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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69화 (269/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69화

시스템의 관리자는 내게 보상을 주지 않으려 온갖 수단을 동원해 무효 처리를 시도한 모양이지만.

이미 지금까지 행해온 수많은 ‘인과조정행위’ 때문에 더는 돌이킬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처음부터 이 녀석이 약속한 보상인 ‘고대유적의 접근 권한’을 얻어내고야 만 것이다.

{보상을 획득했습니다.}

핏.

메시지와 함께, 내 오른쪽 손등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조합된 표식이 새겨졌다.

표식은 살갗을 가르고 상처의 형태로 새겨져 약간의 피가 흘러 나왔다.

원래 같았으면 자체 회복력으로 순식간에 아물고도 남았어야 할 만큼 작은 상처이지만, 지금은 왜인지 계속 피가 새어나왔다.

“신우…… 씨.”

그때, 쓰러져 있던 유메미가 깨어났다.

그녀의 눈은 초점이 맞지 않아 보였다.

내가 아닌, 다른 방향을 보면서 말하고 있다.

“유메미, 괜찮아?”

“저는 괜찮아요. 신우 씨야말로 저 때문에……. 미안해요.”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니라, 몸을 빼앗긴 상태에서 바리공주가 저지르는 일들을 모두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네 탓이 아니야. 상황이 어쩔 수 없었잖아.”

누구의 탓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건 다름 아닌 시스템의 관리자였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우리는 어떻게든 버텨냈다.

그거면 된 것이다.

“……그때 그냥 제가 죽어버렸으면…….”

“그런 말은 하지 마. 그거야말로 나한텐 최악이니까.”

유메미는 손을 뻗어 허공을 휘저었다.

나를 찾는 것 같았다.

바로 앞에 날 두고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난 그녀의 손을 잡아 내 쪽으로 당겼다.

“나 여기 있어.”

“……죄송해요.”

유메미는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평범한 손상은 아니었다.

그녀의 초점이 맞지 않는 동공 가운데, 작게 붉은색으로 X자가 그어져 있다.

잘은 모르지만, 어떤 종류의 저주같은 것에 의해 시각이 봉인된 것 같았다.

거기선 어떤 마력도, 에테르도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나나 그녀가 알고 있는 방법으로 풀 수 있는 저주는 아닌 게 확실했다.

“몸은 움직일 수 있겠어?”

“조금씩 감각이 돌아와요. 제 눈도…… 마나를 느낄 수 있게 되면 괜찮아질 거예요.”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유메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은 몸의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인지,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큰 제약이었다.

제아무리 마력으로 사물을 감지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그 능력을 사용하는 건 어디까지나 보이지 않는 영역을 보려고 할 때뿐.

평범하게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걸을 때와 같은 일상적 행동부터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까지, 전적으로 시각에 의존해야 하는 행동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니 그녀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신우 씨.”

유메미가 조금씩 균형을 잡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엉거주춤 팔을 뻗어 내 왼팔 소매를 붙잡았다.

“고마…….”

파삭.

그녀가 뭔가 말하려던 순간, 그녀가 잡은 내 왼팔의 옷깃 안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

유메미는 이상함을 느꼈는지, 곧바로 손을 떼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고는 걱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신우 씨…… 뭔가 이상해요. 영혼이…… 불안정하고…… 몸도…….”

그녀는 그제야 마력과 에테르에 대한 감응력이 돌아왔는지, 내 몸 상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하얗게 경화되어 썩어 문드러져 가는 육신과.

조금씩 존재가 옅어져 가는 영혼을 말이다.

“……아.”

나는 내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파삭.

가뭄이 든 땅처럼 쩍쩍 갈라진 하얗고 딱딱한 손바닥 위에, 얼굴에서 떨어져 나온 피부 조각이 떨어졌다.

지금 내 반신의 상태가 모두 이런 꼴이었다.

별의 불꽃이 나를 좀먹어가고 있는 것이다.

-6개월을 채 버티지 못하겠지.

태공망은 내 남은 생을 그 정도로 예측했으나, 막상 실제로는 그보다도 훨씬 이른 시간에 육체의 붕괴가 끝날 것 같았다.

지금의 나는 한 명의 필멸자일 뿐이니, 육체가 붕괴되면 생명도 끝.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었다.

“어떻게 된 거죠……?”

“이건 곧 고쳐질 거야.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럼에도 난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했다.

그건 유메미를 안심시키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또한 사실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이 시한부 생명을 고칠 방법에 거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불멸의 육신을 얻거라.

태공망은 내게 불멸자로 다시 태어나라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방법과 도구 또한 건네줬다.

이제 남은 건, 이 땅 아래에 있는 ‘고대 유적’에 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유메미. 지금 마법, 쓸 수 있겠어?”

“네. 이젠 감각의 거의 돌아왔어요. 마나도 충분하고. 텔레포테이션으로 다같이 복귀하기만 하면 돼요.”

그녀는 금세 기운을 차렸다.

여전히 나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서 있는 게 불안해 보이긴 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지금 같은 상황을 견뎌내려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돌아가면 우리를 맞이해 줄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커 보였다.

“그래. 그럼 넌 먼저 라이진과 함께 타카마 시티로 돌아가.”

물론 난 말했듯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으므로, 그녀와 같이 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네? 신우 씨는요?”

“난 금방 뒤따라 갈 테니까, 먼저 가 있어.”

“으음…….”

“괜찮아.”

“……알겠어요. ……아참!”

금세 수긍하고 움직이려던 유메미는, 불현듯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마력 발생기! ……그건 어떻게 하죠?”

그녀가 떠올린 건 바로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왔던 목적.

프리드웬을 재가동시키기 위한 대량의 마력 발생기를 트롤들로부터 구입하는 것이었다.

“저 때문에 도시가 이렇게 다 파괴되어 버렸는데……. 이미 거래는 물 건너간 걸까요……?”

그녀는 자신 때문에 일이 틀어진 건 아닌지 걱정했다.

사실 이렇게 된 마당에 마력 발생기 정도야 버려진 걸 훔쳐 가도 트롤들은 모를 것이다.

물론 멀쩡한 게 얼마나 남아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것들은 모두 의미가 없어졌다.

태공망과 만나 그로부터 진실을 듣게 된 순간, 그게 다 무용지물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력 발생기는 필요 없어. 그냥 돌아가도 돼.”

“……네? 정말요?”

“그래. 그러니 이제 가자.”

“……어째서…… 앗!”

난 궁금해하는 유메미에게 다가가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러고는 얼음으로 보호해 둔 라이진이 있는 곳까지 빠르게 움직였다.

그곳에서, 그녀에게 텔레포테이션을 쓰게 해 타카마 시티로 돌아가게 한 다음, 나는 혼자서 움직일 작정이었다.

* * *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시종일관 인자함과 대범함을 잃지 않았던 라르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주변 사람들을 떨게 만드는 냉혹함과 독기.

그 노구의 오크에게선, 좀처럼 보이지 않던 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인간…… 유신우. 그래. 그 녀석이었구나.’

라르스는 간신히 130년 전의 아득한 기억 속에서 그 얼굴을 떠올려 냈다.

자신의 동족들을 죽이고, 시나리오 차원 안에서 수호령을 빼앗아 멋대로 가둬 버린 원수의 얼굴을 말이다.

물론 유신우와의 만남은 150년이나 되는 그의 인생에서 채 1년이 되지 않는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 당시에도 유신우는 자신에게 있어 최악의 적이었다.

동료와 동족을 죽게 만든 적 말이다.

그런 그가 지금,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또다시 자신의 가족과 같다고 생각한 트롤들의 무수히 많은 목숨을 잃게 만든 원흉이 되었다.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시간을 뛰어넘어 두 사람을 다시금 부딪히게 만든 것이다.

“무력부장님, 상급 간부들이 회의실에 모여 있습니다.”

라르스는 수행원의 보고를 받고 아무 말 없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일반적인 트롤들보다 덩치가 작은 그였지만, 수행원에겐 오늘따라 그가 누구보다도 커 보였다.

“저…… 도끼는 제가 가지고 있겠습니다.”

들고 다니기엔 조금 불편해 보이는 양손 도끼를 라르스가 쥐고 있자, 수행원이 그에게 두 손을 내밀며 받겠다고 했다.

회의실에 굳이 그런 걸 가지고 갈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라르스는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켜.”

퍽.

“으헉!”

슬쩍 어깨를 툭 친 것뿐이긴 하지만, 그의 손에 담긴 마력은 적지 않았다.

그 수행원이 트롤 각성자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무력을 가진 자로서 뽑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전신의 뼈가 으스러져 죽었어도 모자랄 것이다.

터벅. 터벅.

회의실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라르스.

그 앞에는 총기로 무장한 트롤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라르스 측 인원이 아니라 군사위원회 소속의 경호원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보면, 무장 경호원들은 그 안에도 여럿 있는 것 같았다.

라르스가 제안한 회의에 자신들의 무장경호대를 배치한 건, 그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는 뜻.

물론 같은 편끼리는 절대로 선을 넘지 않는다는 철칙에 따라 행동하는 라르스였기 때문에, 그동안은 그들이 우려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동안은 말이다.

“무력부장님, 무기는 저희가…….”

서걱!

한 번의 바람을 가르는 소리.

두 번의 참격.

무장 경호들에겐 라르스가 가만히 걸어오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지만, 그들은 어느새 두 동강이 나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쾅.

“응?”

곧이어 라르스는 방문을 발로 걷어차며 회의실 안으로 진입했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급 간부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그쪽으로 몰린다.

“무력부장, 이게 무슨…… 엇?”

“지금 그 손에 들고 있는 게 뭔가?”

“도끼를 이 안에 들고 온다고?”

웅성웅성.

라르스의 차림새를 본 간부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바깥의 상황을 아직 모르는 그들은 설마 라르스가 그걸로 자신들을 공격하리라곤 전혀 생각지 않았다.

“잠깐…… 피!”

물론 그런 허술한 안심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열린 문 아래 바닥이, 동강 난 경호원들의 피로 흥건하게 젖은 것을 누군가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 반동이다!”

“저놈을 쏴!”

곧 그가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간부들이, 제각기 경호원들에게 그를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경호원들은 그와 동시에 일제히 그에게 총구를 들이밀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투타타타탕!

타고난 덩치 덕분에 다른 종족이 쓰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력이 높은 총기를 사용하는 트롤들.

굵직한 마나 탄환의 소나기가 라르스를 향해 쏟아졌다.

파파파팡!

라르스는 손에 쥐고 있는 도끼를 앞으로 하고선 풍차처럼 돌리며 탄환들을 막아내는, 신기에 가까운 기예를 보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며, 간부들이 서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놈이 다가오잖아! 총 말고 다른 걸 써!”

간부 중 하나가 자신의 경호원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 경호원들 역시 각성자이기에 총기보다 더 잘 다루는 무기가 각자 하나씩은 있다.

그러니 평소 같았으면 그의 지시는 틀리지 않았겠지만.

“하, 하지만 저분은……!”

라르스와 근접전을 하는 건 얘기가 달랐다.

그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에잇!”

그럼에도 그들 중 하나가 멋모르고 창을 내밀며 라르스에게 다가갔다.

탄환 방어에 집중하고 있는 그를 옆에서 찌르면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빠각. 텅!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주먹이었다.

라르스는 한손으로 도끼를 회전시켜 총알을 막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다가오는 자를 쳐 죽였다.

말 그대로, 주먹으로 쳐서 머리통을 으깨 죽인 것이다.

“으…… 으아아!”

눈앞에서 잔혹한 광경을 목격한 회의실 안의 사람들이 겁에 질렸다.

그건 경호원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고.

철컥. 철컥.

사격에 마나를 전부 소진해 버린 그들은, 더 이상 라르스에게 총알을 쏟아부을 수 없게 되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얼른 막아!”

“으아아!”

패닉에 빠진 트롤들이 회의실 한쪽 벽면으로 몰려가 서로 뒤엉켰다.

그 추잡한 몰골들은 곧, 라르스에 의해 쌓여 있는 시체 더미로 변할 운명이었다.

콰직. 콰드득. 쩌억.

“끄아아악!”

살벌하기 그지없는 소리들이 비명과 뒤섞여 회의실 바깥까지 울려 퍼졌다.

그건 도끼로 무언가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아니었다.

맨손으로 찢거나 으깨는 둔탁한 소리였다.

“무, 무력부장……. 자네…… 대체 왜 이런…….”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는, 지난번 그에게 ‘리더가 살아야 한다’며 도망치자던 바로 그 간부였다.

“병신 새끼.”

“그……그건 그러니까……!”

으적.

라르스는 자신이 들었던 말을 그대로 되갚아주며, 마지막 생존자까지 잔혹하게 처리했다.

덜컥.

일이 끝나자마자, 회의실 문이 열리고 안경을 쓴 트롤이 들어왔다.

그는 담딘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뒤는 제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눈앞의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주석 각하.”

그건 그 역시 이 예정된 쿠데타의 동조자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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