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88화
빠각.
오른팔이 심하게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튕겨 나가는 순간, 등 뒤의 유메미가 깔리지 않도록 몸을 틀며 한 손으로 바닥을 짚어서 충격이 전부 팔에 집중된 탓이다.
말인즉 내 신체 강도로도 버티지 못할 만큼 강한 충격이란 뜻이니, 만약 유메미가 아래에 깔렸다면 그녀는 절대 몸이 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괜찮아요?”
서걱.
“아……!”
나는 그녀의 걱정을 뒤로한 채 아무렇지도 않게 팔을 잘라냈다.
그리고 별의 불꽃을 집중해 잘린 부위에서 다시 팔을 재생시켰다.
뜯겨 나간 현자의 코트 역시 내장된 자가 수복 기능이 발동되어 함께 재생되었다.
“이런 사지 부상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제가 방해가 되는 걸까요? 이제 그냥 전 여기서 내리는 게…….”
“아니. 계속 업혀 있는 게 나아. 그편이 난전 중에서 널 보호하기에도 더 좋고. 그리고 방금 전 같은 상황에서 네 마법으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유메미는 내게서 떨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그건 오히려 내게 더 방해가 되는 일이다.
차라리 이렇게 뭉쳐 있는 상태가 내겐 훨씬 더 편하다.
‘만화에 나오는 로봇처럼 합체 같은 거라도 할 수 있었으면…… 큭.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이런 심각한 순간에 나도 모르게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말도 안 된다는 걸 자각하고 지금의 상황에 집중했다.
‘타라.’
나는 방금 나타난 그 메시지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서 이미 죽어버린 그녀를 떠올렸다.
“이건 또 뭐야!”
카앙!
츄카카카캉!
튕겨 나온 나 대신 아델과 대치하며 치열하게 검을 주고받는 한 영체.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은, 흐릿한 인간 여성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그것은 현란한 검술로 아델의 빠른 공격을 전부 막아냈다.
난 그 검술을 전에 한번 본 적이 있었다.
아니, 그보다도 애초에 내게 너무나 익숙한 검술이었다.
‘달 그림자 검식.’
타라가 사망한 후 그녀의 영혼을 수복했다는 악의의 메시지와 함께 얻게 된 기술.
지금 저 영문 모를 이유로 나타난 영체가 바로 그 검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귀찮게 하지 마!”
아델이 순식간에 땅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사선으로 검을 쳐올리며 상방의 저 영체를 향해 금강염사를 날렸다.
영체는 검으로 원을 그림과 동시에 강한 일참을 날리는 만월청영으로 대응.
콰웅!
두 강격이 부딪히며, 이 비좁은 공간에 강렬한 파동을 일으켰다.
{프리드웬을 인벤토리에서 꺼낸다.}
난 그 후폭풍을 막기 위해 프리드웬을 꺼내 들었지만.
쉬이익!
그 순간 뒤쪽에서 날카로운 금속성 물체가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어느새 후방으로 접근한 아델이 신기일섬을 사용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나를 노렸구나.’
그녀는 당장 자신에게 덤벼드는 타라를 상대하면서도, 나를 베겠다는 목적은 잊지 않고 있었다.
금강염사를 페이크로 지르면서 진짜 공격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휙!
그 대응으로 난 프리드웬을 든 자세 그대로 몸을 뒤로 젖히며 마치 스웨이 백을 하듯 전방의 후폭풍을 뒤로 흘려냈다.
힘의 방향을 역이용해 후방에서 다가오는 아델을 튕겨낼 겸, 동시에 방패로 검을 막기 위해서였다.
카앙!
“하!”
아쉽게도 후폭풍으로 아델을 튕겨내지는 못했지만, 급격한 방향 전환으로 신기일섬을 막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쉬익!
‘2격이라고?’
아델은 그 상태에서 다시 역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것도 방금 전의 그 검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단 한 번의 일격에 전력을 담아야 하는 신기일섬을, 두 번 연달아 사용한 것이다.
‘틀렸다. 이걸 막으면…….’
몸을 뒤로 트는 역동작에 의해 자세가 불안정해진 나는 그녀의 검을 정면으로 받아내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면, 다음 공격에 나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인탱글먼트.”
스르륵.
그런데 그 순간, 유메미는 다시 한번 언령마법을 사용했다.
그녀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바닥에서 나무줄기 같은 것들이 뻗어 나오며 내 하체를 감쌌다.
그것이 내리쳐 오는 압력을 지탱해 줄 뿌리가 되어주었고.
콰앙!
아델이 휘두른 제2격을 안전하게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팔이 조금 저리긴 하지만, 하체가 튼튼하게 보완된 덕에 어정쩡한 자세로도 중심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짜증 나게!”
아델은 그걸 보고 더 흥분해서는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신기일섬의 제3격……이 아니라, 이번에는 훨씬 더 공격적으로, 흑화륜을 사용하려 하늘로 뛰어오르려는 모양새였다.
{프리드웬을 인벤토리에 수납한다.}
{격룡창 트리슈라 소환}
물론 그렇게 하면 당연히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난 그 간격에 검을 찔러넣어 그녀를 제압하기 위해 트리슈라를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아델의 오른팔을 노리고서 창끝을 내밀며 재빨리 달려들었다.
{청류 폭발}
퍼엉!
창날의 반대쪽 끝부분에서 유수가 맹렬히 터져 나오며 나를 강하게 밀어냈다.
자체 공격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직선 돌격 속도만큼은 최상급의 기술.
또한 위력이 낮기에 제압으로 그칠 수 있다.
너무 강한 화력을 투사해 아델이 죽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투콱! 카앙!
“아아악!”
내 노림수는 그대로 적중해, 트리슈라의 창날이 검을 치켜든 그녀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물론 그건 순수한 내 능력 덕분만은 아니었다.
‘나를 지키려 하는 건가?’
타라의 영체가 아델이 검을 휘두르려는 걸 막아준 덕에, 나는 아무런 리스크 없이 공격을 성공할 수 있었다.
단순히 아델과 싸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보호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 개자식들이!”
한편, 내 공격에 얻어맞은 아델은 더더욱 격분했다.
난 그런 그녀를 확실히 제압하기 위해 힘을 가해 벽으로 밀쳐내려 했다.
그러나.
울컥. 쿠르륵.
사방에서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튀어 나온 촉수들이 아델의 몸을 감싸며 그녀의 육신을 보호했다.
게다가 그 기괴한 살덩어리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녀의 몸을 더욱 강화시키기까지 했다.
터텅!
함께 그녀를 제압하고 있던 나와 타라의 영체는 동시에 위아래로 튕겨 나갔다.
도무지 끝을 모를 정도로 상승하는 압도적인 힘 앞에 나도, 타라도,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여신 칼리의 파괴 본능이 표출됩니다! 공간의 붕괴가 가속됩니다!}
쿠구궁. 쿠궁. 쿠궁.
이어서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나며 우리를 거의 가두다시피 한 이 좁은 공간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바닥과 천장에 수 갈래의 균열들이 생겨나더니.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건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바깥 세상이 보였다.
아까 전, 내가 창문 너머로 보았던 기묘한 지옥 세계의 일부가 드디어 그 완전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아아아.
마치 아기 울음 소리 같기도 하고, 짐승의 포효 같기도 한 괴기스러운 메아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머리 위 하늘은 아까 전 내 정신을 미치게 만든 시뻘건 광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땅에는 꿈틀거리는 벌레와 종양, 뭔지 모를 괴생명체의 눈알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또한 눈꺼풀 없이 흰자위를 잔뜩 드러낸 거인들은 여전히 나를 감시하듯 쳐다보았다.
심적 강인함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자가 온다면 당장에라도 정신이 붕괴해버릴 것만 같은 이 괴기의 차원 영역이.
아델, 아니…….
칼리의 분노에 의해 그 완전한 형태를 드러낸 것이다.
‘칼리. ……타라.’
그리고 그때 난, 잠재의식 속에 깊게 묻혀 있던 기억 하나를 꺼낼 수 있었다.
* * *
타라는 과거의 나인 아흐리만의 아내의 이름이지만, 꼭 그녀만이 아니라도 당대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붙여지는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
내가 거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은 건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그래서 이 공간 역시 그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어디까지나 시스템이 만들어낸 퀘스트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이 모든 게 다 아후라 마즈다의 농간에 의한 것이고, 타라가 죽은 것 역시 마찬가지로 그로 인한 것이라고.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디-샤크티. 데바 로카 신계의 구세대 여신들.’
지금 나의 잠재 의식 속에 숨어 있던 기억이 나에게 속삭인 것은, 그런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말들이었다.
‘칼리와 타라…… 모두 시바의 아내들이야.’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저 두 여인은, 시바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여신들이었다.
모나의 환생인 아델로서 현신한 칼리.
아흐리만의 아내로서 현신한 타라.
그리고 그 둘로 인해 발생한 지금의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
이게 모두 아후라 마즈다가 아니라, 내게 모든 불멸자들을 제거하도록 힘과 사명을 부여한 시바의 의지에 의해 벌어진 일들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그로 인해 발생한 비극은 그뿐만이 아닐 게 분명했고 말이다.
‘……나를…… 가지고 논 거냐?’
배신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고 생사를 멋대로 결정하는 신들로부터 벗어난다는 명목으로.
나 역시 타인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만다는 모순을 감내하면서까지.
수라를 물리치려 수라의 길을 걷는다는 선택을 한 내게 돌아온 것이 결국 이거라니.
나는 지금 당장에라도 시바에게 찾아가 따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대답해. 지금 당장.’
들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와 나는 서로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고.
그는 절대 이곳에 직접적인 관여를 할 수 없다.
타라, 아델. 태공망.
수많은 다른 인물들을 도구 삼아 간접적인 영향력을 이 세계에 행사할 뿐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누구보다 가장 강력한 도구는 다름 아닌 나일 테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내가 아무리 마음 속으로 그를 부른다 하더라도 그와 소통을 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모종의 방법을 통해 그를 잠깐이라도 이곳에 데리고 오거나, 혹은 내가 그를 만나러 가지 않는 한은 말이다.
‘시바의 힘을 직접적으로 이곳에…… 그래, 그걸 쓰는 거야.’
그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지극히 극단적이기 그지없는 방법.
그건 바로 멸절 파슈파타였다.
‘죽음은 더 이상 페널티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세계를 전부 날려 버려서라도…….’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정말 시바를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저 난폭한 괴물, 칼리를 막을 수는 있겠지.
저건 더 이상 아델이 아니었다.
그녀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역겨운 구세대 신들 중 하나일 뿐.
그러니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두를 수 있다.
“유메미.”
“……네?”
“받아.”
{프리드웬을 인벤토리에서 꺼낸다.}
{카트반가 소환}
난 등에 업혀 있는 유메미를 내려놓고, 그녀에게 프리드웬과 카트반가를 넘겼다.
“이게 무슨……?”
“이 둘을 사용해서 최대한 네 몸을 보호해. 도망을 가건, 방어 장막을 펼치건.”
그건 적어도 당장 아무 상관 없는 그녀만큼은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녀가 가진 마법과 이 두 신물의 조합이라면, 적어도 멸절 파슈파타에 의해 휘말리는 것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죠? 뭘 하려고…….”
“지금 당장 가. 죽기 싫으면.”
난 유메미에게 조금 강압적인 어투로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공포심과 같은 감정이 떠오르더니.
“……아, 알겠어요.”
이내 두 무구를 받아들고는 저 멀리 어딘가로 사라졌다.
긴 설명 필요 없이, 내 안에 피어 오르는 별의 불꽃만으로도 그녀를 움직이게 하기엔 충분하다.
아마 그녀는 내가 태공망을 통해 봤던 것과 같은 것을 보았을 테니 말이다.
“끝장내 주지.”
난 곧바로 파슈파타를 꺼내 들었다.
{멸절 파슈파타 전개}
그러고는 검 안에 내재되어 있는 파멸의 힘을 과감하게 표출시켰다.
쿠구구궁.
칼날이 양쪽으로 갈라졌고, 갈라진 검신의 가운데에서는 별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내 생명을 모두 갉아먹어 순수한 파괴의 에너지를 그대로 방출하는, 시바가 가진 최강의 무구.
그것이 지금 내 몸 안에 흐르는 에너지인 별의 불꽃과 반응해, 훨씬 더 강하게 빛났다.
이 괴악한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더 크고 강한 육체와 마력을 얻은 칼리조차도, 이 파멸의 힘 앞에서는 한낱 미물처럼 보일 뿐.
고오오오.
그대로 나는, 칼끝을 앞으로 내밀고서 시동 주문을 외쳤다.
“프랄라야 파슈파타스트라(Pralaya Pashupatastra).”
그렇게 종말의 검이 불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