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08화
나는 날개를 펼치고 시바가 머물던 땅을 벗어나 광활한 우주 공간 한가운데로 날아왔다.
주위로 수없이 많은 별들이 검은 바다 위를 수놓은 것이 보인다.
행성에서 멀리 떨어져 높은 곳까지 나와보니, 아까 전 눈을 부시게 하던 밝은 태양은 어느샌가 저 멀리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바가 머물던 그 땅에는 어둠이 드리워 있었다.
역시 여긴 기존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전혀 다른 세계인 것일까.
‘탈출할 방법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난 더 막막한 장애물에 부딪혀 있는 상태였다.
일반적인 개념과 상식으로 이 난제를 돌파할 수는 없었다.
‘혼돈은 내가 위치한 영역보다 훨씬 더 고차원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했지. 인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단순히 공간을 뛰어넘는 것으로는 갈 수 없다.
시간을 역행하는 것 정도만으로는 무의미하다.
그 모든 차원을 한꺼번에 뛰어넘는 강력한 영향력을 세계에 발산해야만 한다.
{진 멸절 파슈파타 전개}
그래서 나는 곧바로 시바에게 받은 힘을 펼쳤다.
이걸로 혼돈에게 맞섰고, 또 이 공간으로 흘러들어오게 만든 원인이었던 만큼, 나갈 때도 이것을 사용하는 것이 옳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척.
검은 공간 한가운데서, 힘을 가득 머금은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거기선 원래의 것보다 훨씬 더, 아니 그런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에너지가 흘러나왔다.
‘이게 시바가 도달한 마지막 경지라고?’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그 너머 어딘가.
말 그대로 세계를 멸망시킬 힘이 거기에 들어 있는 동시에, 또한 그 속에는 창조의 기운도 함께 들어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부수거나 파괴하는 데 그치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주의 원리와도 같은 불과 얼음의 조화가 그 안에 충만했다.
‘이 정도의 경지에 닿아놓고서도 혼돈에게는 대항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좌절했다는 건가.’
시바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목표를 일찌감치 포기해버린 상태였다.
그만큼 혼돈이 두려운 존재라는 반증이었다.
‘두렵다. 하지만.’
언젠간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어쩌면 치기로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런 얄팍한 기질로라도 해내야 한다.
내겐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니 말이다.
화악.
파슈파타를 앞으로 뻗어 멸절의 힘을 방출하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이 상태에서 주문을 읊조려 스스로 발동하게 만드는 것 정도가 내게는 한계.
이전에 했던 것처럼 검기 형태로 만들어 날리는 등의 인위적인 발현은 불가능하다.
시바가 넘겨준 파슈파타의 마지막 경지는 내가 함부로 통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하 프랄라야 파슈파타스트라.”
마음을 먹은 나는 과감하게 파슈파타를 발동시켰다.
곧, 눈앞이 새하얀 빛으로 가득 찼다.
흑청색의 별 불꽃과는 반대의, 청백색의 밝은 물결이 검으로부터 요동치며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하얀 구체가 만들어져 검 앞으로 튀어 나가더니.
파아앙!
순식간에 산산 조각나며 사방으로 자신의 조각들을 뻗어냈다.
쿵. 쿵. 쿠웅.
그리고 그 조각들은 광활한 우주 곳곳에서 제각기 다른 규모의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의 반향은 아득히 먼 거리에서조차 내 몸에 닿을 정도로 강했다.
당연히 거기에 휩쓸린 몇몇 행성들은 소멸되기도 했고, 동시에 공전하는 항성과 부딪혀 하나로 병합되기도 했다.
또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머무른 폭발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별이 태어났다.
‘파괴와 창조…… 시바의 힘.’
이전의 멸절 파슈파타가 한 세계를 파괴하는 데 그치는 힘이었다면, 진 멸절 파슈파타는 그것을 아득히 넘어선.
수많은 별들을 파괴하고 창조해 내는 힘이었다.
이것으로 난 이 시공간의 끝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독립된 차원에 현실 우주와 비슷한 별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자가 만든 거였구나. 이 모든 게.’
시바 역시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들였다.
그 결과 이 주변에는 환하게 빛나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만들어졌다.
물론 이곳은 애초에 에테르가 일절 존재하지 않는 차원이라 만들어진 별에도 새로운 생명이 나타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여기서 얼마나 많은 횟수의 시도를 행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많은 숫자의 별들은 곧 그가 들였던 노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렇군…….’
스르륵.
이윽고 눈이 감긴다.
새로운 세계들을 창조한 대가로 몸 안에 있는 생명력을 모두 소진한 탓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 * *
부활할 수 있는 지점은 단 한 곳, 제자리뿐.
이전에 내가 지정해 두었던 모든 현세의 부활 장소는 이 안에서 무력화되었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이로써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 가지 더 줄어들었음을 확인한 셈이다.
물론 부활을 이곳에서밖에 할 수 없다는 건, 진 멸절 파슈파타를 사용한 탈출 역시 무위로 돌아갔다는 뜻이기도 했다.
‘역시 될 리가 없지. 이게 먹혔다면 애초에 시바도 여기에 갇혀 있지 않았을 테고.’
다만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면, 현재 내가 와 있는 곳이 아까 전에 있던 것보다 한참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이 근방에선 시바의 존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간을 뛰어넘은 건가.’
마지막 순간, 나는 파괴와 재창조가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공간이 뒤틀리는 장면을 보았다.
아마 나는 그 영향력에 의해 원래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좌표로 옮겨온 모양이었다.
내 감각으로는 아예 닿지도 않는 것으로 보아 꽤나 먼 곳까지 도약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이 우주를 벗어난 건 아니었다.
여전히 주변 곳곳에 떠 있는 별들로부터 내가 발현시켰던 익숙한 기운들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바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 그 경계 안에 머물러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나는 이제 막 그가 넘겨준 마지막 경지를 건네받았을 뿐이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들였을 길고 긴 시간의 발끝조차 따라가지도 못했고 말이다.
통제할 수도 없는 도구를 가지고서, 도리어 그것의 원류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사실이 높디높은 벽으로 느껴졌지만.
그래도 내겐 시도해볼 수 있는 여지가 아직은 남아 있었다.
‘그래.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
나에겐 시바에게는 없는, 온전한 나만의 권능이 있다.
대자재천의 화신, 혹은 시바의 아바타라가 아니라.
악룡의 창조자인 앙그라 마이뉴로서.
‘아지다하카.’
나는 내 안에서 별 불꽃을 갉아먹는 검은 용을 불러냈다.
현세에서 그것의 온전한 본체를 소환하는 건 실로 오랜만.
당연히 이건 예전에 했던 것과 차원이 다른 양의 기력을 소진하는 행위였다.
지금 아지다하카는 태초신격인 이미르의 영을 잡아먹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콰우우우.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파동을 뿜어내는 아지다하카가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몸 안에서 더 많은 양의 별 불꽃을 집어삼켜, 이전보다 한층 더 짙은 농도의 용염을 두른 채로 말이다.
‘공간…… 그 너머 심원세계의 차원축을 자른다.’
난 그 녀석을 움직여 다시 한번 허공을 베어냈다.
흑검익(黑劍翼) 아지다하카는 자신의 날카로운 날개를 마치 검처럼 휘둘렀고.
쐐애액!
“마하 프랄라야 파슈파타스트라.”
난 그 참격이 만들어낸 균열 안으로 진 멸절 파슈파타를 쏘아 보냈다.
그저 단순한 힘의 조합이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감당이 불가능한 대재앙이 펼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공간의 끝 속에선 무엇이든 가능하다.
누구의 희생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여긴 나의 힘을 얼마든지 마음껏 발산하며 시험해 봐도 되는 자유로운 연습 장소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저건……?’
그리고 그렇게 사정없이 비틀어버린 균열 속에서,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발견했다.
균열 너머 진 멸절 파슈파타를 전개하는 내 쪽을 쳐다보며, 눈부심에 손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
‘나?’
바로 얼마 전의 나 자신을 맞닥뜨림으로써 말이다.
‘시간을…… 거슬렀다.’
나는 공간 도약을 넘어 시간 도약에 성공했다.
비록 힘의 통제가 미비해 원하는 시간대로 움직이는 등의 세세한 조정은 불가했지만.
어쨌든 이걸로 혼돈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간 셈이었다.
‘좀 더 힘을 통제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위, 고차원의 영역에 도달하려면 난 이것을 훨씬 세밀하게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파슈파타와 아지다하카.
둘을 동시에 자유자재로 전개하며 힘의 흐름을 원하는 대로 조절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다음으로 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선 이것부터 처리하자.’
나는 그 자리에서 발현된 진 멸절 파슈파타의 방향을 비틀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이대로라면 이 파괴 파장이 과거의 나에게 그대로 적중해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
시바의 설명대로라면, 좌표평면의 4번째 축인 시간이 고정되어 있는 한 저 앞에 있는 나는 완전히 동일한 존재인 나 자신이다.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나 같은 게 아니고 말이다.
따라서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면, 모든 게 꼬여버릴지도 모르므로, 우선은 파슈파타를 빗겨나가게 할 필요가 있다.
“크으읍!”
나는 모든 힘을 다해 발동된 진 멸절 파슈파타의 청백색 구체의 이동 각도를 최대한 틀어냈다.
마치 태양처럼 타오르는 그것은 곧 과거의 내가 서 있는 별의 측면을 스쳐 지나갔고.
‘됐다…… 이대로…….’
거기까지 의식을 붙잡고 있던 나는 끝내 생명력을 모두 소진하고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나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발견한 채 다시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왔다.
* * *
쿵. 쿠궁.
땅이 울린다.
하늘은 붉게 타오르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유성들이 끊임없이 지표면으로 떨어지고 있다.
세계는 그에 따라 급속하게 뜨거워져 갔다.
도시의 보호막 바깥에선 살 수 없는 게 당연한 상식이 된 지 오래였지만, 이제는 그 보호막조차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다.
콰창!
타카마 시티의 하늘이 갑자기 깨졌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운석 하나가 떨어졌다.
쾅! 콰르르!
운석의 충격으로 인해 주변의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다행히 건물 내부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그동안의 난리로 인해 타카마 시티의 상당 영역이 공동화된 지 오래였던 탓.
쿵. 쿵.
운석은 겉보기엔 단순한 돌덩어리처럼 보였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헐떡거리며 숨을 쉬고 있는, 살아 있는 물체였다.
곧 그 물체의 표면에 금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금 간 부분이 깨져 나가며 완전히 둘로 갈라졌다.
스윽.
그리고 그 안으로부터, 나체의 인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보통의 인간과 다른 점은, 마치 채색되지 않은 것처럼 투명한 피부를 가져 내부의 근육과 뼈, 장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무색인(無色人)이라는 것이었다.
“저쪽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석의 낙하지점에 무기를 든 각성자들이 나타났다.
최윤아를 필두로 한 거너들이었다.
“저게 뭐야?”
그녀는 무색인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껏 무수히 많은 뒤틀린 마물들을 봐왔지만, 무색인은 그것들조차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 만큼 압도적인 불쾌함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
다른 건 몰라도 눈꺼풀이 없어 눈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 얼굴만큼은 정말로 보기가 힘들었다.
“어, 어떡하죠?”
“어…… 일단…….”
최윤아는 그것을 맞닥뜨리고선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저게 적인지, 무엇인지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 거너들은 그 망설임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