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13화
마침내 시공간의 틈을 열고 직접 현세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인간적인 인식의 한계를 초월하는 초감각의 영역에, 잠깐이나마 닿을 수 있게 됨으로써 그곳을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까지 현실 시간으로 따지면 적어도 수십 년은 걸렸을 터.
물론 과거 지옥에서 보냈던 100년 이상의 시간과 비교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나 혼자 모든 것들을 쌓아 올려야만 했지만, 이번에는 시바가 곁에 있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그가 쌓아 올린 기반 위에 하나를 더 얹어 한계를 초월하는 것뿐.
그렇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그곳에서 탈출할 수가 있었다.
“신우 씨?”
가장 먼저 눈앞에 보인 건 유메미였다.
체감상으로는 수십 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전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여기선 거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건 시바가 갇혀 있던 곳의 시공간이 심하게 뒤틀려 있다는 반증이었다.
“다들 여기에 모여 있군.”
다시 주변을 둘러보자, 유메미의 어깨너머로 아델과 레아, 최윤아 등이 보였다.
그 뒤로는 무장한 각성자들이 여럿 뒤따라 와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이 위치에 무력을 동원해야 할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 네. 그건…….”
“태공망 때문이겠지?”
그리고 난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균열을 열고 넘어오는 동안, 이 위치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태공망이 고든을 죽이고 에린의 동경을 빼앗아 야드가르를 불러내는 과정에서 그가 한 모든 말들을 말이다.
“어, 어떻게?”
“전부 알고 있어. 애초에 내가 여기서 나타난 이유가 그자 때문이니까.”
실은 시공간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던 건 온전한 내 능력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대단한 힘을 얻고 초감각의 영역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라는 존재 자체는 아직 시간축 위에 종속된 자였기 때문이다.
그 불변하는 진리를 스스로 거스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그러한 존재인 혼돈의 영향력을 이용하는 방법을 썼다.
광범위한 차원에 걸쳐 존재하는 그것을 기준 삼아 움직인다면 인식 바깥의 개념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인지하는 게 가능하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때마침 현세와 혼돈이라는 존재를 연결해 주는 가장 가까운 통로가 태공망이라는 걸 알아냈고, 그의 영혼을 통해 이곳으로 오는 길을 찾아낸 것이다.
“네?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하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거야. 정작 이 일을 일으킨 나조차도 이 현상에 대해 완전히는 이해하지 못했거든.”
유메미는 내게 일어난 일들을 자신의 마법적 지식으로 파악하려 시도했으나.
애초에 그건 마법으로도 설명 불가능한 현상이었기에 거기에 괜히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일단은…….”
나는 밖으로 나가는 문으로 눈을 돌렸다.
지금 여기서 이렇게 가만히 서 있을 여유는 없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회포를 푼다거나 하는 것도 사치.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서 당면한 문제들을 최대한 해결해야만 한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해.”
* * *
“거울을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균열을 먼저 닫는다고?”
레아가 내 계획을 들었을 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당장 그 위험한 녀석의 손에 우리한테 가장 취약한 인질이 들어가 있는데…….”
내게 가장 소중한 혈육인 야드가르를 데리고 간, 태공망을 쫓는 대신 하늘의 균열을 먼저 닫겠다는 내 말 때문이었다.
“그 녀석을 쫓겠다고 무작정 달려가다간 그 전에 이 세상이 먼저 망해.”
“하지만 그러다가 그 녀석이 원하는 걸 얻기라도 하면? 그것도 결국 위험하긴 마찬가지 아니야? 아니, 오히려 더했으면 더했지.”
레아의 생각은 이러했다.
태공망이 야드가르를 데리고 간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태공망은 혼돈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자다.
그런 그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야드가르를 데리고 갔고, 그걸 가만히 놔둔다면 결국 혼돈이 원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므로 차라리 균열로 인해 점진적으로 피해가 커질지언정, 완전히 망하는 길인 혼돈의 재림을 내버려 두는 건 옳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지금이 야드가르를 찾으러 갈 때가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왜?”
“그건…….”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괜스레 누군가가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고 말이다.
“……나중에 얘기해 줄게.”
내가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아직은 밝힐 수 없었다.
그렇게 했다간 뒤에 일어날 사건들이 모두 뒤엉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축을 초월하는 경험 위에서 내가 본 미래대로라면, 여기서 난 그 이유를 레아에게 밝혀선 안 된다.
‘그 정해진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변수를 형성하는 건 피해야 한다.
“그냥 무작정 널 따르란 말이야?”
“원치 않는다면 여기에 남아도 좋아.”
“그런 뜻이 아니잖아.”
어차피 그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이곳에 남겨진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기에 지금 날 따르지 않아도 상관없다.
물론 레아는 이런 상황이 많이 답답할 것이다.
“내 생명력을 써서 사람들을 지켜줘. 넌 그렇게만 하면 돼.”
“……하아.”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어.”
일이 진행되는 동안 레아는 나와 생명력을 연결해 친나마스타의 권능으로 사람들을 보호할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은 그녀가 가진 유한한 생명력 때문에 보호에 한계가 있었지만, 내게서 무한히 생명력을 공급받는다면 그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네 선택이 옳길 바랄게.”
“믿어줘서 고맙다.”
그렇게 나는 레아를 이곳에 두고, 아델과 유메미를 대동해 하늘 균열 쪽으로 움직였다.
* * *
바깥으로 나와 보니,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하늘 한가운데의 균열이 더 확실하게 와닿는 느낌이었다.
그곳으로부터 주기적으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운석들.
곧 세계의 멸망이 임박했음이 느껴지고 있다.
하늘을 가로질러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저 너머에서 날아온 무수히 많은 운석들에 의해 지상이 불타오르는 게 보였다.
“저 장기가 훤히 드러난 인간들. 저 녀석들이 제일 위험해요. 강화된 마물들보다도 더.”
“하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군.”
“그 아후라 마즈다가 만든 마병도 그렇고……. 이상하게 인간의 모습을 모방한 괴물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단순한 느낌만은 아닐지도 모르지.”
“이 모습에 뭔가 특별한 비밀이라도 숨어 있는 걸까요?”
“인간과 아인종……. 모든 종족들이 우릴 닮은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그렇게 나와 두 사람은 채 수 분이 지나기도 전에 거대한 하늘 균열 가까이 접근했다.
가까이 와서 보니, 안에서는 심상치 않은 강도의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 때문에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숨쉬기가 힘드네요.”
유메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육체파가 아닌 그녀로서는 이런 물리적인 압박을 견디기가 힘들 것이다.
보통 때라면 굳이 데리고 가지 않으려 했겠지만.
“이 안으로 들어가야 해. 우리 셋 다.”
저 너머에선 그녀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기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 정해진 결론’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유메미를 저곳으로 데리고 들어가야만 했다.
“견딜 수 있어요.”
그녀는 그런 상황에 불평하지 않고 나를 따라오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답이 있는 거겠죠? 신우 씨가 본.”
유메미는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그녀 역시 시각을 잃으면서 강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예지력을 얻었었다.
그 덕분인지 내 행동과 말만으로 나에게 일어난 상황들을 대강 파악한 모양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대를 하고 있는 유메미에게 그 동작이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주변 공기를 읽음으로써 긍정의 표시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가자.”
그리고 나는 가장 먼저 균열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울컥.
한순간 심해 밑바닥에 뛰어든 것 같은 강렬한 압력이 온몸을 짓눌렀다.
무엇보다 고막으로 전해져 오는 묵직한 감각이 가장 불편했다.
나 정도의 육체에 이런 힘을 가할 정도면, 이곳의 압력은 적어도 어지간한 몸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압력이라는 뜻.
“후우…….”
뒤이어 따라온 유메미가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입구에 있던 때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물론 그럼에도 내게서 힘을 이어받은 만큼, 그 압력에 완전히 압도당하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크…….”
한편, 육체 능력으로는 진작 발군의 경지에 올랐던 아델 역시 이 압력이 꽤나 불편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관자놀이에 핏줄이 선 것이, 표정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전 괜찮아요.”
나와 눈이 마주친 유메미가 힘겹게 대답했다.
난 그런 그녀에게 ‘괜찮으니 돌아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잡아.”
덥석.
난 대신 손을 붙잡았다.
압력에 견디느라 주변 상황 감지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그녀를 대신해, 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움직이는 건 나한테 맡겨. 이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만 신경 쓰고.”
“……고, ……마워요.”
그리고 시선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균열 너머의 세계가 눈에 들어온다.
아래쪽에는 시커먼 구름들이 잔뜩 끼어 있고, 그 위로 산산조각 난 땅들이 폭풍에 휩쓸려 둥둥 떠다녔다.
‘지각이 폭풍에 휩쓸려 떠다닌다. 애초에 저 정도의 풍압이라면 딱딱한 것은 산산이 부서져야 정상일 텐데. 역시 여기도 현실과는 다른 물리 법칙이 적용되는 세상인가.’
그대로 가까이 다가가자, 땅 위에 아까 유메미가 말했던 ‘무색인’들이 걸어 다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곳곳에는 그들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원시적인 형태의 건물들도 있었다.
문명이라 하기엔 많이 조악해 보이지만, 애초에 이런 환경에서 집 같은 걸 짓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번쩍.
그 순간, 아래쪽에 있던 무색인 중 하나가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눈에서 안광을 뿜더니, 땅을 박차고 위로 날아올랐다.
높이는 거의 수천 미터에 달했지만, 무색인은 맨다리로 그 높이를 단숨에 도약했다.
그것이 노리는 것은 당연히 이방인인 우리.
{칼리의 힘이 해방된다.}
“어딜!”
그러자 아델이 찬드라하스를 뽑아 들고는 자신의 힘을 개방하며 달려드는 무색인에게 맞섰다.
그녀의 몸에는 잔혹한 전쟁의 여신의 힘이 깃든 채였다.
투쾅!
아델의 검과 무색인의 주먹이 부딪혀 충격파를 일으켰다.
물론 이곳의 강한 대기압으로 인해 충격파가 그리 크게 퍼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무력으로는 아델이 한 수 위라 그녀에겐 큰 무리가 가해지지 않았다.
‘이런!’
문제는 그 충돌로 인해, 지상에 있는 무색인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려 버렸다는 것.
둘이 부딪히는 순간, 땅 위에 서 있던 수천에 달하는 무색인들이 한꺼번에 이쪽을 쳐다보았다.
저 눈꺼풀 없는 수천 쌍의 눈들이 한꺼번에 나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가장 소름 돋는 광경 중 하나라고 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