 금치 못했다.
일정량 이상의 정체 엔트로피를 해방시킴으로써 도달하는 임계점에, 드디어 닿았기 때문이다.
‘이제 고대신들이 이 세계에 직접 강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들의 존재만으로 세상의 불멸자들을 제거할 수 있다. 혼돈이 이 세계에 복귀하는 건 시간문제야.’
그는 달에서 깨어나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 이자나기, 이자나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양팔로 스스로의 몸을 감싸 안은 채 웅크리고 있는 이자나기.
반면 난폭하게 날뛰며 양팔을 휘둘러 눈앞에 보이는 필멸자들을 사정없이 소멸시키는 이자나미.
그 무자비한 손짓에 가이아의 피조물인 인간 지네까지 휘말려 소멸당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가이아가 죽어버려 쓸모없어진 것들이기에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나저나 가이아가 죽다니, 원 세계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고대신의 죽음은 분명히 유신우 측과 관련이 있다.
이제 와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능력과 의지를 가진 자는 그뿐일 터이니 말이다.
그런 생각 때문에 태공망은 조금 불안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나.
‘……설령 앙그라 마이뉴 그놈이 고대신마저 잡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진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아직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고대신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뒤엔 혼돈도 있어.’
한 번 물꼬가 터져 버린 둑처럼, 이제 이 세계의 ‘원상복구’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태공망이 그토록 바라던 ‘태초로의 복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버린 셈이다.
투퉁! 퉁!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던 금색의 함선들이 이자나미를 상대로 마지막 발악을 펼친다.
저 거대한 몸집을 가진 고대신의 위용 앞에선, 제아무리 대단한 화력의 광선포라 할지라도 한낱 누에가 내뿜는 실처럼 보일 뿐.
그 초라한 공격들은 이자나미의 육체에 그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시간 끌 것 없이 단숨에 끝장냈으면 좋겠군, 이자나기.”
적의 수가 줄어들면서 전투가 지리멸렬해지고 있다.
이자나미의 손짓은 위력과 범위, 양면에서 압도적이었지만, 아무래도 직접 몸을 움직이는 공격이다 보니 조그만 개체들을 하나하나 잡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태공망은 이자나기가 권능을 발현하도록 요구했다.
-그건 싫다! 이자나기! 멈춰라!
그 말을 들은 이자나미는 기겁하며 자신의 남편이자 오빠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말렸지만.
이자나기는 기어이 태공망의 부름에 화답했다.
스르륵.
고대신의 두 상반신 중 한쪽, 남성의 형상을 한 존재가 드디어 자기 몸을 감싸고 있던 양팔을 벌렸다.
그리고 지그시 감고 있던 두 눈을 뜨자.
번쩍.
번쩍번쩍번쩍번쩍번쩍.
이질적이리만큼 새하얀 피부의 전신에서, 무수히 많은 눈알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시선에 닿는 모든 존재들을 관음하는, 부패의 눈동자.
-끼아아아아악!
그 눈동자들의 전 방위 시야에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건 물론 이자나미다.
그 순간 이자나미는 고통에 찬 비명 소리를 내질렀고, 그녀의 온몸은 붉게 썩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자나기의 몸에 피어난 눈동자는 바라보는 모든 대상을 그처럼 썩어 문드러지게 만드는 치명적인 눈이었다.
울룩. 불룩.
그리고 그것은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가리지 않았다.
물질과 비물질조차 가리지 않았다.
눈을 마주친 악마들의 살아 숨 쉬는 육체는 물론이고.
그 악마들이 타고 있는 함선의 금속마저 썩어 문드러지더니 한순간에 폭발했다.
콰쾅!
심지어 그 함선을 보호하는 마나 배리어조차 붉게 부패했다.
이자나기의 눈은 질량이 존재하지 않는 에너지마저 썩게 하는 극독의 저주였다.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단 한 사람, 혼돈으로부터 인과율 무시의 보호를 받는 태공망뿐.
“그거면 됐다. 이제 여긴 더 이상 볼 일 없어.”
이윽고 태공망은 이 공역에 살아 있는 존재가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
감히 뭣도 모르고 자신에게 덤벼들던 이 악마들의 우두머리인 아몬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저 멀리 본성인 벨 가이아와 주변 넓은 우주 공간에는 여전히 악마 함대들이 남아 있었지만.
굳이 그런 피라미들까지 찾아가 처치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저기에 이 세상의 엔트로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만한 존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유신우가 무슨 짓을 벌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음?”
그렇게 이자나기, 이자나미와 함께 차원을 도약해 원 세계로 돌아가려던 찰나.
“저 녀석, 아직도 살아 있었나?”
그의 눈에 야드가르가 들어왔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강림한 직후, 그다음 명령이 없었던 탓인지 제자리에 가만히 멈춰선 상태였다.
“용케도 죽지 않았군. 혼돈의 인과 무시 보호가 이 녀석에게도 적용됐나 본데…….”
태공망은 야드가르에게 다가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야드가르는 그에게 들고 있던 파라슈를 건네주었다.
“이젠 필요 없지. 고대신이 직접 강림할 수 있게 된 이상, 불멸자를 죽일 수단은 차고 넘친다.”
그리고는 야드가르의 체내에서 별의 불꽃을 도로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수고했으니.”
각성자는 물론이고 신과 악마마저 압도하는 능력을 갖게 해준 힘.
그 원천인 별 불꽃이 모두 빠져 나가는 순간, 야드가르는 지극히 평범한 10살 소년이 될 뿐이다.
“……컥! 커헉!”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평범한 인간에겐 극히 치명적인 우주공간에 그 소년을 남겨둔 채.
“편히 쉬거라. 흐흐.”
태공망은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