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03화
저벅. 저벅.
늑대의 머리를 한 기사가 빛 한 점 없는 통로를 따라 아래로 걸어 내려간다.
손에는 허리춤에서 빼든 칼이 쥐어져 있다.
달칵. 끼이익.
그 통로 끝에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안에서부터 희미한 붉은빛이 새어 나왔다.
환락가를 연상시키는 화려하게 치장된 침실.
가름은 잔뜩 긴장한 채로, 천천히 내부를 훑어보듯 확인했다.
“뭐야?”
그리고 그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창백한 피부를 가진 여성.
헬이었다.
그녀는 나체인 상태로 다리를 꼬고서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스릉.
“죄송합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습니다.”
가름은 빼 들었던 칼을 허리춤의 칼집에 꽂아 넣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말대로 그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내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헬은 멀쩡하게 모든 일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됐다. 밖에서 기다려. 옷 입고 나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가름은 여전히 의아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또 뭐지?”
“남자의 시체는 어디에 있습니까?”
원래 시간을 끝내고 난 후에 희생자는 모든 정기를 잃은 채 싸늘한 시체로 누워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처리는 가름의 몫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어째선지 방 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유혈이 낭자한 침대 위에, 헬만이 혼자서 우아한 자태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없애버렸어.”
“……예?”
“저주가 불안정하더군. 내게 반항하기에 좀 거칠게 죽여 버렸어. 시체는 불태워 소멸시켰고.”
“그러셨군요.”
가름은 그 말을 금세 납득했다.
실제로 그 희생자가 오늘 이 집 안으로 들어올 때 약간의 차질이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게 다 저주의 불안정함 때문이었다면 말이 되는 소리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서 가름은 순순히 뒤돌아 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헬은 그 자리에서 벗어놓은 옷을 주워 입으려 했다.
그 순간.
쉬익!
카앙!
번쩍이는 섬광과 동시에 두 금속이 서로 맞부딪혔다.
가름의 허리춤에 납도되어 있던 칼은 어느새 헬의 목을 노리며 날아들었고.
헬은 그 짧은 순간에 엄청난 반응속도로 손에서 검을 소환하며 참격을 막아냈다.
콰앙!
두 힘의 격돌이 맹렬한 파동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그들이 서 있던 공간은 완전히 초토화되고, 위층의 집은 통째로 파괴되며 잔해가 하늘로 치솟았다.
어두컴컴하던 지하의 천장에 새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내 눈은 못 속인다.”
가름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빛난다.
그의 눈은 헬의 외모를 하고 있는 이질적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 * *
‘역시 안 먹히는 건가.’
나는 헬의 성역을 차지한 후 그녀의 모든 존재를 흡수한 다음, 현실로 돌아와 시체에게 포식을 사용했다.
그러곤 그녀의 모습으로 변해 가름을 속여 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
일정 수준 이상의 강자에게는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으로는 속이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스르륵.
나는 검을 맞댄 채로 포식 변신을 해제하고 본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에 둘린 검은 용비늘이 몸에 맞는 의복 형상으로 변형되며 드러난 신체를 보호했다.
“헬라 님은 어디 있지?”
“어디 있을까?”
“이 개자식!”
나는 웃으며 가름의 말을 받아쳤다.
그는 크게 흥분하며 맞대고 있던 검을 재차 휘둘렀다.
자신의 키와 덩치로 내리찍는 검술.
기술보다는 힘과 화력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인 것 같았다.
‘이런 녀석이라면 다루기 더 쉽지.'
제아무리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하더라도, 원판이 짐승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일 터.
나는 옆으로 살짝 스텝을 밟으면서, 손에 쥐고 있는 찬드라하스를 완만하게 기울여 공격을 흘려낼 준비를 취했다.
발산하는 에너지를 큰 폭으로 감소시켜, 주변에 일으키는 후폭풍을 최대한으로 줄일 생각이었다.
이미 한차례의 충돌로 주의를 심하게 끌긴 했지만, 주변에 일으킬 피해만큼은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크라아악!”
가름은 그 외견에 걸맞게 마수와 같은 괴성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눈에 서린 붉은 안광이 더욱 시뻘겋게 빛났다.
콰우우우!
‘대검?’
그 순간, 그가 휘두르던 평범한 장검의 길이와 두께가 순식간에 몇 배로 커졌다.
무구 투영을 했거나 마력의 칼날을 씌웠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검 자체가 물리적으로 거대해진 것이다.
덕분에 거기에 실린 압력 역시 배로 부풀려졌다.
‘강하다!’
투쾅!
찬드라하스로 공격을 흘려낸다는 시도는 성공했다.
그걸로 가름의 참격에서 발산되는 에너지의 폭발력을 줄이는 것도 성공했다.
문제는, 그렇게 줄어든 에너지마저도 주체할 수 없이 거대했다는 것이다.
쿠구구구궁!
한차례 충돌로 황폐화되었던 주변 영역에 더 거대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가히 대규모 지각변동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지진.
단순히 땅이 조금 파이고 집이 날아가는 수준이 아니라.
지반 자체가 통째로 치솟아 오르는 충격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로 인해 주변의 주택가 구역이 한꺼번에 내려앉았다.
그 탓에 결정화되어 딱딱하게 굳은 채 파묻혀 있던 다수의 시신들까지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젠장……!’
이곳은 헬이 자신의 비밀 장소를 숨겨두기 위한 곳이라 인구가 그리 집중된 곳은 아니었다.
그 덕에 피해가 심각할 정도는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해도 예상을 벗어난 건 마찬가지.
저 가름이라는 녀석이 이 정도로 무식한 공격력을 가진 놈일 줄은.
‘역시 지옥의 파수견이라 이건가?’
나는 여기서 피해를 더 감수하더라도 빠르게 이탈해야만 한다.
원래대로라면 그를 완벽하게 제압한 유유히 다음 자리를 뜨는 계획을 상정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되면 충돌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터.
그러니 날뛰는 가름을 내버려 둔 채 도망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아직은 괜찮다. 이 정도라면 유메미가 봤던 미래에서 크게 틀어지지 않았어.'
여기까지는 모두 예상 내였다.
군데군데 생각지 못했던 변수들이 많이 있었긴 했지만, 그래도 최종 목적에 이르는 데까지 크게 벗어난 건 아니었다.
레아로 하여금 스스로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한다는 목적 말이다.
‘이대로 이 지역을 벗어난다. 속도라면 자신 있어.'
나는 다시 한번 뒤로 빠지면서 가름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물론 그 녀석은 나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피하기만 하려는 것이냐!”
퍼엉!
땅을 박차며 빠르게 추격해 온다.
동시에 거대한 검을 휘두른다.
거기에 맺힌 마력은 방금 전의 대파괴보다 한 층 위였다.
‘할 수 있을까?’
저 공격을 떨쳐내고 이탈한다.
그건 아무리 나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정면으로 맞붙어서 빈틈을 노려 목을 베는 게 차라리 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도주하기 위해 날개를 펼쳤다.
펄럭.
아지다하카의 검은 날개가 내 등에서 솟아났다.
한층 더 강한 힘으로 이루어진 별 불꽃의 날개를 펴는 대신, 실체화된 용의 날개.
어찌 보면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온 셈이었다.
{아지다하카의 날개를 활성화한다.}
물론 그때와 마냥 똑같은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의 아지다하카는 이미르와 헬, 그리고 별 불꽃을 삼켜 ‘흑검익(黑劍翼)’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키이잉.
단단하고 날카롭게 벼려진 익막의 사이사이에서 파란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엔진이 점화되는 소리와도 같았다.
“도망칠 생각은 마라!”
가름의 검이 내 머리 위로 닥쳐왔다.
이대로라면 난 날아오른다 하더라도 저 녀석의 검에 의해 그대로 머리가 쪼개져 죽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더 이상 멈출 수 없다.
콰우우우!
퍼엉!
엔진음과 같은 소리를 내던 날개의 아래쪽에서, 푸른 불꽃을 내뿜었다.
지표면에 분사된 푸른 불꽃은 나를 급속도로 밀어냈고.
내 머리에 거의 닿을 정도로 검을 내밀었던 가름은 그 충격파에 의해 뒤로 튕겨 나갔다.
그렇게 나는 눈 깜짝할 사이 고공으로 치솟았다.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
지상으로부터 구름이 발밑에 위치한 고도에 닿기까지의 시간이었다.
* * *
황폐화된 주택가.
그곳에 하얀 모피를 두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아인종 공무원들이 그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펜리르 님.”
예루살렘의 군사 영역을 총괄하는, 니플헤임의 펜리르였다.
“상황 파악은?”
“가름과 외부 침입자가 전투를 벌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 침입자는 누군가?”
“칠지도의 주인…… 타카마 시티의 유신우라는 자입니다.”
“그놈이? 어떻게 이 안까지…….”
“죄송합니다.”
“아니, 자네가 죄송해할 필요는 없어. 그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을 일이니까.”
펜리르는 흘끗, 현장의 잔해 위에 망연자실히 앉아 있는 가름을 쳐다보았다.
“그보다는 왜 유신우가 여기까지 와서 다른 자도 아니고 저 녀석과 싸웠는지가 궁금하군.”
“그건, 그러니까……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그의 물음에 성실히 대답하던 다크엘프 수사관이 우물쭈물했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 표정.
펜리르는 그런 그가 편히 말할 수 있도록 보채지 않았다.
“정리가 아직 되지 않은 모양이군. 내용을 제대로 파악한 후에 보고해도 좋다.”
“아, 아닙니다. 정리가 되기는 했는데, 제가 이해하기엔 너무 난해한 것들이 많아서…….”
“난해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펜리르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온화한 표정과 말투였던 그가, 뭔가 수상한 낌새를 감지한 것이다.
“말해봐라.”
“현장 주변에서 다수의 남성들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도 이상할 정도로 딱딱하게 굳은 채로 말입니다. 처음엔 가름 님이 그것들을 숨기려 하는 것 같아서 그에 대해 물었는데,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펜리르는 그의 설명을 듣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딱딱하게 굳은 남자의 시신들이?”
“그렇습니다.”
펜리르는 수사관을 지나쳐 곧장 가만히 앉아 있는 가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결정화된 시신들을 둘러보았다.
가름은 그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이 자식.”
“…….”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이 오간다.
펜리르는 분노한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가름은 고개를 숙였다.
터벅. 터벅. 콱.
결국 펜리르는 참지 못하고 멱살을 잡았다.
거구의 덩치를 가진 데다, 힘까지 우월한 그는 한 손으로 가름을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나를 배신한 거냐?”
“……죄송합니다.”
펜리르는 이 결정화된 시체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게 헬이 남긴 행위의 부산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제대로 감시하라고 했을 텐데.”
그는 니플헤임에서부터 헬이 자신의 힘을 위해 시간을 저지르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펜리르는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피에서 태어난 가름을 붙여 두었고 말이다.
하지만 가름은 어느 순간부터 펜리르의 명을 무시하고 헬을 도왔다.
그런 정황이 이 현장으로 인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지금 헬은 어디 있지?”
“……죄송합니다.”
가름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확실했다.
“……하.”
펜리르는 그의 멱살을 놓으며 실소를 흘렸다.
아니, 조소라고 해야 할까.
그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묘한 웃음이었다.
“책임을 져야 할 거다.”
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가름에게서 등을 돌렸다.
가름은 그런 그의 등을 불안하게 쳐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