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14화
하나는 어렵지 않은 상대였다.
몇 정도는 더 늘어난다 해도 우리 전력엔 전혀 위협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상대해야 할 무색인이 수천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마치 벌떼처럼 무수히 달려드는 그것들에게 조금씩 타격을 허용하며 피해가 쌓인다면,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크아아아!”
아델이 칼리의 힘을 발현하며 붉은 기운을 표출했다.
그녀가 다루는 새빨간 오라는 칼리의 그것과 동일했다.
{적시자 검식 파생형 ‘흑화륜’ 전개}
그리고 그 상태에서 구사하는, 분노와 파괴 욕망에 사로잡혀 호전적으로 달려드는 쾌검.
애당초 아델이 만든 적사자 검식은 칼리의 힘을 발현하기에 가장 알맞은 것이었다.
아니, 그 반대로, 처음부터 저건 칼리의 검술이었다.
‘찬드라하스에 의해 정신 억압을 조절하고 있다.’
그 영향인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본래 아델이 아닌 그 칼리의 인격이 그녀를 집어삼키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정신 공격으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는 찬드라하스가, 아델의 정신을 지켜준 덕에 완전히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뒈져라!”
어떤 상황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평소와는 달리, 조금 포악해진 것 같긴 해도 말이다.
어쨌든 그 검 끝이 우릴 향하지 않는 걸 보면, 피아의 구분은 확실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콰우우우!
차륜처럼 회전하며 나아가는 그녀의 칼에, 달려들던 무색인들 여럿이 한꺼번에 갈려 나갔다.
물론 저것들도 바보는 아닌지, 아델의 흑화륜이 위협적이라는 걸 깨닫고는 공격 경로 상에서 벗어나 회피 기동을 취했다.
‘몸놀림이 빠르다.’
그 모습을 보고 한 가지 더 깨달은 게 있었다.
바로 저 무색인들이 이 극한의 환경에서도 어떠한 제약조차 받지 않은 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그건 각 개체들의 신체 스펙과는 상관없는, ‘환경 적응’의 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단순히 신체 능력의 문제일 뿐이라면, 우리마저도 강한 압박을 받는 이 세계에서, 무색인들은 제대로 움직이기는커녕 육체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터였으니 말이다.
“…….”
실제로 유메미는 아직도 이곳의 거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녀가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비육체파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것들보다는 훨씬 더 강인한 몸을 가진 용기사였다.
나와 직접 힘과 생명력을 공유하는 그녀마저도 버티기 힘들 지경인데, 그보다 더 연약한 몸을 가진 저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움직인다는 건 단순한 힘의 논리로 설명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와락.
“……아?”
나는 유메미를 끌어당겨 안았다.
손으로 붙잡은 채로 이끌고 다니는 것보다는, 몸 쪽으로 가까이 붙인 상태가 움직이기에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꽉 잡아.”
{마궁 피나카 소환}
그러곤 왼손에 시바의 활을 소환해 쥐었다.
그건 쥐떼처럼 달려드는 다수의 무색인들을 상대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무기였다.
{피나카-카트반가 결합}
철컥.
내 키를 훌쩍 넘어가는 장궁의 활대에 카트반가가 결합되더니, 곧 활대 전면으로 길쭉하게 뻗어 나온 스태빌라이저 형태로 변화했다.
난 유메미를 품에 안은 채로, 다가오는 무색인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화륵.
충만한 별 불꽃이 화살의 형상을 이뤄 시위에 걸리고, 그것을 쏘아 보내는 순간.
{검은 혜성 - 카트반가 강화}
슈하아악!
위력적인 투사체로 변화해 무색인들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궤적의 주변에는 거대한 파멸 영역이 생겼고, 영역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적 개체는 싸그리 구워져 사라졌다.
파앗!
물론 이번에도 저 무색인들은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아델의 공격을 피한 것과 같이, 사방으로 산개하며 2차 공격을 대비해 최대한 피해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몇몇은 내 뒤로 접근해 와 후위를 기습하려 했다.
그것들은 손에 쥐고 있는 날카로운 돌덩이로 나를 후려치기 위해 다가왔다.
{흑검익 전개}
화악! 츄아아악!
그 순간 내 등 뒤에서 펼쳐진 아지다하카의 검날개가 다가오는 무색인들을 한꺼번에 휩쓸었다.
마치 거대한 검을 휘두른 것처럼, 날카로운 단면에 의해 깔끔하게 동강 나며 추락했다.
‘다시.’
그리고 나는 흔들리지 않는 자세 그대로 다시금 피나카의 시위를 당겼다.
다음으로 별 불꽃의 화살이 시위를 떠나는 순간.
{검은 혜성 - 카트반가 강화}
화살은 맹렬한 불덩어리가 되어 무색인들을 휩쓸었고, 거기에 또 수많은 개체들이 소멸되었다.
그렇게 나는 피나카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검은 혜성 - 카트반가 강화}
{검은 혜성 - 카트반가 강화}
{검은 혜성 - 카트반가 강화}
피잉! 피잉! 피잉!
시위를 당길 때마다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투사체 발사 마법이 연달아 터져 나온다.
시바의 무구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의 일면을 끌어내는 활이, 무수한 불꽃을 뿜어내며 무색인들을 도륙했다.
“저쪽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달려들던 저 징그러운 것들을 거의 다 정리해 가고 있을 무렵, 내 시야에 당초 목표로 하고 있던 목적지가 드러났다.
그건 바로 이 영역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의 중심점이었다.
일반적인 개념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제5차원에 대한 인식만으로 볼 수 있는 그 지점.
나는 제한적인 초월을 통해 그 구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콰아아!
곧 나는 유메미를 안은 채로, 아델과 함께 날개를 펼치고서 세계의 중심점으로 활강했다.
대다수가 죽거나 중상을 입은 무색인들은 더 이상 우릴 쫓을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 * *
그곳은 이 원시적인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무색인들의 세계 내에서도 가장 거대한 건축물이 있는 장소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언덕 위에 조성된 지름 5미터 정도의 작은 석조 고분 하나뿐이지만.
그 고분의 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개미집처럼 촘촘한 통로로 빼곡한 거대한 지하 공간이 드러난다.
그 공간의 크기는 우리가 살던 세계의 초대형 빌딩 몇십 채를 합친 것보다도 더 큰 수준이었다.
겨우 돌도끼나 휘두르는 수준의 문명이 만들었다고 하기엔 과할 정도로 거대한데.
사실 무색인들의 신체 능력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것만도 아니다.
저벅. 저벅.
아무튼 우리는 그 거대한 지하 구조물의 통로를 따라 하염없이 걸어 내려갔다.
통로는 미로를 방불케하는 복잡한 구조였으나, 감각만으로 광범위한 영역을 감지해 내는 나에게 이 정도의 복잡함은 그리 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아직 한참 남은 겁니까?”
내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아델이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녀는 아까 전 싸울 때에 비하면 많이 순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성질이 완전히 죽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여전히 이 세계 전체에 작용하는 강렬한 압력은 맨몸으로 버티기엔 버거운 수준이었다.
“아직 반도 안 왔어. 더 내려가야 해.”
“그럼 차라리 벽과 바닥을 전부 허물어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목표 지점까지 직선으로 날아가면 이것보다 훨씬 빠를 텐데.”
“말했잖아. 여기 구조물은 신기할 정도로 위태위태하게 건축되어 있다고. 약간의 힘이라도 잘못 가해지면 전부 무너져서 파묻히고 말 거야. 그래서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 거고.”
“그 무너진 잔해를 전부 파헤치면…….”
“그땐 이미 세계의 중심점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 후겠지. 이 건축물은 반드시 제 형태로 유지되어야 해.”
“젠장.”
아델이 분통을 터뜨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다행히 그 주먹을 괜스레 벽으로 날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찬드라하스의 정신 보호 능력으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끄응…….”
그때, 등 뒤에서 유메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내 등에 업힌 채 그대로 잠이 든 상태였다.
심한 몸살감기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에서 열을 내며 앓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
처음엔 이럴 거면 여기에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거치적거리는 짐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또한 유메미 본인에게도 딱히 할 짓이 못 되는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고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녀는 꼭 여기에 데려왔어야 했다.
그게 결국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웅. 우웅.
그렇게 한참을 걷다, 우리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저 멀리 통로 끝에서 윙윙거리는 소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드디어.”
그리고 나는 그 소음의 진원지가 존재하는 방 바로 앞에서, 어떤 인물을 만났다.
“진실에 도달했구나. 앙그라 마이뉴.”
그는 나와 질긴 악연을 이어온 남자, 아후라 마즈다였다.
* * *
아후라 마즈다는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나를 보자마자 적의를 발산하거나 섣불리 공격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물론 나 역시 이곳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기에 적대 행위를 할 수 없는 건 피차 마찬가지.
“저 새끼……!”
스릉.
아델이 다시금 칼리의 분노를 표출하며 찬드라하스를 칼집에서 뽑아 들었지만, 난 곧바로 그녀를 제지했다.
“잠깐만. 여기서 싸울 수는 없어.”
“하지만……!”
“나를 믿어.”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침착하라는 암시를 끊임없이 보냈다.
“……알겠습니다.”
다행히 내 말을 철저히 따르는 원래의 인격이 여전히 더 강하기 때문인지, 그녀는 금세 전투 태세를 거두었다.
“그래. 여기서 싸울 수는 없지. 그러면 영원히 우리가 살던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보여주고 싶은 것?”
“날 따라와 주지 않겠나?”
아후라 마즈다는 원래 내가 가려고 했던 방과는 다른 방향의 방으로 나를 인도했다.
“함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델은 그에 응하는 걸 경계했다.
“일단은 따라가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후라 마즈다의 말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아까 그가 말했듯이 그 역시 여기서 함부로 부딪혔다간 이 괴이한 영역에서 영영 표류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건 아후라 마즈다 본인도 바라지 않는 일일 터.
게다가 나는 만의 하나의 변수가 생긴다 하더라도 대처할 자신이 있었다.
아직 내게는 결정적인 카드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다.”
그렇게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거대한 광장.
지금까지 계속 나오던 좁디 좁은 통로와는 확실히 비교될 만큼 널찍한 장소였다.
“이건…… 알?”
“그래. 저 지상에 있는 녀석들의 배 속에서 튀어나온 거다.”
그 공간에는 성인 하나가 들어가기에 충분할 만큼 거대한 타원형의 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표면은 시커먼 암석으로 뒤덮여 있긴 하지만, 그 모양만큼은 확실히 여느 동물의 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 이 무색인들을 한꺼번에 깨워서 날 공격하기라도 하려고?”
“그럴 리가. 어차피 네놈을 죽이려면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는데.”
“그럼 대체 무슨 꿍꿍이냐?”
“아까 말했잖나. 보여줄 게 있다고.”
쩌적.
그러더니 그가 부화 중인 알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콰지직. 콰직.
두꺼운 암석 재질의 표면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드러난 건 한 인간.
특이한 점은 위에서 봤던 내장이 훤히 드러난 무색인이 아니라, 제대로 된 피부를 가진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저건?’
그러나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저벅. 저벅.
그건 바로 그 알에서 태어난 인간이.
“소개하지.”
먼 옛날, 신화시대 시절의.
“내 형제를.”
아후라 마즈다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쩌적. 쩌저적.
그리고 곧, 이 방 안을 가득 채운 수많은 알들 곳곳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로운 아후라 마즈다들이 부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