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02화 (302/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02화

“이리 와 앉아.”

헬이 내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마치 주인이 개에게 명령하듯 하는 태도다.

상대를 복종하게 만드는 저주를 걸었으니 당연한 거겠지.

하지만 그녀에겐 안타깝게도 지금 나는 그 저주가 걸려 있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한데 갑자기 헬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녀의 시선이 내 오른팔에 닿았다.

“그 등 뒤에 감춘 건 뭐지?”

어색하게 한쪽 손을 허리 뒤로 돌리고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긴 것이다.

거기엔 당연하게도 파라슈가 들려 있다.

“너 혹시…….”

헬이 거기서 뭔가를 더 말하려던 순간.

“뭐긴 뭐야. 널 쳐 죽일 도끼지.”

후웅.

나는 주저 없이 손을 앞으로 내밀어 손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아……!”

그 극히 짧은 찰나에, 헬의 동공이 커지며 양손에 마력이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급습에 대항해 마법을 시전하려는 것이다.

그녀 역시 방금 전 내 어색한 태도로부터 뭔가 눈치를 챘겠지.

언제든 영창을 마칠 수 있도록 준비도 마쳤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근거리에서의 반응속도 면에서 나를 이길 수는 없다.

손이 닿을 거리에서 빠르게 도끼를 휘둘러 벤다.

이 간결한 행위를 받아치는 건 나와 동등한 수준의 무력을 갖춘 자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니 말이다.

투콱.

결국 파라슈의 도끼날은 헬의 머리통을 통과하고 말았다.

손가락을 통해 전해져 오는 묵직한 타격감이, 목표를 제대로 분쇄했음을 내게 알린다.

헬의 육신에 들어 있는 영혼은 그걸로, 완전히 소멸하고 만 것이다.

풀썩.

눈빛의 생기를 잃은 채 그녀의 몸이 기울어진다.

푹신한 침대 위로, 진짜 시체가 되어버린 짙푸른 피부의 마녀가 쓰러졌다.

‘일이 잘 풀렸군.’

생각했던 그대로.

내 정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헬을 암살하는 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성공했다.

큰 소란을 일으키지도 않고, 사람들을 휘말리게 한 것도 아닌 채로 말이다.

‘이제 남은 건…… 저 위에 가름을 처리하는 거군.’

나를 의심하던 그 늑대인간 역시 만만찮은 실력을 가진 녀석이다.

애초에 인간이 아니라 마수였으니, 감각 하나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터.

나는 파라슈를 움켜쥐고 비밀방의 문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와 마력 파장에 감각을 집중했다.

바로 그때.

{결전심상결계발동}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신은 헬의 성역에 이끌려 들어갑니다.}

‘뭐?’

그리고 곧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하늘로 붕 떠올랐다.

내 몸이 아니라, 내 영혼이 말이다.

발아래 정지한 채 서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나는 곧 지하의 비밀방 천장을 통과해 급속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예루살렘이 조그맣게 쪼그라져 보일 정도로 멀어지고, 구름을 지나 파란 하늘 바깥의 검은 바다, 우주 공간으로 튕겨 나간다.

이윽고 지구도 멀어지고, 주변의 별들이 주욱 길게 늘어지는 것처럼 보이다, 우주 한가운데 어느 위치에 이르러 멈췄다.

그곳은 얼음으로 이루어진 어느 행성.

중앙에 거대한 궁성이 자리 잡은 이계의 땅이었다.

“거기 그대로 가만히 있어.”

이어 헬의 음성이 바로 귓가에 들려왔다.

그녀의 명령과도 같은 선언에, 나는 그대로 몸이 굳었다.

{당신의 시간이 정지했습니다.}

헬의 성역.

시공간마저 자신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 그녀만의 고유 영역에 나는 갇히고 말았다.

* * *

“귀여운 녀석. 꼼짝없이 속았지 뭐야.”

그대로 얼어붙은 유신우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헬이 중얼거렸다.

“내 저주를 풀다니, 어떻게 한 거야?”

“…….”

유신우는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시간은 멈춰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헬은 그걸 알고 있지만 유신우를 풀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방금 자신의 영혼을 단 일격에 참살해 버린 그 공격으로 인해, 그가 얼마나 위협적인 힘을 품고 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처음 보는 괴상한 무기까지 사용하고……. 거기서 갑자기 날 죽일 줄은 생각도 못했어.”

헬은 계속해서 유신우의 주변을 맴돌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넌 절대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단순히 강한 힘을 가진 각성자 같은 게 아니라, 우리와 같은 부류의…… 아.”

그리고는 뭔가 떠오른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가락을 튕겼다.

“너 혹시…… 그 녀석이야? 아후라 마즈다가 말했던?”

움찔.

그러자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아후라 마즈다라는 단어를 입에 담자마자, 멈춰서 굳어버린 유신우의 몸이 아주 살짝, 꿈틀거렸다.

자신 외엔 감히 숨 쉬는 것조차 허락받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이 공간에서, 아주 잠깐이나마 시간 정지를 무시하고서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그만큼 그 이름에 대한 연이 깊다는 방증.

그걸 본 헬은 자신의 추측이 옳음을 확신했다.

“그렇구나. 그게 너였구나. 겹겹이 쌓인 원한을 가졌다던 바로 그 인간이.”

덥석.

그녀는 유신우의 손을 붙잡아 악수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반가워. 나도 마찬가지야. 아후라 마즈다, 그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말이야. 어쩌면 우린 공동의 적을 가진 아군일지도 모르겠네.”

적의 적은 아군이다.

물론 그 말은 지금 둘 사이의 사례에 적용되는 말은 아니었다.

“근데 있잖아. 난 개인적인 복수심 같은 게 있지는 않거든. 단지 미래를 위해 대비하고 있을 뿐인 거지. 그 녀석이 설치는 세상에서 나 자신이 가진 게 아무것도 없으면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신세가 될지도 모르잖아?”

그건 아후라 마즈다를 적대하는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다.

유신우는 그를 이 세상에서 영원히 없애기 위해, 헬은 그저 그와 대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입지에 관한 딜을 하기 위해.

결국 서로 정체를 알게 된 지금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난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줄 남자들이 필요해. 근데 때마침 너 같은 인간이 내 앞에 나타났네?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헬은 유신우의 몸을 연신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셨다.

창백한 시체의 몸을 가진 터라 얼굴에 혈색이 돌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표정만 봐도 상기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유신우가 가진 막대한 힘을 빼앗을 생각에 잔뜩 흥분해 있다.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는 마. 결국 네 힘이 아후라 마즈다에게 한 방 먹여줄 용도로 쓰이긴 할 테니까.”

꿈틀.

다시 한번 유신우의 몸이 움찔거렸다.

아후라 마즈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는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화가 많이 나는가 보네, 너? 왜, 지금 이게 억울해?”

움찔.

반응을 보이는 간격이 점진적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헬은 그걸 그저 흥미롭게 느낄 뿐이었다.

“후후, 그래야 내 먹잇감답지. 이 정도면 아주 완벽해.”

그만큼 유신우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강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의 힘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신격 자체가 한층 더 상승할 수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실제로 유신우는 이미르를 잡아먹은 후로 후기 세대의 신인 헬보다 더 높은 격을 얻었으니, 그녀의 생각은 정말 틀리지 않았다.

“하나 얘기해 줄까? 내가 그 도끼에 얻어맞고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런데 헬은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무방비 상태로 멈춰 버린 유신우의 앞에서 끊임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내뱉었다.

“그 도끼, 영혼을 없애버리는 도끼지? 뭔가 특별한 권능이 들어 있는. 그걸로 베기만 하면 아무리 불멸자라 하더라도 영혼 자체가 소멸돼 부활도 할 수 없고 말이야.”

그녀가 유신우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파라슈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러곤 부드럽게 그의 손등 위를 감싸는 척하다 도낏자루를 움켜쥐었다.

“그 덕분에 내 영혼은 사라져 버렸어. 그 육신 안에 들어 있는 영혼은 말이야.”

툭.

이어서 유신우의 손에 쥐어져 있는 파라슈를 빼앗은 다음.

“근데 난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여러 개의 육신에 내 영혼을 분산시켜 놓거든? 그래서 어느 한 곳에서의 영혼 소멸이 완전한 소멸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거지.”

탱그랑.

저 멀리 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이제 만약에라도 그가 헬의 속박에서 벗어나 도끼를 휘두를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게다가 내게 해를 입힌 대상은 상시 활성화돼 있는 결계 때문에 곧바로 이곳 내 성역으로 날아오게 돼 있거든? 어느 육신이 되었건 간에 말이야. 그러면 이제 끝이지. 이 공간에 끌려 온 녀석들은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어. ‘존재함’의 정의마저도 여기선 내가 결정하는 거니까.”

확.

그녀가 손을 휘젓자, 엉거주춤하게 바닥에 착지한 자세였던 유신우의 몸이 바닥에 뉘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손을 휘젓자, 그의 몸에 걸쳐져 있던 옷들이 하나둘씩 벗겨졌다.

“솔직히 너 때문에 내 영혼의 상당 부분이 소멸되어 버려서 힘의 손실이 크지만…… 그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

헬이 그를 내리깔아보며, 누워 있는 그의 몸 위에 올라탔다.

“그 손실은 너한테서 채우면 되니까. 흐흐.”

콱.

곧이어 손으로 목을 조른다.

모든 일들은 죽음 이후에.

그녀가 범하고 하는 것은, 유신우의 시체였다.

이곳에서 의식 잃은 그의 영혼을 흡수하고,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 그의 육신마저 취하면.

그 안에 들어 있는 막대한 힘은 곧 헬의 것이 된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꽈악.

“커헉…….”

숨을 끊어내는 과정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딘지 가볍고 경박하게 느껴지는.

……여자의 목소리.

“말 진짜 더럽게 많네.”

“어……떻게……?”

* * *

그녀에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 둘의 위치는 바뀌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겠지.

자신이 바닥에 메쳐져 있고, 도리어 내가 그 위에서 한 손을 내밀어 그녀의 목을 움켜쥔, 인과의 이상한 역전 말이다.

“이거…… 놔…….”

상황 파악이 안 되는 헬은 그 와중에도 자신을 제압한 내게 명령을 내렸다.

이곳은 그녀의 성역이기 때문에 모든 법칙이 그녀를 위해 움직인다.

그러니 나 역시 그 명령에 따라 그녀를 붙잡은 손을 풀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긴 더 이상 네 것이 아니야. 적어도 나한텐 그래.”

“말도…… 안…… 돼…….”

이건 이미르와 싸울 때와 같았다.

모든 종류의 정신적, 영적 침범은 무효화된다.

지금 나는 영체 상태로 그녀의 성역에 이끌려 왔고, 자신의 의도대로 나를 속박하려는 그녀의 시도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강압의 분쇄를 일으킨 매개체는, 다름 아닌 아지다하카.

으드드득.

“끄…… 아아아…… 악…….”

내 오른팔은 검은 비늘로 뒤덮인 용의 발로 변해 있었다.

신체의 일부만으로, 아주 조금씩 용혈을 발동시켜 아지다하카의 신체를 꺼낸 결과, 내게 가해진 시간 정지 압력은 완전히 파훼되었다.

신의 격이나 권능의 형태는 상관없이, 이런 식으로 나를 속박하는 건 이걸로 모두 깨뜨릴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로써 나는 더 큰 기회를 얻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건, 아지다하카는 신을 먹는 용이라는 사실이다.

태초의 거인 이미르는 물론이고, 지금의 내 힘을 구성하고 있는 근원인 별 불꽃마저 잡아먹는 용.

그것을 이런 영적 세계에서 마주했다는 건, 곧 신에게는 재앙을 의미한다.

“고맙게 받아가지.”

“아…… 안…….”

으적.

헬의 목을 짓누르던 내 오른팔은, 그 상태 그대로 아지다하카의 앞발에서 머리로 변형되었다.

남은 일은 그저 그녀의 영혼을 씹어 먹는 것뿐.

“으아아아아!”

{헬의 영혼을 흡수한다}

여러 육신에 쪼개 놓았다던 영혼들도 한꺼번에 내 안으로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이곳 성역은 각지에 나뉘어 있는 모든 영혼의 연결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마궁(魔弓)의 활대를 얻었습니다.}

“여기까지 끌고 들어와 줘서 고맙다.”

결국 헬의 함정 덕분에, 나는 얻지 못하고 끝날 뻔했던 니플헤임 악마들의 영혼을 수복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