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91화
유메미는 수호령인 바리공주를 잃은 후, 레아가 그랬던 것처럼 용기사로 지정될 수 있었다.
총 여덟 명의 제한 인원 중에서, 레아가 빠진 자리를 그녀가 메운 것이다.
게다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는 용기사가 되자마자 나와의 영혼 공명을 행했다.
그때 그녀의 손에서 느껴졌던 따뜻한 불꽃.
그건 그녀의 몸 안에서도 별 불꽃의 불씨가 피어나고 있다는 징조였다.
덕분에 유메미는 어떠한 제약이나 동기화 과정 없이 나로부터 시바의 무기를 전해 받아 사용할 수 있었다.
즉, 그녀가 가진 모든 주문이 별 불꽃과 카트반가를 통해 강화되어 발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슬로우 - 카트반가 강화}
{포스 필드 - 카트반가 강화}
쇄도해 오는 거인의 주먹을 느리게 만드는 동시에 자신의 몸에는 보호막을 두르는, 지극히 간단한 물리 방어 마법의 조합.
하지만 카트반가와 별의 불꽃으로 강화된 그 성능만큼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터엉!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거인의 주먹이 올려 꽂힌다.
아델과 그녀를 붙잡아 감싼 유메미는 한꺼번에 그 타격의 방향대로 하늘에 떠올랐지만, 실질적인 타격은 전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유메미가 펼친 포스 필드의 표면에 약간의 금이 갔을 뿐.
그리고 그 덕분에 도리어 이쪽에서 공격할 수 있는 타이밍이 생겼다.
{달 그림자 검식 파생형 ‘만월청영’ 전개}
피잉!
아델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고 있던 나는, 그 기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거인에게 공격을 행했다.
원월을 가르는 고속의 일참이 거인의 목을 잘랐다.
투콱!
슬로우 때문에 한쪽 손이 무거워진 거인은 반대쪽 손으로 내 검을 막으려 했으나, 그렇게 하기에 만월청영은 너무 예리했다.
쿵.
결국 갑작스레 우릴 덮친 그 트롤 거인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아델!”
나는 곧바로 방금 전 정타를 얻어맞은 아델을 향해 달려갔다.
유메미 덕에 추격타까지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극한의 공세 일변도가 특징인 적사자 검식을 펼치던 도중에 당한 반격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괜찮아?”
“쿨럭, 쿨럭. 별거 아닙니다…… 이 정도 부상은…… 쿨럭.”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으나, 아델은 이미 입에서 많은 양의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내장이 손상당한 모양.
저건 단순한 외상이 아니라 마력 등의 에너지에 의한 내상 반응이었다.
아까 그 거인이 내지른 정권이, 평범한 공격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저 트롤…… 거인화 권능 같은 걸 사용하는 각성자였던 건가?’
목과 몸통이 분리된 거인의 시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방금 전과는 달리 몸집이 작아져 있는 트롤 시체 한 구만이 남아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저 능력 자체가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인간 중에도 그런 종류의 능력을 사용하는 각성자가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내게서 별의 불꽃을 공유받은 아델에게 단 한 방으로 이 정도의 부상을 입힐 수 있는 각성자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게 놀라울 뿐.
‘게다가 저자의 머리 위엔 수호령 표시가 드러나 있지도 않았어.’
여러 가지 의문이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지만, 일단 당면한 위협은 제거해 냈으니 숨은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보다는 심각한 내상을 입은 아델을 회복시키는 게 먼저였다.
“아델, 넌 타카마 시티로 복귀해.”
“괜찮습니다. 아……직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건 정신력 같은 걸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야. 잘못하면 네 마력에 영구적인 손상이 올 수도 있다고.”
“하지만…….”
“어차피 금방 돌아갈 거다. 애초에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이 전투도 아니니까.”
난 어디까지나 이곳에 태공망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러니 굳이 위험 부담을 안고서 아델을 안으로 데리고 갈 이유는 없다.
물론 곤륜공사 전체가 나에 대해 적대적인 상태라는 건 알고 있었다.
라르스가 이 안으로 들어가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을 터.
나 혼자가 아니라 용기사들을 대동해서 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 나머지 인원들만으로도 충분해.”
하지만 여기서 아델이 빠진다 하더라도 그리 크게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번처럼 아후라 마즈다와 정면으로 부딪쳐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녀가 빠지는 게 내겐 큰 부담이 되겠지만, 여긴 아직까지 아후라 마즈다의 손길이 뻗치지 않은 모양이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결국 아델은 내 설득을 받아들였다.
“유메미. 부탁한다.”
“네.”
나는 유메미에게 텔레포테이션 마법으로 아델을 타카마 시티에 돌려보내도록 했다.
* * *
유메미가 아델을 복귀시키고 돌아온 직후, 나는 모두와 함께 곤륜공사 안으로 진입했다.
내부는 조용했다.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어 있던 이전의 풍경과 그리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트롤들의 왕성한 생산 능력을 생각해 보면, 이건 의외라고 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때 그 사건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는 하나, 분명 곤륜공사에는 여전히 많은 생존자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파괴된 터전의 복구는 그리 어렵지도 않았을 터.
하지만 어째서인지 곤륜공사는 외적으로 보기에 거의 달라진 점이 없었다.
꼭 완전한 복구가 아니라도, 최소한 공사 중인 현장이라도 있을 법도 한데, 그런 것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파괴된 잔해 사이에서 몇몇 트롤들은 생필품이나 식량 등을 훔쳐 가기도 했다.
극도의 질서와 통제를 중시하던 예전의 곤륜공사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라르스 같은 자가 리더 역할을 한다면 이 정도로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
이미 이전에도 오크 종족의 리더 격 역할을 했었고, 이곳에 온 후에도 무려 15년이란 세월을 보내며 나름의 권력을 유지해 온 라르스.
그가 살아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한다면 절대 이런 상태가 되었을 리 없다.
바꿔 말하자면, 지금 현재 곤륜공사 내부의 헤게모니 구조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일단 태공망을 찾자.’
물론 그런 사항들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어쨌거나 트롤들은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이들도 아니니 말이다.
내게 필요한, 혹은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트롤은 오직 태공망뿐.
쿵.
그때, 아주 먼 곳에서 큰 진동음이 들려왔다.
무언가 폭발이라도 한 듯한 소리였다.
“뭐지?”
“잠시만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유메미가 제자리에 멈춰 서서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이 보이지 않게 된 후로, 집중하고자 마음먹는다면 아주 넓은 반경까지 감각을 확장할 수 있었다.
아까 전에 마물 언덕들을 보지 못한 것처럼, 정적인 환경을 보는 능력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동적인 물체를 포착하는 능력은 두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도 훨씬 더 예민해져 있었다.
“전투라도 벌어지는 건가?”
내게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무언가가 격렬하게 격돌하는 파장이 말이다.
아직 내 감각이 완전하게 닿는 거리는 아닌 터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런 정도의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그런 것 같은데…… 이건…….”
그런데 유메미의 반응이 이상하다.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며 몇 번이고 집중을 풀었다 했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뭔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마주한 듯한 표정.
“왜 그래? 문제라도 있나?”
“조금 이해가 안 돼서요.”
“어떤 부분이?”
“아까 전에 우리가 봤던 그 거인화 한 각성자……. 그거랑 같은 거인들이 여럿…… 있는 것 같아요.”
“여럿이라고?”
부스럭.
그때, 내 오른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걸 느낀 건 다른 용기사들도 마찬가지.
우리의 시선이 한꺼번에 한곳으로 몰렸다.
“어라?”
그곳엔 아까 보았던, 잔해 속에서 물품을 훔치는 도둑 트롤 두 명이 서 있었다.
“……죽이자!”
“그래!”
그 둘은 우릴 보자마자 다짜고짜 저런 소릴 하더니, 품에 안고 있던 물건들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러고는 양팔을 벌려 가슴을 펼치며 기묘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그들의 몸에서 마력이 샘솟기 시작했다.
‘수호령 표시가 나타나지 않는 걸 보니 각성자들은 아닌 것 같고…… 금제 해제된 트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한낱 도둑들이라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마력을 사용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 줄은.
나와 용기사들은 곧장 전투태세를 취했다.
고오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 두 트롤에게서 낯설지 않은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거인화!’
나는 이내 그 익숙한 기운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건 아까 우리가 싸웠던 거인 트롤과 동일한 힘이었다.
{마검 파슈파타 소환}
쉬쉭!
검을 빼 듦과 동시에 두 갈래의 현월을 날려 보낸다.
완전한 거인화가 행해지기 전에 그 둘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투콱!
한 명에겐 적중.
머리가 잘려 나갔다.
그러나 나머지 한 놈은.
쿵!
“크와아아악!”
제자리에서 높이 서전트 점프를 뛰어 현월을 회피했다.
그리고는 공중에서 거인화를 완료하며 괴성을 질렀다.
마치 이곳에 적이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한 행동 같았다.
“아, 설마……!”
유메미의 안대 너머 표정이 놀라움으로 변한다.
방금 그녀가 했던 말.
저 먼 곳에서 다수의 거인들의 존재가 느껴졌다는 게, 정말로 사실임을 이로써 확인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크와악!”
거인화에 성공한 트롤이 우릴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그 덩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와 날카로운 움직임.
반대쪽 손은 철저하게 가드를 올리고 있는 것이, 결코 카운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다.
저건 결코 아무렇게나 휘두른 주먹이 아니었다.
‘유메미!’
‘네!’
그러나 우리에겐 이미 이것과 동일한 개체를 상대로 싸운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슬로우 - 카트반가 강화}
{리버스 그래비티 - 카트반가 강화}
어느샌가 유메미의 손에 들려진 카트반가의 코어가 두 번, 빛을 번쩍였다.
그러자 주먹을 앞세우고 달려드는 거인의 주먹이 느려졌다.
신체의 무게 중심이 집중되어 있을 지점이 말이다.
기우뚱.
당연히 자세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발밑을 파고드는 역 중력장까지 가해진다.
2중의 마법 연계에, 그 큰 덩치로 재빠르게 움직이던 트롤은 약점을 크게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크고 무거운 몸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건 강력한 무기지만, 그만큼 다가오는 반동도 클 수밖에.’
그 순간 마법 시전 중인 유메미를 제외한 모든 용기사들이 그 거인을 에워싸며 허공에 떠올랐다.
그들은 흑청색 불꽃의 날개를 두르고서, 각자 칼자루를 움켜쥔 채였다.
그들의 참격은 내 칼끝의 움직임에 동기화되어 있다.
{별의 불꽃 공유 증폭}
{달 그림자 검식 파생형 ‘현월’ 7중 전개}
쉬익!
한 번의 파공음.
7개의 초승달 검기.
투콰콱!
거인 트롤의 온몸에 날아든 칼날들은 전신을 토막 내며 지나갔다.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그 촘촘한 그물망 같은 연쇄 참격을 벗어날 방도는 없었다.
쿠쿵. 쿵. 쿵.
잘려 나간 신체들이 땅에 떨어지고, 그것들은 곧 원래의 모습으로 작게 줄어들었다.
‘하나의 거대 개체를 사냥해 내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것들은 어떻게 하지?’
쿠구구궁.
지평선 너머로부터 거인들이 몰려온다.
세는 게 무의미할 만큼 많은 숫자가 말이다.
그건 마치, 이곳 곤륜공사 안에 있는 트롤들 전부가 거인화하는 능력을 얻은 듯한 모양새였다.
아니, 어쩌면 능력이라기보다는 저주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지도.
덥석.
잘려 나가 떨어졌던 트롤의 팔이, 어느샌가 제 스스로 기어와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누군가의 음성을 들려줬다.
- 찾았……다……. 대재앙의…… 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