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17화
나를 본래의 세계로부터 밀어낸 그 날개.
저것에 무방비하게 닿으면 그것만으로 존재의 소멸을 겪게 된다.
그에 대항하는 고도의 공간 굴절기인 멸절 파슈파타를 사용하면 그런 최악의 상황만은 막을 수 있으나, 일전에 그랬던
것처럼 시공간의 끝으로 튕겨 나갈 것이다.
맞서지 않아도, 맞서도 모든 상황에서 그 상대를 불리하게 만드는 최악의 절대 우위 병기.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직전 전투 상황에서 적용되는 이야기다.
‘우리도 새로운 걸 가져왔거든.’
나는 자력으로 시공간의 끝으로부터 벗어났다.
유메미는 공간의 이치를 이해한 마탄기의 신격을 개화해 냈다.
그동안 혼돈의 날개에 대항할 수단을 차곡차곡 쌓아온 우리에게, 같은 방식의 공격이 또다시 통할 리가 없는 것이다.
“유메미, 아델을 공간 왜곡으로부터 보호해 줘.”
“현실 존재 가능성 확정 말씀이시죠?”
“……어. 그래, 그거.”
그녀의 머릿속에는 세계의 지식이 들어 있다.
가능성이라는 비실체의 개념을 대체 무슨 수로 확정 짓는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탄기의 지식에 대한 이해를 가진 그녀라면 그런 비현실적인 일도 가능할 것이다.
콰드드득.
바위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유메미의 손끝에서 공간 균열이 뻗기 시작했다.
틈이 벌어지지 않는 빗금들이 허공에 선을 긋듯이 나아간다.
목표는 아델의 신체.
그 목적지에 닿자마자, 빗금들은 그녀의 몸을 이리저리 감쌌다.
마치 아델의 몸 전체에 금이 가 있는 듯한 모습.
“크아아아!”
콰우우!
그 균열들은 돌진하는 그녀의 움직임을 일절 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후라 마즈다의 등 뒤에 나타난 혼돈의 날개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다.
투쾅!
아델이 휘두른 칼리의 검.
급하강하며, 머리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간결한 종베기가 아후라 마즈다의 몸체에 작렬한다.
아후라 마즈다는 그에 대항해 날개를 앞으로 접어 자신의 몸을 감싸는 동작을 취했다.
그렇게 검과 날개가 부딪치는 순간.
일렁.
아델 주위의 공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 듯 울렁거렸다.
금방이라도 공간이 찢기고 뒤틀려서 그녀를 시공의 끝으로 날려버릴지도 모를 것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흡!”
그 순간 아델과 균열의 실로 연결된 유메미가 펼쳤던 손끝을 움켜쥐며 몸쪽으로 당겼다.
마치 인형에 연결된 실들을 강하게 집어 당기는 듯한 동작.
물론 그 동작으로 정말 아델을 끌고 온 것은 아니었으나.
파앗!
금방이라도 뒤틀릴 것처럼 울렁거리던 공간이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아델은 저 날개와 부딪히고도 나처럼 외부 공간으로 튕겨 나가지 않은 것이다.
‘가능성의 확정……. 놀랍군.’
마탄기의 신격으로서 공간 변형의 이해도를 갖춘 유메미라면 이런 정도의 공간 조작은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광경을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되자,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차원 도약으로 시공의 끝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저렇게 원하는 방향으로의 인위적인 조작은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끈질긴 놈들!”
아후라 마즈다는 자신과 맞붙고도 멀쩡히 실체를 유지하는 아델을 보고서,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더욱 분노했다.
그는 자신의 반대쪽 날개를 휘둘러 충격파를 발산했다.
“이쪽으로 온다!”
이번에 그가 노린 건 자기 바로 앞에 있는 아델이 아닌 바로 후위에 있는 우리 쪽.
아무래도 이쪽의 후방 보조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겠지.
아델을 보호하는 유메미의 능력도 그렇고, 자신의 머리통을 조준하는 내 활도 거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충격에 대비해!”
{포스 필드 - 카트반가 강화}
투쾅!
묵직한 충격파가 우리 앞에 펼쳐진 찬드라하스 장벽 너머로 전해져 온다.
닿기 직전, 유메미가 펼친 또 하나의 보호막이 2중으로 위력을 감쇄시켰음에도 온몸에 저릿함이 느껴질 정도.
물론 그 강력한 2중 보호막 덕분에 겨우 그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
피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은 것이다.
‘넌 단 한 번의 공격 기회를 날린 거다.'
아후라 마즈다의 이 판단은 극히 잘못된 것이었다.
차라리 이 공격을 우리가 아니라 아델에게 행했다면.
그녀와 뒤엉키는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갔다면.
나와 유메미의 역할은 계속 견제와 보조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을 터다.
하지만.
‘멈춰 있다…… 바로 지금!’
아후라 마즈다는 왼쪽 날개로 아델의 돌진을 막은 채 오른쪽 날개를 우리에게 휘두르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즉, 스스로 발목이 붙잡힌 채 제 자리에 고정된 상태 속으로 빠져들어 간 것이었다.
당연히 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조준.
피잉!
그리고 당긴 채로 유지하고 있던 시위를 놓았다.
피나카로부터 한 발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발사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하급 마법인 매직 애로우를 시전한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저 화살에 담긴 건 그런 수준 낮은 마법 따위가 아니다.
죽음. 에테르의 소멸.
손도끼 형태로 휘둘러지는 파라슈의 위력이 저 화살 안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것이다.
‘기술 시전이 불가능해 제압 후 초근접 거리에서 마무리하는 용도로만 쓰이는 파라슈를, 시위에 걸어 원거리 사격…… 그것만으로 엄청난 위력의 병기가 된다.’
직격당하는 순간 반드시 죽는다.
신을 살해하는 활.
다른 무구와 결합해 온갖 새로운 기교를 구사하는 피나카의 바리에이션 중에서도 최강의 형태.
그 한 발의 사격이 아후라 마즈다의 심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조그마한 한 발의 화살을 보고는 동공이 커졌다.
그 안에 담긴 힘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알아챈 모양이었다.
“젠장!”
파앙!
그 순간, 아후라 마즈다의 등 뒤에서 뻗어 나와 있던 혼돈의 날개가 그대로 사라졌다.
그러자 그것에 검을 내려치는 것으로 아후라 마즈다를 붙잡고 있던 아델의 중심이 흔들리며 공중에서 붕 뜬 상태가 되었다.
다만 그녀가 내뿜던 날카로운 파동이 맨몸인 아후라 마즈다의 몸에 그대로 닿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퍼퍼퍼억!
“큭!”
놈의 전신에서 마치 기관총탄 세례를 뒤집어쓰기라도 한 것처럼 피가 터져 나왔다.
그 반동으로 그는 아델로부터 멀리 튕겨 나갔고.
터엉!
덕분에 날아가던 화살의 궤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타격을 입는 것을 감수하고서 화살을 피해낸 것이다.
‘하지만 피해냈다고 하기엔 손해가 너무 크지.’
물론 아후라 마즈다가 생존의 대가로 받아들여야 할 피해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죽어!”
쩌렁!
방어가 해제된 채 날아가는 적을 아델이 놓칠 리가 없다.
그녀는 허공을 박차며 날아가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추격 공격을 펼쳤다.
{적사자 검식 파생형 ‘흑화륜’ 전개}
투화아악!
칼날에 화염이 휘감기며 아델의 몸이 차륜처럼 회전한다.
지금껏 나나 그녀가 써왔던 것과는 달리, 그 회전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르다.
기존 흑화륜은 용격이든, 강화 버전이든, 검과 화염 그 자체의 파괴력을 높이는 것으로 그 위력을 높였지만.
지금 칼리의 신격이 씐 아델의 흑화륜은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
원래보다 회전 속도 자체를 몇 배, 아니, 몇십 배 이상 높인 공격.
기존보다 훨씬 더 거칠다.
츄카가가가각!
“끄아아악!”
회전이 빠른 만큼 돌진도 빠르게.
어느새 튕겨 나가는 아후라 마즈다의 몸체에 닿은 아델의 흑화륜은, 그의 몸을 그대로 갈아버리고 통과했다.
아깝게도 피격 직전 놈이 몸을 살짝 비트는 바람에 몸통 전체를 갈라버리진 못했지만, 명치에서 시작해 오른쪽 쇄골 위에 이르는 부위까지.
상반신의 상당 부분을 회전톱으로 갈아버리는 타격을 입히는 데는 성공하고야 말았다.
거기에 칼날 자체에 씐 별 불꽃으로 상처 부위를 타오르게 만드는 건 덤.
‘화염으로 인해 회복이 느려진다. 놈을 죽일 기회는 지금!’
꽈아악.
난 다시 한번 피나카의 시위를 당겼다.
맞추지 못한 파라슈의 화살은 다시 한번 쏘아 보내면 그만.
놈은 방금 전의 결정적인 일격을 피하기 위해 날개를 해제하고 상반신에 큰 데미지를 입는 출혈을 치러야만 했으나.
난 그저 팔을 한 번 더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다.
이 한 방으로 놈을 끝장낸다.
{헬 플레임 오브 플라우로스 - 카트반가 강화}
때마침 유메미도 나의 의도에 맞춰 마법을 시전했다.
아델과 균열로 연결된 손의 반대쪽 손으로 화염을 뿜어냈다.
화염은 곧 상반신만 존재하는 거체의 악마 형상으로 변화했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아후라 마즈다에게 양손을 뻗었다.
피잉!
나 역시 시위를 놓아 화살을 쏘아 보냈다.
그 순간.
“나는…… 혼돈의 대리자다!”
그의 등 뒤에서 거대한 검은 공간이 펼쳐졌다.
불쑥.
불쑥불쑥. 불쑥.
이어 무수히 많은 눈들이 그 공간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 * *
나와 아델, 유메미의 합동공격이 가해지는 그 짧은 순간.
나노초 단위로 분할하는 것조차 길게 느껴질 만큼 고속으로 행해지는 이 공격의 틈새에 저런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건 명백히 주변의 시간이 멈춘 덕분이었다.
“너희는 무슨 수를 써도 나를 이길 수 없어. 내 뒤는 다섯 번째 차원 축에 존재하는 혼돈이 봐 주고 있으니까. 이건 필연이야. 정해진 결과라고.”
이 멈춘 세계에서 움직이는 것은 혼돈의 허락을 받은 자뿐이었다.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던 주변의 기류도 멈췄다.
우리의 충돌로 더 큰 지각 변동을 일으키던 행성 지표도 정지했다.
과할 정도로 가까이에서 내리쬐던 항성의 빛 입자도 멈췄다.
그걸로 시야는 완전히 차단되고, 이 세상은 완벽한 암흑 속으로 빠져 버렸다.
마력을 느끼는 제6의 감각에 의존하지 않는 한, 주변 상황을 파악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도 악취미군.”
아후라 마즈다는 자신의 등 뒤에 나타난 무수한 눈알들을 향해 말했다.
“이렇게까지 위험에 빠져서야 나를 도와주다니.”
그의 몸에 났던 상처들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의 자가 치유를 방해하던 별 불꽃은 아델이 새긴 것.
아델의 시간이 정지함으로써 그녀의 별 불꽃 역시 기능이 멈췄으니, 아후라 마즈다의 회복도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 좋아. 이것도 당신이 원하는 ‘지적 탐구심’을 충족하기 위해서겠지.”
몸이 완전히 회복된 아후라 마즈다는 멈춰 선 공간에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뒤에 있는 눈알들과 대화를 나눴다.
“잘 봐. 그 많은 눈으로 똑똑히 새겨 두라고. 저 흉물스러운 것의 힘이 내 것이 되는 장면을. 당신의 예측을 벗어난 그 파괴신 놈의 무구들을 샅샅이 해체해서 그 원리를 보여줄게.”
그러고는 나를 향해 허공을 밟으며 걸어왔다.
가장 가까이 있는 아델이 아닌, 조금 멀리 떨어진 나를 우선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그 말대로 지적 탐구심이 충만한 혼돈은, ‘불멸’이라는 정체된 엔트로피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파라슈의 능력에 대해 강한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가장 먼저 나를 노려서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대가를 치르려는 거겠지.
파아앗.
가까이 다가온 아후라 마즈다의 손에서 빛이 퍼져 나온다.
놈은 저 빛을 내 몸에 주입해 헤집고 다니게 만들 생각일 것이다.
“그럼…….”
덥석.
난 그런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응?”
“그렇게는 안 되지.”
그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벌어져선 안 될 일이 벌어졌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내가 여기서 움직일 수 있냐고?”
휙. 휙.
그의 고개가 양옆으로 돌아간다.
혹시나 시간 정지 영역이 풀린 것일까, 하며 유메미와 아델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둘은 아직도 멈춘 그대로였다.
혼돈이 만든 시간 정지 영역은 그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혼돈과 계약을 해낸 게 과연 너뿐일까?”
아후라 마즈다에게서 강렬한 공포의 감정이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