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80화
클랜이 분열되었다.
그동안 오랫동안 우리를 결속시켜 온 공통된 연결고리인 ‘고향’이 사라진 영향이 컸던 탓이다.
물론 모두가 다 내게 등을 돌린 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함께 했던 부분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다 그런 것에 큰 가치를 두지만은 않는다.
각자의 신념, 혹은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입장을 바꾸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게 마련.
“그 성황 백선율이 부활해서 나라를 세웠다던데?”
“예루살렘이라고. 하멜 평원 위에 엄청나게 큰 도시국가를 만들었대.”
“백의 구세주라 불린다더군. 기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해서. 거기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편하게 살 수 있다고 하던데.”
지금껏 짧지만은 않은 시간 동안 온갖 일들을 겪으며 함께해온 동료들도, 아후라 마즈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서 혹했다.
그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후라 마즈다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으니까.
“인간을 잡아서 마물로 만든다던데?”
“바보냐? 그런 유치하고 빤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게? 그런 식으로 적을 악마화하는 건 옛날부터 흔하게 해 온 프로파간다라고.”
“……그런가?”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내 눈으로 직접 본 그의 악행은 모두 아주 오래전, 이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대의 이야기이거나, 클랜의 수장으로서 적에게 행했던 살상 행위, 혹은 바로 얼마 전 나 혼자서 발견했던 그 던전뿐.
그런 수많은 사실들을 구차하게 설명하려 들어봤자, 이미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게 할 수는 없다.
‘현실의 벽 앞에서 감정적인 호소는 통하지 않아.’
결국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현실적인 요인이었다.
나를 떠난 클랜원들이 나를 따랐던 것도 결국은 그 전 세상에서 내 세력이 적보다 더 유망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상황이다.
아후라 마즈다가 뒤에서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든지 간에, 겉으로 보이는 사실은 단 하나.
나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하며, 부흥하는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저들은 다시 한번 입장을 바꾸고 있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힘의 논리였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 힘의 논리를 이용하면 돼.’
그래서 나는 떠나간 클랜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내 세력을 키우기로 했다.
종족을 초월한 모든 아인종들의 단결.
그걸 이끌어낸다면,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 *
“마스터. 레아 님의 영혼 공명이 끊어졌습니다.”
아델이 말했다.
“결국 마음을 먹었구나.”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가만히 내버려 둬도…….”
“방법이 없잖아? 지금은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자고.”
“알겠습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레아가 그런 선택을 하리라는 것을.
클랜원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은 당연히 그녀의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의 신념에 대한 강한 집착에 의해, 더 많은 인간을 거느리고 있는 아후라 마즈다 쪽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물론 이건 단순한 예측뿐만이 아니라, 시력을 잃은 유메미가 본 꿈의 내용에도 있던 일이었다.
‘그게 정말로 예지몽이라면…….’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은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두기로 했다.
레아의 마음을 돌리는 건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그렇게 해도 충분하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
쿠쿵. 쿵.
격렬한 전투의 진동이 저 빌딩 숲 너머에서 느껴져 온다.
폭염을 동반한 충격파가 하늘로 치솟는 것이 보인다.
이미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투는 진행되어 있었지만, 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화악.
흑청색의 별 불꽃 날개가 펼쳐져 나를 하늘로 띄웠다.
활공의 목표 착지 지점은 저 높은 마천루의 최상층으로부터 5층 아래의 지점.
‘찾았다.’
난 그곳에서 한 사람의 마력을 느꼈다.
파캉!
그대로 창문을 깨뜨리며 고속으로 돌진.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밀고 있는 인물의 손목을 낚아챈다.
그와 동시에 방아쇠가 당겨진다.
타앙!
다행히 총탄은 허공을 가르고 건물 벽을 뚫었을 뿐.
내 앞에서 자살하려던 인물은 아직 죽지 않았다.
“……너도 나를 죽이러 온 거냐?”
말쑥하게 차려입은 정장 위에 검붉은 피를 뒤집어 쓴 다크엘프.
인드라는 이미 체념한 얼굴이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이제 난 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신세로군. 네 마음대로 해. 그 자가 주는 보상이 그렇게나 좋다면.”
“보상?”
“모르는 척하지 마. 너도 그 퀘스트 보상을 받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
그는 묘한 이야기를 했다.
퀘스트 보상이라니.
주변을 둘러보자, 수많은 고위급 간부로 보이는 인물들의 시체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강력한 고압 전류 불꽃으로 신체 곳곳이 타버린 자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아, 아무래도 전격 계통 마법이나 권능을 사용하는 자에 의해 죽은 것일 터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그런 능력을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인물은 바로 이 자, 데바 로카 신계의 주신이자 뇌신 ‘인드라’를 자신의 수호령으로 삼고 있는 이 다크엘프일 테고.
‘그런가……. 아후라 마즈다는 결국 그런 수준까지 시스템을 다룰 수 있게 되었나 보군.’
이 난장판을 둘러보자 대충 상황이 어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게 일어났던 것과 거의 비슷한 일이었겠지.
달콤한 보상을 동반한 퀘스트.
그걸 이용한 ‘인과조정행위’.
그걸로 아군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드는 시스템의 만행이 이들에게도 벌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 정도까지 직접적이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이런 현상들이 벌어진 범위와 타이밍.
지금은 아후라 마즈다가 인드라닉스를 침공하고 있는 상황이다.
곤륜공사에서 벌어진 일은 아후라 마즈다 본인의 행적과는 관계없는 시스템 관리자의 독단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어째선지 마치 시스템이 아후라 마즈다의 공격을 직접적으로 돕기 위해 퀘스트를 남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아후라 마즈다가 시스템을 직접 조작하고 있거나.
‘내가 불사의 능력을 얻기 위해 하비와 접촉하려던 그 순간…… 뜬금없이 공간을 초월해서 아후라 마즈다를 내보냈던 그때부터인가.’
사실 그건 시스템 관리자의 정도를 넘어선 권한 남용이었다.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 강력한 보상을 대가로 인과조정행위를 가한 결과, 나는 그 내기에서 승리하고 정당하게 보상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시스템은 그걸 억지로 무시하고서 잠깐이지만 보상 지급을 보류한 것도 모자라.
전혀 다른 곳에 있던 아후라 마즈다를 멋대로 불러내 나를 막게 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그건 분명 관리자의 권한에 큰 문제를 초래하는 일이었을 터.
‘만약 그렇다면……. 그 틈을 파고든 아후라 마즈다가 시스템에 본격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된다면 일은 더욱 골치 아파진다.
애초에 그 녀석이 세상에서 나를 배제시키기 위한, ‘자기 자신의 권능마저 속박하는 세계의 법칙’이 바로 시스템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꼼수를 통해 그 제약을 깨뜨려 여기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아후라 마즈다도 자신이 세운 기존의 규칙을 계속해서 깨고 있다.
다시금 세상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시대가 시작되었다던 시스템의 메시지……. 그게 이런 식으로 실현되는 건가.’
이 진흙탕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가 누가 되건, 그 뒤의 세상은 멀쩡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수많은 필멸자들이 희생되겠지. 과거처럼.
그렇게 된다면 결국 또다시 나의 패배다.
난 그 비극을 반복해선 안 된다.
“미안하지만 난 내 퀘스트 보상에는 관심 없어.”
“……그게 무슨 소리지?”
“내 관심은 네 퀘스트 보상이거든. 넌 뭘 하는 대가로 뭘 받기로 했지?”
난 인드라에게 그의 퀘스트에 관한 사항을 물었다.
아후라 마즈다와 대항하기 위해 세력을 뭉쳐야 하는 지금, 내겐 인드라 정도의 강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를 끌어들이려면 그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일 퀘스트를 해결해줘야 한다.
내 능력으로 내게 주어진 시스템의 제약을 깨뜨릴 수 있다면, 타인에게 가해진 제약 역시 깰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물은 것이지만.
“큭큭. 아쉽게 됐군.”
“뭐가?”
“미안하지만 보상은 이미 받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이미 퀘스트가 완료된 상태였다.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인 그는 옆의 시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마도 이 장소에 있는 아군들을 죽이는 것으로 조건이 완료된 모양.
“그런데 이 보상은 네가 빼앗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거든.”
“무슨 보상이지?”
“클래스야. 드래곤 나이트. 멋지지 않나? ……이제 와선 아무 짝에도 쓸모도 없지만.”
그리고 그렇게 얻은 보상이 내가 가진 클래스와 동일한 드래곤 나이트라고 한다.
과거는 물론이고 골드와 다이아의 수급이 제한되어 버린 현재에는 더더욱 귀한 클래스.
들어 보니, 시스템은 가치가 매우 높으면서도 전투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현재에는 쓸모가 없는 요소를 보상으로 내걺으로써, 인과조정을 가능케 했던 듯하다.
“잘 됐군. 그럼 그걸 써서 네 적들에게 복수하면 될 일 아닌가?”
“복수? 웃기지 마. 이제 와서? 용종 마수는 언제 길들이고 용기사는 어떻게 육성…….”
“내 밑으로 와라. 지금 살아남아 있는 최대한 많은 시민들을 데리고, 내 쪽으로 붙어라.”
“네 쪽으로……?”
“죽더라도 저 개 같은 녀석에게 한 방은 먹여주고 죽어야지. 그것도 저 놈으로부터 얻은 보상을 이용해서.”
인드라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모든 걸 다 잃고 자살하려던 그에게 더 이상 추락할 밑바닥은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한들, 그 입장에선 시간이 주어진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아지면 나았지 나빠질 것은 없었다.
“……좋아.”
턱.
주저앉아 있던 인드라는 내가 내민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로써 5대 세력 중 하나인 인드라닉스와의 동맹이 체결되었다.
* * *
화륵!
흑청색 화염의 날개는 평소보다 더욱 거대하게 펼쳐져 하늘을 뒤덮었다.
나는 하강하면서 오른손을 뻗어 도시를 파괴하는 마인병들을 향해, 들끓는 힘을 내던졌다.
{검은 혜성 -카트반가 강화}
큐웅!
손바닥에서 카트반가의 코어가 형성됨과 동시에 그로부터 한 발의 마탄이 쏘아져 나갔다.
극도로 압축하고 압축한 별 불꽃의 정수.
순수한 파괴의 힘이 지면에 닿는 순간.
콰콰콰콰콰콰!
작은 블랙홀을 연상케 하는 구체가 주변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소멸시키며 빨아들였다.
반경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그건 애초에 내가 그렇게 되도록 조정한 것.
무고한 인명 피해를 최소화시키며 마인병들만을 제거하기 위해 최적의 위치에 최적의 반경으로 위력이 미치도록 했다.
이를 위해 유메미에게서 배운 메타 캐스팅을 응용했다.
‘제한된 상황에서는 검술보다 이게 훨씬 더 쓰기가 좋군.’
같은 기술이라도 마법의 원리가 적용되면 위력과 타이밍, 작동 방식을 조정할 수 있다.
거기엔 별 불꽃의 권능도 예외가 아니었다.
-앙그라 마이뉴. 나를 막으러 온 건가.
그때, 머릿속에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후라 마즈다.”
지금 이 공격을 지휘하고 있는 지휘관, 아후라 마즈다가 나를 발견하고 전음을 보내온 것이다.
-하나 안타깝게도, 난 네게는 볼일이 없다.
그런데 이번의 그는 나를 발견하고도 무작정 달려들지 않았다.
-이쯤에서 물러나 주도록 하지.
그 대신, 지상의 병력들에게 지시를 내려 전투를 멈추고 후퇴하게 했다.
곳곳에서 마법진이 펼쳐지고, 유메미조차 실현 불가능할 대규모의 텔레포테이션 마법이 실행되며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거기엔 아후라 마즈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난 너한테 볼일이 있는데.”
물론 난 이렇게 그를 놓칠 수 없었다.
기껏 여기까지 와서 저 녀석과 맞닥뜨렸는데, 준비해 온 걸 보여주지 않으면 섭섭할 테니까.
{영혼 공명 - 별의 불꽃}
{용기사 결집}
화륵.
별의 불꽃으로 격이 달라진 힘.
그것이 7인의 용기사들에게 공유되어, 다시 한번 곱절로 증폭한다.
콰우우우!
“커헉!”
텔레포테이션으로 도망치려던 아후라 마즈다는, 내 돌진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목덜미를 붙잡혀 땅속에 처박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