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96화
공동의 저주를 태워버리자 모든 트롤이 사라졌다.
곤륜공사는 그걸로 살아 숨 쉬는 자가 아무도 없는, 그야말로 유령도시가 되어버렸다.
“역시 대자재천의 불꽃인가. 단순히 저주를 무력화시키는 걸 넘어서 소멸시켜 버렸군.”
태공망은 내가 라르스의 심상세계에서 뿜은 별의 불꽃이 공동의 저주를 일시적으로 무력화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사이에 자신은 이미르의 본체가 있는 ‘구덩이’의 위치를 찾아내려고 했던 듯하고.
하지만 시바의 힘은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별의 불꽃은 저주를 완전히 없애버렸고, 그로 인해 저주의 영향력하에 있던 트롤들이 모두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어쨌든, 그렇다고 해도 태초의 거인이 갇혀 있는 구덩이를 찾아낸 건 마찬가지다. 지금 바로 위치를 알려줄 테니, 그리로 가거라.”
태공망은 자신의 동족인 트롤들이 죽은 것에 대해 딱히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이미르의 힘을 빼앗아 더 강해지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조금 꺼림칙한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어쨌든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의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지킬 수 있는 걸 지키는 것만 해도 벅찬 일이니 말이다.
{아스가르드로 가는 길}
{비프로스트를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태공망의 인도를 따라 비프로스트를 발견했다.
과거의 생에서도, 현재의 생에서도, 나와는 여러모로 악연이 쌓인 장소.
라르스는 분명 이곳을 통해 이미르에게 접촉했겠지.
발할라는 과거의 내가 통째로 파괴해 버렸으니, 무수한 시련 끝에 그가 도달한 곳은 파괴된 오크 신들의 세계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이 다름 아닌, 태초의 거인인 이미르가 파묻혀 있는 아스가르드 밑바닥의 심연, ‘긴눙가가프’일 테고 말이다.
{비프로스트에 진입합니다.}
{진입 불능}
{권한이 없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려 하자, 시스템 메시지는 내가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건 아후라 마즈다의 의도적인 방해 같은 게 아니라,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기본적인 잠금 장치였다.
신계에 아무나 함부로 드나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금기일 테니 말이다.
화륵.
그래서 나는 별의 불꽃을 손바닥에서 피워내 입구를 비췄다.
{권한 확인 - 외부 신의 자격으로 비프로스트에 진입합니다.}
그것만으로 진입 절차는 간단히 통과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파괴된 채 방치된 영역이었던 만큼, 보안이 허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시점에 별의 불꽃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리라 생각한 신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기이이잉.
마력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는 곧 하계와는 동떨어진 세상으로 이동해 왔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 빛의 다리.
저 끝에 오크 신들의 땅인 아스가르드가 존재할 것이다.
물론 그곳은 지금 파괴되어 있는 상태일 테지만 말이다.
위대한 발할라도 이제는 없다.
‘여기도 꼴이 말이 아니군.’
아스가르드가 붕괴한 정황은 이미 그곳에 닿기도 전, 신계에 도달하는 다리인 비프로스트에서부터 드러났다.
화려하게 반짝이던 무지갯빛 다리는 그 색상을 거의 잃은 채 무채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게다가 곳곳이 파괴되어 구멍이 뚫려서, 잘못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아래쪽의 심연에 떨어지기 십상.
여기까지 올 정도면 비행 능력은 기본으로 갖춘 실력자들일 것이기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능성이 아주 없는 일은 아니었다.
“크허어억!”
왜냐하면 여기엔, 있어선 안 되는 뒤틀린 마물들이 희생자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휙! 철퍽!
전신이 썩어 문드러진 구울 같은 생명체들이 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나는 간단히 옆으로 몸을 틀어 그것을 피했다.
하지만 구울은 한 마리가 끝이 아니었다.
앞으로 펼쳐진 긴 다리 위에는 무수히 많은 마물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나가 내게 뛰어들자, 그 낌새를 알아차린 다른 수많은 개체들도 모두 이쪽을 주목했다.
그러곤 일제히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카아악!”
‘날 붙잡고 아래로 뛰어들려는 건가?’
저것들은 날카로운 손톱이나 이빨로 나를 물어뜯으려 하기보다는, 나를 붙잡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몇몇 구울들은 자기들끼리 뒤엉켜 서로를 끌어안은 채로 다리 아래에 뛰어내리기도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앞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고 소리에 의존해서 희생자를 찾는 모양새였다.
‘저 밑에 뭐가 있길래…….’
그것들이 원하는 건 나를 저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것일 터다.
그곳에 이 구울들을 조종하는 지배 개체가 있든지, 아니면 그들을 본능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 모종의 장치가 있든지.
어느 쪽이건 간에 결코 내게 좋은 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화륵!
나는 별 불꽃의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라 구울들의 접근을 모두 피해냈다.
그러고는 다리를 따라 주욱 앞으로 날아갔다.
불쑥.
“음?”
비행 도중, 머리 위에서 시커먼 손 같은 게 튀어나와 나를 붙잡으려 했다.
나는 곧바로 옆으로 회전하며 그 손을 피해냈다.
몸을 젖히며 나를 덮치려 한 그 손 쪽을 보자, 기괴할 정도로 길게 늘어진 검은 팔이 허공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게 보였다.
불쑥. 불쑥. 불쑥.
그런 팔들이 위에서 계속 튀어나오며 나를 낚아채려 한다.
아무래도 저게 구울들이 나를 안고 끌어내리려던 심연의 정체였던 모양이다.
‘아래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 위에도……. 비프로스트 다리를 중심으로 주변이 모두 저 암흑에 뒤덮여 있나 보군.’
예전에는 절대 없었을 것들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여긴 긍지 높은 전사인 오크 신들이 하계를 드나들기 위해 사용하는 신성한 다리.
저런 기묘한 존재들이 이 공간을 침식하도록 내버려 뒀을 리가 없다.
실제로 비프로스트의 표면까지 뒤덮지는 못한 걸 보면 말이다.
누더기처럼 여기저기 파괴된 비프로스트가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 이 공간은 온전한 심연으로 가득 차게 되겠지.
그러면 저 너머의 세상에 감춰진 비밀에는 영원히 닿지 못할 것이다.
그 전에 빨리 이미르에게 도달해야만 한다.
‘태초의 거인……. 내가 그 힘을 빼앗는다면.’
그렇게 모든 위협들을 제치며 나아간 끝에, 내가 닿고자 하던 그곳이 나타났다.
산산이 부서진 아스가르드.
……의 아래쪽에 드러난, 긴눙가가프가 마침내 나를 맞이했다.
* * *
여기저기 부서지고 금 간 아스가르드의 지각 아래에는, 시뻘건 용암 대신 시커먼 암흑이 있었다.
물컹.
그 암흑은 마치 물주머니를 밟은 듯 물컹거리는 촉감.
발을 딛고 선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아래쪽의 땅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의 몸뚱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대재앙의 화신이여.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달리 생각할 것도 없이 이미르였다.
이 거대한 땅덩어리의 정체이자, 태초의 거인 말이다.
-결국 내가 있는 곳을 찾아내고 말았구나.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곧 내 손에 의해 영멸할 것을 직감한 것 같은 말투였다.
“오래 살았잖아. 이제 그만 끝낼 때도 됐지.”
{유결부 파라슈 소환}
나는 도끼를 꺼내 들었다.
이걸로 그의 영혼을 베고, 그 베어진 조각들을 내 눈 안에 담을 생각이었다.
그걸로 구세대 신 중 하나의 힘을 훔쳐오는 것이다.
-네가 정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미르는 내 목적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시바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신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시바의 힘을 계승하고 있고, 이미르 역시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왜 자신을 죽이려 하는 건지 알 수밖에 없다.
“적어도 네가 살아 숨 쉬지 않는다면.”
-그들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군.
“뭐?”
-나를 이곳에 파묻어버린 ‘아사’들. 압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런 일을 했다고 하면서…… 결국 그들이 통치하는 세상은 어땠지?
아사는 아스가르드의 구세대 신들을 의미한다.
애초에 아스가르드라는 명칭 자체가 아사들이 사는 땅이라는 뜻.
아무튼 이미르는 내게 구세대 신들의 모순을 지적했다.
절대자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겠다며 혼돈을 내쫓고, 그것과 함께하는 자들을 모두 숙청했지만.
결국 새로운 세상은 그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저 새로운 압제자가 또다시 필멸자들을 억압하는 형태의 체제가 반복되었을 뿐이니 말이다.
-대재앙의 화신인 네가 그의 의지를 이어받고서,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불멸자가 된다면…… 내 역할을 대체하는 새로운 악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건 내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불멸의 생명을 얻게 된 네가 모든 신들을 다 멸하고 나면, 그땐 정말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올까? 무수한 시간이 흐르며 수많은 필멸자들의 목숨을 목도할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있을 수 있을까? 고대신조차 죽일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채로?
이미르는 계속해서 내게 의문을 던졌다.
물론 그런 의문들에 대해서 나는 이미 답을 낸 상태였기 때문에 딱히 흔들림은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의 말이었다.
-잘 생각해 봐라. 너를 돕고 있는 그 자도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태공망?’
이미르는 갑자기 태공망에 대해 언급했다.
-너로 하여금 무고한 필멸자들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지 않느냐.
“그게 어째서 그의 탓이지? 네놈이 트롤들에게 저주만 걸지 않았어도…….”
-저주? 그건 저주가 아니라 가호였다. 나를 위해 움직이는 자들에게 내려준 힘의 축복.
“미쳐서 날뛰는 게 축복이라고? 웃기는 소릴 지껄이고 있군.”
-난 그것들이 미쳐서 날뛰게 만들지 않았다. 그건 모두 그가 사용한 주술의 영향이다.
“……뭐라고?”
라르스를 비롯한 트롤 거인들이 이성을 잃고서 보이는 것들을 마구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 것.
이미르는 그게 모두 자신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태공망의 주술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내가 뭐 하러 나를 위해 움직여 줄 나의 사도들을 그렇게 만들겠는가? 내 통제 하에서 이성을 유지한 채로 움직이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인 일이거늘.
그리고 거기에는 그럴듯한 근거도 있었다.
이미르는 굳이 라르스를 미쳐버리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사리분별도 못하고 닥치는 대로 싸우려 드는 노예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 태공망은 왜 거기서 나를…….’
물론 태공망의 행동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가 어떤 이유로든 뭔가 악의를 가진 채 날 속이려 하고 있다면, 굳이 내게 이렇게나 이득이 되는 일을 시킬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파라슈도 넘길 필요 없이 타신편인 채 자신이 가지고 있었으면 그만일 터였고 말이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어느 쪽의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가.
누가 누구를 속이려 하는 것인가.
-만약 나를 벤다면, 너는 그 자도 베어야 할 것이다…….
스르륵.
그는 내게 계속 말을 걸면서, 동시에 내 등 뒤에서 아주 조용히, 아주 작고 얇은 촉수를 뻗어오고 있었다.
대화에 정신이 팔린 사이 몰래 그것을 내 목 뒤에 꽂아 넣으려 했던 것이다.
“……어느 쪽이건…….”
{신월검 찬드라하스 소환}
서걱.
놈은 내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거라 생각한 듯했으나, 난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뒤로 돌아볼 필요도 없이, 그 얇은 촉수는 순간 오른손에 쥐어진 내 검에 의해 베어졌다.
{신월검 정신무장 발동}
{너의 정신을 지배하려던 저주의 손길이 찬드라하스에 의해 정화된다.}
그리고 내게 영향력을 미치던 이미르의 정신 공격도 그와 동시에 사라졌다.
“너도 죽어야 하는 건 똑같아.”
-바보 같은 선택을 하는군.
쿠구구궁.
땅이 흔들리며 위로 치솟기 시작한다.
한없이 깊은 심연의 구덩이에 파묻혀 있던 거인이 몸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