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95화
지금 당장 라르스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아까도 말했듯, 저 거구의 압도적인 힘을 발산하는 거인을 완벽하게 제압한 다음 본체를 꺼낸다고 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공망은 거인화한 라르스를 죽이는 대신 그로부터 공동의 저주, 이미르의 힘을 빼앗아 올 방법을 알려줬다.
“저놈의 심상세계에 진입해 태초의 거인이 잠든 구덩이를 찾아내거라. 그동안 주변의 위협은 나와 네 친구들이 막도록 하지.”
“이미르가 잠든 구덩이? 그걸 찾아내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합니까? 태고신과 싸움이라도 하라는 겁니까?”
“그렇다.”
“결국 저 힘의 토대나 마찬가지인 이미르와 대적해야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차라리 그럴 거라면 라르스를 잡는 게 훨씬 더 쉬울 텐데 말입니다.”
“태초의 거인은 구덩이에 빠진 채 영혼이 봉인되어 있는 상태다. 그놈은 다른 녀석들에게 저주와 가호를 내려 대리자로 만드는 것 외엔 네게 할 수 있는 게 없을 게다. 기껏 해봐야 조금 저항할 수 있을 뿐이겠지.”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태공망의 조언대로 이미르의 힘을 빼앗아오기로 했다.
첫 번째로 할 일은 라르스의 심상세계에 진입하는 것.
쿵! 쿵! 쿵!
거구의 육신에도 불구하고 원래 신체와 전혀 다를 바 없을 만큼 빠르게 발을 놀리며 달려온다.
신장이 50미터가 넘어 보이니, 본체의 체구를 2미터로 잡아도 최소한 25배 이상 커진 몸.
그 몸으로 원래 몸과 똑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는 건, 스피드도 25배 이상 빨라졌다는 뜻이다.
한 보폭에 10미터를 움직이던 게, 같은 시간 동안 250미터를 움직이는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투콰앙!
덕분에 그가 휘두르는 도끼에 걸리는 위력 역시 수십 배로 커졌다.
아니, 수십 배가 아닌 수백 배라고 해도 모자란 정도다.
체중의 증가는 키 증가의 곱절로 커지니, 그걸 유지하면서 25배 빠른 속도로 움직이려면 근력의 증가량도…….
쉽게 말해서 저 거인 라르스는, 이전의 내가 알던, 별 불꽃에 몸을 벌벌 떨던 약해 빠진 필멸자 오크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월검 찬드라하스 소환}
{달 그림자 검식 파생형 ‘용격 현월’ 전개 15연}
쉬쉬쉬쉭!
15연발의 새까맣게 압축된 현월이 일시에 거대한 도끼로 날아들었다.
은은한 푸른빛을 내던 현월은, 용격으로 인해 별 불꽃이 더욱 압축되자 완전히 새까만 초승달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그 압축 덕에 검기의 강도는 훨씬 더 강했다.
카카카캉!
공기를 사정없이 찢어내며 거대한 파공음을 싣고서 날아오던 라르스의 도끼가 현월 연발에 가로막혀 잠시 주춤한다.
하지만 완전히 튕겨내지는 못했다.
현월 자체가 공격이 가볍다고는 하나, 용격으로 강화된 건 물론이고 그걸 무려 15발을 한꺼번에 쏟아냈는데도 그 정도에 그친 것이다.
‘이거면 충분해.’
물론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아까 전 놈의 도끼를 겨우 튕겨낸 건 현월이 아니라 만월청영, 그것도 17연격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런 가벼운 공격을 선행한 건.
{격룡창 트리슈라 소환}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의 공격을 받아내는 게 아니라 접근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빠른 원거리 공격을 깔아서 약간의 틈을 만든 다음, 돌진으로 품속에 파고든다.
이 전형적인 연계를 통해 저 녀석의 심상세계에 아주 잠깐 동안이라도 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청류 폭발}
터엉!
창날의 반대쪽 끝에서 푸른색의 유수가 터져 나오며 내 몸을 강하게 밀어냈다.
별의 불꽃으로 강화된 트리슈라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추진력을 발휘했다.
{신월검 찬드라하스 소환}
{적사자 검식 파생형 ‘용격 흑화륜’ 전개}
콰우우!
그렇게 순식간에 라르스의 코앞까지 도달하자마자, 나는 그 돌진의 관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무기를 검으로 바꾸고 흑화륜을 사용했다.
검과 함께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흑청염은 그의 머리통을 쪼갤 것처럼 날아들었다.
물론 이 공격은 어디까지나 놈을 죽이기 위함이 아닌, 제압하기 위한 것.
턱!
카가가가각!
내 예상대로, 라르스는 곧장 도끼를 들지 않은 반대 손으로 자기 얼굴 앞까지 와 있는 나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 덕에 그의 손은 흑화륜의 회전 공격에 갈려 걸레짝이 되어야만 했다.
“잡았다.”
턱.
그렇게 놈의 공격을 무마시키며 접근하는 데 성공한 나는, 그 녀석의 거대한 얼굴 미간에 손바닥을 올리는 것까지 성공했다.
{대상의 심상세계에 진입한다.}
그리고 그대로 라르스의 머릿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특성 <승리자의 사고체계> 발동}
심상세계 안에 들어와 있는 동안은 마치 깊은 꿈속에 빠진 것처럼 외부 현실에 비해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흘러간다.
하지만 내겐 외부 현실에서의 여유 자체가 극히 짧게만 주어져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라르스는 무너진 자세를 되찾아 자신의 이마에 접촉하고 있는 나를 죽이려 재차 손을 뻗고 있겠지.
설령 태공망과 유메미 등이 그 시도를 막으려 한다 하더라도 거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승리자의 사고체계’ 특성을 발동시켜, 이 안에서의 시간 흐름을 더욱 느리게 만들었다.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그때, 태공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게 의식을 동기화시켜 나와 함께 이 안에 들어온 것이다.
‘당신이 여기에 의식을 보내면, 바깥의 결계는 어떻게 유지합니까?’
-그건 걱정할 것 없다. 여기에 들어온 내 정신은 12분의 1의 의식이니 말이다.
‘12분의 1? 의식을 쪼갠 겁니까?’
-그렇다. 비좁은 곳에 앉아서 세상만사를 살펴보려면 사고 분할 정도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하는 신의 덕목이니라.
사고를 분할한다니.
소수의 신들이 그 거대한 세상에 영향력을 가한 게 어떻게 가능했던 건지 알 것 같았다.
‘그럼 이미르의 구덩이를 찾는 걸 도와주시면 되겠군요.’
-그러려고 여기에 따라온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이 좀 더 수월해질 것이다.
마법적으로나, 혹은 신화에 관한 많은 지식을 가진 그와 함께 이미르에 관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태공망과 함께 라르스의 심상세계로 들어온 나는, 단서를 찾기 위해 라르스의 심상세계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무의식 속 자아를 마주할 수 있었다.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
작은 장난감 성을 소중하게 감싸 안고 있는 라르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칼들을 등 뒤에 꽂은 채로 말이다.
“……사람들을…….”
그는 나이 든 모습이 아닌, 과거 세계에서와 같은 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며 중얼거렸다.
‘강박증 같은 건가.’
그는 특히 자신이 아군이라 생각한 사람들에겐 한없이 자비롭고, 적에게는 난폭할 정도로 적대적인 사람이었다.
나와 적이 된 건 바로 그 때문.
각자가 지켜야만 하는 객체가 서로 상충하는 상황에 의해 벌어진 비극인 것이다.
-잘 봐라. 공동의 저주는 영혼을 착취하는 저주다. 놈의 영을 빨아들이는 무언가가 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거기서 태공망이 내게 갈 길을 지시해 주었다.
그가 가르쳐 준 단서를 토대로, 나는 라르스의 심상세계 속에서 그의 에테르를 갉아먹는 존재가 있는지 제6의 감각으로 찾아보았다.
그러자 그의 머리 바로 위에, 눈동자가 불쑥 나타났다.
보기만 해도 소름 돋게 만드는 기묘한 얼굴의 일부인 눈동자가 말이다.
‘저건가.’
난 그걸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그것이 이미르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지난번에 만났던, 시바를 자칭하던 시체 덩어리.
그리고 칼리가 만들어낸 공간.
그와는 다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흡사한, 불쾌한 기운이 그로부터 느껴졌기 때문이다.
‘구세대 신들은 다 이런 식인 건가.’
-그 기분이 바로 너희의 영혼에 새겨진 본능적인 혐오감이다. 현재의 아인종 필멸자들은 어디까지나 신세대 신들의 후손이니 말이다.
‘후대 신들의 전대 신들에 대한 적대감이 우리에게도 전해졌다는 겁니까.’
-그렇지.
어쨌든 이곳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다.
저건 이미르가 심어놓은 저주이고, 저것으로부터 그의 실제 위치를 파악해 낼 수 있다는 사실.
저벅.
나는 과감하게 라르스를 향해 다가갔다.
혹시라도 저 저주가 나를 해코지할까 하는 걱정은 없었다.
왜냐하면 저건 어디까지나 초록 피부를 가진 오크, 트롤 등과 같은 인자를 가진 종족에게만 발동되는 저주이기 때문이다.
“태고신이여…… 나와 내 백성들을 지켜다오.”
라르스는 작은 성을 감싸 안고서 연신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영혼을 가져가는 대신, 내게 힘을 다오. ……어떤 파멸을 맞이해도 좋으니.”
난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조금이지만 안쓰러움을 느꼈다.
‘자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영혼을 팔고 힘을 얻는다……. 그 결과 모두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되었군.’
사건의 전말이 어떻게 된 것인지 대강 보인다.
라르스는 모종의 방법으로 태고신인 이미르와 계약을 했다.
자신의 희생을 대가로, 여러 사건들로 인해 큰 위험에 처한 곤륜공사를 지키려 한 것이다.
아마도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강한 힘을 얻는, 그런 동화 속 이야기 같은 걸 생각했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불멸자들은 한낱 필멸자 하나의 영혼 따위를 타락시키는 것으로부터 어떠한 이득도 얻지 못하니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전쟁과 대학살, 세상이 붕괴하는 정도의 비극.
라르스가 제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전사라 하더라도, 이미르가 원하는 수준의 실질적인 대가를 지불하려면 본인 혼자만의 희생으로는 턱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모두를 구하려다 모두를 팔아버린,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만 것이다.
‘안타깝지만…… 네가 선택한 길은 틀렸어.’
난 그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거대한 눈동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별의 불꽃을 내뿜어 그것을 감쌌다.
-저주를 불태워라. 그러면 내가 거인이 봉인된 구덩이의 위치를 찾아내도록 하마.
태공망의 조언에 따라, 나는 가차 없이 그 눈동자를 태워버렸다.
이렇게 함으로써 라르스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아군으로 만들면 누구보다도 든든한 자다.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나에 대한 적개심이 바로 사라지진 않겠지만…… 현재 상황에 대해 잘 설득한다면 가능할지도 몰라.’
그러면서 혹시라도 트롤들을 내 세력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필멸자로서, 공통의 적인 아후라 마즈다와 전쟁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 그도 나를 지지해 줄지 모른다.
화르륵!
별의 불꽃이 맹렬히 타오른다.
저주의 눈동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 밑에 서 있던 라르스 역시 함께 타오른다.
“끅…….”
그는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통증을 참아가며 작은 성을 꼭 껴안았다.
‘……이런.’
{대상의 심상세계로부터 벗어난다.}
그와 동시에 나는 현실 세계로 되돌아왔다.
상황은 모두 끝나 있었다.
파사삭.
라르스는 물론이고, 주변의 모든 거인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곤륜공사의 모든 트롤들은, 그로써 모두 소멸했다.
“이건…… 예상외의 결과로구만.”
태공망만 제외하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