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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64화 (264/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64화

그는 평범한 트롤이 아니었다.

아니, 그 이전에 필멸자가 아니었다.

그는 오래전 신화시대 때로부터 살아남아 여태껏 존재해온 순수한 불멸자.

곤륜 신계의 주신인 태공망 본인이었다.

내게는 그것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대체 어떻게……?’

나는 모든 불멸자들이 아후라 마즈다가 창조한 시스템에 붙잡혀 수호령이라는 틀에 갇혔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덕에 그들은 과거의 나로부터 영멸을 회피할 수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신들을 제약하는 족쇄가 되어버렸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자, 태공망은 그런 족쇄에조차 속박되지 않은 듯해 보인다.

분명 내 눈에는 수호령이라는 메시지가 머리 위에 보이긴 하지만, 다른 여느 신화급 각성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나 아후라 마즈다와도 비슷한…….

그 역시 모종의 방법을 통해 현시대까지 온전한 능력을 갖춘 채 살아남았던 모양이다.

“무엇하고 있는 겐가? 검을 손에 쥐었으면서도 휘두르지 않고.”

그는 망설이고 있는 내게 한껏 여유를 보였다.

그건 물론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겉보기에도 강자라는 게 확실히 느껴지는 정도인데……. 분명 더 큰 힘을 숨기고 있겠지.’

이자가 진짜 불멸자 태공망이라면 당연히 내가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애초에 만전의 상태였어도 아직 과거의 신들과 견줄 만한 힘을 갖추지도 못했을 텐데.

지금은 에테르가 손상되어 온전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즉, 내가 태공망과 싸워 이긴다는 것은 어떻게 보든 승산이 제로라는 것이다.

‘틀렸다. 어떤 방법으로도 그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

난 결국 전의가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기껏 찾아냈다고 생각한 열쇠는, 눈앞에 있지만 손에 쥘 수 없는 환영일 뿐이었다.

이젠 일말의 희망조차 남지 않은 것이다.

“쯧쯧. 싸워 보지도 않고 포기하려는 건가?”

“…….”

“내가 아는 자네는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구만.”

태공망은 나에 대해 아는 듯이 말했다.

지금의 나, 유신우가 아니라, 과거의 나인 아흐리만 혹은 앙그라 마이뉴를 말이다.

“예전의 자네였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나를 이기려 했겠지. 억겁의 시간이 흘러, 가진 것들을 모두 잃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철편에 다시 한번 타신편을 투영하고서 나를 향해 겨눴다.

“칼자루를 고쳐잡아라. 이왕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끝끝내 나와 결판을 보려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나 역시 거기에 응수해야만 한다.

이제 와서 도망쳐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을뿐더러.

이 자가 나와 싸우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래.”

난 두 손으로 파슈파타의 칼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몸속에 흐르는 빙정의 기운을 칼날에 가득 담았다.

{공명기 <달 그림자 검식> 파생형 ‘현월’ 전개}

쉬이익!

선수는 필승.

거리에 상관없이 가장 빠르게 날릴 수 있는 날카로운 참격을 태공망에게 날린다.

군더더기 없는 참격을 따라 초승달 모양의 검기가 뻗어 나갔다.

후웅.

물론 이걸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태공망이 서 있던 자리를 날카로운 검기가 가르고 지나갔으나, 목표는 어느새 환영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는 마치 그림자처럼 내 바로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공명기 <달 그림자 검식> 파생형 ‘용격 만월청영’ 전개}

나는 거리가 좁혀지는 이 순간을 기다려 용격이 담긴 일참을 내던졌다.

처음부터 그를 빠르게 끝내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기술.

‘예상대로.’

태공망이 전투 초반부에는 원귀들에게 했던 것처럼 타신편을 휘둘러 나를 직접 타격하려 할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이자의 성정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태공망이라는 최상급 술사라면 근접전보다 훨씬 더 강한 원거리 전용 보패와 권능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그런 걸 사용하는 건 타신편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후일 터다.

역으로 말하자면 내가 지근거리에서 그에게 검을 휘두를 기회는 오직, 태공망이 내 역량을 파악하지 못한 전투 초반뿐이라는 것이다.

‘이게 먹히지 않으면 난 진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지금의 내 상태에서 태공망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이것뿐이었다.

피잉!

소리굽쇠를 때린 듯한 맑은 울림과 함께, 푸른 보름달이 반으로 갈라진다.

원을 그리는 듯한 내 검의 궤적은 어느샌가 그 원을 가르는 곧은 동작으로 변해 있었다.

물리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두 동작이 동시에 펼쳐지며, 고속의 참격이 태공망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맞았다!’

그리고 그것은 뒤에서 내달려 오는 태공망의 본체를 정확하게 덮쳤다.

이번 것은 아까와 같이 환영을 가르는 것도 아니었다.

영락없는 실체를 베어냈다.

그런데.

뻐억!

그럼에도 나는 복부로 들어오는 묵직한 타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태공망의 타신편이 내 명치를 찔러 들어온 것이다.

“커헉!”

만월청영의 전개는 이미 끝난 후였기에 역동작 때문에 회피할 수 없는 상태도 아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 건, 이 공격이 그런 마음을 먹기도 전에 내게 닿았기 때문이다.

피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칼끝의 날카로움 하나는 끝내주는구만. 하지만 너무 날카롭기만 해서 부드러움이 전혀 없어.”

태공망이 타신편으로 자기 손바닥을 두드리며 말했다.

마치 선생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고 보니 자네, 제대로 검을 배워본 적이 없지?”

“큭…….”

그는 계속 내게 훈수를 두었다.

내 귀엔 그의 말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손을 뻗기만 해도 금세 목을 벨 수 있을 듯한 거리에서 한껏 여유를 부리는 그에게.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기술을 사용하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겠지. 전생의 자네는 본능과 힘으로 적을 찍어누를 수 있었고, 현생의 자네는 대자재천에게서 이어받은 특별한 능력으로 노력하지 않고도 검성과도 같은 검술을 사용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야.”

‘다시 한 번 더……. 이 거리라면 펜리르라도 피하지 못한다.’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그를 베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만월청영과 같은 강한 기술은 필요 없다.

그저 빠르기만 하면 된다.

나는 무릎 꿇은 채로 파슈파타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우하에서 좌상에 이르는 사선 참격을 내던졌다.

{공명기 <달 그림자 검식> 파생형 ‘용격 현월’ 전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용격의 한계는 단 두 번.

그 이상으로는 육체가 멀쩡하다 하더라도 정신이 무너져 버티지 못한다.

아마도 이번의 공격이 마지막이겠지.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이것이 그에게 닿기를 바라며.

“어른이 말을 하는데 듣질 않고.”

파앙!

그러나 태공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왼손은 뒷짐을 쥔 채 오른손만을 휘둘러 내 참격을 맞받아쳤다.

그 어이없을 정도로 간결한 동작이 내 회심의 초고속 참격보다도 더 빨랐던 것이다.

쩌저적. 콰창!

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

{<파슈파타>가 손상되었다.}

파슈파타가 그대로 파괴되고 만 것이다.

투영무구의 매개도구와 같이 물리적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영혼에 결합된 무구인 파슈파타가, 마치 유리처럼 산산 조각나 버렸다.

타신편에 부딪히면서 말이다.

“아…….”

털썩.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파슈파타>를 소환할 수 없다.}

{영구적인 손상으로 인한 수복 불능.}

그건 두 번의 용격 사용으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 피로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악의가 내린 선고는 그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파슈파타가……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다고?’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 벌어졌다.

파슈파타가 파괴당하다니.

원귀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타신편이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시바가 직접 부여한 권능이나 마찬가지인 파슈파타가 파괴당할 줄은 몰랐다.

태공망이라는 자가 이 정도로 격이 높은 자일 줄이야.

“네놈은 진실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덤빈 것이냐?”

그가 다시 뒷짐을 지고서는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뭐지?”

그제야 그가 한 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자재천의 화신이 나를 죽이려 들다니.

-현생의 자네는 대자재천에게서 이어받은 특별한 능력으로…….

대자재천, 그러니까 시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한 그의 말들.

그리고 앙그라 마이뉴로서 신을 가두는 심연에 대해서도 그와 연관이 있다는 듯이 말했고.

어째선지 그는 내가 아는 다른 불멸자들과는 현격히 다른 느낌이 드는 신이었다.

“에잉, 쯧쯧. 이제야 내 말을 듣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 것이냐?”

태공망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나를 보고는, 혀를 차더니 주저앉아 있는 내 앞에 마주 앉았다.

“친우의 정만 없었다면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지도 않았을 터인데.”

“친우의…… 정?”

대체 누구와 친우라는 것인가.

설마 파괴신 시바를 그렇게 지칭하고 있는 건가.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 네가 느끼고 있는 모든 불멸의 존재에 대한 증오심. 그게 누구로부터 이어받은 거라 생각하느냐?”

“시바, 아니, 대자재천을…… 말하는 건가?”

“그래. 잘 알고 있구만.”

태공망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는 이 세상의 모든 신을 영멸시키고 섭리를 복구시키려는 대자재천의 의지에 의해 태어난 존재다. 그런 무거운 사명을 가지고 있는 자가, 이런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등바등 살아남으려 애쓰는 미물들에 목을 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미물? 큭.”

그는 내게 꽤나 그럴듯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지만, 결국 그가 가진 태도는 다른 신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필멸자 개개인의 삶을 하찮게 여기는 것.

그 때문에 내 삶이 망가졌고 그로 인해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인데.

이제 와서 거대한 사명을 운운하며 유메미를 미물 취급한다니.

시바와 관련이 깊은 자라고 해서 뭔가 다를 거라 생각한 내가 틀렸다.

“뭐냐, 그 표정은? 지금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거냐?”

“똑같군.”

“음?”

“너나, 다른 신들이나.”

“허어.”

태공망은 앉은 상태에서 팔꿈치를 자기 허벅지에 괴고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자신의 말이 전혀 통하질 않으니 답답한 모양이었다.

“……이래서 선택한 건가. 대자재천은. ……생각해 보니, 그놈도 이랬던 것 같기도 하고.”

“……?”

급기야 혼잣말을 하던 그는.

“그래. 이게 녀석의 의지라면 이 또한 순리를 따르는 길이겠지.”

자세를 제대로 고쳐 앉아, 허리를 펴고 완전한 가부좌를 틀었다.

“보거라. 네 칼이 닿아야 할 곳이 어딘지를.”

그러더니 그의 몸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온전한 힘을 내 앞에서 개방한 것이다.

‘아…….’

그리고 나는 목도했다.

시스템의 형성에도 불구하고 현세까지 살아남아 존재를 유지한 태공망의 힘을.

곤륜의 구세대 신들을 단신으로 모두 쳐부쉈다고 전해지던 그의 잠재력을 엿본 감상은.

우주적 공포.

그렇게 설명하는 것 외엔 길이 없었다.

* * *

모든 걸 잃을 위기에 처했던 잉굴다이는, 시스템에 의해 부여받는 권한 없이도 보상을 얻겠다는 일념하에 무턱대고 도시의 지하로 통하는 길을 찾아냈다.

애초에 고대 유적 같은 게 숨겨져 있다면 진작 도굴되고도 남았을 터.

그런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한 자라면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이미 보상 욕심에 눈이 먼 잉굴다이는 기어이 그걸 찾겠다고 나선 것이다.

“찾았다. 찾았어!”

그런데 참으로 기묘하게도, 그의 무의미해 보이는 도전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성공하고 말았다.

선전용 가짜 테무르를 가둬 놓은 화려한 주석궁 내부의 지하실 바닥을 부수자, 그도 처음 보는 지하 통로가 나타난 것이다.

이건 예전엔 있지도 않았던 공간이 새롭게 형성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시스템이 내게 보상을 주기 위해 길을 뚫어놓은 게 틀림없어. 그게 퀘스트를 실패했는데도 사라지지 않은 거지.’

잉굴다이는 이 현상을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는, 통로를 따라 주욱 아래쪽으로 이동했다.

그 끝에 나타난 건, 아주 오래된 지하 창고.

아니, 감옥이었다.

철그렁.

“뭐, 뭐야?”

그 감옥의 한구석에서, 철창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잉굴다이는 그곳에 무언가 있음을 직감하고, 그쪽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이건…… 뭐지?”

그곳에서 그가 발견한 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인간이었다.

생김새는 거의 미라나 좀비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으어어…….”

“누, 누구야? 당신은?”

잉굴다이는 오랫동안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한 채 반 시체나 다름없어 보이는 그 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러자 감옥 안의 죄수는 어눌한 발음으로 힘겹게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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