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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21화 (321/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21화

우리가 도착하기 바로 직전까지 누군가가 살았던 것 같은 흔적들.

실제로 인간의 마력 자국도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주변에 서식하고 있는 다수의 강력한 마물들이 내뿜는 마력들로 인해 그 자국도 거의 휩쓸려 사라지긴 했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평범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소량의 마력 자국이 남아 있다는 건, 최근까지 이곳에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는 방증.

난 이 흔적들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타카마 시티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메미를 대동하고서 이 성터로 돌아왔다.

“확실히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흔적은 맞아요. 여기 집기의 상태만 봐도 그렇고, 마력 자국은 더 확실하게 그걸 말하고 있네요.”

“이 흔적이 생긴 지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있나?”

“이 위치가 이곳의 사람이 남긴 마지막 흔적인 것 같은데…….”

그녀가 이 성터의 정 가운데에 서서 말했다.

“아마도 길어봤자 이틀 내지는 나흘?”

“뭐라고?”

생각보다 기간이 훨씬 짧았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이런 대난리가 벌어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의미가 된다.

마물 창궐은 물론, 하늘의 균열에서 무색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후에도 여기에 이 열악한 장소에서 누군가가 거주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내가 알기로는 이런 형태의 거주가 불가능해진 지는 꽤 오래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원래 내가 살던 시대인 300년 전이라면 모를까, 이 시대에 그런 건 불가능했다.

주거 편의성이나 생산력 등의 자잘한 요소들을 떼어놓고 봐도, 공성 보호막의 성능 자체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걸로는 현시대 수준의 마물들의 공격력을 방어해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사람들은 자체적인 기술 발전으로 이뤄낸 공성 보호막을 사용했고, 그 안에 조성된 소수의 도시에서만 거주하게 되었는데.

대체 이곳 사람들은 무슨 수로 여기서 바로 며칠 전까지 살아남았다는 뜻일까.

“하나 떠올릴 수 있는 건…….”

유메미는 이에 대해 자신만의 가설을 세웠다.

“다른 차원에 존재하던 위상이 통째로 이곳에 덮어씌워진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위상? 그건 또 무슨 소리지?”

“그러니까, 다른 차원에 존재하던 성이 이곳에 번쩍, 하고 갑자기 여기에 나타났다는 거예요. 멀쩡하게 잘 살던 타 차원의 사람들이 난데없이 이런 세상으로 납치되어 온 거죠.”

예전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치부할 법한 소리였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충분히 그럴 법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혼돈의 영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갔고, 세상은 그 영향으로 붕괴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것 역시…… 혼돈 때문이겠지?”

끄덕.

유메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대화를 그 존재가 들을까,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한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한편, 내 머릿속엔 또 다른 의문을 떠올랐다.

“그거야 물론…… 이 주변의 마물들에게 당하지 않았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게 맞겠지만.”

나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식기나 의복 등의 주거 흔적들 사이를 살펴보았다.

땅을 파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체나 혈흔이 말이다.

“그랬다면 분명 핏자국이 남아 있을 거야. 마물들이 아무리 식성이 좋다지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서 사람을 먹어치운다는 건 불가능해.”

마물이 그런 짓을 할 이유는 없겠지만, 하다못해 마법으로 시신을 소각한다 하더라도 잿가루나 그을음 등의 자국이 남게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엔 그런 아주 작은 흔적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엉망이 된 잔해 사이에 남아 있는 수많은 물건들 중에 불에 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즉, 처음부터 여기엔 사람이 없이 장소만 전송되어 왔다는 거지.”

“아니면 도착한 후에 어딘가로 떠났거나요.”

내 결론에 유메미가 사족을 덧붙였다.

물론 난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사방에 마물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민간들이 몰살당하지 않고 떠났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크화악!

투콱!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마물들이 우리 냄새를 맡고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우리야 그것들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갖췄다지만, 어지간한 민간인이나 각성자들의 능력으론 어림도 없는 일인 것이다.

“신우 씨.”

그러던 와중에, 유메미가 뭔가를 발견한 듯 염력으로 부서진 잔해들을 파헤치며 나를 불렀다.

“뭐라도 발견했나?”

“여기.”

그곳엔 땅속에 파묻힌 사람의 팔 일부가 드러나 있었다.

그것을 자세히 보려 가까이 다가가자, 유메미가 내 옷깃을 붙잡았다.

“가까이 다가가진 마세요. 뭔가 이상해서요.”

“음…….”

그녀의 말대로 그건 정말 이상했다.

분명 사람의 팔인데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력의 흔적도, 에테르의 흔적도.

마치 마네킹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진짜 사람의 피부였다.

‘피가 흐른다?’

심지어 시력을 극도로 끌어올려 살펴보니, 피부 아래의 혈관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건 저것이 살아 있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통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꿈틀.

“떨어져!”

그 손이 움직인 순간, 나는 유메미를 밀치며 흑검 아지다하카를 꺼내 들었다.

* * *

퍼엉!

검에 강한 압력이 가해지는 순간, 나는 제자리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허공으로 공간 도약을 ‘당했다’.

물리적인 힘으로 밀려난 게 아니다.

강제 공간 도약으로 위치가 변경된 것이다.

퍼퍽.

곧이어 칼자루를 붙잡은 내 두 손에서 팔꿈치에 이르는 부위까지, 피부와 근육이 모조리 뜯겨 나가 뼈만 남은 상태가 되었다.

이 강제 공간 도약 기술을 검으로 막은 충격이 양손에 전해진 것이다.

스르륵.

물론 난 용혈을 통해 금세 결손된 신체를 회복해 낼 수 있었다.

‘아지다하카로 막았는데도 이 정도라고……?’

아후라 마즈다와 사투를 벌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오히려 그때는 내 쪽의 기량이 훨씬 더 우세했다.

그런데 지금은 난데없이 나타난 땅속에 파묻힌 인간의 팔 하나가 내게 이 정도까지 상처를 입힌 것이다.

‘저건?’

쿠르르륵.

곧이어 저 아래서 그 묻힌 팔의 정체가 드러났다.

눈에 검은자위가 없는 섬뜩한 얼굴을 가진 알몸의 인간이 땅을 파헤치고 기어나온다.

쿠르르륵.

그리고 그 밑에서 또 다른 팔 한 쌍이 튀어나오고.

쿠르르륵.

한 쌍, 두 쌍, 세 쌍…….

계속해서 새로운 팔들이 튀어나온다.

‘지네…….’

그 모든 팔들은 제각기 다 다른 개체의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몸통.

‘인간 지네……?’

그 셀 수 없이 많은 팔들은 하나의 몸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상반신을 일렬로 이어 붙인 듯한 하나의 몸통 말이다.

“아아아아아아!”

“윽!”

그 괴물은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그 자체로 하나의 물리력을 행사할 만큼 강렬한 비명 소리.

그러나 그건 우릴 공격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다.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저 지네 형태의 괴물은 바깥으로 몸을 드러내자마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수십 쌍에 달하는 손으로 온몸을 감싼 채로 말이다.

저 비명소리 역시 고통 때문에 내는 것 같았다.

-기분 나빠……. 사람과 비슷하게 생겨서 더더욱.

유메미의 생각이 내게로 전해져 왔다.

그녀의 말대로 저건 정말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고, 그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극도의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

물론 진짜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다.

영혼도, 마력도 들어 있지 않은 빈 껍데기.

어느 초월적인 존재가 만든 장난 같은 피조물에 불과한 것이니 말이다.

‘유메미, 나와 저 녀석을 주변 공간에서 격리해 줘.’

난 곧바로 유메미에게 지원을 부탁했다.

그러자 땅 위에 서 있는 그녀의 몸에서 일전에 봤던 공간 균열의 선들이 뻗어 나와 나와 저 괴물의 몸을 감쌌다.

이걸로 저 지네 괴물과 나는 단둘이 현실로부터 격리된 차원에 들어서게 되었다.

‘달그림자 검식, 파생형 현월.’

그리고 제자리에서 흑검 아지다하카를 휘둘러 견제 기술을 사용했다.

지상을 향해 쏘아냈음에도 하늘을 가를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초승달 검기가 칼날에서 발출되었다.

서걱!

간결한 참격음과 함께 허리가 통째로 갈라지는 인간 지네.

‘몸체가 길면 맞추기도 쉬워.’

검기는 그대로 지면을 통과해 사라졌다.

유메미의 능력으로 내가 이 세계와 격리되어 있는 이상, 내 힘은 같은 위상에 존재하는 저 괴물 이외의 것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쿠르르륵.

그런데, 지네는 내 현월에 허리가 관통되었음에도 그 부위가 절단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활발하게 움직였다.

“스아아아아!”

그리고 아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소리를 내며, 허공에 떠 있는 나를 향해 기어왔다.

마치 땅을 밟고 움직이는 것처럼 허공을 내디디면서 말이다.

‘피해야……!’

난 곧장 날개를 펼쳐 그것에게서 멀리 떨어지려 시도했지만.

이상하게도 간격은 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가까워지다가, 마침내는.

‘달그림자 검식, 만월청영……!’

콰앙!

아까처럼 내게 손을 뻗어 강제 공간 도약 공격을 날렸다.

“커헉!”

위력은 한 층 더 강해졌다.

이번엔 피격 직전, 단순히 막아내는 게 아니라 만월청영을 사용해 상쇄시켰음에도, 들어오는 충격이 커진 것이다.

덕분에 내 몸의 우반신이 거의 통째로 날아가고 말았다.

‘몸이…… 더 길어졌다.’

그리고 난 저것의 변화를 눈치챘다.

저 지네는 지금,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 훨씬 더 길어진 몸통을 가진 채였다.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아래쪽 부분은 족히 수백 미터는 되어 보였다.

‘공격을 받아낼 때마다 길어지는 건가?’

저 녀석은 내가 현월과 만월청영을 날릴 때마다 몸통의 길이를 늘렸다.

처음엔 뭔가를 하려고 스스로 늘리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내 공격을 맞으면서 커지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에 따라 강해지기까지 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냥 공격은 통하지 않아. 그렇다면.’

{마궁 피나카 소환}

{파라슈 장착}

그래서 이번엔 공격 수단을 바꿔보았다.

딱히 회피 능력이 뛰어나 보이지는 않는 것 같아 보였기에, 그냥 파라슈를 쏴도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피잉!

피나카의 시위를 끝까지 당겼다가 놓자, 마력 화살 형태로 구성된 파라슈가 지네를 향해 날아간다.

지네는 역시나 피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후웅.

그리고 그 몸통의 제일 위에 달린 머리를 관통.

하지만 타격음은 없다.

‘에테르가 없는 존재라서 통하지 않는 건가.’

파라슈는 영혼을 소멸시키는 무기였기에, 에테르를 몸에 담지 않은 저 껍데기에겐 효과가 없는 모양이었다.

‘젠장. 이게 무슨…….’

난데없이 나타난, 황당할 정도로 강한 적.

그 대단한 권능을 품고 있는 무수한 신들과 싸울 때에는 적어도 대적할 수는 있었는데.

이 기괴하게 생긴 빈 껍데기는 그런 엄두조차 나지 않게 만든다.

대체 어디서 이런 게 만들어졌단 말인가.

-내가 간다!

‘레아?’

대안 없는 적 앞에 무너지려던 찰나, 머릿속에 레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이 성터 내 다른 구역의 흔적들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이쪽에 전투가 일어난 걸 알아채고 온 모양이었다.

‘다가오지 마! 위험해!’

물론 처음부터 그녀를 부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건 굳이 싸움에 휘말리게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레아의 신격인 친나마스타는 직접 전투에 참가하는 것보다 사람들을 지키게 하는 쪽이 더 나은 능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하고서 끝까지 달려왔다.

그러곤 기어이 지네의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는 어떤 종류의 집념이 들어 있었다.

레아의 것이 아닌, 다른 존재의 집념이.

-……가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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