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66화
“당신은…… 아, 그자로군. 곤륜의 무력부장.”
처음 라르스 일행을 발견한 라이진은 무척 반가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원귀의 영향력으로 인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황에서, 건물 안에 거의 갇혀 있던 그에게 있어 이들은 구원병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라르스와 합류하라는 유신우의 지시가 있기도 했고.
어찌됐든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손쉽게 문제가 해결된 것이었다.
철컥.
“음……?”
그러나 라르스 측의 병사는 라이진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그건 그 병사가 그를 못 알아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저자도 그 인간과 한패입니다. 당장 죽여야 합니다.”
지금 자신들의 도시를 망가뜨린 인간 여자, 유메미와 같은 편이라면, 라이진 역시 적이다.
라르스의 일행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보시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넌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그건 물론…….”
“들을 필요 없습니다!”
탕! 타탕!
라르스의 물음에 라이진이 대답하려던 찰나, 담딘이 옆에 있는 사수의 소총을 빼앗아 라이진을 향해 쐈다.
파지직!
물론 속도로는 결코 뒤처지지 않는 라이진이 그걸 순순히 맞아줄 리가 없었다.
그는 온몸에 전류를 휘감고서 어느 새 천장에 거꾸로 붙어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나는 당신들의 적이 아니오!”
“담딘.”
“……알겠습니다.”
그런 라이진을 재차 사격하려던 담딘의 앞에, 라르스가 손을 내밀어 만류했다.
라이진이 하는 말로 미루어보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무턱대고 죽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지금, 이 사태가 벌어진 이유에 대해 알고 있나?”
“이 사태? ……저기 있는 강령술사를 말하는 거요?”
“그래.”
“그거라면, 물론 나 역시 그 자를 막기 위해 신우 공과 함께 접근하려던 중이었소. ……부끄럽게도, 보다시피 정신 공격 때문에 낙오되었지만.”
라이진은 그 강령술사와 유메미가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라르스는 바로 그 점을 간파했다.
“그 강령술사가 당신의 동료인 인간 여자라는 건 모르는 건가?”
“그럴 리가!”
라이진은 그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물론 그가 그렇게 반응한 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유메미 공은 강령술을 사용하지 않소.”
유신우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유메미는 강령술을 쓰지 못한다.
그 사실 때문에 그녀와 저 중심에 있는 강령술사는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추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강령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확신할 수 있나?”
“그건…….”
“원래 요사한 술수를 쓰는 자들은 결코 평소에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지 않는다. 네가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자가 쓰지 않는다는 법도 없지.”
“……그래서, 어떻게 할 셈이오?”
“우린 그 인간 여자를 죽일 것이다.”
라르스는 자신의 목적을 당당하게 밝혔다.
라이진이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줄 아는 정상인이라면, 여기서 더 이상 자신을 방해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그가 순순히 물러나 준다면, 굳이 여기서 갈등을 일으킬 필요도 없다.
가능하면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
라르스는 사태가 마무리된 후의 드워프들과의 관계까지 고려해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불가하오.”
그러나 라이진의 태도는 완고했다.
“유메미 공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오. 절대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소.”
설령 라르스의 말이 사실이라도, 유신우를 배신하는 행위를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 유신우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 안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
그라면 분명 좀 더 나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기다려야 한다는 게 라이진의 생각이었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신우 공이 저곳에 가 있으니, 이 상황은 곧 끝나게 될 것이오.”
“그게 언제지?”
“그건…….”
물론 의견을 굽힐 수 없는 건 라르스도 마찬가지.
“불확실한 결과를 기약 없이 기다릴 수는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무고한 트롤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당신이 그들의 목숨을 책임질 수 있나?”
각자의 입장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고, 그로 인해 물러설 수 없는 의견 차이 속에서 결론은 겉돌 뿐이었다.
라르스는 무수히 많은 트롤들의 생명을.
라이진은 소중한 동료인 유메미의 생명을.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명백히 상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겠군.”
스릉.
라이진은 조용히 천장에 발을 붙인 채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카타나를 뽑아 들었다.
{권능 <영체 투영: 타케미카즈치> 발동}
그러고는 군신의 영체를 투영해 라르스 일행을 마주했다.
* * *
{권능 <무구 투영: 건곤권> 발동}
담딘이 내민 손을 따라, 레일건에 탄자로 장전됐던 작은 팔찌가 직경 50센티미터 정도의 대형 금속 고리로 변화하며 라이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쐐애액!
빠른 몸놀림으로 곡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건곤권을 회피하는 라이진.
그러나 담딘의 수호령인 나타에게 투영무구는 그 하나가 아니었다.
{권능 <무구 투영: 금전(金塼)> 발동}
슈하악!
그의 왼손에서 작은 정육면체의 큐브 수십 조각이 날아들어, 건곤권을 회피하는 라이진을 쫓았다.
각각의 큐브들은 모두 착탄 지점에서 폭발하는 폭발물.
퍼퍼퍼펑!
라이진은 그것들을 전부 베어내는 것으로 막으려 했지만, 도리어 충격파를 뒤집어쓰는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권능 <무구 투영: 화첨창(火尖槍)> 발동}
화르륵!
담딘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창을 투영해 날끝에서 직선으로 사출되는 화탄을 연달아 사격한 다음.
{권능 <풍화륜(風火輪)> 발동}
{권능 <무구 투영:음양검(陰陽劍)> 발동}
쉬이익!
마지막으로 발밑의 불을 뿜는 바퀴로 고속 활공하며 빠르게 접근해 두 자루의 검을 교차시켜 휘둘렀다.
카가각!
빛과 어둠 속성의 상반된 참격이 층 전체를 뒤덮었다.
그건 건물을 통째로 자를 수 있을 만큼 넒은 범위의 강력한 참격이었다.
“다, 담딘 님…….”
그 광경을 지켜보던 트롤 사수가 입을 쩍 벌리며 담딘을 불렀다.
한꺼번에 4개의 투영무구를 동시운용하는 그의 실력에 감탄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은밀하게 유메미를 저격해야 하는 이 시점에 괜히 시선을 끈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치직.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파지직.
맹렬한 전기 불꽃이 라이진의 전신을 휘감으며 터져 나왔다.
그의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뻗쳤으며, 눈동자는 푸른 안광으로 뒤덮여 마치 살아 있는 신을 연상케 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켜!”
어느새 양손 도끼를 손에 쥔 채 담딘의 바로 옆까지 다가간 라르스는, 담딘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당겨 그를 자신의 뒤쪽으로 내던졌다.
그러곤 도끼로 심상치 않은 전류를 내뿜는 라이진의 머리를 빠르게 내리찍었다.
그 순간.
{권능 <하늘깃 가르기> 발동}
키잉.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내리치는 도끼와 가르는 검.
두 일격이 열십자로 교차한다.
쿠구구궁.
곧이어 이들이 들어와 있는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담딘의 음양검에 의해 잘려 나갔던 벽이, 라르스가 내리친 도끼의 충격파로 인해 완전히 으스러진 것이다.
“으, 으아아!”
콰쾅! 콰쾅!
그러나 무너져 내린 건 이들이 들어와 있는 건물만이 아니었다.
라이진의 참격에 의해, 주변 넓은 반경에 위치한 수많은 고층 빌딩들이 모두 한꺼번에 베어 넘겨졌다.
마치 자로 잰 듯 깔끔하게 잘린 건물의 상층부는 단면 위에서 미끄러질 정도.
덕분에 주변 건물들 역시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마치 대규모의 고강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넓은 지역이 한순간에 붕괴해 버린 것이다.
스사노오의 압도적인 박력으로 찍어 누르는 종 하늘깃 가르기와는 결이 다른.
예리함이 극한까지 다다른 라이진의 횡 하늘깃 가르기가, 일대를 완전한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 * *
부스럭.
“으…… 라르스 님!”
무너진 건물 잔해 안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은 담딘은 우선 라르스부터 찾았다.
라이진의 회심의 일격을 바로 앞에서 정면으로 마주했던 그가 혹시나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는 마음을 가진 채였다.
“커헉…….”
아니나 다를까,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울컥거리며 액체가 쏟아지는 소리를 보아, 크게 당한 듯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저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감각.
괜스레 손발까지 떨게 만드는 알 수 없는 기분이 그를 더 불길하게 만들었다.
“젠장!”
담딘은 예상치 못한 방해꾼의 등장으로 일이 틀어져 버렸음에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여기서 라르스가 당하기라도 한다면, 설령 일이 좋게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트롤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
지금 상황에서 유일하게 자신들을 이끌어 줄 사람이 그뿐이기 때문이다.
“라르스 님!”
파사삭. 파삭.
담딘은 두 손에 쥔 음양검을 휘둘러 잔해를 치워 나가며 라르스 쪽으로 다가갔다.
제발 죽지만은 않았길 바라면서.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감각은 애써 무시한 채.
가까운 곳에 도착한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쿨럭, 쿨럭.”
“라르스…… 님.”
몸통이 대각선으로 잘려 나간 채 바닥을 나뒹구는 라이진과.
그 앞에 가만히 서 있는 라르스였다.
다행히 라르스는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 큰 기술을 정면으로 받아치고도 전혀 타격이 없는 모습이었다.
“여, 역시.”
담딘은 크게 안도하며 그제야 입가에 미소가 돌아왔다.
명실공히 곤륜공사 최강의 무력을 가진 전사 중의 전사.
드워프의 얕은 검술 따위에 쉽게 당할 리가 없었다.
도리어 그 도끼 앞에서 대놓고 검을 휘두른 라이진이 역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
“어쨌든 라르스 님, 우선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담딘은 말없이 우뚝 서 있는 라르스에게 얼른 움직이자고 보챘다.
원래 이들의 목적은 조용히 유메미가 눈치채지 못하게 접근해서 저격하는 것.
그렇게 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 작전이었는데, 이렇게 큰 난리를 쳤으니 당연히 시선이 끌릴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 때문에 혹시나 지금까지의 노력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진 않을까, 괜한 조바심이 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라르스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라르스 님!”
담딘은 그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쳤다.
그런데 그때, 라르스의 몸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대체…….”
시선을 내리자 라르스가 주먹을 움켜쥐고서 부들거리고 있다.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이를 악문 채로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찡그린 미간에선 어떤 감정이 강렬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증오? 분노?
아니, 그건 공포였다.
“지금 뭘 보고 계시는……?”
아까 전부터 느껴지고 있던 불길한 감각.
그건 단순한 기분 같은 것이 아니었다.
담딘은 정확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곳에 있는 ‘어떤 사람’의 마력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바로 코앞에 있는 그 ‘사람’을 인식하지 못한 건, 인지가 부조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아……?”
너무 거대해서 한 개체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에너지.
그게 한 사람의 몸 안에 들어 있으니, 그의 인지는 그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현실을 부정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담딘은 생전 처음으로 미지의 공포라는 감정을 느꼈다.
별의 불꽃을 머금은 유신우에게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