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84화
{-목표: 별 불꽃이 일으킨 열병의 근원을 제거하십시오.}
{-보상: 타카마 시티 내부로부터의 재난 중단}
그것은 아델이 겪고 있는 통증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악의의 열병’으로 인해 발생한 재난은.
“꺄악!”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불러왔다.
대피중인 드워프 시민 무리 사이에서 난데없이 마물이 나타나고, 무방비 상태의 그들을 마구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아직 바깥에서 접근하고 있는 무리들이 내부로 들어오기는커녕 도시를 감싼 보호막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떠한 예고조차 없이, 갑자기 도시 안쪽에서 마물들이 ‘소환’된 것이다.
{마검 파슈파타 소환}
투콱!
난 곧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달려들어 그것들을 베어냈다.
“이건…….”
마물들은 그다지 강한 개체는 아니었다.
별다른 기술을 쓸 필요도 없이, 마나건을 다룰 수 있는 각성자나 마력 사용자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문제는, 그것들이 발생하는 위치라는 점이다.
“사람의 배 속에서?”
방금 그 짐승형 마물이 발톱을 휘둘러 죽여버린 시체 몇 구 사이에, 상처의 형태가 전혀 다른 시체 한 구가 눈에 띄었다.
그건 발톱에 의해 찢겨 죽은 게 아니라 배가 갈라지면서 내부로부터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온 흔적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느껴지는 마력의 성질은 이쪽 세계가 아닌 다른 차원으로부터 흘러들어 온 것.
그러니 이 마물은, 지금 이 드워프들 중 하나의 몸을 매개로 삼아 타 차원에서 건너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신우 씨…….”
유메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자신의 마법 지식으로는 발생할 수 없는 현상에 패닉에 빠진 것이겠지.
도저히 선제 대응을 할 수 없는 교묘한 방식의 공격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것이 만약 방금 시스템 메시지로 나타난 퀘스트와 관련되어 있다면…….
‘재난’이라고 칭한 이상, 이런 현상은 여기 한 곳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닐 터였다.
마력 감지 능력이 뛰어난 유메미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그 살육의 현장을 지금 이 순간에도 보고 있을 것이다.
‘엿 같군……. 이런 식으로 날 시험에 들게 하려는 건가?’
시스템은 또다시 나로 하여금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었다.
처음은 레아, 지난번은 유메미, 그리고 이번은 아델.
소중한 사람 하나를 죽여야만 살릴 수 있는 수많은 목숨.
아후라 마즈다는, 그리고 시스템은 그것으로 나와 신들이 별반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확인시키려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쪽을 고른다 해도 온전한 정신으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말이다.
“유메미, 일단…….”
“신우 씨, 지금 이거…… 신우 씨한테도 보이나요?”
“음?”
그런데 유메미는 이상한 말을 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메시지…… 퀘스트요.”
“퀘스트가?”
“이거…… 아델 씨 말하는 거 맞죠?”
그리고 나는 그제야 그녀가 왜 그렇게 패닉에 빠졌는지 알게 되었다.
“이 퀘스트…… 저한테만 나타난 게 아니라면.”
“설마.”
“이 도시에 있는 모든 각성자들이 아델 씨를…….”
아델을 죽여라.
그러면 지금 발생하고 있는 무고한 희생을 막을 수 있다.
네 가족, 네 친구, 연인이 불의의 습격으로 사망하는 걸 막을 수 있다.
……라는 퀘스트가, 이 도시의 모든 각성자들의 눈앞에 나타난다.
이건 그저 단순히 나 하나의 양심을 시험하는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도시 안의 모든 사람들을 분열시키기 위한 시스템 관리자의 악랄한 수작인 것이다.
“당장 아델이 있는 곳으로 간다.”
“……네.”
난 곧장 그녀가 회복 중인 병원으로 이동했다.
* * *
병원은 이미 아수라장이 된 상태였다.
곳곳에 핏자국이 보이고, 시체가 무더기로 널브러져 있다.
하나가 아닌 다수의 마물들이 한꺼번에 소환되어 학살을 벌인 듯한 정황.
매개체인 아델의 주변에서는 훨씬 더 많은 마물들이 소환된 모양이었다.
덕분에 그곳은 말 그대로 지옥도 그 자체가 되었다.
쉬익!
파슈파타로 현월 검기를 날려 창문 안쪽에 보이는 마물들을 한꺼번에 베어냈다.
콰창!
그러고는 창문을 깨뜨리며 내부로 진입.
난 별 불꽃의 날개로 날아올라 아델이 회복하고 있는 층계로 곧장 들어왔다.
혹시라도 건물 전체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아델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에, 최대한 요란하지 않은 방법을 쓴 것이다.
‘아델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가까운 곳까지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델의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영혼 공명으로 연결된 그녀에게 감각 공유를 사용해 보려 했으나, 그조차도 불가능했다.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차단된 것은 설명이 불가능한 일.
그녀에게 무언가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유메미, 아델이 어디 있는지 보여?”
“아뇨. 아무것도…….”
그리고 그건 유메미도 마찬가지였다.
마력 감지를 넘어 영계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들까지 느낄 수 있는 그녀마저 그런 상태인 것이다.
“잠깐, 그런데 이거…… 혹시?”
한편, 유메미는 건물 내부의 바닥을 살펴보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 머리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참혹한 몰골로 쓰러져 있는 시체들 사이, 그저 이곳에 수없이 흩뿌려진 핏덩이 중 하나로 보이는 그것은, 한 송이의 검붉은 꽃이었다.
“지금 그런 걸 보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당장 움직여야 해.”
난 한시라도 빨리 아델을 구하러 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녀를 재촉했다.
하지만 유메미는 계속 그 꽃을 바라보다가, 손까지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피살이꽃…….”
“뭐?”
“이거……. 서천꽃밭에 피는 피살이꽃이에요.”
“뭐라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제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서천꽃밭의 꽃들은 섭리를 뒤흔드는 신물…… 엄중하게 관리되는 물건이라 아무나 건드릴 수 없고, 당연히 아무 곳에나 피지도 않아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여기에…….”
유메미의 말대로 그건 절대로 이런 곳에 필 만한 꽃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서천꽃밭 신계는 과거의 내가 통째로 파괴해 버려서 이젠 관리하는 자도 없이 세계의 파편에 아주 일부의 꽃만이 자생하고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그 꽃이 하계까지 내려올 리는 없었다.
거기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바리공주 역시 내 파라슈에 의해 소멸해 버렸고.
“저승에서만 피는 꽃이 이런 곳에 나타나다니……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유메미, 잠깐…….”
그 말을 들은 나는 순간적으로 온몸을 감싸는 기묘한 감촉에 소름이 돋았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들어볼 새도 없이, 느껴지는 위험 신호에 즉각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리 나와!”
투쾅!
병실의 한쪽 벽면이 통째로 허물어지며 그곳으로부터 거대하고 기이한, 시커먼 촉수가 뻗어 나왔다.
그것은 명백하게 나와 유메미를 노리고 있었으나, 내가 그녀를 감싸면서 바닥을 뒹군 덕에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어……?”
“젠장.”
쉬이익!
그리고 난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자세를 잡고 파슈파타를 휘둘러 현월을 뿜어냈다.
압축된 흑청색의 초승달 검기가 촉수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핏.
검기는 촉수에게 닿지도 못한 채 애꿎은 건물 기둥만을 갈랐을 뿐이다.
그것이 내 공격을 피한 것이 아니다.
내가 맞추지 못한 것이다.
‘거리감이 없어……!’
촉수는 기묘할 정도로 시커먼, 주변의 빛을 전부 빨아들이는 것 같은 칠흑이었다.
그런 탓에 저것이 나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에 있는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신화 사냥꾼의 본능 특성으로 인해 증폭된 감각조차도 무용지물.
애초에 제로인 감각을 몇 배로 증폭시킨다 해도 제로일 뿐이다.
쿠르릉.
덕분에 빗나간 검기는 외벽을 지탱하고 있던 천장을 무너뜨렸고.
아델과 피살이꽃에 정신이 팔려 내다보지 못했던 바깥세상이, 비로소 내 시야에 들어왔다.
“……말도 안 돼.”
내가 진입할 때와는 전혀 달라진 풍경.
분명 들어올 때만 해도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랗게 맑던 하늘이, 어느새 어두운 붉은색으로 뒤덮여 있다.
병원 주변을 가득 뒤덮고 있던 빽빽한 빌딩 숲은 온데간데없이, 지상은 온통 꿈틀거리는 촉수와 기괴한 시체, 해골들만이 가득했다.
어느 순간, 나와 유메미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온 것이다.
{ㅈ주ㅜㄱ여…… ㄹ라ㅏㅏㅏ…… 그…… 옂ㅈ자……르……을…….}
그리고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거대한 덩어리 하나가 무너진 병원 외벽에 턱, 하고 나타났다.
그 덩어리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안 되는 생김새의 인간 얼굴.
눈꺼풀이 없어 눈동자 주변의 흰자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괴기스러운 악마였다.
* * *
아델이 위치한 병원.
그 전체가 하나의 던전이 되었다.
벽은 온통 빛을 흡수하는 촉수로 가득 둘러싸여 있고, 그 눈꺼풀 없는 거대한 인간의 얼굴이 무너진 벽을 막아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적사자 검식 파생형 ‘금강염사’ 전개}
콰우우우!
혹여 건물을 무너뜨릴까 봐 사용하지 못했던 고화력 기술을 펼쳐 앞을 가로막은 인간의 얼굴과 벽을 뚫어보려 하지만.
파사삭.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걸로는 내부의 구조물들만 부서져 잿더미가 될 뿐, 우리를 가두고 있는 공간의 구조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갇힌 건가.”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지금 여기서 바깥에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원의 벽으로 인해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어 버린 것이다.
“이…… 이제, 어떻게 하……죠?”
급격하게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눈도 보이지 않는 유메미는 더욱 큰 혼란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야 변화한 세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일단은 받아들이면 그만이지만, 머릿속으로 알고 있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광경을 그려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건 생각하지 마. 넌 내 뒤만 따라와. 그리고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있는 것들만 생각하고 느껴.”
“……알겠어요.”
나는 유메미를 뒤에 세우고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치 길을 모르는 아이처럼 내 옷깃을 붙잡고 종종걸음으로 쫓아왔다.
‘아델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 만약 그렇다면 탈출 방법은 그녀와 관련되어 있겠지. 결국 어쨌든 아델이 있는 방으로 가는 수밖에 없어.’
나는 바깥으로 나가는 대신,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세운 채로, 주변에서 다가오는 위협 요소들을 최대한 미리 배제하기 위해.
‘인지할 수 있는 범위가 좁다. ……이래서야 빠르게 나아갈 수 없어.’
하지만 나조차도 여기서는 감각이 극도로 제한되었다.
이 벽 곳곳에 덩굴처럼 뻗어 있는 검은 촉수들은 빛뿐만 아니라 소리와 마력까지도 빨아들이는 속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내 증폭된 감각도 여기선 거의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아델을 찾아내면…….’
그래서 난 더더욱 그녀를 빨리 찾으려는 마음만이 가득했다.
……그다음에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대책도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터벅.
그때, 저 벽 끝의 모서리에서 조그만 발소리가 들렸다.
스윽.
난 왼손을 앞으로 뻗어 거기에 대응할 자세를 취했다.
야차를 소환하건, 검은 혜성을 쏘아내건, 어떤 수라도 곧바로 꺼낼 수 있도록 말이다.
터벅. 터벅.
그렇게 발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고.
그 끝에 나타난 것은.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