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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15화 (315/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15화

알에서 깨어난 아후라 마즈다는 마치 영혼이 없는 껍데기 같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눈에 초점도 없는 그 상태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천천히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울컥.

그것이 어느 벽 앞에 멈추자, 벽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불룩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 그것은 사람 하나가 들어가기에 충분한 구멍을 만들어냈다.

우웅.

이어서 그 구멍 안쪽의 공간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흐릿한 영상을 자아냈다.

그 영상은 점점 선명해져 가다, 마침내 완전한 하나의 장면을 이루는 데에 성공했다.

‘지구?’

그건 우주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지구를 비추고 있었다.

저벅.

새로 태어난 아후라 마즈다는 그 구멍 안으로 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갑자기 뭔가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듯, 구멍 안쪽으로 급격하게 끌려 들어갔다.

저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자유 낙하를 시작한 것이다.

딱.

거기서 지금 내 옆에 서 있는, 백선율의 모습을 한 아후라 마즈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지구를 비추던 구멍의 영상이 빠르게 변화했다.

그 변화 끝에 나타난 것은 방금 저 안으로 끌려 들어간 나체의 아후라 마즈다의 모습.

찌익.

마치 원시인의 모습과도 같은 아후라 마즈다는 날카로운 돌조각으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그 손목에선 피가 흘러나왔고, 바닥에 떨어진 피는 곧 사람의 형상을 이뤘다.

그렇게 인간이 탄생했다.

‘설마…….’

영상의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흘렀고, 곧 그렇게 탄생한 인간들이 다른 형태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엘프와 트롤, 오크, 드워프…….

수많은 종족들이 그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원본인 아후라 마즈다의 힘을 그대로 이어받아, 강력한 권능을 부렸다.

즉, 초기 신화시대의 모습이 저 세계에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고, 장엄한 신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도중에 아후라 마즈다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걸로 새로운 영상을 비추던 구멍은 사라졌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저건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현재다.”

그러나 그 구멍이 있던 자리 외의 다른 벽에서는 여전히 그와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새로운 아후라 마즈다가 태어날 때마다 몇 개나 되는 구멍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그 안으로 아후라 마즈다들이 뛰어들었다.

무수히 많은 세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오랫동안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어.”

백선율의 모습을 한 아후라 마즈다가 말했다.

“내가 자아를 갖기 전에 저런 일이 있었는지 말이야. 하지만 얼마 전에 우연히 이 공간에 도착하고서 알게 되었지. 나는 모든 인간과 아인종들의 씨앗과도 같은 존재라는 걸.”

“웃기는군. 이런 쇼 같은 건 네놈의 권능이라면 얼마든지 연출할 수 있겠지. 그렇지 않습니까, 마스터?”

나는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었지만, 아델이 거기에 끼어들어 반박했다.

분명, 이 장면을 처음 본 자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게 실제이기보다는 만들어진 환영 같은 거라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겠지.

“…….”

하지만 난 그녀의 말에 호응하지 못했다.

“어째서 가만히 있는 겁니까?”

“진실을 꿰뚫어 본 거지. 현명한 자만이 알 수 있는 진실을.”

아후라 마즈다가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의 뒤로, 새로 태어난 아후라 마즈다 두 명이 동시에 따라왔다.

그것들은 초창기의 외모가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백선율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입고 있는 옷마저 의태한 모습.

“그리고 이곳에 온 나는 내게 잠재되어 있던 숨겨진 권능을 발견했다.”

그가 자기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복제체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바로 내 형제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지난번에 내가 널 죽였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나타날 수 있었던 거군. 가짜가 대신 죽어줬으니.”

“정확해. 하지만 그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걸 말해주고 싶군. 실제로 살아 있는 내 형제니까. 단지 나와 똑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뿐인.”

나는 인드라닉스에서 파라슈로 그를 참살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땐 분명 아후라 마즈다의 진짜 영혼을 확실하게 벤 느낌이 있었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게 다 저것들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게 이것을 보여주려는 이유가 뭐지?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나는 유메미를 업은 채로 새로운 아후라 마즈다가 뛰어드는 구멍 쪽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난 그 구멍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는 각각의 세계들.

이 너머의 우주는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 되기도 하고, 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기도 했다.

어느 곳에서도 끊임없는 갈등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우리와 다름이 없지만 말이다.

“두괄식으로 말하자면, 나와 협력하자는 거다.”

“이제 와서?”

“이제 와서라도 그렇게 해야지.”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우린 무슨 수를 써도 혼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는 마치 내 최종 목표를 이미 다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을 터다.

이 녀석은 이미 혼돈과 접촉한 상태였을 테니 말이다.

이 세상 모든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듣는 혼돈에게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 정도는 당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녀석은, 아니, 그 ‘의지를 가진 개념’은 우리 인식 밖에 있는 존재거든. 우리가 한 발자국을 움직여 다른 장소로 움직이는 것처럼, 혼돈은 그저 사유하는 것만으로 평행세계와 다중우주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

시바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인식을 벗어난 존재.

그렇기에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존재.

그런 행위 자체가 무의미한.

둘 다 공통적으로 내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혼돈을 이 세상에서 없앤다는 건 불가능해.”

“그래서 그 녀석이 원하는 대로 복종하겠다는 건가?”

“아니, 이용하겠다는 거야.”

아후라 마즈다가 벽을 등지고 있는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어차피 수없이 많은 세계를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계 하나쯤은 다른 자가 통제하도록 내버려 둬도 되지 않을까? 그 통치자 역시 혼돈의 의지를 따르기만 한다면.”

그는 마치 대단한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 사람인 양 자신의 업적을 떠벌렸다.

“그래서 생각해 냈지. ‘계약’을. 그 존재와 계약을 통해 세계 통제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고, 그 계약을 지키기만 한다면? 외적으로는 그의 의지를 따를 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우리 세상을 우리 의지대로 움직이는 거야. 남의 손에 맡기는 게 아닌 거지.”

“헛소리를 자랑스럽게 떠드는군.”

“이게 최선이야. 너에게나, 나에게나, 이 이상 더 좋은 대안이 있을 수 있나?”

“그렇게 대단한 혼돈으로부터 세상을 통제할 권한을 위임받았으면, 굳이 나와 손을 잡을 이유가 뭐지? 나 같은 건 그냥 없애버리고 네 멋대로 하면 될 텐데.”

“그야 당연히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아후라 마즈다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하려다 멈칫했다.

그러고는 정색하며 이를 악물고 자신의 말을 이었다.

“……네가 방해하잖아. 0그 요상한 능력으로.”

제아무리 그가 혼돈으로부터 권능을 넘겨받았다곤 하지만, 시바의 무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혼돈 그 자체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이나, 아후라 마즈다는 어디까지나 나와 같이 시간 축에 종속되어 있으니 말이다.

끊임없는 대립으로 번번이 그의 행동을 방해한다면, 결국 그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거나 다름 없는 셈이다.

물론 그렇게 했을 때 원치 않는 결과가 나타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대립하는 건 서로에게 손해일 뿐이야.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필멸자들이 죽고, 대륙은 멸망으로 향할 테니까. 말하자면 상호확증파괴인 셈이지.”

아후라 마즈다는 다시 점잖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정말로 손을 잡아야 할 때가 온 거라고.”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건 진심이 담긴 동맹의 제스처였다.

“미안하지만, 난 네 계획에 동조할 마음이 전혀 안 드는군.”

하지만 난 그 손을 가차없이 뿌리쳤다.

“……정말 끝까지 이럴 셈이냐?”

“네 궤변은 내 귀에 하나도 안 들어와서 말이지. 사실 듣고 싶지도 않아.”

“이건 궤변이 아니라……!”

아후라 마즈다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듯, 체내에 잠재되어 있는 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진심이라고. 아직도 상황 판단이 안 돼?”

“진심이라기보다는, 밑천이 드러난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 내게는.”

“이 멍청한.”

피잉.

그가 손안에 빛무리를 머금었다.

저걸 흩뿌리는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이 지하 공간 전체를 뒤덮을 것이다.

“여길 무너뜨리면 넌 더 이상 돌아갈 방법이 없어. 원래 세계로 이어진 균열도 닫힐 테고, 그곳과 양방향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도 저쪽 방 안에 있으니까.”

스릉.

아델이 다시 찬드라하스를 뽑았다.

그러자 아후라 마즈다가 그녀를 비웃듯이 말했다.

“여기서 그 칼을 휘두르려고? 네가 발을 구르는 순간 이 공간은 무너질 텐데? 여긴 우리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충격파를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한 구조물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야.”

애초에 우리가 느리게 걸어온 이유도 저것 때문이었다.

이 내부에선 함부로 무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

아예 다 같이 한꺼번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 버린다면 모를까.

“그러면 너희들과 나, 둘 다 알지도 못하는 이세계에 갇히고 마는 거지. 아, 물론 나는 혼돈에게 도움을 받아서 언젠간 빠져나갈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럼 해봐.”

난 이 녀석이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애초에 저 말대로면 날 설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냥 여기에 날 가둬 놓고 자신은 혼돈에게 부탁해 유유히 빠져나가면 될 일.

하지만 그게 아니기 때문에 날 설득하려 저런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은 것이다.

“이익…… 내가 못 할 줄 알아?”

파앗.

그럼에도 아후라 마즈다는 내 도발 끝에 결국 자신의 허세를 현실화시키고 말았다.

손에 모아놓은 빛무리를 바닥에 흩뿌리려 손을 휘둘러 버린 것.

뒤는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작은 확률에 맡기고서.

끝끝내 바보짓을 하고야 말았다.

“유메미.”

“……네.”

그 순간, 나는 유메미를 불렀다.

* * *

사실 그녀는 이미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는 상태였다.

{여신 마탄기(Matangi)의 신격이 각성한다}

유메미를 구태여 이 공간에 데리고 온 이유는, 다름 아닌 시바의 아내들 중 하나인 마탄기의 신격을 깨우기 위해서였다.

세계의 지식을 갈구하는 여신, 마탄기의 신격이 그녀의 몸 안에 들어 있다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 각성의 조건은 다름 아닌 인식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이상 현상과의 접촉.

이를테면, 차원을 넘나드는 균열이었다.

그걸 하나가 아닌 다수와 접촉할 수록 그녀의 차원 이해도는 높아지게 되고.

그러다 어느 시점을 넘어선 순간, 그 이해를 현실로 구현하는 여신의 권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균열들이 모여 있는 무색인 세계의 중심점으로 오려고 한 것인데.

때마침 아후라 마즈다가 데려온 이 장소에도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여러 균열들이 존재했고.

나는 그저 유메미를 등에 업고 그 구멍으로 다가가기만 하면 되었다.

부우우욱.

“무슨……!”

등 뒤에 업혀 있던 유메미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아후라 마즈다의 발 아래에 작은 차원 균열이 나타났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균열에 어찌 손을 써볼 틈도 없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가자. 놈을 끝장내자.”

“……네!”

그리고 그 균열 속으로, 우리도 뒤따라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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