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12화
콰직.
야드가르의 손도끼가 한 다크엘프의 머리를 갈랐다.
영혼을 소멸시키는 파라슈에 의해, 와이번을 타고 있던 용기사는 그대로 빈껍데기가 되어 축 늘어졌다.
“젠장, 뭐 이렇게 강한…….”
콰우우!
곧이어 야드가르는 그 자리에서 하늘로 급상승하며 공중에 떠 있는 다른 용기사들을 추격했다.
당황한 용기사들은 와이번의 기수를 들어 올려 피하려 했으나, 별 불꽃의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맹렬한 추진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저, 저리 떨어져!”
다크엘프 용기사가 다가오는 그를 향해 뿌리치듯 투창을 던졌다.
그것은 곧바로 파직거리는 뇌격으로 화해 야드가르를 덮쳤지만.
쩌엉!
그는 더 강한 화력의 화염 덩어리, 검은 혜성을 마주 날려 보냄으로써 완벽하게 상쇄했다.
아니, 상쇄하는 걸 넘어서 그 앞에 있는 용기사의 와이번을 통째로 꿰뚫어버렸다.
“크악!”
그 위에 올라타고 있던 다크엘프 용기사는 두 다리가 절단된 채 그대로 낙하했다.
힘없이 떨어지는 장신의 몸뚱이는 야드가르의 먹잇감이 되기엔 충분하고도 남는다.
투콱!
파라슈가 그의 몸통을 아래에서 위로, 가파르게 쳐올리며 갈라냈고, 그렇게 그 용기사는 두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파지직.
그때, 하늘의 구름 사이에서 번갯불이 튀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 번갯불이 한곳으로 모이더니, 곧 야드가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릉!
일반적인 자연현상의 규모마저 한참 뛰어넘는 거대한 뇌격.
마법을 통해 인위적으로 형성했다고 하기에도 그 뇌격은 너무나 장엄했다.
그건 그저 신이 내린 천벌이라고 표현하는 것 외엔 묘사할 방법이 없는 번개였다.
“죽어라!”
뇌격이 야드가르의 몸에 적중한 직후, 구름 사이에서 하나의 인영(人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름 아닌 인드라.
지금 이곳에서 야드가르가 상대하고 있는 다크엘프 용기사들의 지휘자였다.
인드라는 손에 쥔 작은 단검 형태의 법구인 푸르바(Phurba)를 휘두르며 감전된 야드가르에게 달려들었다.
푸르바에서는 대량의 전류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이 야드가르의 미간을 꿰뚫기 직전.
{초신성 폭발}
투쾅!
야드가르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퍼져 나온, 충격파를 동반한 별 불꽃의 파장이 인드라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앞으로 내민 팔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물론이고, 몸과 얼굴은 피부가 벗겨져 듬성듬성 뼈와 근육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전신에 둘린 두터운 뇌전 방어장을 깨뜨리고 신체에 그 정도의 타격을 입힌 것이다.
“커헉…….”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정점에 도달한 거대 세력의 수장이자.
데바 로카 신계의 주신 격 수호령을 가진 신화급 각성자이고.
거기에 운 좋게 드래곤 나이트 클래스를 얻어 강력한 용기사들의 지원까지 받고 있는 인드라가.
아무 능력도 없는, 전투라곤 평생 해본 적도 없이 살아온 열 살짜리 꼬마 아이에게 완벽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그저 태공망이 가지고 있던 파라슈와, 거기에 담긴 별의 불꽃을 넘겨받는 것만으로, 그 모든 세월과 노력의 격차를 철저하게 뒤집어버린 셈이었다.
“이젠…… 이 세상도 끝인 건가.”
인드라는 곧 세계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직감했다.
자신의 세력을 잃고 타카마 시티까지 도망쳐 와 간신히 재기의 발판을 얻는가 싶었는데, 가면 갈수록 세상의 모양새는 더더욱 나빠지고 있다.
스스로의 죽음은 당연히 확정되어 있기에, 그게 두렵지는 않았다.
진짜 두려운 것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것.
세상의 파멸 때문이건, 영혼의 존재 자체를 무효화시켜 버리는 저 도끼 때문이건.
이걸로 그의 의지가 끊어지고 만다는 게, 깜깜한 공포로 느껴졌다.
다가오는 최후가 너무 무거워서 버거울 정도였다.
“……아.”
투콱.
작은 침음 끝에, 야드가르의 도끼가 인드라의 몸을 가르고.
그는 그것으로 수호령과 자신의 영혼 전부를 잃고 말았다.
잔인하게 훼손당한 육신은 그대로 죽은 살덩이가 되어 저 먼 곳으로 날아갔다.
* * *
“잘했다.”
전투가 끝난 후, 야드가르는 태공망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상에서 조용히 야드가르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인데도 능숙하게 싸우더군. 대자재천의 힘 덕분인 건가, 아니면 네 아비의 기질을 그대로 빼다 박은 건가?”
“…….”
야드가르는 태공망의 물음에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마치 망자처럼 공허했다.
이미 주술에 의해 정신이 완벽하게 장악당한 상태였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나? 뭐, 어쩌면 그 둘이 동시에 작용한 덕일지도 모르겠구나.”
스윽.
태공망은 그렇게 말하면서 야드가르의 팔을 잡아당겨 소매를 걷었다.
둘의 키 차이 때문에 태공망은 허리를 꽤 많이 굽혀야만 했다.
“경화 현상은 거의 없는 건가.”
그가 야드가르의 팔과 다리를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중얼거렸다.
이전의 유신우가 그랬듯, 필멸자의 몸으로 별의 불꽃을 받아들이는 건 필연적으로 존재의 소멸을 불러오게 된다.
그 증상 중 하나가 바로 신체의 백색 경화 현상.
하지만 어째선지 야드가르에게선 그 경화 현상이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았다.
유신우가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빠르게 육신이 붕괴되어 갔던 것을 생각해 보면.
겨우 한두 시간 지난 것뿐이긴 하지만 지금쯤이면 야드가르의 몸에도 그 현상이 조금이나마 나타나야 할 터였는데도 말이다.
“흐음……. 원래 가지고 있는 무력의 크기 자체가 작아서 오히려 몸이 흡수하는 시간이 느린 건가?”
태공망은 이 차이를 기존 무력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유신우는 별의 불꽃을 받아들이는 시점에 이미 상당한 경지를 갖추고 있었다.
그 탓에 힘의 내면화가 빨라서 붕괴 역시 가속화된 것이다.
반면 야드가르는 완전한 일반인이나 다름없으니, 별의 불꽃에 의한 존재 붕괴가 더 느려졌다.
“이러면 현재 이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겠군. ……뭐, 어차피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태공망으로서는 방금 전 야드가르가 보여준 수준의 힘만 있으면 된다.
용기사를 대동하고 싸우는 신화급 각성자를 죽였으면, 다른 어지간한 신화급 각성자나 동급의 악마들을 상대하는 것 정도는 충분할 테니 말이다.
야드가르는 그 과정에서 쓰고 버릴 도구에 불과하므로, 굳이 지금보다 성장할 필요도 없다.
더 강해진다는 데서 나오는 변수도 없고 종국에는 스스로 붕괴해 사라질 테니, 이것만큼 쓰기 좋은 도구가 또 있을까.
“오히려 잘됐어. 이놈의 아비처럼 차후에 변수가 될 가능성도 없을 테니.”
태공망은 유신우가 사라진 지금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역전된 엔트로피를 해방할’, 시바의 힘을 구사하는 유일한 존재가 유신우뿐이었기에 그 외엔 대안이 없었지만.
때마침 좋은 타이밍에, 아후라 마즈다가 행한 엉뚱한 짓도 막아주면서 자신의 모습마저 감춰 버린 데다 역할을 계승해 줄 아들까지 남겨 두었으니.
그 입장에선 이만큼 좋은 조건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돌아가야지.”
태공망은 야드가르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입버릇처럼 해오던 자신의 신조를 읊조렸다.
“혼돈의 순리를 거스르는 불멸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 이제 그 도끼를 휘둘러서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자꾸나.”
불멸자들이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은 혼돈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
혼돈의 순리란 곧 엔트로피의 증가를 의미한다.
불멸자들의 영원한 삶은 바로 그 ‘엔트로피의 증가’라는 절대적 참 명제를 거스름으로써 유지되는 것이니.
파라슈를 사용해 그들을 이 우주에서 소멸시키면, 혼돈의 순리가 바로잡히게 된다.
“가자. 아들아.”
태공망은 야드가르의 별 불꽃에 몸을 맡기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가 향하는 곳은 파괴된 예루살렘의 터.
그곳에 남아 있는, 아후라 마즈다가 악마들을 불러내기 위해 사용한 지옥의 통로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 안으로 건너가 모든 불멸자 악마들을 파라슈로 소멸시킬 작정이다.
‘세상은 다시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모든 후대 신들, 그들과 동일한 세대에 태어난 악마들.
그 불멸자들이 다스리는 신화대전 이후의 시대는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혼돈이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운명을 통제하던 초창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선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사라지게 된다.
태공망은 그것마저 서슴지 않고 감수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야드가르와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날아갔다.
* * *
“고든!”
레아와 아델, 유메미, 최윤아 일행이 돌아왔을 때, 이미 고든은 시체가 된 상태였다.
바깥에서 침입해 온 무색인들이 더 이상 증식하지 않을 때까지 싸워 간신히 위협을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사이에 태공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전부 얻어낸 후였던 것이다.
“거울은? 거울은 어디에 있죠?”
“없어. 아무 데도.”
태공망이 뭔가를 알고 있는 듯 거울을 찾겠다며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유신우가 직접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하고.
그의 최측근인 아델, 레아, 유메미, 최윤아, 라이진 중에서 어느 누구도 거울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유일한 가능성은 고든뿐.
그래서 아델과 레아는 고든의 소지품과 거처 등을 전부 찾아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거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애초에 에린의 동경은 고든의 심상세계 속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기를 쓰고 찾으려 해봐도 찾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꽁꽁 숨겨 두었음에도 태공망이 가져갔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젠장. 정말 빼앗기기라도 한 건가?”
“혹시 근처에서 키 크고 깡마른 트롤 못 보셨습니까?”
“어…… 그건 저도 잘…….”
아델은 고든에게 진료를 받으려 임시 진료소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태공망의 행방을 물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기억하는 자가 없었다.
“그럼 여기서 비명이나 뭔가 쿵쿵거리는 소리 같은 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계속 여기에 서 있었는데, 비명은커녕 말소리조차도 안 들렸는걸요.”
심지어 고든이 죽은 채로 쓰러져 있는데, 그 소리조차도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마치 마법을 사용해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분명 그 녀석이 여기에 와서 무슨 짓을 한 건 확실해요.”
그렇기에 유메미는 더욱 태공망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주변을 정황을 완벽하게 조작해 놓은 건, 추적당하는 걸 늦추기 위함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도망간 게 아니라 무언가를 가지고서 말이다.
그리고 그건 명백히, 그가 요구했던 거울 속 아이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쫓아가야 하나?”
“하지만…… 그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알죠?”
“유메미, 마력의 흔적을 추적할 수는 없어?”
“흔적이 없어요. 교묘하게 전부 지워버린 것처럼…….”
“하아…….”
이대로 태공망에게 아이를 빼앗기는 걸 가만히 두고 보아야만 하나.
그들이 막막한 한숨을 내쉬며 절망하고 있던 그때.
부우욱.
그들 사이의 허공에서, 세로로 길쭉한 공간의 균열이 나타났다.
“앗!”
네 사람은 곧바로 무기를 꺼내 들고 이 현상에 대항하려 했다.
혹시나 이것 또한 무색인이 침입해 온 것처럼 예측 불가능한 괴이의 발생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어라?”
하지만 그 균열 속에서 나타난 건, 익숙한 얼굴.
“신우 씨?”
검으로 시공간을 베고서 나타난 유신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