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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60화 (260/348)
  •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60화

    -최고위원님, 타깃의 확보는…….

    무전기를 통해 보고가 들려왔다.

    마나 링크는 작동하지 않지만, 원시적인 방식의 근거리 통신은 지금도 여전히 가능했기 때문에, 좁은 범위 내에서라면 소통이 가능했다.

    잉굴다이는 그걸 통해 직접 현장에 가지 않고도 보고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결과를 굳이 직접 확인받을 필요가 없었다.

    {퀘스트 로그가 갱신되었습니다.}

    유메미를 납치하라는 ‘현재 목표’가 달성된 순간,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계획의 성공 여부를 미리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스템이 지시하는 다음 목표를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퀘스트 로그.’

    잉굴다이는 속으로 시스템 메시지를 불러냈다.

    그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만 나타난 이 퀘스트에 대해 혹여라도 타인이 알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길 원해서였기 때문이다.

    ‘보상은 나 혼자 독식해야 한다.’

    그의 뇌에는 이미 욕심이 가득 차 있었다.

    처음엔 그저 별것 아닌 자존심 싸움에서 시작되었을지는 몰라도, 시스템이 개입된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이건 자신의 미래와 출세를 위한 길이다.

    그러기 위해선 뭐든지 해내야만 한다.

    잉굴다이는 지금, 시스템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현재 목표: 납치한 유메미를 처형하십시오. (남은 시간 0:59:51)}

    바뀐 목표는 전보다 좀 더 과격해졌다.

    심지어 1시간이라는 제한 시간까지 주어져 있다.

    그 안에 일을 끝내야 한다.

    “여자를 죽여.”

    잉굴다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나 두가르는 그의 나지막한 지시를 듣고선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만류했다.

    “최고위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못 들었나? 죽이라고 말한 거다.”

    “그건 너무 성급한 판단입니다!”

    그는 상황을 점점 더 어지럽게 꼬아 놓는 잉굴다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이런 복잡한 계획을 실행했던 이유가, 문제를 최대한 키우지 않으면서 인간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애써 납치한 인간 여자를 죽이라니? 그럴 거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무력을 투사해서 목표인 칠지도의 주인부터 죽이는 게 나았을 거요!”

    “시끄럽군.”

    그러나 잉굴다이는 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듣기 싫은 잔소리라도 들은 듯이, 그저 귀를 후벼파며 흘려 들을 뿐.

    “이리 주십시오!”

    두가르는 잉굴다이가 들고 있는 무전기를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시도는 헛된 일이었다.

    퍼엉!

    “컥!”

    잉굴다이의 왼쪽 어깨에서 뻗어 나온 날개가 펼쳐지며 두가르를 쳐냈다.

    두가르는 마치 파리채에 얻어맞은 벌레처럼 힘없이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감히 이몸에게 대드는 것이냐?”

    “으으…….”

    “너도 같이 죽고 싶은 건가?”

    일개 위원인 두가르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잉굴다이가 군사위원회 내에서 최고가 된 데에는, 그의 강한 무력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두가르는 잉굴다이의 살기 섞인 마나에 짓눌린 채 꼬리를 내려야만 했다.

    “크…… 이 일은…… 분명 후회하게 될 겁니다.”

    이미 무언가에 홀린 듯한 잉굴다이를 막을 수 없다.

    두가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그와의 관계를 끊고 여기서 물러나는 것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로 도망치듯 이곳을 빠져나갔다.

    “흥. 너 같은 건 필요 없어.”

    잉굴다이는 패배자처럼 꽁무니를 빼고 도망치는 두가르를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 * *

    눈을 뜬 곳은 평범한 사무실 안.

    유메미는 자신의 몸을 너무 세게 묶고 있는 줄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손발을 포박한 마력 봉쇄 구속구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입안에 있는 발성 방해 장치 때문에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신우 씨에게…… 알려야 해.’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일행의 안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위협받는다는 건 유신우 역시 노려지고 있다는 뜻.

    하지만 지금은 사실을 알리기는커녕 손발조차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저 무력하게 이곳에 묶여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꼴 좋군.

    그녀의 눈앞에 바리공주가 나타나 조롱했다.

    ‘미안하지만, 저 지금 당신이랑 말장난할 힘 없어요.’

    -나도 알아.

    ‘생각 좀 하게 가만히 내버려 둬주실래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쯧쯧. 역시 필멸자들은 한계가 너무 명확하군.

    바리공주는 그런 유메미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정작 당사자인 유메미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말이었지만.

    -그 몸으로 뭘 어쩌려고? 생각하면 방법이 나와?

    아무런 대꾸 없이 고심하며 방법만을 생각해 내고 있던 그녀에게, 바리공주가 보채듯이 물었다.

    ‘해야죠.’

    -네가 그렇게 자랑하던 마법도 전혀 못 쓰는 지금 상황에서 뭘 어쩌려고?

    ‘그러니 마법이 아니라 다른 걸 생각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바리공주가 잠깐 입을 다물고는 뜸을 들였다.

    그러더니 지금까지의 장난스러운 태도를 거두고 진지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한테 생각이 하나 있는데.

    바리공주가 뭔가 말하려던 찰나.

    달칵.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사무실 문이 열리고 트롤들 몇 명이 들어왔다.

    그들은 각자 총기와 검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그러고는 유메미의 주변을 둘러싸고는, 묶여 있는 그녀의 뒤에 있던 자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 하나를 뽑아 들었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유메미의 눈빛이 불안감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렵게 잡아들인 사람을 갑자기 또 바로 처형시키라니, 이해가 안 됩니다.”

    ‘뭐?’

    “까라면 까야지. 뭘 어쩌겠냐?”

    “애써 잡아온 인질을 어디에 써먹는 것도 아니고 곧바로 죽이라니……. 이럴 거면 그냥 처음 잡은 그 자리에서 그렇게 했으면 될 것을.”

    “뭔가 도중에 계획이 틀어졌나 보지. 우린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대화를 들어보니, 이들은 진짜로 그녀를 죽일 생각인 모양이었다.

    딱히 뭔가 정보를 캐낸 것도, 인질로 써 먹은 것도 아닌데, 그 말대로 정말 애써 잡아온 자신을 이렇게 손쉽게 죽일 거라곤 상상도 못한 것이다.

    “잘 나오게 찍어.”

    “지금 딱 좋습니다. 녹화 시작할까요?”

    “그래.”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카메라로 그녀의 처형 장면을 찍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유메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바깥에선 마물들이 우글거리고, 언제 도시의 방어를 뚫고 들어와 사람들을 학살하는 참사가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인데.

    같은 아인종들끼리 힘을 합치기에도 모자란 지금, 도리어 이런 잔혹한 짓을 저지르다니.

    그녀는 말 그대로 ‘트롤링’을 하는 트롤들을 보며 치를 떨었다.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 순간, 바리공주가 그녀에게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이대로 그냥 죽어버릴 거야?

    뭔가 생각이 있다던 방금 전 바리공주의 말.

    유메미는 그걸 떠올렸다.

    ‘방법. 그 방법이 뭐죠?’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그녀에게, 바리공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내게 몸을 넘겨.

    ‘……뭐라고요?’

    -믿지 못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지금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 마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 위험을 탈출하는 건.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지금, 뒤에 서 있던 트롤이 손에 쥔 단검을 그녀의 목에 들이밀고 있다.

    -어차피 네가 죽으면 나도 손해야.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러니 나한테 기회를 줘. 죽는 것보다는 살아 있는 게 낫잖아?

    온갖 의문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논쟁을 벌이고 있을 시간이 없다.

    -얼른!

    ‘으…… 알겠어요!’

    유메미는 결국 하나밖에 남지 않은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바리공주의 말대로, 자신의 몸을 넘긴 것이다.

    {수호령이 각성자의 육신에 빙의합니다.}

    그러자 생전 처음 보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주체로서의 ‘당신’이 아니라, 객체로서의 ‘각성자’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메시지가.

    쿠루루룩.

    그와 동시에 유메미의 영혼은 그녀의 자아 깊은 곳, 의식의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대신 그 빈 자리에 바리공주가 우뚝 섰다.

    * * *

    마법과 마법 사용자의 육체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마법의 동력원인 마나부터가 사용자의 육체에서 흘러 나오는 에너지였고.

    설령 그 마나를 체내가 아닌 외부에서 뽑아 쓴다 하더라도 마법을 사용할 때에는 결국 사용자의 몸을 거쳐야만 한다.

    영혼의 에너지인 에테르를 사용하는 권능과 기술들 역시, 성질은 조금 다르지만 원리는 마찬가지.

    결국 이 모든 힘들이 최종적으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육체가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디스펠 구속구로 몸이 포박당한 유메미는 어떠한 힘도 사용할 수 없었지만.

    ‘휘저어라, 악귀들아!’

    바리공주는 달랐다.

    그녀는 마법과 주술에도 능한 신이었으나, 그보다도 존재 그 자체로 온갖 귀신들을 몰고 다니는, 걸어 다니는 저승과도 같은 자였다.

    모든 무속인들의 조상과도 같은 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존재가, 현세에 직접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건 권능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자연 스스로의 의지였기에 각성자가 빌려 쓰는 것조차 불가능한 신의 고유한 힘이었다.

    “어…… 으…… 어…….”

    “뭐 하는 거야?”

    유메미의 목에 칼을 갖다 대려던 트롤이 갑자기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까뒤집어 흰자위를 드러낸 채, 그 자리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야, 정신 차려!”

    “이거 왜 이……?”

    그의 이상 행동에 당황해하던 다른 트롤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그자와 같은 꼴이 되었다.

    “으, 으아아!”

    “커어억…….”

    “살려……줘…….”

    알 수 없는 미지의 공포에 도망치려 하거나, 바닥에 주저앉아 거품을 물거나, 벽을 긁으며 절규하거나.

    하나같이 기이한 행동들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증상은 다들 제각각이었으나, 결과는 같았다.

    찌이익.

    까드득.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형용할 수 없는 온갖 방법들로써, 공포에 시달린 끝에 죽음으로 내몰린다.

    그것이 바리공주를 따르는 악귀와 마주친 자의 최후였다.

    달그락.

    “후아.”

    처음 칼을 든 채 부들거리던 트롤은 그 와중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유메미, 아니, 바리공주의 손발을 묶은 구속구를 풀어주었다.

    바리공주는 자유로운 손으로 입안의 발성 방해 장치를 빼내고서, 인자한 미소로 자신을 풀어준 트롤에게 말했다.

    “잘했어. 이제 죽어.”

    푸확.

    그렇게 그녀는 손쉽게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방금 전에 말했던 대로, 마법을 쓸 수 없는 유메미 대신에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낸 것이다.

    “흐흐. 정말 오랜만이군. 이 감각.”

    바리공주는 긴 시간 동안 시스템이라는 추상의 세계 속에 갇혀 있다가 오랜만에 현세로 나온 기분을 만끽했다.

    실로 까마득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된 이 기분을 말이다.

    “그래, 이거지! 하하하핫!”

    바리공주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 자신을 따르는 악귀들을 온 사방으로 풀어놓았다.

    이 근방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모조리 휩쓸어버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많은 숫자의 악귀들을 말이다.

    “유메미, 미안하지만 이제 이 몸은 내 거야!”

    바리공주는 그렇게, 유메미의 몸을 빼앗는 데에 성공했다.

    애초부터 그녀와 협력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인과조정목표 달성}

    {시나리오를 속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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