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22화
지금 저 인간 지네 괴물은 나와 함께 유메미에 의해 공간 격리 결계로 묶여 있는 상태.
그렇기에 레아는 아무리 창을 휘둘러 봐도 저것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
아예 위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푸확!
그런데 레아는 그것에게 닿기 직전, 창으로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단절 보호막을 만드는 권능을 사용한 것이다.
촤아아악!
사방으로 튀는 피가 레아와 지네를 중심으로 큰 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원래는 대상자 개개인을 겨우 가둬놓을 수 있을 정도 크기일 텐데, 이번에는 그것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둘러싸는 보호막이었다.
파캉!
그리고 유메미에 의해 연결된 격리 결계는 그 영역 내에서 그대로 소멸.
유메미의 공간 능력을 상쇄시키고, 공중에 온전히 자신과 적 둘만을 저 막 안에 가둬놓은 모습이 되었다.
“아파아아아아아!”
‘지네가…… 더욱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 지네는 다시금 처음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처럼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아니, 그때보다 훨씬 더 괴로워하는 걸로 보였다.
카가가가각!
마치 당장 바깥으로 내보내 달라는 듯, 안쪽에서 보호막의 벽면을 저 무수한 팔로 긁어댔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표면에는 내게 가했던 강제 공간 도약 공격처럼 순간적인 왜곡장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레아의 보호막은 그대로 건재했지만 말이다.
‘모든 공간 변형 공격에 대한 절대 우위……. 그게 친나마스타의 권능인가.’
실로 위력적인 권능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단점이라면 적극적인 공격 용도로 활용하기는 어려운 보호막 형태라는 것, 또 하나는…….
“쿨럭! 크흡!”
사용자인 레아가 자신의 생명력을 극한까지 갈아넣어야 한다는 것.
저 피의 원을 펼치는 것으로 그녀의 기력은 이전보다 훨씬 큰 폭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내게 전해받았던 별 불꽃이 그녀의 몸 안에서 빠르게 생명력을 회복시켜주고 있을 텐데도, 그 이상으로 출혈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별 불꽃이 하는 일은 그저 그녀의 신체 붕괴 속도를 늦춰주는 데에 그칠 뿐.
어째선지 오히려 그 많은 사람들에게 보호막을 씌웠던 것보다 더 큰 부담이 가해진 모양이었다.
‘개수를 늘리는 것보다는…… 크기를 키우는 데에 훨씬 많은 양의 피를 사용하나 보군.’
“크윽…….”
그런 상태에서도 레아는 어떻게든 몸을 추슬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트리슈라를 두 자루로 만들어 양손에 각각 쥔 채 지네를 향해 접근했다.
‘레아! 거기까지면 충분해! 그 안에서 저 녀석을 상대하는 건 내가…….’
방금 전보다 훨씬 유리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저 괴물의 힘은 여전하다.
노리며 파고 들어오는 공격이 아니더라도, 발버둥 치는 저 손에 닿기라도 하면 레아는 빈사 상태가 될 게 자명한 일.
그래서 난 그녀와 바통 터치를 하자고 말했으나.
“가이아는…… 내가 죽인다.”
그녀는 또다시 저 이름을 언급했다.
신세대 불멸자들에 의해 쫓겨난 고대신.
대지의 어머니라 불리며, 꼭 온화한 성품을 가졌을 것만 같은 이미지를 가진 그 신의 이름을.
저 추하기 그지없는 흉물을 바라보며 불렀다.
다시금, 그녀의 눈에서 레아가 아닌 다른 존재의 집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친나마스타…… 지금 저건 레아가 아니야.’
그녀와 연결된 인지를 통해, 레아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들이 내게로 흘러들어 온다.
아주 먼 옛날의 여신이 당해야만 했던 비극.
소중한 사람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자기 자신은 진화라는 명목으로 온갖 생물들과 강제로 합쳐져 기이한 괴물로 화하는 개조를 당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러, 레아로서의 기억에는.
예루살렘 지하에서 수많은 인간들을 강제로 마병으로 개조하는 데에 그녀의 권능이 사용된 현장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그 흉물스러운 융합체들은 모두 가이아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저것도.
“이 안에선 아무것도 못 빠져나간다. 네 의식은 그 안에 갇혔어. 네가 그렇게 쉽게 죽이고 폐기하던 실험체에.”
“싫어어어어어!”
고통스러워하는 지네의 의식이 전보다 훨씬 더 선명해졌다.
저기서 퍼져 나오는 혐오와 공포의 오러는 지능 없는 괴물의 것이 아니라, 명백히 사고하고 판단하는 오래된 존재의 그것이었다.
* * *
가이아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을 괴기한 형상으로 뒤섞고, 그 몸에 자신의 의식을 연결해 시험하는 짓을 저질렀다.
물론 그 상태에서 모종의 이유로 죽게 되면 죽음 그 자체와 그에 동반되는 고통은 고스란히 육체의 소유자의 것.
가이아는 그런 공포와 고통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수많은 생명들을 소모품처럼 희생시켰다.
친나마스타와 그녀 주변의 사람들 역시 그런 ‘시험’의 희생자였고 말이다.
“이제 그 죽음을 네 스스로 느껴라.”
그녀의 보호막은 지키고 싶은 자들을 지키려는 정의감의 발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이아를 척살하기 위해 자신의 피로 만든 결전 비기이기도 했다.
언제나 죽음 직전에 자신의 의식만 쏙 빠져나가는, 미꾸라지 같은 가이아의 능력을 모두 방해하는, 절대권능방어기.
-내, 내가…… 이 하찮은 피조물의 몸에 갇힌 채로 죽는다고?
방금 전까지 인간 지네가 뿜어내던 공포심과 고통은, 저 몸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 무수한 희생자들이 겪는 트라우마였지만.
지금부터 나오는 것은 저것을 창조한 창조주, 가이아 스스로의 의지에서 나오는 감정이었다.
“그게 바로 너다. 네가 그렇게 손쉽게 주물러 대던 피조물의 육체. 넌 그 흉물스러운 인간 지네로서 죽는 거야.”
“싫어어어어어!”
가이아의 비명이 지네 괴물의 입을 통해 뱉어져 나온다.
죽음에 대한 공포.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
하찮게 봤던 상대방에게 흉측한 몰골로 당하고 마는 굴욕감.
그 모든 부정적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
본체와 연결되어 있던 의식이 끊어졌으니.
가이아의 의식은 이 몸 안에서 독립적인 하나의 자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네게 당했던 사람들의 고통을 그대로 느껴봐.”
레아의 등 뒤에 격창술로 형성된 무형의 창들이 나열된다.
그것들은 모두 트리슈라와 똑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신을 살해한다는 시바의 의지가 깃든 투창.
휙! 퍼엉!
그녀가 왼손에 들고 있는 트리슈라 하나를 던지자, 자루 부분에서 청류 폭발이 발동되며 급가속했다.
동시에 그녀의 등 뒤에 떠올라 있던 21자루의 무형창들도 한꺼번에 곡선 궤적을 그리며 인간 지네에게 날아갔다.
“꺄아아아아!”
지네는 곧 괴성을 지르며 공격적인 파장을 뿜어냈다.
투콰쾅! 콰앙!
파장에 닿은 트리슈라와 무형창들이 허공에서 폭발하며 격추당한다.
지네는 이 보호막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데미지를 입고 있지만, 그래도 저 화력만큼은 여전하다.
-날 밖으로 보내줘!
가이아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레아의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나 레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새 폭발의 화염 속에 자신의 몸을 숨긴 채, 창 한자루와 함께 단신으로 지네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죽어!”
퍼엉!
청류 폭발의 발동과 함께 내지르는 창의 속도가 급가속하며, 인간 지네의 얼굴 부위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싫어어어어!
“싫어어어어!”
가이아의 의지가 깃든 인간 지네는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자신의 팔로 얼굴을 감쌌다.
그러자 두 팔뚝 위로 불투명한 역장이 펼쳐졌다.
카앙!
고속으로 파고 들던 레아의 창은 마치 단단한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역시…… 넌…… 흐흐흐!
상황을 파악한 가이아는 공격을 실패한 레아를 바라보며 웃었다.
곧장 지네는 교차시켰던 팔을 움직여 레아를 향해 뻗었다.
유신우에게 사용했던 것과 같은 공격.
공간을 왜곡해 상대방을 밀치는 그 기술을 사용하려 했다.
레아는 이미 대형 단절 보호막을 펼친 것만으로 생명력 회복에 지장을 겪고 있는 중인데.
그런 상태에서 이런 공격을 맞으면 어떤 꼴이 될지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니…….”
그럼에도 레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벌리고는, 더욱 가까이 파고들었다.
“……네가 지는 거야.”
투콱!
뒤에서 날아온 마지막 한 자루의 무형창이 레아의 등을 꿰뚫고, 지네의 가슴팍에까지 꽂혔다.
둘은 그걸로 마치 꼬챙이에 꿰인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아!
스르륵.
레아의 가슴팍에서 흘러나온 피가 트리슈라의 자루와 날을 타고 지네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녀의 피가 그 길고 긴 괴물의 몸속 혈관을 장악하는 건 순식간.
“무섭다고 무작정 막을 게 아니라, 크로스 카운터를 노렸어야지. 그러면 네가 이겼을지도 몰랐는데.”
-안 돼!
쩌저저적!
곧 혈관을 타고 들어간 레아의 핏방울들이 무수히 많은 단절 보호막의 알갱이들을 형성하고.
체내에서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는 절대 권능 방어의 차단 덩어리들은 가이아의 의식이 깃든 인간 지네의 몸을 사정없이 망가뜨렸다.
흉측한 몰골의 그 괴물은 전신의 혈관들이 풍선처럼 팽창하다.
“아…… 으가가각.”
퍼퍼퍼퍽!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내부 폭발에 당하며 터지고 말았다.
“네 피조물의 몸속에 갇힌 채로 죽어라.”
레아는 그렇게 붕괴되며 스러져가는 가이아를 무서운 눈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 * *
두두두두.
레아의 정면으로 인파가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무수한 발걸음이 천지를 무너뜨릴 듯 울렸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사람들.
그들 중에는 인간도 있었고, 인간이 아닌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종족을 막론하고 그 모든 사람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아파…….”
“죽기 싫어…….”
그건 바로 다들 심각하게 다친 상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당장 죽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치명적인 부상을 말이다.
“다들…… 이게 어떻게…….”
뚝.
눈앞에 수많은 부상자들을 발견하고서 걱정스러운 투로 레아가 입을 연 순간, 고통에 신음하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마치 음소거라도 한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이목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대의를 위해.”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곧이어 그들이 한마디씩 내던진 말들은, 그녀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문장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진 자리에서 결정의 기로에 섰을 때, 입버릇처럼 내뱉던 그런 말들.
그 말들이 지금, 레아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그건…… 어쩔 수 없었…….”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런 결정을 내릴 때마다 언제나 딜레마에 빠졌다.
사람의 목숨은 숫자로 셀 수 없을 만큼 고귀하다지만.
의사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목숨을 숫자로 계산해야만 하니까.
죄책감을 무릅쓰고 하나를 선택했다.
그 선택이 옳았는가, 틀렸는가는 결과론적인 이야기.
“그럼 너도 희생해.”
“네 주변 사람들도.”
“네 자신도.”
언젠가는 대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사람이 자신인 차례가 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도 과연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일관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신념에 따라 다가오는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게 가능할까.
-……이동!
-아직…… 물자…… 안 됐…….
-……람들 ……먼저 ……내!
귓가에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레아는 그 소리에 눈을 떴다.
쾅! 투쾅!
이어지는 폭발음과 진동.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것은.
“크어어어어!”
수많은 빌딩들 사이로, 가이아의 피조물로 보이는 괴생명체 십수 체가 날뛰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