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85화
“뭐, 뭐야? 당신은?”
복도 끝에서 나타난 건 카구츠치라는 신화 수호령을 가진 여자 드워프였다.
그녀는 스사노오 휘하의 방계 하부조직의 조장.
병원 안의 환경이 갑자기 기괴하게 뒤틀린 데에 당황한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꽤나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신우 씨…….”
유메미가 내 옷깃을 붙잡고 있던 손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에서는 불안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건 물론 저 여자 때문이겠지.
우리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델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녀가, 이 타이밍에 무수히 많은 시체들이 쌓인 병원에 뒤늦게 나타났다는 것은.
목적은 단 하나, 아델을 죽이러 왔다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이봐, 잠깐 얘기 좀 하지.”
물론 그건 단순히 내 오해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도 말로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난 우선 대화를 꺼내려고 했으나.
“……칫!”
카구츠치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방향을 바꿔 자신이 왔던 길로 되돌아 뛰기 시작했다.
화륵!
다리 쪽에 화염을 두르고서 속도를 더욱 가속하면서.
그렇게 그녀는 이내 내 감지 반경 바깥으로 벗어났다.
나 역시 그녀를 쫓아갔지만, 모서리 너머 곧장 두 갈래로 나뉘는 복도 구간에서 카구츠치의 흔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 감각을 마비시키는 공간에서는 추격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가 먼저 아델에게 가야돼.”
그렇다면 그녀를 쫓기보다는 아델을 먼저 찾아내야 한다.
그녀를 구해내서 이 영역 밖으로 데리고 나가건, 그녀에게 걸린 저주를 풀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최대한 빨리 지금의 상황을 종결시켜야만 한다.
그래야 내 손으로 아군을 죽이게 되는, 불미스러운 일을 끝낼 수 있으니까.
와락.
그러자 유메미가 내 뒤에서 내 목을 감싸 끌어안듯 매달렸다.
마법을 사용한 것인지, 그녀의 몸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방해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이 상태로 마법 지원할게요.”
그녀를 데리고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면 내가 안아 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메미 자신이 내 뒤에 매달렸다.
그것도 움직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형태로.
이렇게 되면 내 손발이 자유로워져 이동과 전투가 수월해질 뿐만 아니라, 그녀를 지키는 것도 편해진다.
게다가 이 뒤에서 마법 지원까지 해 준다고 하니, 내게는 더없이 좋은 선택.
“좋아. 그럼 꽉 붙잡아.”
“네……!”
나는 곧바로 별의 불꽃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전신의 힘을 극대화시켰다.
이 좁은 공간에선 날개를 펼쳐 날 수 없으니, 믿을 것은 오로지 내 다리뿐.
파앙!
경쾌한 발걸음으로 땅을 박차며 통로를 가로지른다.
공기의 강렬한 저항으로부터 유메미를 보호하기 위해 전면에 얕은 보호막을 형성해야 할 만큼 빠른 속도로 말이다.
지금 난 아델이 입원해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기묘한 칠흑의 촉수들 때문에 벽을 허물어버릴 수도 없다.
하지만 이 비좁은 건물 안을 샅샅이 수색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한 층계라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라면, 더더욱 빠를 것이다.
“너, 너무 빨라요. 여기서 갑자기 적이라도 나타난다면…….”
오히려 유메미는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나를 걱정했다.
지금 이곳에선 겨우 수 미터 앞에도 무엇이 있는지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반사 신경을 믿어.”
“으음…….”
“못 믿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너도 마찬가지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신체가 빠르다 한들 예측이 제한되어 있는 상태로는 이 힘도 제대로 쓰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그래도 별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해내는 수밖에.
아델과 만나기만 한다면, 이 불쾌하고 기묘한 공간의 제약도 해결할 방도가 보일지 모른다.
“저 근데…….”
“음?”
그렇게 복도를 가로지르던 와중, 유메미가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분명…… 여기에 온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지?”
난 그녀가 뜬금없이 당연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델을 먼저 텔레포테이션으로 데리고 온 유메미라면 당연히 이 병원에도 와 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그런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그게 그러니까, 한 번이 아니라 엄청 자주요. 너무 익숙한 구조라서…….”
“익숙하다니?”
“대학교…… 같아요. 여기.”
“뭐? 그게 무슨?”
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난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는 ‘811호’라 적혀 있는 병실 문을 열었다.
“……이게 뭐야?”
그 안에는 수업을 듣기 위한 강의실이 펼쳐져 있었다.
* * *
여긴 대학 건물이 아니다.
확실한 병원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곳곳에 비치되어 있던 의료기구들만 봐도 그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복도의 모서리를 돌자, 갑자기 전혀 다른 공간이 튀어나왔다.
둘 다 비슷해 보여서 금세 눈치 채지는 못했지만, 멈춰 서서 보니 확실히 다른 건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여기에 있을 수가 없는데.”
물론 병원에도 강의실 형태의 공간이 있을 수는 있다.
정말로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부분은 그보다도 다른 문제.
그 문제란 바로, 애초에 건물 구조상 이 위치에는 이만큼 넓은 강의실이 위치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설마.”
퍼뜩 수상한 생각이 든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코너를 돌았다.
거기엔 막다른 길이 있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길게 펼쳐져 있었던 복도였지만, 지금은 꽉 막힌 벽으로 변해 있다.
“공간이…… 변화한다고?”
난 그제야 이곳의 또 다른 비밀을 눈치챌 수 있었다.
코너를 돌 때마다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
그것도 병원에 한정되지 않은, 전혀 다른 건물 내부의 공간들이.
아까 전에 봤던, 마치 뒤틀려 있는 듯한 외부 세계는 비단 건물 바깥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들어와 있는 건물 전체가 그렇게 바뀌어버린 것이다.
“공간이 변화한다구요?”
유메미 역시 충격을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안 그래도 눈이 보이지 않아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을 자신의 지식 내에서 상상력으로 구현해야 하는데.
일정 거리 이상의 마력 감지가 차단된 것도 모자라, 그 영역이 계속해서 변화하기까지 하고 있다.
당연히 머릿속은 나보다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다.
“젠장, 이러면 아델에게 갈 수가 없잖아.”
“이제 어떡하죠? ……정말 여기에 갇혀 버린 건가요?”
당장 다른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나와 유메미의 안위조차도 불투명하다.
창밖을 내다보니, 예의 그 거대한 눈꺼풀 없는 인간 얼굴이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다.
흰자위가 전부 드러난 섬뜩한 눈으로, 마치 나를 감시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 쳐다보고 있다.
“젠장!”
{달 그림자 검식 파생형 ‘만월청영’ 전개}
피잉!
난 검을 휘둘러 그 재수 없는 얼굴의 눈을 베어내려 했다.
하지만 검은 애꿎은 허공만 갈랐을 뿐, 어떠한 것에도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저 기묘한 존재는커녕 평범한 벽과 창문조차 자를 수 없었다.
{유결부 파라슈 소환}
그래서 이번엔 영혼을 토막 내는 도끼로 그것을 공격해 봤지만.
촤악!
그 역시 무용지물이었다.
지금 이 공간을 감싸고 있는 것들은 물질도, 영혼도 아닌 전혀 다른 차원의 무언가였다.
“큭.”
{악의의 오른쪽 눈이 비밀을 꿰뚫어 본다.}
{진실은 닿을 수 없는 고차원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다.}
악의의 오른쪽 눈도 이곳에선 통하지 않았다.
모든 수단이 막혀 버린 상황.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토록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떠오르지도 않는 때가 있었던가.
{모든 소환 무구의 소환을 해제한다.}
붙잡고 있던 이성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아까 전부터 이 기묘하게 바뀌어버린 세상을 억지로 받아들이려 하던 정신력도 다 흐트러지는 것 같다.
실은 아델이 있는 곳까지 간다 하더라도 딱히 뭘 해야 하는지 해답을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걸 목표로 삼아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는데.
그 목표마저 이런 식으로 좌절되니, 한순간에 움직일 동력을 잃은 기분이었다.
꽈악.
그때, 내 등에 업혀 있던 유메미가 옷깃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 손에서는 따뜻하면서도 익숙한 불길이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포기하기는 일러요.”
“……무슨 수라도 있나?”
끄덕.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자신감은 없었지만.
“유계의 심도에 접근해 볼게요.”
“너 혼자서?”
“네.”
유계의 심도는 영혼계 너머의 아주 깊숙한 영역.
유메미는 그녀의 수호령이었던 바리공주의 권능을 사용해, 파괴된 서천꽃밭에 남아 있던 혼살이꽃으로 거기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겐 그것을 가능케 해줄 수호령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리공주는 이미 영멸해 버렸고, 그 권능 역시 당연히 사라졌을 터.
애초에 마법에 능한 만큼 어느 정도 영혼과 상호작용하거나 감지하는 것도 가능한 그녀지만.
그것을 넘어 유계의 심도에 도달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유메미는 권능도 없이 그것을 시도해 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이런 뒤틀린 공간에서 말이다.
“가능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괜찮겠어?”
“해야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주저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그녀는 의연한 말투로 대답했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다 포기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서 상황을 바꿀 여지만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이건 선택의 논리가 아닌 것이다.
“……좋아. 그러면 나도 널 돕겠어.”
“어떻게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자,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병실에 폈던 피살이꽃. 그게 여기에 나타난다면, 혼살이꽃도 이곳에 있을 수 있지도 모르잖아?”
“아……!”
“물론 추측뿐이지만, 찾기만 하면 무조건 성공하는 일이니까.”
“맞아요!”
“조금이라도 확률을 올려보자.”
나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앞을 바라보았다.
미로처럼 엉킨 채 계속해서 변화하는 공간.
이제 저 앞은 더 이상 평범한 병원이 아니다.
뒤틀린 지옥의 한 단면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현실 세계보다 지옥이야말로 내게 익숙한 곳이니 말이다.
{마검 파슈파타, 유결부 파라슈 동시 소환}
나는 다시 양손에 검과 도끼를 움켜쥐었다.
* * *
그렇게 한참 동안 건물을 돌아다녔다.
유메미는 내게 매달린 채로 완전한 집중 상태에 돌입했고, 나는 혼살이꽃을 찾기 위해 나타나는 모든 방과 공간들을 샅샅이 뒤졌다.
그동안 병원은 계속해서 더욱 기묘하게 변화하며 급기야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장소로 바뀌었다.
초반에 나타났던 대학이나 회사 사옥 등과도 완전히 다른, 교도소나 클럽 같은 곳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도 마물은 없나.’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이곳에 나를 귀찮게 방해하는 마물 같은 것은 없었다.
덕분에 뒤에 유메미를 업은 채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놓고 있었으나.
“저, 저기 있습니다!”
나는 금세 그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여긴 마물보다도 더 상대하기 어려운 자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마스터. 결국 여기서 마주치는군.”
세 명의 드워프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남자 하나와 여자 둘.
“카구츠치, 스사노오. 그리고 넌…… 이와나가인가.”
타카마 시티에서 가장 강한 전력을 가진 세 사람이다.
이들은 단순히 일신의 무력을 넘어, 내게 큰 도움이 되어줄 무장 전력을 거느린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는 빤했다.
“아델을 죽이려는 건가?”
스사노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한 세력의 지도자로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길 바라지.”
“……다른 방법을 찾을 생각은 없는 거냐?”
“다른 방법? 이 주변을 봐라.”
그는 사방에 펼쳐져 있는 기묘한 공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벽을 온통 잠식하고 있는 칠흑의 촉수.
창밖의 붉은 하늘.
거기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기괴하고 섬뜩한 얼굴.
이곳의 환경이 생경한 것은 그들 역시 똑같았다.
“이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나? 이건 시스템이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거야. 전신이 썩어 들어가기 전에 아픔을 참고 손가락을 잘라내라고.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않으면 바깥에 있는 무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죽을 거다.”
스사노오는 이 모든 게 다 각성자들에게 나타난 퀘스트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따르는 것 외엔 어떤 방법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드워프들이 죽어가고 있지. 내 가족도 예외는 아니야.”
결국 이건 각자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일.
“제발 바보 같은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속박의 저주가 당신의 육신을 마비시킵니다!}
그의 좌측에 서 있던 카구츠치가 내게 마법을 걸어왔다.
나를 이곳에 묶어놓고, 아델을 찾아가 죽이려는 모양이었다.
{별의 불꽃이 침투하는 마력을 정화한다.}
난 거기에 당해줄 마음이 없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군.”
“……젠장.”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진짜로 현실이 될 줄은.
결국 난 내 손으로 아군을 베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