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05화
시바의 세 번째 부인, 자해의 여신 친나마스타가 눈을 떴다.
자신의 피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을 구휼한 자.
작은 희생을 감안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레아가 종국에 도달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구원이었다.
{위험에 처한 이들을 보호합니다.}
{공간 격리를 실행합니다.}
레아의 피가 바닥을 물들여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동시에 그 피는 이곳 예루살렘의 민간인들 주변을 감싸며 각각을 보호하는 방어막이 되었다.
그건 물리적인 공간 자체를 단절해, 완전한 보호를 보장하는 결계였다.
털썩.
자신의 피로 사람들을 구한 그녀는, 가슴에 창을 꽂은 채 다리가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난…… 죽는 건가?”
그녀는 웃고 있었다.
마음이 편해진 듯해 보였다.
난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죽으려면 한참 멀었지.”
툭.
레아가 무릎을 꿇은 채 내 손을 붙잡았다.
창날이 꿰뚫은 그녀의 가슴팍에선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직 100년은 더 살아야 하지 않겠어?”
“신우…….”
별의 불꽃이 손을 통해 나에게서 그녀에게로 옮겨간다.
그녀를 찌른 창이 파랗게 빛난다.
{트리슈라의 프라나가 친나마스타에게 전이된다.}
곧 창의 빛은 레아의 몸을 에워쌌다.
그러자 대량의 별 불꽃이 마치 증식하듯 폭발했다.
사그라져 가던 그녀의 생명력이 더욱 활발하게 타올랐다.
“가자.”
난 붙잡은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가슴에 꽂혀 있던 트리슈라는, 어느새 빛무리로 변해 그녀의 몸의 일부가 되었다.
“전부 원래대로 돌려놔야지.”
“……응.”
{영혼 공명}
{친나마스타가 너의 용기사가 되었다}
레아는 다시 나에게로 왔다.
이제 그녀의 창이 향할 곳은 내가 아닌 펜리르일 것이다.
콰드득. 콰득.
레아의 피부 표면에 검은 용 비늘이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건 곧 그녀가 평소에 입던 의복의 형상을 갖췄다.
파앗.
동시에 손에는 세 개의 창날이 달린 마창, 트리슈라가 쥐어졌다.
시바의 힘을 이어받은 여신 친나마스타가 이곳에 현신한 것 같았다.
위이잉.
등 뒤의 날개가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빛을 발했다.
아지다하카의 흑검익이 마력을 방출하는 순간.
콰우우우!
눈 깜짝할 사이 구름에 닿을 정도로 높은 곳까지 튀어 올랐다.
아래에 있는 예루살렘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
이곳에서, 펜리르가 있는 지점을 노린다.
‘찾았다.’
나는 그대로 파슈파타를 움켜쥐고 방향을 바꿔 급하강할 태세를 취했다.
나와 생각을 공유하는 레아 역시 내 의지를 읽고 트리슈라를 아래로 내밀었다.
‘합류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델의 목소리도 내게 들려왔다.
저 멀리, 구름 사이에서 날개를 펼친 아델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찬드라하스를 쥐고 있었다.
‘저도 갈게요.’
다른 방향에선 유메미가 나타났다.
그녀는 카트반가를 쥐고 있었다.
퍼엉!
세 사람과 나는 동시에 날개의 추진력을 최대로 발산하며, 유성과 같이 지상으로 강하했다.
충돌로 발생할 피해 같은 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레아가 만든 공간 단절 보호막이 저 아래의 민간인들을 모두 보호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궁!
곧 예루살렘은 폭음과 화염, 충격파로 뒤덮였다.
지상은 초토화되었다.
* * *
“조잡한 술수를 썼구나.”
펜리르는 고고도에서 강하하며 들이닥치는 내 일격을 용케도 받아쳤다.
주변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지만, 정작 내가 노렸던 목표물인 그는 큰 피해를 입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조잡하다고 하기엔 너무 완벽하지.”
나는 주변을 흘끗, 살펴보았다.
공간 단절 보호막에 의해 둘러싸인 민간인들은 멀쩡했다.
갑자기 발생한 대폭발에 조금 겁먹은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걸로 난 여기서 마음껏 날뛸 수 있는 것이다.
“한낱 필멸자 주제에!”
촤악!
펜리르가 쥐고 있던 단검이 거대화되어 대검으로 변화했다.
지난번 헬을 죽이고서 대적했던 ‘가름’의 것과 유사해 보이는 권능.
물론 진짜 신인 이쪽의 것이 훨씬 더 크고 묵직했다.
투쾅!
그의 칼날이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무거운 검압이 실리며, 공기를 가르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포알이 발사되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압력에 의해 주변 흙먼지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달 그림자 검식 파생형 ‘만월청영’ 6연}
피잉!
그에 대응한 반격.
재빠른 여섯 번의 참격이 한꺼번에 날아들어 펜리르의 대검을 튕겨냈다.
그리고 그 튕겨 나간 검의 여파로 놈의 몸통이 크게 열렸다.
난 그 틈을 노려 큰 공격을 꽂아 넣었다.
{적사자 검식 파생형 ‘용격 금강염사’ 고압 파동 해방}
투화악!
단단한 용비늘을 두른 화염의 사자가 칼끝에서 발산된다.
두 팔을 위로 쳐든 펜리르의 허리를 물어뜯으러, 입을 잔뜩 벌리고서 달려들었다.
“큭!”
펜리르는 그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자세를 무너뜨리며 뒤로 굴렀다.
물론 그보다 더 빠르게 사자가 달려들었지만, 그는 자신의 형태를 변화시키며 공격을 피하려 했다.
츠팟!
늑대 형상의 재빠른 몸놀림으로 내 공격 범위에서 이탈하려던 그의 전략은 반만 성공했다.
펜리르는 금강염사를 단순히 일직선으로 전진하는 평범한 방출형 검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때문에 그는 형태를 변화하며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측면 회피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저건 스스로 살아 움직이며 목표를 추적하는 짐승.
사자는 그의 움직임에 반응해 고개를 돌리면서 쫓아갔다.
화륵!
그러곤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달려들어 옆구리를 크게 물어뜯었다.
“크아아악!”
펜리르는 결국 몸통의 반쪽이 뭉텅 잘려 나간 채로 바닥을 나뒹굴고 말았다.
“……으…….”
펜리르는 다시 인간 형태로 돌아와 있었다.
역시 불멸자답게 상처는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중이었지만, 그걸 내가 그대로 내버려 둘 리는 없다.
나는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적사자 검식 파생형 ‘용격 신기일섬’ 대회전연참}
스르륵!
신기루처럼 흐려지며 순식간에 다가선다.
펜리르는 부상을 입은 와중에도 방어를 위해 다시 대검을 치켜들었다.
카앙!
그 위로 내리꽂히는 신속의 돌진 베기.
펜리르는 뒤로 크게 밀려났다.
정상인 몸 상태에서도 이걸 막기는 어려울 텐데, 중상을 입은 채로는 당연히 더 무리일 수밖에 없다.
울컥.
그의 오른쪽 허리 상처에서 대량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물론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참격을 내지른 자세에서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다시 같은 공격을 가했다.
카앙!
펜리르는 또 한 번 대검을 치켜들어 막아냈다.
그래서 그다음은 놈의 등 뒤를 노렸다.
서걱!
적중했다.
이어지는 제4격은 왼 무릎 뒤, 도가니에.
카앙!
막혔다.
그러나 이제 놈에겐 더 이상 방어할 여력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투콱! 투콱!
제5격과 제6격은 각각 왼팔과 허리를 베었다.
그것으로 펜리르는 상반신이 완전히 하반신과 분리되었다.
무거운 대검을 쥔 오른팔만 남은 채, 상반신이 바닥에 내팽개쳐진다.
털썩.
“이제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둬라.”
이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결말.
다른 수많은 대악마들의 힘을 착취하다시피 하는 형태로 연결시킨 아후라 마즈다도 겨우 나와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그때는 이미르의 힘을 취하지도 않았던 때였다.
이제는 그때보다 월등히 더 강해져버린 나를, 펜리르가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너흰 끝이야. 아후라 마즈다는 죽었고, 지상에 올라온 악마들은 모두 내 손에 영멸당할 거다.”
“……큭큭.”
그런데 그는 완전히 가망이 없는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을 보였다.
아직 숨겨둔 무언가가 남아 있기라도 한 걸까.
“여기 있는 사람들을 인질 삼고 싶은 거라면 포기해라. 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으니까.”
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까 전의 충격파는 물론이고, 방금 전의 전투로 발생한 후폭풍으로 인해 예루살렘은 어느 한 곳 성한 데 없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레아와 유메미, 아델이 각자 곳곳에서 악마들과 마병들을 상대하며 일으키는 여파들도 거기에 더해지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군데군데 붉은 막으로 둘러싸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땅이 이렇게 갈려 나가는 와중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친나마스타, 레아의 희생으로 구원받은 것이다.
“아후라 마즈다 님이 죽었다고?”
“……음?”
그런데 펜리르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분은 절대 죽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불멸자라는 명칭조차 어울리지 않지.”
아후라 마즈다가 살아 있다는 펜리르의 말.
그 녀석은 분명 내 파라슈에 베여져 죽었다.
그 도끼에 당했다면 제아무리 격이 높은 신이라 한들 존재 자체가 흔적도 없이 지워진다.
그리고 그때의 내 손에 느껴진 감촉은, 정확하게 그 녀석의 영혼을 베는 감촉이었다.
“헛소리하지 마.”
그래서 난 그 녀석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있지도 않은 말을 이 녀석이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 내 마음 한구석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흐흐…….”
펜리르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꿈틀거렸다.
놈은 더 이상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별 불꽃의 영향으로 인해, 회복력마저 잃었다.
이제 놈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살하려는 건가?’
내 손에 죽어 영멸당하는 대신, 죽고 다시 부활하는 선택이 최선이겠지.
왼팔은 잃었고, 오른팔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저 무겁고 거대한 검을 지탱할 하반신이 없다.
그렇다면 남은 수단은.
‘마법이군.’
꿈틀. 꿈틀.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펜리르는 남아 있는 오른손 검지를 움직여 땅에 어떤 표식을 그리고 있었다.
아마도 놈은 단순히 머릿속으로 영창하는 것만으로 발동시키는 자살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던 듯하다.
신들이 사용하는 권능은 자기 자신에겐 해를 끼치지 않으니, 다른 원천에서 에너지를 빌려오는 마법이라는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결국 놈이 저렇게 여유를 부리며 이상한 소리를 해댔던 건, 내게서 빠져나가기 위한 시간 벌기용이었다.
‘그렇겐 안 되지.’
난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를 생각이 없었다.
{유결부 파라슈 소환}
재빨리 왼손에 도끼를 소환해 움켜쥐고선, 놈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머릿속으로 유메미를 불러냈다.
“아후라 마즈다 님!”
아니나 다를까, 작은 표식을 그리는 것을 마친 펜리르는 손을 들며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것이 마치 아후라 마즈다를 소환하는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네!’
{디스펠 매직 - 카트반가 강화}
하지만 난 이미 그에 대한 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저 먼 곳, 거의 보이지도 않는 거리로부터, 의식 공유를 통해 내 유도를 받은 유메미가 초장거리 디스펠 매직을 시전했다.
카트반가 강화로 인해 발동 시간은 즉각적.
그 영향으로, 펜리르가 사용하는 작은 마법 정도는 순식간에 차단할 수 있었다.
“아니, 어째서……!”
“아쉽게 됐군.”
이제 남은 건 놈을 죽이는 것뿐.
나는 파라슈를 휘둘러 당혹감에 물든 펜리르의 영혼을 베어냈다.
서걱.
작은 손도끼가 그의 머리를 통과했다.
도끼날이 영혼을 파고드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펜리르의 영혼은 소멸하고.
그의 육신은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요르문간드의 마지막 남은 영혼 조각과 펜리르의 영혼을 수복하지 못한 건 조금 아쉽지만.’
파라슈로 베어버린 탓에 니플헤임 삼남매의 힘을 전부 흡수해 내는 건 실패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놈이 또 다른 술수를 쓰기 전에 빠르게 없애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흡수하겠답시고 살려뒀다가 무슨 후환이 될지 모르니 말이다.
‘신우 씨, 뭔가…… 이상해요.’
그런데 그때, 유메미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뭐가?’
‘디스펠이 실패한 걸로 보이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디스펠 실패?
설마 펜리르가 사용한 마법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뜻인가? 유메미가?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이후의 상황을 대비했지만, 그녀의 말의 의미는 조금 달랐다.
‘아예 마법 발동이 되질 않았어요. 그러니까 방금 그자는…… 아무런 마법도 쓰지 않은 거예요.’
‘뭐라고?’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속해서 벌어지고 있던 찰나.
{혼돈의 결정이 강림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하늘에서, 하얀 빛무리와 함께 천사가 내려왔다.
천사의 등 뒤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묘한 2차원의 무지갯빛 날개가 하늘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