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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62화 (262/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62화

시스템이 수호령 강탈을 막았다.

원래대로라면 관리자는 자신과 동급인 악의의 능력 사용을 함부로 제약할 수 없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그런 법칙을 무시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것도…… 등가교환에 의해 결정된 제약인 건가?’

{특성은 여전히 발동된다.}

그때, 악의가 나에게 다시 한번 말을 걸어왔다.

{다만 저들이 구성해 놓은 경계 안에 나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능동적으로 내 행동을 강제한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퀘스트를 건드리지 못하게 보호한 것뿐이라는 건가.’

시스템은 여전히 법칙을 벗어나지 않았다.

단지 스스로에게 보상이라는 제약을 걸어 내가 함부로 그것을 해치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

심지어 내 주변 상황들을 마구 조작해 대서 무턱대고 무시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유메미까지 끌어들인 게 바로 그것이다.

이쯤 되니 대체 저 지하에 보상이라고 들어 있는지 무엇인지 궁금해질 정도다.

‘젠장.’

물론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눈앞에 있는 바리공주의 패악질을 멈추는 것.

수호령 강탈이 불가능하다면, 일단 육탄전으로 제압하기라도 해야 한다.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둘 순 없어. 그랬다간 트롤들이 재정비를 하고 유메미를 죽이려 들 거야.’

제아무리 바리공주라 하더라도 곤륜공사 세력 전체를 상대로 이길 순 없다.

즉, 시간을 끌게 되면 트롤들이 유메미를 죽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이전에 내 손으로 이 상황을 막아야 한다.

‘접근한다. 바리공주를 멈춰야 해.’

나는 맨몸으로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유메미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어디 한 군데 부러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바리공주를 제압할 작정이었다.

* * *

화르륵!

바리공주가 불러낸 화염 악마가 나를 향해 쇄도해 온다.

주먹이 닿을 초근접거리까지 다가가려던 나는 그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콰웅!

“큭!”

유메미가 구사하는 고화력의 마법을 받아낸 건 처음.

내 몸에는 이미 뜨겁디뜨거운 격멸의 업화가 흐르고 있기에, 이런 불 속성의 화염 공격은 어지간해서는 내게 타격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의 화염 악마는 그 수준을 넘었다.

닿은 부분이 새까맣게 그슬리며 극심한 통증이 엄습해 온 것이다.

‘무시할 수 없는 화력이다.’

그건 물론 바리공주가 그녀의 몸을 차지하면서 더 높은 신격의 힘을 받아들인 덕도 있겠지만.

애초에 유메미의 마법은 순수한 화력만으로 따지면 굉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신체 능력 때문에 근접전에서 불리할 뿐.

{진원진기를 <환란의 빙정>으로 대체한다.}

난 결국 체내의 에너지를 빙정으로 바꿔 열기를 식히고 상처 입은 신체를 치유하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열기를 식히기 위해 빙정을 사용한 건 처음 이 힘을 각성했던, 프리드웬이 봉인된 용암 계곡 이후로 처음이다.

그만큼 유메미의 육체가 구사하는 마법의 화력은 뛰어났다.

“맷집이 좋구나. 그럼 이건 어때?”

바리공주는 이어서 다음 공격을 펼쳤다.

그녀의 주변이 일렁거리며 희미한 영체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일제히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각각의 영체들은 불의 힘을 머금고 있었는데, 유메미의 마법과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달랐다.

아마 바리공주 본인이 가진 원귀를 다루는 힘과 유메미의 원소 마법을 뒤섞은 공격인 듯하다.

‘위험하다.’

나는 그것들에게서 이유를 모르는 강한 위협을 느꼈다.

화염 악마 공격을 받아내면서까지 가까이 다가온 나는, 하는 수 없이 뒤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화악!

날개를 사용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영체들은 나를 향해 천천히 쫓아왔다.

‘추격 속도는 느리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강한 위협과는 상반되게, 각각의 영체들의 움직임은 그리 빠르지는 않았다.

나로서는 얼마든지 손쉽게 피할 수 있는 수준.

화악! 퍼퍼퍼펑!

그러나 그런 것들이 수십 체 이상 집요하게 쫓아오면서, 움직이는 경로에 연쇄 폭발하는 분진을 흩뿌리고 다닌다.

그 탓에 오히려 느리다는 속성이 회피를 더욱 난해하게 만드는 강점으로 작용해 버리고 있다.

“어딜!”

나는 재빨리 원을 그리며 날다가 바리공주의 후방을 잡으려 했지만, 그곳엔 이미 또 하나의 영체가 길을 막고 있었다.

‘한 번 정도는……!’

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부상은 회복하면 그만.

저것들에게서 느껴지는 위협은 무시한 채, 데미지를 입는 걸 감수하고서 그녀를 향해 무작정 돌격했다.

눈앞의 영체가 흩뿌리는 폭발 분진이 내 몸 주변을 휘감았다.

쐐액!

그와 동시에 난 오른손 주먹을 바리공주에게로 뻗었다.

“미, 미친! 이걸 그냥 온다고……?”

그녀가 당황하는 게 보인다.

내가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겠지.

유메미의 육체를 인질로 잡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개의치 않고 그녀의 복부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뻐억!

“컥!”

명치 깊숙이 꽂힌 오른손 스트레이트 펀치.

주먹에 남은 감각은 선명했다.

어지간한 육체의 소유자들마저 절명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반동이 밀려왔다.

이거라면 한동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다.

‘유메미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다음은 내 주변을 감싼 폭발 분진의 데미지를 받아내야 한다.

나는 재빨리 몸을 최대한 말아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동시에 몸 주변에 마나를 둘러 보호막의 역할을 하게 했다.

빙정술식을 전개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워낙 짧은 찰나의 순간이라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다.

‘됐……!’

삐이이.

그런데 다음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귀에선 기분 나쁜 이명이 들려오고 있었고, 나는 잠시 기억을 잃었다.

* * *

‘……이게…… 어떻게 된……?’

정신을 잃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건 확실했다.

왜냐하면 저쪽에서 나를 쫓아오던 수십 개의 다른 영체들이 아직도 내게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겨우 1, 2초.

실전 상황에서는 죽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다행히 추격 영체는 너무 느렸고 바리공주는 여전히 타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이 끊어졌음에도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건 그 덕분이었다.

‘움직여야 해!’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나는 추격해 오는 영체들을 피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기우뚱.

그런데 몸이 이상하다.

팔다리가 붕 뜬 것처럼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설마……?’

아까의 폭발 때문에 사지가 훼손되기라도 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다행히 내 몸은 멀쩡했다.

생각해 보면 환란의 빙정 덕에 사지 손실 정도는 금방 회복되기 때문에 그럴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육신이 멀쩡한데도 컨디션이 극도로 떨어진 이유.

‘에테르가…… 손상됐다.’

그건 영혼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방금 그 공격…… 단순한 화염이 아니었나?’

바리공주의 원귀와 유메미의 마법을 섞은 기술.

기묘한 움직임과 까다로운 대처법은 그리 큰 부분이 아니었다.

그 영체 공격의 진짜 무서움은, 바로 에테르에 직접 타격을 입힌다는 것이었다.

‘젠장. 이건…… 회복이 안 돼.’

에테르는 한 번 손실되면 영구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영혼을 구성하는 기반인 만큼, 내가 가진 힘도 손실된 에테르의 양에 비례해 떨어진다.

즉, 지금 난 바리공주의 공격을 받아낸 탓에 회복 불가능한 능력 손실을 입게 되어버린 것이다.

여태껏 애써 쌓아온 무의 업이 순식간에 뭉텅 잘려 나가고 말았다.

“으으으…….”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쓰러졌던 바리공주가 다시 일어서려 한다.

만약 지금 그녀가 추가 공격을 행해 온다면 지금 상태의 나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저 앞에서 내 쪽으로 다가오는 폭발 영체에게 한 번 더 공격을 당하면 난 영혼 자체가 소멸해 버릴지도 모른다.

‘도망쳐야 해.’

그 순간에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이대로 더 맞서려 하다가는 개죽음을 당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난 바리공주를 내버려 둔 채 도주해야만 했다.

* * *

‘……방법은 없는 건가.’

나는 아지다하카를 탄 채 곤륜공사의 상공을 가로지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도시는 이제, 완전히 전화에 휩싸여 있는 모습.

그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던 트롤들의 제국이, 바리공주가 불러낸 원귀들에 의해 순식간에 몰락해 가고 있었다.

‘힘이 들어가질 않아.’

그런 와중에 나는 에테르가 손상되어 용인화 상태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

영혼의 공명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용인화인데, 그 영혼이 급격히 약해져 버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덕분에 난 직접 아지다하카를 꺼내 그것의 등에 올라타 비행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유메미를 구하기는커녕 내가 가진 힘마저…….’

난 결국 시스템의 함정에 완벽하게 걸려들어 버렸다.

강력한 보상이라는 제약을 걸고 도박을 벌인 관리자에게, 패배하고 만 것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지?’

막막했다.

부상을 입었으면 치료하면 되고, 컨디션이 떨어지면 휴식하면 된다.

얼마나 대단한 적과 싸우든, 어떤 혈전을 치르든, 죽지만 않으면 내 몸은 언제나 정상으로 되돌아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손상된 에테르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심지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업을 쌓아 올린다 할지라도 한계가 생긴다.

정상 상태였을 때에 비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낮은 경지까지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건 마치, 고질병을 얻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운동선수와 같은 상태가 된 거나 다름없다.

해야 할 것이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거기에 도달하기도 전에 종착점에 도착해 버리고 말았다.

‘정말 끝인 건가?’

그동안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차라리 유메미를 구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타카마 시티의 방어가 조금 불안해지더라도 레아나 아델을 함께 데리고 왔더라면.

섣불리 동 대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아니, 애초에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라고, 무수한 과거의 결정들을 되돌아본다.

하지만 그 어느 갈림길에서도 지금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었다.

결국 나에게 있어서는 여기까지 오는 것이 최선이었던 것이다.

‘시스템, 아니…… 아후라 마즈다에게 패배할 운명이었던 걸까. 결국.’

사람의 운명을 자기 멋대로 결정해버리는 신들의 횡포로부터 벗어나려던 발버둥은 여기에 이르러 멈춰 섰다.

이대로 난 동력을 잃고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고깃배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음?”

그런데 그때, 어딘가 기묘한 느낌이 드는 광경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래쪽의 불타는 도시 한가운데, 인공 조성된 공원에서 유달리 평온해 보이는 트롤 하나.

그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호숫가에 걸터앉아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뭐지? 저자는?’

그 주변에는 원귀에 씌어 극도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트롤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자칫하다간 언제 습격당할지 모르는 위험한 지대인 것이다.

그런 곳에서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유유히 낚시를 하고 있다니.

당연히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구해줘야 하나.’

솔직히 내 가까운 사람조차 구하지 못한 내게, 이제 와서 그런 이타심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아마도 에테르를 잃은 데서 오는 헛헛함에 괜한 행동을 하는 걸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는 일단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이 거대한 아지다하카의 등에 트롤 하나 더 태우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말이다.

‘……잠깐, 저자는……?’

고도를 낮추며 가까이 다가가자, 그 트롤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듬직한 덩치를 가진 트롤들 중에서도 유독 작고 빼빼 마른 몸집을 가진 노년의 남성.

물론 그 외모보다도,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단연 그 머리 위에 나타나 있는 메시지일 터다.

{수호령: 태공망(신화)}

곤륜공사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수호령.

그건 이곳의 수장인 ‘테무르 주석’이 가지고 있는 수호령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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