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11화
고든의 심상세계 속, 수호령 옹구스는 피부 위에 눈알들이 가득 피어난 무수한 손들에 붙잡혀 있었다.
“…….”
그것은 눈을 부릅뜬 채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입을 막고 있는 손은 그의 말을 전부 무음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앞에서 태공망은 마을 안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옹구스가 절벽 위에 앉아 내려다보던, 아이들이 뛰노는 작은 마을에서 말이다.
“여기 있었군.”
이윽고 태공망이 어느 남자아이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그 아이의 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쩌저적.
손이 닿기도 전에, 아이의 배가 갈라지고 그 틈에서 붉은 촉수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촉수의 끝에는 작은 청동거울이 매달려 있었다.
곧 남자아이의 형체는 신기루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거울을 심상세계 속에 감춰 두다니. 그것도 제작한 녀석의 곁에 말이지.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아닌가.”
태공망은 그 청동거울, ‘에린의 동경’을 쥐고서 옹구스에게 다가갔다.
“네놈은 그 녀석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원수 중에서도 원수일 텐데, 그놈이 너를 믿은 건가?”
옹구스는 따지고 보면 유신우가 신계를 파괴한 원인 제공자 중의 하나였다.
그가 거울을 만들지 않았다면 야드가르가 갇힐 일은 없었을 테고, 그러면 유신우는 그 신화시대에서 아흐리만으로서 조용히 살아갔을 터이니 말이다.
그런 옹구스에게 자기 아들이 갇혀 있는 거울을 준 것은, 태공망의 말대로 적에게 약점을 넘겨준 거나 다름없는 셈.
“……뭐, 여태껏 멀쩡하게 남아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녀석의 생각이 맞았던 건가.”
다행히 에린의 동경에는 그 어떤 위해도 가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유신우가 옹구스를 믿었던 만큼, 옹구스 역시 그것을 잘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로서는 수호령 상태로 이 몸에 갇힌 차에 굳이 엉뚱한 짓을 할 이유가 없기도 했고.
더욱이 애초에 에린의 동경을 만든 것 역시 온전히 그의 의지는 아니었던 탓이 컸다.
“다른 신들이 네게 이런 짓을 하도록 부추겼나 보군. 집단 이기주의라는 거구만.”
태공망은 기이한 손들에 사로잡혀 말조차 할 수 없는 옹구스의 기억을 읽었다.
그 기억 속에서 그가 이렇게 유신우의 말대로 움직이는 이유를 밝혀냈다.
“안타깝지만 네 속죄 노력은 여기까지. 이제 이건 내 것이다.”
태공망은 그런 그에게서 에린의 동경을 탈취해 심상세계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심상세계는 물리적으로 실존하지 않는 개념의 영역.
하지만 그 안에 보관되어 있던 에린의 동경을 바깥으로 가지고 나오자, 거울은 실제로 구현되었다.
고든의 머리에 손을 대고 있던 태공망의 반대쪽 손에, 어느샌가 그 청동거울이 쥐어져 있었다.
털썩.
유신우의 부탁을 지키지 못한 고든은 그대로 시체처럼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의 눈빛은 공허했다.
영혼이 소멸당하고 육신만이 남은 시체가 된 채.
고든은 거기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지.”
화아악.
거울을 쥔 태공망의 손에서 대량의 마력이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마력은 곧 거울을 휘감았고.
에린의 동경 표면에는 희미한 상(狀)이 맺혔다.
형상은 어린 남자아이.
그 형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 세계에도 투영되었다.
처음에는 흐릿하다가 점차적으로 실물로 변해가더니, 아흐리만의 아들, 야드가르가 마침내.
스르륵.
시간의 정지장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 * *
“……아빠!”
야드가르는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자신의 아버지부터 찾았다.
그의 마지막 기억은 신계 아발론에서 루 라바다에 의해 납치당하는 바로 그 시점.
지금까지 시간이 멈춘 채로 있었으니, 야드가르에겐 마치 눈앞의 세상이 갑자기 바뀐 것처럼 느껴졌을 터였다.
실제로는 어마어마하게 긴 세월을 뛰어넘은 것이지만 말이다.
“……어?”
야드가르는 눈앞에 나타난 키 큰 초록 피부의 거인을 보고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곤 주변 환경의 변화를 인지할 새도 없이, 곧장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으아아!”
그의 머릿속에 무수한 트라우마들이 떠올랐다.
불타는 집, 끌려가는 사람들, 한파 속에서 하나둘 늘어가는 시체.
거기엔 모두 오크들이 있었다.
야드가르는 트롤인 태공망을 보고서 오크라 착각한 것이다.
그 탓에 갑자기 바뀐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덥석.
“어이쿠.”
“이, 이거 놔!”
태공망이 그런 그의 손목을 홱 낚아채 뒤쪽 책상의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는 것만은 막았지만, 야드가르는 여전히 두려움에 휩싸인 상태였다.
“내가 그리도 무섭게 생겼더냐?”
“아빠! 아빠!”
“소용없다. 네 아비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거짓말!”
태공망은 자신을 보자마자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야드가르를 보고서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하려는 일을 행하기 전에, 먼저 아이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약한 인간 아이를 상대로 처음부터 주술을 썼다간 영혼이 버티지 못하고 소멸한다. 그러니 우선은 스스로 내 말을 듣게 해야 해.’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야드가르를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고든이 꾸며놓은 병실 한구석의 사탕을 비롯한 단 것들.
과자 따위로 아이를 진정시킨다는, 지극히 단순한 발상을 떠올린 것이다.
부스럭.
태공망은 곧장 그쪽으로 손을 뻗어 사탕 뭉치를 한 움큼 쥐고서 야드가르에게 내밀었다.
“으악!”
그런데 야드가르는 그걸 보고도 좋아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서워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이런 반응까지 보일 줄은.
“……아, 그렇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태공망은 금세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네가 살던 시대엔 이런 게 없었겠구나.”
그리고는 곧바로 자기 손안에 쥔 과자들 중 하나의 포장지를 벗겨 야드가르에게 내밀었다.
그건 과일 향이 나는 캐러멜이었다.
“먹어보렴. 맛있는 거란다.”
“…….”
야드가르는 거기서 느껴지는 강렬한 딸기 향 합성착향료 냄새에 머뭇거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선뜻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여전히 처음 보는 물건에 대한 경계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안 먹으면, 이 할아버지가 다 먹을 게다.”
태공망은 그 앞에서 포장지를 벗긴 캐러멜을 자신의 입으로 넣었다.
안전한 음식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러자 야드가르의 의심 어린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게다가 때마침 배가 고팠는지, 다른 과자들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먹고 싶으냐? 그럼 마음껏 먹으려무나. 다 네 거야.”
곧 야드가르는 태공망이 건네준 것과 같은 종류의 캐러멜들을 골라 먹기 시작했다.
“……우와.”
그는 과자를 입에 넣자마자 감탄사를 뱉었다.
고전 시대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향상된 식품 가공 기술로 만들어진 이 시대의 과자들은 야드가르에게는 너무 자극적이다 싶을 정도로 강렬한 맛.
생전 단 한 번 느껴 본 적조차 없는 풍부한 과일 향과 단맛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 정도였다.
위험한 경험들을 숱하게 겪어온 야드가르는, 나이답지 않게 주위의 복잡한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어른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기질이 발동하지 않았다.
한순간에 뒤바뀐 환경에서 갑작스럽게 마주한 압도적인 미각의 쾌감은 판단을 흐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맛있더냐?”
끄덕.
야드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공망은 그런 그에게 한껏 인자한 태도로 말했다.
“원한다면 이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을 먹을 수도 있다. 저 밖에 나가면 말이다.”
“……여기가 어디죠?”
“으음……. 네가 있던 곳과는 조금 다른 곳이라는 것만 말해줄 수 있겠구나.”
“아빠는 어디에 있어요?”
“말하지 않았느냐.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고.”
“그럴 리가 없어요. 분명히 방금 전까지 제 옆에 있었는데…….”
“하지만 보다시피, 여긴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곳이란다.”
그 말을 들은 야드가르는 금세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게 맛있는 걸 건네준 태공망이 저런 말을 하니,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이젠 진짜인 것처럼 들린 탓이었다.
씨익.
태공망은 그 반응을 보고서 슬쩍 웃음을 지었다.
‘넘어왔군.’
그제야 비로소 이 작은 아이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보고 싶으냐?”
“……네.”
“그러면 이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시키는 대로요?”
“그래. 내 말대로만 하면, 너는 금방 네 아비를 만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방법은 어렵지 않다. 자, 이걸 받거라.”
태공망은 자신의 품에서 두 뼘 정도 되는 길이의 막대를 꺼내 야드가르에게 내밀었다.
그건 그의 무구인 타신편이었다.
“이게 뭐예요?”
“이걸 쥐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 조금 괴로워도 끝까지 참고, 절대로 놓으면 안 된다.”
“괴, 괴로워도……? 많이 아파요?”
“아비를 잃는 슬픔보다는 덜하지.”
꿀꺽.
태공망의 말에 야드가르는 겁을 먹었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먹은 듯 침을 꿀꺽 삼키고 주먹을 쥐었다.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었던 그에게 이제 와서 작은 고통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알겠어요.”
야드가르는 곧 그가 내민 타신편의 반대쪽 끝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태공망은 그에게 철편을 완전히 넘긴 후, 자신은 손잡이에서 손을 떼었다.
“버티거라.”
“윽!”
화르륵!
그 순간, 타신편에서 흑청색 화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바가 머금고 있는 별의 불꽃.
그것이 타신편으로부터 야드가르에게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대자재천의 화신이 낳은 핏줄이라는 건가.’
태공망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자신은 무슨 수를 써도 발현시키는 게 불가능한 별의 불꽃이, 아무런 능력도 없는 평범한 인간 아이에게 흘러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유결부. 이것만 있으면 된다. 대자재천의 다른 무구들은 보조 수단일 뿐이야.’
타신편은 곧 야드가르의 손안에서 작은 손도끼, 유결부 파라슈로 변해갔다.
유신우가 가진 것과 완전히 똑같은, 바로 그것 말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타신편, 곧 파라슈가 실재하는 하나의 물리적 신물 같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바가 사용하는 모든 무구들은 바로 프라나.
즉, 그 존재에 관한 개념으로 구성된 것들이었다.
그러니 이 세상에 둘 이상으로 존재할 수 있고, 직접적인 전수가 아니라도 각자만이 겪는 개별적인 과정을 통해 자의적으로 얻어내는 게 가능했다.
태공망이 파라슈를 가진 것 역시 바로 그 덕분이었다.
‘예전의 나는 대자재천과 동일한 길을 걸었지만…….’
‘유결부를 네게 건네주기 위해 친우인 시바에게 이것을 전해 받았다’던 그의 말은 모두 거짓.
그는 다만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자로, 타신편으로 위장한 파라슈를 얻은 건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행적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더 이상 파라슈는 물론이고 그것을 가동하기 위한 별의 불꽃마저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만 것이다.
그건 물론 어느 순간 파라슈의 사용자로서 지향해야 할 지향점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바뀐 탓이었다.
‘그건 틀린 길이었다. 이 세상은 혼돈에 의해 통제되어야 해.’
지금의 태공망은 시바의 친우였던 시절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다시 신화대전 이전의 초창기 세상을 재림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화르륵.
그걸 위해서는 별의 불꽃을 두르고 불멸자들을 영멸시키는 파라슈의 소유자, 시바의 아바타라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