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74화
던전 주변에는 꽤 많은 수의 마물들이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 마물들이 모두 그곳을 오가는 아인종들에게 전혀 적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
아니, 오히려 그 반대로 마물들이 다크엘프와 트롤을 보호하는 듯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물이 아인종을 등진 채 같은 마물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다.
‘직접 내려가서 알아봐야겠어.’
이전까지 어느 세력도 개발하지 못한 던전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트롤과 다크엘프들.
그들이 운반하는 것은 살아 있는 인간.
그리고 마물들은 그걸 보호한다.
온통 괴이한 것들밖에 없는 이 지역의 진상을 파악하려면, 결국 저것들로부터 직접 정보를 캐내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야드가르를 구하려면 그 아래에 있는 아티팩트를 꺼내야 하기도 하고.
“저기 뭔가가……?”
“중대장님! 식별 불가능한 비행 물체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적대적인 존재인 것 같습니다!”
“멍청하긴. 그런 건 마인병들에게 맡기고 우린 그냥 하던 일이나 하면 돼.”
“아…… 알겠습니다!”
전투에 돌입한 후 감각이 극도로 향상된 내 귓가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그들의 대화가 들려 왔다.
내가 예상한 대로, 저쪽에 이 개발 현장을 통제하는 책임자가 있었다.
곧장 그 녀석을 잡아 심문하면 대강 전말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전에 그가 말한 ‘마인병’부터 먼저 상대해야겠지만.
투확!
트롤과 다크엘프들을 보호하던 마물들이 등 갑각에서 날개를 뻗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치 벌떼라도 나타난 듯, 눈앞의 허공이 순식간에 비행형 마물들로 가득 찼다.
‘이게 마인병인가?’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단순한 마물이 아니었다.
중대장이라던 자가 말했듯 ‘마물’보다는 ‘마인’에 더 가까운 형태.
두 팔과 두 다리가 달린 몸통을 기반으로 피부 표면에 마수 갑각과 가죽이 덕지덕지 붙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틀린 생명체들이었다.
외모부터가 일반적인 마물과 마수와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무기를 사용한다……. 마치 사람 같군.’
게다가 그것들은 제각각 검과 창 같은 병기들을 손에 쥐고 있었다.
보통 마물들이 자체적으로 변형된 신체 기관을 무기로 사용하는 걸 생각해 보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
하필 저 던전 안으로 옮겨지는 게 인간인 것과 무슨 상관이라도 있는 것일까.
‘빨리 끝내고 내려 가봐야겠어.’
무언가 수상함을 눈치챈 나는 곧바로 야차를 불러내 하늘로 떠오른 그 ‘마인병’들과 대적시켰다.
{<사냥개자리 야차> 소환}
다수의 적에 맞설 때는 이쪽도 다수를 꺼내는 것이 상책이다.
흑청색 별 불꽃을 휘감은 날개 달린 사냥개들이 공중을 활보하며 눈앞의 적에게 빠르게 달려들었다.
화르륵!
트리슈라의 프라나를 머금은 야차답게, 별 불꽃을 휘감은 고속 돌진으로 마인병들에게 충돌 공격을 가한다.
마치 자유롭게 떠다니는 유성들이 복잡한 궤적을 그리며 하늘의 적들을 격추시키는 모양새다.
큐웅!
마인병 중 하나가 들고 있던 창에 마력을 담아 내지르자, 전방으로 위력적인 풍압이 뻗어 나갔다.
그 궤적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야차뿐만이 아니라 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휙.
‘하급 개체가 이런 공격을?’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위력이 맨몸으로 받아내기엔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대장 격의 개체가 따로 있는 거라면 모를까, 방금의 창격은 저 많은 마인병들 중에서도 그리 특별하지 않은, 하급 개체의 찌르기였다.
즉, 저 모든 마인병들이 적어도 방금 그것 이상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마물도 인간도 아닌 무언가……. 단순히 사지가 달려 있고 무기를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서 위력적인 기술까지 사용하고 있다. 대체 정체가 뭐지?’
내 머릿속엔 더더욱 강한 의문들이 쌓여갔다.
투확! 화륵!
대낮의 하늘에서 야차들과 마인병들이 서로 뒤엉켜 마치 유성우와 같은 광경을 자아냈다.
숫자는 저쪽이 몇 배나 더 많은 데다, 화력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야차들은 끈질긴 생명력과 날렵한 공중 기동으로 마인병들을 차근차근 격추해 나갔다.
처음엔 대등한 전투가 벌어지는 듯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야차 쪽이 더 유리해져 갔다.
‘저놈이 대장 개체인가.’
나는 전투가 벌어지는 도중에 마인병들 중 가장 후위에 서서 참격을 날려대는 놈을 발견했다.
외형이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은 탓에 복잡한 전장에서 바로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꽤 많은 야차들이 그 한 놈에게 격추당하는 걸 발견하고서 특별한 개체라는 걸 눈치챘다.
{마검 파슈파타 소환}
난 곧바로 오른손에 장검을 소환했다.
꽈악.
‘몸은 만전이다.’
오랜만에 온전한 손으로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하얀 경화로 인해 부서져 없어졌던 손은 완전하게 회복되어 있었다.
한 번 죽고 난 다음 부활하면서 모든 게 원상 복구된 것이다.
불사자로서 되살아 난 육체는 더 이상 별 불꽃에 의해 경화되지 않았다.
이제 자유롭게 힘을 쓸 수 있다.
{<달 그림자 검식> 파생형 ‘현월’ 전개}
쉬익!
푸른 불꽃으로 둘러싸인 검은 참격이 멀리 떨어져 있는 대장형 개체를 향해 쇄도한다.
투콱!
대장형 개체는 급히 휘두르던 칼을 비스듬히 세우며 몸을 비틀어 참격을 흘려내려 했다.
다만 각도가 별로 좋지 않았는지, 아니면 현월의 예리함을 견디기에 검의 강도가 높지 않았는지, 칼 한가운데가 서걱 잘려 나갔다.
‘어지간하면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을 텐데.’
물론 저 정도만 해도 상당한 수준의 실력자라는 걸 알 수 있다.
{<적사자 검식> 파생형 ‘신기일섬’ 전개}
그래 봐야 연이어 펼쳐지는 다음 공격에 끝장날 운명이지만.
피잉!
전신을 불꽃으로 화하며 신기루처럼 날아든 내 몸은 어느샌가 목표의 등 뒤에 위치해 있었고.
마인병 대장 개체가 그걸 인지했을 때에는 이미, 섬광이 번쩍인 후였다.
“커헉…….”
놈의 목은 나를 노려보며 몸에서부터 깔끔하게 떨어져 나와 하늘에 떠올랐다.
“……인간…… 죽……인다.”
‘사람의 말을?’
그것은 추락하며 그렇게 말했다.
아인종에 속하는 것도 아닌 마물이면서, 너무나도 선명한 발음으로 나를 저주했다.
적당히 넘어가기엔 너무나도 이상한 일.
난 곧장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야엔 경악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트롤과 다크엘프들이 들어왔다.
* * *
“어느 세력이냐?”
난 곧장 도망치려던 다크엘프 ‘중대장’을 붙잡아 심문을 시작했다.
꼴에 희귀 수호령을 가진 각성자라고, 무기까지 꺼내 들며 나름 발버둥 치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내겐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 일단 놓고…….”
“인드라닉스? 마하넷? 그것도 아니면 아틀라스팜인가?”
나는 내가 알고 있는 5대 세력 중 A&A와 곤륜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세력의 이름을 언급했다.
놈의 눈빛이 변화하는 걸 포착해 그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서였다.
이런 약해빠진 다크엘프 하나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건 아무것도 아닌 일.
그런데 그 녀석은 어째선지 그 모든 세력명을 듣고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겁에 질려서 감정이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지긴 했지만 내가 언급한 세 세력은 답이 아닌 것 같았다.
‘뭐지? 설마 군소세력이 이 정도의 역량을 갖췄을 리는 없고.’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서는 그 다크엘프를 좀 더 다그쳤다.
“제대로 말하면 깔끔하게 끝내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네놈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주마.”
“두…… 둘 다 죽인다는 뜻이잖아!”
“맞아. 그래도 한쪽이 훨씬 나을걸. 영혼이 찢기는 건 몸이 찢기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우니까. 그건 죽음조차 탈출구가 될 수 없거든.”
“으…… 으으…….”
이 녀석이 아까 인간들에게 한 짓을 생각해 보면 당장 죽여도 모자란 일이었다.
도망치려 발버둥 치는 사람을 억지로 산 채로 구겨 넣어서 던전 안에 끌고 들어간 걸 보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든지, 어쨌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
그렇기에 난 진심으로 이 녀석을 대답 여하와 관계없이 죽일 생각이었다.
다만 고통스러운가, 그렇지 않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그게 무슨 느낌인지 몰라서 버티는 거라면, 지금 당장 알게 해주지.”
{유결부 파라슈를 소환한다.}
나는 곧장 영혼을 베는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자, 잠깐만!”
신을 죽이는 도끼를 보자, 다크엘프는 겁이 난 건지 다급하게 외쳤다.
물론 이 녀석이 파라슈를 알아본 것일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저런 반응을 보인 건, 엔키두와 바리공주를 비롯해 수많은 원귀들을 멸함으로써 도끼날이 머금은 흉흉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악의의 오른쪽 눈 속에 있는 깊은 심연보다도 더 강렬한 파괴 의지가 이 안에 담겨 있으니 말이다.
“알고 있는 건 다 말할게. 그러니 제발…… 그걸로 베지는 말아줘.”
“어떤 대답이 나오느냐에 따라.”
“으…….”
여전히 공포에 떨고 있는 그를 향해 나는 우선 다른 질문부터 던졌다.
“이 던전 안에 뭐가 있지? 왜 인간을 산 채로 포박해서 데리고 들어가는 거냐?”
“그건…… 마인병의 생산 시설…….”
아까 전 나와 싸웠던 반인반마의 괴물들이 마인병이었다.
그게 뭔지는 이 녀석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생산 시설이라니?
나는 그 부분을 좀 더 파고들었다.
“생산? 이 안에서 아까 그 괴물들을 만들어낸다는 뜻인가?”
“……그게…… 그런데…….”
끄덕.
다크엘프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저하는 듯한 태도.
물론 저러는 이유가 뭔지, 어느 정도는 나도 눈치채고 있었다.
“인간을 산 채로 끌고 들어가는 이유. 그게 저 마인병 생산과 관련 있는 거겠지?”
“……맞아.”
마인병은 대놓고 사람과 마물의 융합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즉, 이 자가 말하는 ‘마인병 생산’이란 살아 있는 인간을 강제로 마물과 융합시키는 과정일 터였다.
그걸로 기존의 마물보다 한 층 더 강력한 개체를 만들어내는 모양.
‘대체 왜 하필 다크엘프도, 트롤도 아닌 인간을 베이스로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나는 이런 짓을 자행하는 주체 세력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래서 네 소속은 어디지?”
“나는…….”
“아까 말한 세 세력인가? 아니면 군소세력?”
그런데 그 다크엘프가 입 밖으로 꺼낸 세력명은 굉장히 의외였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너무 친숙하달까.
그러면서도 또 너무나도 멀게 느껴진 이름.
“……예루살렘 제국.”
다시 과거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 * *
예루살렘 제국.
그건 내가 살던 신화시대보다도 더 이전 시대에 존재하던 국가였다.
내가 살던 시대의 예루살렘은 제국이 아니라 왕국이였으니까.
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던 때는 대륙 전체에 위세를 떨치던 최전성기다.
‘그리고 그때는 아후라 마즈다가 인간들에게 적극적으로 신의 가호를 내리던 때.’
-백의 구세주께서 우리를 이끄신다.
바로 그 시기를 대표하는 국명과 다크엘프가 말한 ‘백의 구세주’라는 지도자를 놓고 보면.
결론적으로 예루살렘 제국은 아후라 마즈다가 이 땅에 되살린 그의 영토임을 알 수 있었다.
‘그놈이 병력을 생산하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가.’
그리고 난 던전 안으로 들어와 ‘마인병 생산 시설’이라는 것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꿀럭. 꿀럭.
이 드넓은 던전 전체를 뒤덮고서 그 자리에 고정되어 버린 거대한 촉수 괴물체.
그리고 그 괴물체에서 뻗어 나온 각각의 촉수를 입안으로 집어넣은 채 억지로 뱃속에 무언가를 주입받는 인간들.
푸확!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인간의 배는 한순간 폭발하고.
그 안에서 아주 작은 크기의 마물 유체가 태어난다.
‘마인병 생산’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잔혹한 행위였다.
“네놈이…… 이걸 꾸민 거였나?”
그리고 난 여기서 아주 오랜만에.
그러니까 이 몸으로는 처음으로.
정말 익숙한 얼굴을 조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