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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90화 (290/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90화

상황은 모두 종료되어 있었다.

도시 내부에서 발생하던 마물의 무작위 발생은 중단되었고, 덕분에 외부로부터 접근해 오던 대규모의 무리는 어렵지 않게 쫓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정신을 차린 건 그러고도 며칠이 지난 후.

비틀린 이차원계 내부에서 멸절 파슈파타를 사용한 지 대략 일주일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마지막까지 조장이 그곳에 들어가는 걸 막지 못해서…….”

스사노오의 최측근 중 하나인 이사나가 내게 머리를 숙이며 연신 사과를 해댔다.

아델을 죽이라는 퀘스트가 나타난 직후,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병원으로 가려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드워프들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아군을 죽인다는 발상을 떠올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일단은 상황을 보자는 것이 중론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사노오와 카구츠치, 이와나가를 비롯한 몇몇 인물들은 이상하게도 그 퀘스트를 보자마자 만사를 제쳐놓고 아델부터 죽이러 갔다고 한다.

아마도 나나 유메미가 봤던 것과는 다른, 그들의 퀘스트에서만 나타난 ‘특이한 내용’들이 있었던 모양.

아무튼 함께 떠났던 나머지 인물들은 병원 내부에 나타난 괴이한 미로 던전에서 길을 잃거나 죽은 듯하고, 그 셋만이 살아남아 그 안에서 나와 유메미를 마주한 것이다.

“…….”

물론 면목이 없는 건 그보다는 내 쪽이어야 할 터였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간에 결국 세 사람을 죽게 만든 건 나였으니까.

애초에 퀘스트의 이름부터 ‘악의의 열병’이었고, 아델이 그런 증상을 보인 것도 별의 불꽃을 사용한 직후다.

게다가 불가피한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셋의 마무리를 지은 건 나였다.

이런 내용들이 알려지면, 이들이 날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할지는 빤한 일.

“앞으로의 일만 생각해. 스사노오조는 이제 네가 책임져야 할 테니까.”

그래서 난 그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부 얼버무려 없던 것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양심의 가책은 뒤로한 채로 말이다.

“제가 말씀이십니까?”

“너 아니면 누가 하겠나?”

“……알겠습니다.”

이사나는 복잡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난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며 편치 않은 마음에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죄가 쌓여간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이어져 나간다.

전에는 오로지 나와 내 주변인들만을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애써 고개를 돌렸지만, 그 주변인의 범위가 이제는 너무 넓어져 있었다.

스륵.

의자에서 일어나 시선이 높아지자, 창문에 반사된 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의 나는 괴물이었다.

냉혹하게 누군가를 희생시켜 다른 이를 살린다는 결정을 내리는 나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진다.

어느샌가 나는 점점 그렇게도 혐오했던 과거의 신들과 다르지 않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델.”

그렇게 사무실을 떠난 나는 바깥에서 도시의 복구를 돕고 있는 아델을 찾아갔다.

“마스터.”

그녀는 그 이차원계에서의 변한 모습이 아닌, 원래의 모습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멸절 파슈파타를 받아내고도 신체엔 아무런 손상이 없는 걸 보면, 마치 그때의 일이 꿈이나 환상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같은 공간에 있었던 유메미 역시 아무런 이상 없이 안전하게 돌아와 있기도 했고.

하지만 그곳에서의 일은 분명히 현실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외모는 그 안에서 변한 그대로, 다크엘프의 회색빛 피부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 상태는 어때?”

“아직 아무런 이상도 없습니다. 오히려 더 가벼운 느낌입니다.”

아델은 정비를 위해 따로 빼 놓은 고정 방어 포대의 포신을 한 손으로 번쩍 들면서 말했다.

그 말대로 그녀의 컨디션은 매우 좋아 보였다.

바로 직전에 그렇게 끙끙 앓던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

“조심해. 네 안에 있는 ‘그게’ 언제 또 깨어날지 모르니까.”

그렇게 된 이유는 알고 있었다.

{수호령: #009ga$ (???)}

퀘스트가 완료되면서 얻은 숨겨진 보상.

아델에게 새로운 수호령이 부여된 것이다.

물론 보다시피 일반적인 수호령은 아니었다.

이것 자체가 아후라 마즈다가 만든 시스템의 법칙을 벗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수호령은 칼리……겠지.’

애초에 아델은 각성자가 될 수 없는 몸이기도 할뿐더러.

지금 부여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격 자체가 아후라 마즈다의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던, 구세대 여신인 칼리일 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이름도, 등급도 보이지 않았다.

“항상 조심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곧바로 스스로에게 힘의 제약을 걸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보다는 너무 무모한 일만 하지 않으면 될 것 같은데.”

“명심하겠습니다.”

그 수호령 덕분에 아델이 새로운 힘을 얻게 되기도 했지만, 당연히 그것을 마냥 좋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칼리라는 신격이 어떤 존재인지 이미 겪어보고서 알고 있는 만큼, 혹여나 그것이 아델의 육체를 차지하는 순간 다시 그 비극이 반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시바를 자칭하고 있는 그 녀석…….’

이 보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시체 덩어리가 준 것.

이미 이 힘의 근원인 시바는 죽고, 그를 사칭해 나를 조종하려는 ‘그 존재’의 수작이다.

결코 안전할 리가 없는 것이다.

‘태공망을 만나봐야겠어.’

나는 일단은 그 존재의 말을 따르는 척하고, 진상을 파악하기로 했다.

현재 저 차원 너머 구세대 신들의 상황에 관한 실마리를 찾으려면, 이 세상에서 시바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태공망을 만나야 한다.

* * *

나는 만사를 제치고서 가장 먼저 곤륜공사로 향했다.

원래는 인드라닉스 다음으로, 마하바라 네트워크와 아틀라스팜을 구원하며 세력을 확장하는 작업을 지속했어야 했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시간이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두 세력이 벌써 패망하고 말았다는 정찰 첩보를 들은 나는, 과감하게 그 계획을 폐기하고 당장의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기이잉. 팟.

섬광이 번쩍이고, 주변의 환경이 도시 한가운데에서 나무가 우거진 수풀로 변화한다.

유메미의 텔레포테이션 마법을 통해 나를 포함한 일곱 명의 용기사들이 곤륜공사의 바로 코앞까지 도달했다.

“도시 안쪽의 마력의 흐름이 또다시 불안정해졌어요.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가 한계예요.”

그녀는 이미 이전에 곤륜공사에 와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텔레포테이션 마법으로 도시 내부에 직접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째선지 곤륜공사 내부의 마력 흐름이 예전과는 또 다르게 변화했고, 그 탓에 외곽으로 오는 것이 한계였다는 것이다.

“웬만하면 이런 일은 잘 없는데……. 공기 중의 마력 흐름이 뒤바뀌는 건 전에 갑자기 마물 개체수가 폭증했던 것처럼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은 한은요.”

“곤륜공사 안에도 뭔가 일이 터진 모양이군.”

“그런가봐요.”

지금 같은 시기에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나도 겪었듯이, 도시 한가운데의 건물 하나가 통째로 이차원계로 통하는 던전으로 변화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니 말이다.

시스템이 미쳐 날뛰고 있는 한, 어떠한 기현상이 벌어진다 해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마스터. 앞에 다수의 마물 흔적이 느껴집니다. 최근의 이동으로 보입니다.”

그때, 아델이 허리춤의 칼자루에 손을 올리며 경계를 높였다.

그녀의 예민한 감각이 마물들의 이동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스릉.

그 순간 모두 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같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소리를 최대한 죽인 채 천천히 전진.

주변이 너무나 고요했기에, 조금의 소리라도 적에게 단서가 되기엔 충분했다.

“저건……?”

그런데 그런 우려가 무색해지는 광경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펼쳐졌다.

“시체들이군.”

아델이 발견했다던 흔적의 주인인 마물들이, 모두 죽은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마치 인공 언덕을 만들려고 하기라도 한 것처럼,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말이다.

“여기도 대규모 마물 무리의 침공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유메미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거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인데.”

“왜죠?”

“일단 그 패망 직전까지 몰렸던 곤륜공사가 이 정도 규모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는지는 둘째 치고.”

이 물량은 내가 있는 타카마 시티도 방어가 힘겨울 수준이었다.

그러니 상태가 완전히 엉망이었던 곤륜공사가 이만큼의 공격을 막기엔 어려울 수밖에.

그러나 그런 건 어찌어찌 해냈다 치더라도, 문제는 그 다음.

“이걸 방어한 거라고 볼 수 있을까?”

유메미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 앞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내 눈에는 보인다.

하나도 아닌 수십, 어쩌면 수백 개일지도 모르는 시체의 산들이 일정한 간격에 걸쳐 곤륜공사 전면에 죽 늘어서 있는 풍경이 말이다.

“어…… 아…….”

그녀가 내 말을 듣고서 감각을 확장하자, 놀란 듯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제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이건…… 마치…….”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서 마물들을 잡아온 것 같습니다.”

아델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

곤륜공사는 단순히 쳐들어오는 마물을 막아낸 게 아니라, 도리어 바깥으로 나가서 마물들을 잡아온 것이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건.

이들이 불과 며칠 전의 상태를 아득히 초월한 전력을 모종의 계기로 갑자기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무기 개발? 새로운 각성자의 등장? 아니면 아후라 마즈다의 지원?’

여러 가지 가설들이 떠올랐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을 터.

“……피해!”

쾅!

그리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자리에서 우린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이 가진, ‘아득한 힘’을 말이다.

* * *

갑자기 날아든 발길질이 우리 일행을 덮쳤다.

아홉 명에 달하는 인원 전체를, ‘한 번의 발길질’로 말이다.

‘거인?’

그 공격을 행한 주체는 다름 아닌 거인.

두꺼운 초록 피부를 가진 근육질의 트롤 거인이었다.

여기서 거인이란 말은, 원래부터 평균 신장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종족인 그들을 지칭하는 수사적인 의미가 아니라.

적어도 이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진짜 거인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영혼 공명 - 별의 불꽃}

이 급작스러운 공격에 바로 반응한 나는, 모든 용기사들에게 별의 불꽃을 전이시켜 곧바로 최대 전력을 이끌어냈다.

지금 눈앞의 적은 기본적인 체술만으로 상대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적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서였다.

화르륵!

우리 중 가장 먼저 거인에게 반격을 가한 것은 물론 아델.

그녀가 공중에서 빠르게 방향을 바꾼 다음, 전신에 별 불꽃을 휘감고 흑화륜을 전개하며 거인에게 돌진했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거인은 그녀의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처럼 보였다.

콰앙!

“크악!”

하지만 아델의 검은 닿지 못했다.

거인은 그 덩치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자세를 바꿔 그녀에게 정권을 날렸다.

그 정교한 움직임은 마치 격투술을 배운 각성자의 것과도 같았다.

‘어떻게……?’

파앙! 쐐애액!

놀라는 것도 잠시, 거인은 그대로 나가떨어지는 아델을 향해 앞으로 튀어 나가더니, 몸을 움츠리고서는 어퍼 동작을 취했다.

저 추격타를 맞으면 아델은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안 돼. 칼리가 깨어나기라도 하면……!’

예측 불가능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 그녀에게 달려들려던 그때.

“제가 막을게요!”

{카트반가가 아리사카 유메미에게 전이되었다.}

여덟 번째 용기사인 유메미가 카트반가의 코어를 전개하고서 덮쳐 올라오는 주먹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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